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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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마무리한 후 숙소로 돌아온 하이파이브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두 시간 전에 공개된 ‘여름 찰칵’의 1차 티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와, 씨. 오랜만이라 그런가 너무 떨리는데.”
“오, 조회 수 잘 찍혔다. 반응도 좋고.”
“우리 이러다 1위 하는 거 아니야? 수상 소감 연습해 둬야 할 것 같은데?”
멤버들의 말마따나 반응이 꽤 좋았다. 한호성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1위 해야지. 할 수 있을 거야, 이번엔 정말로.”
“와아!”
“1위 가자!”
술 한 모금 안 마셨는데 잔뜩 취기 오른 것처럼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모두가 한껏 꿈에 부풀어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그때, 우영찬이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쉬려고.”
짤막하게 대꾸한 우영찬이 방으로 향했다.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설이태가 만류했다.
“쉬게 두자, 형. 원래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애잖아.”
“그건 그렇지만…….”
오늘따라 우영찬의 상태가 좋지 않은 듯싶어 마음이 쓰였다.
뜬금없이 연애에 관해 물어본 것도 그렇고, 연습할 때도 정신을 다른 곳에 둔 것 같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오히려 평소보다 실수가 적었지만 아무튼 여상치 않아 보였다.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한호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이태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제논이랑 얘기하려고?”
“응.”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뭐, 이왕 대화할 거면 연애 이야기도 슬쩍 물어 주라.”
쟤가 괜히 그런 말을 꺼낸 것 같진 않아서.
설이태가 덧붙여 말했다.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한번 물어볼게.”
일단은 그리 대답했지만, 한호성은 우영찬이 연애 문제로 사고 치리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타인의 몸에 빙의된 채 무슨 연애를 한단 말인가.
“방에 있지?”
똑똑, 한호성은 방문을 두드렸다. 삼 초 후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
“나 들어갈게.”
“그러든가.”
한호성은 문을 활짝 열었다.
우영찬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평소엔 자신이 들어오면 쳐다보던 그인데, 오늘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성싶진 않았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다른 생각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영찬아.”
“…….”
“무슨 고민 있어?”
한호성은 방문을 닫으며 물었다.
거실로 목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작게 말한 탓일까. 듣지 못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우영찬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혹시…… 아까 물어본 거랑 관련 있는 일이야? 연애 얘기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우영찬이 한호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낯선 표정을 마주한 한호성은 흠칫했다.
‘또다.’
이전번에 주차장에서 느꼈듯, 제논과 우영찬의 표정은 상당히 달랐다. 분명 같은 얼굴인데도 같은 얼굴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혼란스럽고 탐탁잖은데 화도 난 듯한…….’
한호성이 아는 제논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제논은 부정적인 감정이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제논은 자신을 탓하면 탓했지, 감정을 좀처럼 표출하지 못했다.
반면 우영찬의 감정은 은근히 알기 쉬웠다. 그는 누군가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굳은 표정이 살벌해, 말을 붙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도와주지 못할 일이야?”
그러나 한호성은 재차 물었다. 현재 우영찬의 사정을 아는 이가 자신뿐인 만큼, 그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자신뿐이었으니.
“……한호성.”
“응, 말해 봐. 무슨 일 있어?”
“내가 지금 개소리한다는 건 아는데…….”
우영찬이 말을 하다 말고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이내, 그가 한호성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문해일이랑 비밀 연애 중인 거 아니지?”
“……뭐?”
한호성으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우영찬이 ‘나 사실 모 여자 아이돌과 비밀 연애 시작했다.’라고 고백했더라도 이보다 뜬금없진 않을 성싶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랑 문해일이 왜?”
“……안 사귀는 거 확실하지.”
“당연하지! 대체 어쩌다 그런 오해를 한 건데?”
자신을 제외하면 딱히 말을 섞는 사람조차 없는 우영찬이었다. 헛소문을 들을 구석조차 없을 텐데 웬일인가, 싶어 의아해하자 그가 말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게 있는데…….”
“아.”
그제야 짚이는 게 있었다. 인터넷, 역시 인터넷이 만악의 근원이다.
“너 설마 팬픽 봤어?”
“팬…… 픽?”
“팬픽이 뭔지 몰라? 그럼 알페스는? 알파벳으로 R, P, S야.”
“RPS는 안다. 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제의 줄임말 아닌가?”
“뭐? 아니야, 내가 말한 RPS는 실존 인물을 커플로 엮는 걸 뜻해.”
‘Real Person Slash’의 줄임말이라고 덧붙이자, 우영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조금 전의 살벌한 분위기 따윈 어느새 아지랑이처럼 사라진 채였다. 한호성은 그런 그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귀지도 않는 사람을 커플로 엮는다고? 왜? 그러면 무슨 이득이 있는데?”
“나도 잘은 몰라. RPS를 즐긴 적은 없으니까. 일종의 인형 놀이? 뭐 그런 건가 보더라고. 다만 그 대상이 인형이 아닌, 좋아하는 아이돌인 거지.”
“…….”
우영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개념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한호성은 그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큭큭 웃었다.
“너 진짜 보기보다 순진하다. 나한테 사기 조심하라고 했으면서, 너도 만만치 않은데?”
배 속에서부터 웃음이 치밀었다. 너무 웃으면 우영찬이 민망해할 성싶어 볼 안쪽 살을 잘근 깨물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스웠다. 결국 한호성은 침대에 고개를 묻고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그만 웃어라.”
“미, 미안. 너처럼 순진한 반응을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아하하, 근데 어디서 뭘 본 거야? 포스트 타임? 프위터인가?”
“됐어.”
“아, 왜. 알려 줘. 내 일이니까 나도 알아야지.”
사실 한호성은 물 밑에서 자신을 누구랑 엮든 상관하지 않았다. RPS의 존재는 알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고, 의식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 일’이라는 핑계로 졸라 대자, 우영찬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프위터.”
프위터는 또 언제 시작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우영찬이 영영 입을 다물 것 같았다. 얌전히 기다리자, 우영찬이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너랑 문해일이 사귄다고 주장하는 놈이 있어. 증거까지 올리던데. 너희가 핸드폰 기종도 똑같고, 폰 케이스에 스마트 톡까지 똑같다고.”
“핸드폰 기종이 똑같은 건 그냥 우연이야. 애초에 똑같은 기종 쓴다고 사귀는 사이라면, 나랑 대표님도 커플이게? 대표님도 나랑 똑같은 핸드폰 쓰시거든.”
“……그거 참 알고 싶은 정보였다.”
“폰 케이스랑 스마트 톡은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서 그래. 1+1 이벤트 하길래 같이 샀거든, 배송비 아낄 겸.”
“…….”
“그리고 또?”
우영찬은 아예 핸드폰을 켰다. 그는 문제의 프윗을 찾아 보여 주었다. 프윗을 하나하나 읽으며, 한호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오해할 만하네.”
“그럼 네가 플레임스타로 활동할 때, 문해일이 블루길 엔터 연습생이었다는 것도 거짓인가?”
“아, 그건 사실이야. 해일이가 날 보고 아이돌에 관심 생겨서 오디션 본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이걸 사귀는 증거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블루길 연습생이 한두 명이었던 것도 아닌데.”
스크롤을 내리자 플레임스타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이 나왔다. 오랜만에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며,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해일이한테 너무 미안해.”
“왜?”
“날 보고 악덕 소속사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정상적인 소속사에서 활동했더라면 해일이도 정상적인 소속사에서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왜 너 때문이냐. 네가 오디션 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문해일의 자유 의지였는데. 잘못은 블루길 대표가 한 게 아닌가?”
“그건 그렇지.”
한호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 소속사에서 사고가 터진 게 햇수로 7년 전 일인데, 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입맛이 썼다.
“그래서, 육개장은.”
“아, 저 라이브 방송 기억난다. 근데 저 때 육개장 레시피만 얘기한 거 아니야. 계란말이랑 멸치볶음 레시피도 얘기했었는데 그건 쏙 빠졌네.”
다시 RPS 화제로 돌아왔다. 한호성은 프윗 타래의 증거를 하나하나 반박해 주었다. 계정 주인인 ‘니은히읗’이 들었더라면 피눈물을 쏟았을 만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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