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
“넌 왜 모든 스텝이 반 박자씩 느리냐?”
오늘도 어김없이 문해일의 타박이 시작되었다.
우영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을 박치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게 아니라 박자는 알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아 헤맸을 뿐이다. 하지만 그리 해명할 바엔 차라리 박치라고 오해받는 게 나았다.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이렇게.”
문해일이 시범을 보였다. 키가 큰 데다 하이파이브 다섯 명 중에선 가장 덩치가 있는 녀석인데, 신기하게도 스텝이 가벼웠다.
반면 우영찬은 가장 체구가 작은 몸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작이 무거웠다. 좋은 의미로 묵직한 게 아니라, 팔다리에 추를 단 듯 둔한 느낌이라 문제였다.
‘씨발.’
우영찬은 스텝을 따라 하며 욕을 삼켰다. 어떻게든 흉내 내고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역시 고작 2주 연습한 것만으론 프로가 될 수 없는 걸까. 아무리 억지로 하는 일이라지만, 자신만 뒤처지는 게 기분 더러웠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응. 안 이상해.”
지켜보던 설이태와 이주진이 한마디씩 평했다. 그나마 처음보다는 나아진 모양이지만 위안이 되진 않았다.
“이만 넘어가고, 다음.”
문해일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우영찬은 다시금 욕을 삼켰다. 이다음은 그가 가장 어려워하는 구간이었다. ‘여름 찰칵’의 전체 안무 중에서 특히 난이도가 높은 구간인데, 우영찬으로선 소화해 내긴커녕 겨우 따라 하는 게 고작이었다.
“와~.”
“멋있다!”
문해일이 시범을 보이자, 구경 중인 멤버들이 환호했다. 우영찬만이 차게 식은 눈으로 춤을 지켜볼 뿐이었다.
‘왜…… 눕지? 왜…… 구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서서 춤추면 안 되는 걸까. 눕고 구른다고 해서 더 멋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활어처럼 팔딱팔딱 잘도 뛴다.’라는 감상뿐이었다. 혹시 자신이 활어처럼 생생하다는 걸 어필하고자 의도한 거라면 성공인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범이 끝났다. 문해일은 우영찬에게 턱을 까딱하며 말했다.
“해 봐.”
하여간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그러나 우영찬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더럽고 귀찮아서 무시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우영찬은 이를 악물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문해일의 시범을 유심히 본 덕분인지, 이번엔 그래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춤이 춤답게 춰지는 것 같았다.
기세를 몰아, 손으로 힘차게 땅을 짚은 그때였다. 찌르르한 통증이 손목을 강타했다.
“……윽!”
우영찬은 그만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헉.”
“괜찮아?”
이주진과 설이태가 달려와 물었다. 문해일마저도 쭈뼛거리며 우영찬의 상태를 살폈다.
“……아프냐?”
“아니.”
우영찬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은 더럽게 아팠다. 손목도 문제지만 마룻바닥에 호되게 부딪힌 충격이 컸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넘어진 건 아닌데, 워낙 살이 없는 몸인지라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듯싶었다.
“봐 봐.”
어느새 다가온 한호성이 우영찬의 손목을 살폈다. 우영찬은 그에게 손목을 내어 준 채, 치미는 신음을 삼켰다.
“손목 움직일 수 있겠어?”
“어.”
“뼈가 부러지진 않았나 봐. 그나마 다행이다.”
“이 정도로 무슨 뼈가 부러져. 기껏해야 인대나 좀 늘어났겠지.”
“아……. 인대 다치면 오래 가는데.”
한호성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그에 우영찬은 저도 모르게 허세를 부렸다.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아.”
“그럼 다행이지만…… 일단 쉬어야겠다. 찜질도 하고.”
한호성은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난 제논 데리고 먼저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너흰 어떡할래?”
“연습 마저 하다 갈게. 우리끼리 택시 타면 돼.”
설이태가 답했다. 그에 한호성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그럼 이따 숙소에서 보자.”
***
밤 11시의 도로는 한적했다. 점점이 자리한 가로등만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옆을 스쳐 갈 때마다 주황색 불빛이 차 안에 훅 밀려들었다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너 정말 괜찮아?”
한호성은 룸미러를 흘긋 보며 물었다. 우영찬은 이번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석을 차지했는데, 환자이니만큼 아니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괜찮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얘기해. 손목 한번 다치면 오래 고생하니까.”
“괜찮다니까.”
무뚝뚝한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뚝 끊겼다.
한호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도로가 뻥 뚫려서, 평소엔 20분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도 도착할 듯싶었다.
‘가자마자 우영찬 찜질시키고 파스를…… 아, 파스가 남았던가?’
머릿속으로 서랍을 뒤적거릴 때였다. 뒷좌석에서 불쑥 부름이 들려왔다.
“한호성.”
“응?”
“그래서 점은 왜 지웠냐?”
“…….”
무슨 얘길 하려나 싶었는데 또 점 얘기다. 왠지 김이 새, 호성은 푸스스 웃었다.
“음, 진짜 별 이유 아닌데.”
“그 별거 아닌 이유가 뭐냐고.”
“사실 어릴 때부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어른들한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눈 밑에 점이 있으면 관상학적으로 좋지 않다.’라는 얘기를 들어서.”
“그래?”
“나도 관상학은 잘 모르지만 그런 말이 있나 봐. 눈 밑에 점이 있으면 울 일이 많대. 그래서 눈물점이라고들 하잖아.”
딱히 관상학을 믿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니, 이따금 신경 쓰인 것도 사실이었다.
“점이 있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없는 편이 좋았겠다, 싶었어. 그렇지만 굳이 지우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고.”
“결국 지웠잖아.”
“그랬지.”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한호성은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았다.
“정신없이 하이파이브 데뷔 준비할 때였어. 문득 거울을 봤는데 갑자기 점이 거슬리더라고. 그,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란 건 알지만, 혹시 눈물점 때문에 그동안 울 일이 많았나…… 싶어서.”
플레임스타가 한순간에 추락했을 당시, 한호성은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의연하게 굴고자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도무지 제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후에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잘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미래와 자신에 대한 고민에 짓눌려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사건이 터지고 햇수로 2년이나 지난 후에도 그러했다.
“그래서 지웠어.”
신호등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한호성은 다시 액셀을 밟았다. 차가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좀 바보 같지? 고작 점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 없는데.”
“…….”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이미지를 바꾸고 싶기도 했어. 난 가뜩이나 눈꼬리가 처져서 울상이란 말을 자주 들었거든. 근데 눈가에 점까지 있으니 더 울적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만족해?”
한호성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응. 만족해.”
신기하게도, 눈물점을 지운 이후론 펑펑 운 적 없었다. 하이파이브로 다시 데뷔한 후에도 별별 사건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여서인지, 마음고생의 역치가 높아져서인지 예전만큼 힘들진 않았다.
어쩌면 자신은 눈물점을 지우며 과거도 지운 게 아닐까. 이 또한 비과학적인 생각이지만, 실제로 그런 각오로 피부과를 찾은 것이었다.
그때를 떠올린 한호성은 큭큭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점 하나 지우면서 왜 그렇게 비장했는지 모르겠네, 별일도 아닌데. 혹시 점 지워 본 적 있어?”
“아니.”
“순식간이거든. 체감상 30초도 안 걸려. 그냥 피부과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을 뿐인데 점이 사라졌더라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늦은 시각인지라 지상엔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한호성은 지하 주차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가 지하 깊숙이 내려갔다.
“다시 점을 그릴 생각은 없나?”
“응? 왜 굳이?”
“네 점을 좋아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던데.”
“뭐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한호성은 어색함을 무마하고자 작게 웃었다.
“좋아해 주는 사람도 많긴 했는데, 점이 없는 편이 낫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서. 굳이 따지자면 반반이려나?”
빈 주차 자리가 눈에 띄었다. 한 번 후진했다가 다시 전진하고, 또 한 번 시도한 끝에 한호성은 주차를 성공시켰다.
그는 차에서 내리며 중얼거렸다.
“점 그리는 것도 재밌긴 하겠다. 나중에는.”
“그래.”
혼잣말이었는데 대답이 돌아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한호성은 흠칫 놀랐다.
찰나였지만, 제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줄 알았다. 물론 저 남자가 진짜 제논이 아님은 알고 있다.
그러나 창백한 주차장 불빛을 받은 까닭일까. 우영찬은 알맹이뿐 아니라 겉껍질마저 제논처럼 보이지 않았다.
“너…….”
이내 한호성은 이유를 알아냈다. 표정이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제논과 우영찬의 표정이 워낙 다른 까닭에, 아예 다른 얼굴처럼 느껴진 것이다.
“왜.”
“……아, 그게.”
무심코 입을 열긴 했는데 할 말이 없었다. 우물쭈물하는데, 우영찬이 차 문을 힘차게 닫았다. 쾅 소리에 한호성은 흠칫했다.
“다친 손목으로 그래도 돼? 무리하다가 덧나면 어쩌려고.”
“설마 차 문 하나 못 여닫겠냐. 그 정도는 아니라니까.”
우영찬이 보란 듯이 손을 탈탈 털었다. 한호성은 그의 손목을 불안스레 바라보곤, 이윽고 숙소로 올라갔다. 한순간 느낀 묘한 감각을 털어 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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