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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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잘 조치한 덕분인지, 우영찬의-혹은 김제국의- 손목은 덧나지 않았다.
컴백 준비 또한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멤버 중 한 명이 그동안 익힌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런 것치고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다.
“너 이제 웬만한 소속사 데뷔조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연습을 마무리하며, 설이태가 평했다. 의심 많은 우영찬으로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냐?”
“응. 근데 확정은 아니고, 삐끗하면 데뷔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
이 인간들은 평범하게 칭찬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꼭 안 해도 좋을 한마디를 덧붙인다. 우영찬은 짧게 혀를 찼다.
어쨌거나 자신의 목표는 ‘잘’ 하는 게 아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거였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지금처럼만 하면 무사히 목표를 달성할 듯싶었다.
“이게 다 열심히 도와준 내 덕분인 듯.”
이주진이 끼어들었다. 문해일이 그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며 타박했다.
“네가 뭘 했다고. 내 덕분이지.”
“형은 뭘 했는데?”
“춤 가르쳐 줬잖아!”
“형만 가르쳐 줬어? 나도 도와주고, 안무 쌤도 계셨잖아. 호성 형 덕분이라면 모를까.”
“그건…… 인정이다.”
문해일이 순순히 동의했다. 춤은 그나마 외부 강습이라도 받았지만, 노래는 오롯이 한호성이 책임지고 가르쳤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와, 우리 진짜 수고했다.”
“그러게. 역대급으로 고생했지, 정말.”
자화자찬이 오갔다. 듣자 듣자 하니 점점 어이가 없어, 우영찬이 입을 열었다.
“노력은 내가 했는데 왜 너희가 난리냐?”
“봐, 저렇게 싸가지 없는 녀석 데리고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내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문해일이 미간을 짚었다. 이주진이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잘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이었다.
‘촌극이 따로 없군.’
저 인간들 사이에서 지낸 지 어언 3주째지만 이 분위기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우영찬이 어이없음을 넘어 신기함마저 느낄 때쯤, 한호성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무대가 끝이 아니야.”
“그럼?”
“쇼케이스도 준비해야지. 라방이랑 팬 미팅도.”
“아.”
한순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 제논이 쇼케이스며 라이브 방송이며 사인회를 잘 해낼 성싶지 않아서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차라리 노래와 안무를 익히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런 건 자신만 잘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사람을, 특히 팬을 대하는 문제는 조금 달랐다. 쌍방향 소통이 되어야만 한다. 상당히 건방진 지금의 제논이 잘 해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팬한테 시비 걸진 않겠…… 아니야, 저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저 성질머리를 숨겨야 하는데.’
‘차라리 마이크를 뺏을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우영찬 본인마저 심란해하는데, 이주진이 입을 열었다.
“에이, 그냥 하던 만큼만 해!”
“하긴, 원래도 팬 서비스 잘하진 않았잖아?”
“그래.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하던 만큼만 해라. 그게 낫겠다.”
설이태와 문해일이 말을 보탰다. 잠시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다시 훈훈해졌다. 그러나 한호성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우영찬이 제논이 하던 만큼 할 수 있을까……?’
아마 다른 멤버들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4년 차 아이돌인 제논을 내심 믿는 모양이었다. 만약 자초지종을 몰랐더라면 한호성도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우영찬은 일반인이다. 심지어 일반인 중에서도 특히나 아이돌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 그런 우영찬이 팬을 잘 대하리라곤 기대하기 어려웠다.
“……연습하자.”
한호성은 결연히 주장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연습의 힘이다. 언제나 그렇듯 믿을 건 연습밖에 없었다.
“실전처럼 해 보는 거야. 사인회라고 치고, 우리가 팬 역할 할 테니까 한번 대응해 봐.”
한호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영찬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역할극이라도 하자고?”
“응, 그런 거지.”
문해일과 설이태, 이주진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앉은 이는 우영찬뿐이었다. 그는 네 사람을 돌아보고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이로써 때아닌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타자는 이주진이었다. 그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영찬과 마주 앉았다.
“와,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어떡해, 실물이 더 잘생겼다. 오빠도 오빠 잘생긴 거 알죠?”
이주진이 발랄하게 재잘거렸다. 연기 욕심이 많은 그답게 팬 역할이 자연스러웠다. 한호성을 포함한 세 사람이 내심 감탄하는데, 우영찬이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아, 진짜요? 어떻게 모르지? 아침에 세수하려고 거울 볼 때마다 막 감탄하지 않아요?”
“예. 감탄 안 합니다.”
“…….”
“그냥 음침하게 생기지 않았나?”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우영찬이 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붙임성 좋은 이주진마저 순간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다음.”
보다 못한 한호성이 내뱉었다. 이주진이 의자에서 일어나고, 설이태가 앉았다. 그는 어색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 4년 전부터 팬이었어요. 컴백 축하해요, 신곡 너무 좋아요.”
“예. 감사합니다.”
“…….”
또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듯, 설이태가 흘끔 뒤돌아보았다. 정작 우영찬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양 당당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
문해일의 차례였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가뜩이나 눈이 부리부리하게 생긴 그인지라, 위협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영찬은 그의 시선을 사납게 맞받아쳤다. 평화로워야 할 사인회가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짧지만 치열한 눈싸움 끝에 문해일이 입을 열었다.
“너, 멘트는 그렇다 치고 눈깔이라도 좀 제대로 뜰 수 없냐?”
“너나 잘해.”
“야! 난 지금 팬이잖아! 그리고 네 눈빛이 더 더러워!”
지켜보던 이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사인회에서 저런 식으로 굴었다간, 태도 논란이 터지는 건 물론이고 이번이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었다.
“형! 쟨 그냥 답이 없어. 연습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제논이 목감기 걸려서 목소리 못 낸다고 공지 때리자.”
문해일이 한호성을 돌아보며 외쳤다. 한호성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 눌렀다.
“목감기 핑계를 언제까지 댈 수 있겠어.”
“그럼 다른 핑계를 찾아봐야지. 아무튼 이건 아니야. 쇼케이스가 당장 5일 후잖아. 그때까지 기억을 되찾는다면 모를까, 안 그러면 다 말아먹을걸.”
그 말에 우영찬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도 자신의 대응이 영 미흡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실수하거나, 쇼케이스를 말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딴에는 질문에 성실히 답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 주지도 않고 타박하니 불쾌했다. 우영찬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러는 너넨 뭐 얼마나 잘하는데.”
“…….”
“한번 해 보든가.”
가뜩이나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더욱 싸늘해졌다. 문해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데, 한호성이 그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그래, 한번 해 보지 뭐.”
“…….”
“역할을 바꾸자. 이번엔 우리가 아이돌이고 네가 팬이야.”
한호성은 말 안 듣는 아이를 교육하듯, 우영찬과 눈을 맞추며 조곤조곤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시늉만 내지 말고, 역할에 몰입해 줬으면 좋겠어.”
“……뭘 어떻게 하라고.”
“몰입하기 쉽도록 설정을 추가할까? 음, 넌 사인회에 꼭 오고 싶었던 사람이야. 무사히 사인회에 당첨되긴 했는데, 사인회장이랑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전날 ktx 타고 와서 1박 했어. 그렇게 어렵게 사인회장에 입장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우영찬의 목구멍에서 ‘그냥 집에나 가고 싶다.’라는 대답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건 사인회에 꼭 오고 싶었다는 사람이 할 법한 대답이 아니었다.
“……기쁘다?”
“그래. 무척 기쁘고 떨리는 흥분 상태겠지. 너는 그런 팬이야, 지금. 알겠어?”
우영찬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번째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우영찬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네 명이 조르륵 앉았다. 다들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은 덕분에 제법 사인회장 분위기가 났다.
우영찬은 첫 번째로 이주진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다시!”
“뭐? 내가 뭘 했다고 ‘다시’야?”
“떨림이 느껴지지 않아.”
이주진이 깐깐하게 평했다. 누가 아이돌 겸 신인 배우 아니랄까 봐, 역할극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다.
“넌…… 일단 패스다.”
우영찬은 이주진을 지나 다음 사람에게로 갔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바로 문해일이었다.
“…….”
“…….”
서로를 마뜩잖아하는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다시 눈싸움이 발발할 뻔했으나, 우영찬은 성질을 꾹 내리눌렀다.
“와. 정말 팬입니다.”
“…….”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아 조롱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말이었다. 그에 문해일은 점점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를 마주한 우영찬도 마찬가지였다.
“얘 태도가 더 별로인데?”
급기야 참지 못하고 한호성을 돌아보며 묻자, 그가 답했다.
“해일이도 일단 패스해.”
이대로라면 네 명 다 패스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영찬은 속으로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그나마 만만한 한호성의 차례였다. 그가 말간 눈으로 우영찬을 올려다보았다.
‘씨발, 왜 이렇게 예뻐.’
이상하게도 욕이 튀어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감상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아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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