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23화 (23/123)
  • #23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멍하니 있으려니, 한호성이 먼저 인사했다. 우영찬은 퍼뜩 정신 차리고서는 답했다.

    “예.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지켜보던 이주진을 탄식하게 만드는 어색한 연기였다. 한호성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웃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그냥 좀 멀리서 왔습니다.”

    “우와, 저희 보러 먼 길 오신 거예요? 오늘 날씨도 궂은데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아, 예.”

    우영찬이 듣기에도 퍽 딱딱한 말투였다. 더 자연스럽게 굴어야 한다는 건 아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함을 자각하고 나니 더 어색해졌다. 우영찬은 그답지 않게 삐걱거렸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아주 숙맥이 따로 없었다.

    “사인, 뭐라고 적어 드릴까요?”

    “예?”

    “이름이나 닉네임이요. 원하시는 대로 적어 드릴게요.”

    “아. 그냥 ‘우영찬’이라고 적어 주십시오.”

    옆자리에 앉은 문해일이 탄식했다. ‘쟤 아직도 망상 못 벗어났어…….’라는 소리가 우영찬에까지 들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은 문해일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머릿결이 부드러워 보여.’

    한호성의 머리칼은 밀크 초콜릿처럼 옅은 갈색이었다. 머리카락은 척 보기에도 얇은 편이었는데 대신 가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숱이 많았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게, 절로 손이 갔다.

    “……아.”

    한호성의 머리에 손이 닿기 직전, 우영찬은 퍼뜩 정신 차렸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사인하는 시늉 중이던 한호성이 고개를 슬쩍 들더니,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했다.

    “우리 악수할래요?”

    “……뭐?”

    한호성이 우영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란 우영찬은 어깨를 흠칫했으나, 손을 빼진 않았다.

    ‘부드럽다.’

    한호성의 손은 보들보들한 데다 따뜻했다. 너무 힘주어 붙잡으면 안 될 성싶으나, 동시에 꼭 마주 잡고 싶은 손이었다. 우영찬은 호성에게 붙잡힌 손을 움찔거렸다.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다음에 또 만나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호성이 악수를 풀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에 꿈에서 깨어난 듯 이성이 돌아왔다.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상기하자 겸연쩍은 심정이 확 밀려들었다. 우영찬은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

    “음, 무대는 그래도 잘할 것 같은데 이게 문제네.”

    사인회 연습을 마친 후, 한호성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멀리서 온 팬을 맞아 주던 따스한 눈빛 따윈 신기루처럼 사라진 채였다.

    “상대가 너네라 문제지, 다른 사람한텐 잘할 수 있거든?”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 리 없잖아.”

    “내가 바가지냐? 밖에선 잘할 수 있다니까!”

    우영찬이 뻗댔다. 그래 봤자 한호성으로선 그가 썩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확히는, 믿고 싶었다.

    “그럼 앞으로는 그냥 우리 하는 거 보고 따라만 해. 알았지? 절대 네 맘대로 하면 안 돼!”

    “어.”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물어봐. 아니면 팬싸 후기라도 찾아보고.”

    우영찬은 침묵했다.

    영상이라면 이미 넘치도록 많이 보고 있다는 것 따위,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었다.

    ***

    어쨌거나 좋은 핑계가 생겼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우영찬은 샤워를 마치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느 때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려다 말았다. 요즘은 한호성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꼬박꼬박 노크해서, 이불로 핸드폰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을 듯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켕기는 게 전혀 없었다. 자료 조사를 하려는 것뿐이니 말이다.

    ‘팬싸 후기라고.’

    안 그래도 위튜브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 있었다. 하지만 무대 영상이 훨씬 흥미로워서, 몇 분 보다가 그만두었던 터다.

    이번엔 다소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시청하고자 마음먹으며, 우영찬은 위튜브에 ‘하이파이브 팬싸 후기’를 검색했다.

    0425 하이파이브 이주진 팬싸 엑기스 모음

    [Vlog] 하이파이브 팬싸 가는 날-준비과정부터 성덕 된 썰까지♥

    선글라스 수집이 취미인 최애에게 선글라스 선물을 줬을 때 반응 #하이파이브 #설이태

    늘 ‘우리는 인기가 없다, 삐끗하면 곧장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치고 팬이 없진 않나 보다. 섬네일에서부터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영상이 꽤 많았다.

    우영찬은 개중, 문해일의 얼굴에 ‘(설렘주의)’라는 자막이 붙은 섬네일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문해일에게 ‘설렘’이라는 단어가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그때, 왜인지 기시감이 드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HIGH-5 한호성 레전드 팬사인회 후기

    이전번에 본 직캠에도 전설이라는 수식이 붙었는데 이 영상도 그렇다니. 한호성의 팬들은 전설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우영찬은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마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전설이 맞았다.

    ‘귀여워.’

    빨간 리본 머리띠를 쓴 한호성이 방긋 웃었다. 한껏 줌해서 촬영했는지, 그 얼굴이 큼지막하게 보였다.

    예쁜 걸 크게 보니까 눈이 확 트이는 듯싶었다. 우영찬은 정신없이 영상을 감상했다.

    ‘귀엽다…… 귀여워…… 아…… 진짜 귀여운데.’

    이젠 한호성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게 스스럽지도 않았다. 귀여운 걸 보고 귀엽다고 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외모 하나만큼은 절묘하게 잘생긴 한호성이었다. 내면도 나쁘지는 않지만, 우영찬은 알맹이엔 관심 없었다.

    중요한 건 오직 얼굴. 백설 공주의 새엄마가 보았더라면 당장 독 사과를 들이밀었을 만큼 예쁜 얼굴뿐이었다.

    ‘빨간 리본은 또 왜 저렇게 잘 어울리는 거지.’

    정말 백설 공주라도 되는 건가. 피부는 희고 머리칼은 검으며 뺨은 발그스름한 게 딱, 고전 동화책 삽화 같았다.

    심지어 한호성은 손으로 하트 모양까지 만들어 보였다. 아마 팬이 요청한 듯싶은데, 저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도 심장이 남아났는지 의문이었다. 핸드폰을 통해 보는 자신도 가슴이 벅찰 만치 심장이 뛰는데 말이다.

    “하…….”

    우영찬은 잠시 영상을 멈춘 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김제국의 허약한 몸이 받아들이기엔 지나친 자극이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눈앞에 한호성이 아른거렸다. 무언가를 요청받을 때마다 흔쾌히 들어주며 방긋 웃는 그 얼굴이. 지나치게 귀여워서 화가 날 정도였다.

    우영찬은 별안간 몸을 일으켜 베개를 퍽퍽 때렸다. 죄 없는 베개가 주먹 아래서 무참하게 뭉개졌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나 들어갈게.”

    우영찬은 하던 짓을 멈추었다. 그는 순식간에 주위를 정리하고는 말했다.

    “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한호성이 들어왔다.

    우영찬은 그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역시나 예쁘지만, 핸드폰으로 볼 때처럼 가슴이 벅차오르진 않았다.

    역시 자신이 관심 있는 건 아이돌 한호성이지 사람 한호성이 아닌가 보다. 다른 듯 같은 둘이 철저하게 구분되는 게, 참 희한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혹시 방에서 뭐 했어? 퍽퍽 소리가 들리길래.”

    “아니, 난 못 들었는데. 창밖에서 나는 소리 아닌가?”

    “그런가?”

    우영찬은 뻔뻔하게 둘러대었다. 그걸 믿는지, 한호성은 더 묻지 않았다.

    “영찬아, 나 할 얘기가 있는데…….”

    “뭔데.”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았다. 우영찬은 침대에 걸터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한호성은 의자를 끌고 와 우영찬과 마주 앉았다.

    “아직 괜찮은 주술가를 못 찾았어. 미안해.”

    “아.”

    더 심각한 문제일 줄 알았는데 주술가 때문이었나.

    물론 주술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주술가가 무슨 변호사나 세무사처럼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사무실 전화번호가 나오는 직업도 아니고, 찾기 힘든 일이란 것쯤은 우영찬도 알고 있었다.

    “됐어. 나도 찾아낸 게 없는데 너라고 찾았겠냐.”

    “그래도. 너는 약속 잘 지키고 있는데 난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미안.”

    한호성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사실 찾아본 주술사가 몇 명 있긴 하거든.”

    “있다고?”

    오히려 그게 더 놀라웠다. 한호성이 별다른 말이 없길래 ‘역시나 소득이 없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응. 근데 대부분은 내 얘길 안 믿어 주더라고. 내 얘기를 믿어 준 주술사가 딱 한 명 있긴 한데…….”

    “그 주술사는 어떻게 찾은 건데?”

    “소개받았어. 우리 매니저의 고등학교 동창의 여자친구의 동생이 알바하는 카페에 손님으로 자주 오는 주술사가 있대서.”

    “대체 몇 다리를 건넌 거냐. 아무튼, 그래서?”

    “전화로 상담했는데 처음엔 이 문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더라고. 근데 10분 상담료로 30만 원을 부르는 거야.”

    “그걸 냈냐?”

    “응, 어쨌든 상담은 받았으니까…….”

    우영찬은 이마를 짚었다. 재산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도, 10분 상담에 30만 원이 저렴한 가격이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그 상담에 가치가 없다면 더더욱.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가 직접 만든 마법약을 마시면 된대.”

    “마법약? 그게 뭔데.”

    “나도 잘 몰라. 뭐라더라, 그믐밤에만 제조할 수 있는 특별한 약이라던데. 뱀의 허물과 공작새의 깃털과 99일 동안 말린 장미 꽃잎, 거기에 자기만의 비밀 재료도 들어간대.”

    “식약처 인증은 받은 건가?”

    “아닐걸.”

    “그걸 나더러 마시라고?”

    우영찬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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