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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28화 (28/123)
  • #28

    “이제 알겠지? 나 문해일이랑 안 사귀는 거.”

    “놀리지 마라.”

    “놀린 거 아닌데…….”

    한호성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우영찬은 굳은 표정이었지만,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신이 엉뚱한 오해를 한 게 부끄러워서 그런 성싶었다.

    ‘나와 문해일이 사귄다고 오해하고 불쾌해한 거라면 우영찬은 호모포비아인 걸까?’

    포비아까진 아니더라도 동성애에 편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주위 사람끼리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던가.

    어쨌거나 오해가 풀렸으니 더는 문제 없을 터였다. 한호성은 핸드폰을 우영찬에게 돌려주었다.

    “더 궁금한 건 없어?”

    “하나만 더.”

    “응, 뭔데?”

    “‘순정집착계략연하공’이 뭐지?”

    “…….”

    여태껏 부끄러움 없이 설명해 주던 한호성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무슨 단어인 줄은 알지만, 차마 제 입으로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 그건 검색하면…….”

    그러나 괜히 검색했다가 또 인터넷에서 이상한 정보를 볼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런 면으론 순수하기가 백지장 같은 우영찬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결국 한호성은 눈을 질끈 감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공’이 뭔지부터 알아야 하는데…….”

    ***

    한호성에게 RPS를 배운 그날, 우영찬은 쇳덩이가 머리를 강타한 듯한 충격을 느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엄연히 따지자면 ‘신세계’라는 감상엔 어폐가 있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이라고 착각했지만 사실, 아메리카 대륙엔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와 비슷하게 RPS를 신세계처럼 여기는 건 우영찬뿐, 팬들은 오래전부터 각종 커플링을 엮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신세계를 발견한 게 아니라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뿐이었다.

    ‘핞줒……? 줒은 이주진을 말하는 건가.’

    피휘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이렇게 알아보기 어렵게 쓰는지 모르겠다. 프윗에 두 사람의 영상이 첨부된 걸 보면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 모양이었다. 한호성의 허리를 끌어안는 이주진의 영상을 보며, 우영찬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룹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 만큼 한호성은 RPS의 세계에서도 인기가 상당했다. 문해일만 한호성과 엮이는 게 아니었다. 설이태도 이주진도 심지어 제논마저,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한호성과 한 번씩은 꼭 엮였다. ‘공’부터 ‘수’까지 역할도 다양했다.

    ‘눤핞……? 이건 또 뭐지. 어디서 본 놈인데.’

    검색 끝에 우영찬은 ‘눤’이 오버 더 리밋의 ‘노원’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한호성은 하다 하다 못해 다른 그룹 멤버와도 엮이는 거였다.

    남바원 @zzangno1

    하드 털다가 눤핞 팬픽까지 발굴함ㅋㅋㅋㅋ 옛날에 열심히 팠는데 추억이다 눤핞만 아니었더라도 오늘날 이런 호게모이녀가 되진 않았을텐데

    ˪오미자 @5mizaaktsk

    헐 남바원님 눤핞파셨어요??? 몰랐네 우리 어쩌면 스쳤을지도ㅋㅋㅋㅋㅋ

    ˪남바원 @zzangno1

    헐 님도 눤핞 파신?? 어쩐지 우리 취향 잘 맞더라니 진짜 입맛 똑같았던 거냐구요~~~ 눤핞이 근본이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덕질 재밌었는데ㅋㅋㅋㅋ

    ˪오미자 @5mizaaktsk

    맞아요 예전 덕질판만의 맛?같은 게 있었죠 뭔가 더 널널하고ㅋㅋㅋ 아 저까지 추억팔이하게되네요 눤이랑 핞 또 같은 무대에서 볼 수 있음 재밌을텐데

    ˪남바원 @zzangno1

    혹시 모르죠 연말에 특별 무대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ㅋㅋㅋ 아니면 예능에 나온다던가?

    ˪오미자 @5mizaaktsk

    방송국놈들아 힘 내봐라...~ 이 할미는 아직 근본게이의 맛을 잊지 못했단 말이다...

    “에이, 씨.”

    우영찬은 프위터를 하다 말고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자신이 검색해서 찾은 프윗인데도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무대 영상은 재밌어서 중독적이었는데, RPS는 재밌지도 않고 오히려 짜증 나는 주제에 왜 중독적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왜 이렇게까지 짜증 나는지도 모르겠다만, 우영찬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크게는 자신이 김제국에게 빙의한 사건이 그렇고, 작게는 한호성과 다양한 남자들을 엮어 대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 누구도 한호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다.

    생각하자니 괜히 화가 났다. 우영찬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잠이나 자자.’

    신곡 발표와 쇼케이스가 당장 내일이었다. 틀림없이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가 될 터였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으니 컨디션을 조절해야 했다.

    우영찬은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눈을 감기 전, 텅 빈 옆 침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한호성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나 보다.

    그러고 보면 한호성이 먼저 잠든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홀로 방을 차지할 수 있어서 편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도대체 밤마다 무얼 하는 건가 싶었다.

    ‘때 되면 자겠지만.’

    한호성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아이돌 일이 년 차도 아니니만큼 컨디션 조절쯤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할 터였다.

    강도 높은 연습 때문에 피로한 몸은 생각을 더 잇지 못했다. 눈을 감은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우영찬은 새까만 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

    드디어 신곡 발표 쇼케이스가 시작되었다.

    우영찬은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하이파이브의 등장과 동시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수많은 눈동자와 카메라 렌즈가 무대를 향했다.

    지나치게 밝은 조명에 눈살을 찌푸리다, 우영찬은 문득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닌가?’

    충동은 찰나였고 실행은 더욱 빨랐다. 우영찬은 마이크를 붙잡고 힘껏 외쳤다.

    “나는 제논이 아닌 우영찬이다!”

    쇼케이스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환호가 멎은 장내에 술렁거림이 번졌다. 사람들의 낯에 당혹한 기색이 스치고, 스태프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그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우영찬만이 후련했다. 제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상관없었다. 연예부 기자도 와 있는 자리니 곧 기사가 나갈 테고, 그리되면 가족에게 소식이 닿는 건 시간문제이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우영찬은 자신만만했다. 순간적으로 이런 재기를 발휘한 스스로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벌써 몸을 되찾은 듯 후련한 기분이었다.

    “너…….”

    그때,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었다.

    나비의 날갯짓 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 하지만 가슴에 총알처럼 박히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호성이 보였다.

    그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절망한 얼굴이었다.

    “안 돼…….”

    한호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정작 우영찬의 귓가를 스친 음성은, 자신의 것 같기도 했다.

    “안 돼!”

    누군가가 절규했다. 이건 한호성의 목소리인가, 자신의 목소리인가, 그도 아니면 제논의 목소리인가.

    후련하던 기분이 단번에 뒤집혔다.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새하얀 무대 조명이 확 꺼지고, 아가리를 쩍 벌린 어둠이 우영찬을 집어삼켰다.

    ***

    “헉.”

    우영찬은 헛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는 여전히 컴컴했다. 그러나 방금처럼 완전한 암전은 아니었다. 사물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보였다.

    ‘꿈이었나…….’

    개꿈치곤 쓸데없이 생생했다. 우영찬은 혀를 차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AM 01:13, 자는 동안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즉, 쇼케이스 당일이다.

    이런 날 쇼케이스를 망치는 꿈을 꾸다니. 꿈은 무의식의 발로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대중 앞에서 ‘나는 제논이 아닌 우영찬이다!’라고 외치는 상상을 종종 했으니 말이다.

    “…….”

    꿈속에서 본 한호성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예쁜 얼굴이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만약 자신이 현실에서 같은 짓을 저지른다면, 한호성은 분명 그런 표정을 지을 터였다.

    우영찬은 상상하길 그만두었다.

    상황이 하도 답답한 나머지 극단적인 해결책을 떠올렸을 뿐이지 실행에 옮길 생각은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호성과 약속한 이상, 제논 역할은 착실히 수행할 작정이었다.

    ‘더 자긴 글렀군.’

    애매한 시간에 깨어난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우영찬은 아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참에 찬물이나 마실 생각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환한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다. 꿈속의 무대 조명만큼은 아니었으나 어둠에 익은 눈엔 지나치게 밝았다. 우영찬은 눈매를 가느스름히 좁혔다.

    “뭐야?”

    인제 보니 식탁 앞에 한호성이 앉아 있었다. 그는 태블릿 PC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싶었다.

    “안 자고 있었냐?”

    “어?”

    한호성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말똥말똥한 눈이 꼭 놀란 토끼 같았다.

    “아직도 안 자고 있었냐고.”

    “몇 시길래…… 어, 한 시가 넘었네? 언제 이렇게 됐지?”

    시간을 확인한 한호성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반응에 우영찬이야말로 황당했다.

    “컨디션 조절하려면 푹 자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인간이 왜 이 시간까지 깨어 있냐.”

    “그러게. 내가 진짜 왜 이러지? 정신을 어디다 빼먹었나 봐.”

    “……자책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우영찬은 반대편 자리에 앉아, 호성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한호성은 식탁에 늘어놓은 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필통과 볼펜, 악보, 그리고 태블릿 PC.

    태블릿 PC의 화면에 웬 막대기가 빼곡했다. 무슨 통계 그래프인가, 싶었으나 아닌 것도 같았다.

    “저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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