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20화 (20/123)

#20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무대 감상을 즐기는 건 아니다. 며칠간 각종 무대 영상을 섭렵한 덕분에 이젠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아볼 안목이 희미하게나마 생겼지만, 고작 그뿐이다. 우영찬은 여전히 아이돌에게 관심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호성의 영상만큼은 보게 되었다.

‘이것도 적응의 일환인가?’

김제국의 몸에 밴 생활 습관이라도 튀어나오는 걸까. 안무나 몸에 밸 것이지, 왜 이딴 습관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우영찬은 잡념을 의식적으로 치워 버렸다. 이유가 뭐가 됐든, 이 영상은 제법 봐줄 만했다. 낮은 화질을 뚫고 빛나는 얼굴 덕분이었다.

‘잘생기긴 잘생겼네.’

아는 사람에게 그런 감상을 느낀 게, 아무리 혼자만의 생각이라지만 멋쩍었다. 하지만 우영찬은 그냥 뻔뻔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호성은 아이돌이고, 아이돌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게 일 아닌가. 자신은 그저 일 잘하는 사람을 보고 감탄했을 뿐이다. 즉, 이건 달인의 진기명기를 보고 감탄한 것과 다름없다.

때마침 한호성이 눈을 사르르 감았다. 긴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햇살이 쨍쨍해 무심코 눈살을 찌푸린 듯싶지만, 작정하고 지은 눈웃음보다 예뻤다.

‘이래서 전설이라던 거였나.’

우영찬은 그 부분을 돌려 보았다. 누군가 촬영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흘러갔을 찰나가, 김제국의 핸드폰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었다.

“아.”

영상을 막 아홉 번째 되돌린 그때, 무언가가 거슬렸다. 우영찬은 영상을 멈춘 후 한호성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왼쪽 눈가 아래에 작은 점이 콕 찍혀 있다.

처음엔 영상의 노이즈 혹은 핸드폰 액정에 묻은 먼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호성의 점은 정말 점이었다.

‘눈가에 점이 있었던가?’

자신이 알기로는 아니다. 하지만 워낙 작은 점이라 미처 못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

잠시 기억을 되짚은 끝에, 우영찬은 위튜브 메인 화면으로 돌아갔다. 검색창에 ‘한호성 점’이라고 입력하자 연관 검색어가 떠올랐다.

‘한호성 눈물점’

검색하니 관련 영상 몇 개가 나왔다. 우영찬은 개중 가장 조회 수가 높은 ‘한호성 아가밤비시절 눈물점 모음’이라는 영상을 재생했다.

“하…….”

영상이 시작된 순간, 우영찬은 헛숨을 내뱉고 말았다. 스마트폰 액정 속 한호성이 유난히도 작고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좆로길 연습생 시절]

[눈물점이 확실히 보인다]

자막을 보니, 첫 데뷔조차 하지 않은 시절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많아야 열일곱 살일 것이다.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린 게 맞았다.

[첫 화보엔 눈물점이 없다]

[아마 컨실러나 포토샵으로 지운 듯]

[감없는 좆로길 새끼들ㅗ]

“…….”

영상을 제작한 사람은 블루길 엔터테인먼트에 대단한 유감을 품은 게 분명했다. 하긴, 한호성의 팬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순수하고 맑은 한호성의 영상과, 그에 걸맞지 않은 험한 자막이 계속되었다. 요약하자면 ‘한호성은 원래 왼쪽 눈가에 점이 있었다. 데뷔 초에는 가리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활동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가밤비에서 어른밤비로 진화한 호성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던 눈물점]

[때론 청순하고 때론 섹시한 느낌]

[특히 울먹울먹한 눈망울과의 조합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이파이브 데뷔 후 눈물점이 사라졌는데……]

한호성의 왼뺨이 클로즈업되었다. 눈물점이 있던 자리가 마냥 희기만 했다.

[영구적으로 점을 지웠다는 호성]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눈물점을 볼 수 없었다……]

최근 활동 영상과 사진이 이어졌다. 우영찬이 아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점이 사람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볼펜으로 콕 찍은 듯한 작은 점일 뿐인데, 있고 없는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왜 지웠지?’

굳이 점을 지우지 않아도 괜찮았을 듯싶었다. 궁금했지만, 영상에서 이유가 나오진 않았다. 눈물점이 있던 시절의 한호성 사진만 잔뜩 나올 뿐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더 귀한 눈물점 호성]

[왜 눈물점을 미인점이라고도 하는지 알 수 있는 진귀한 자료이다]

[아가밤비 눈물점 보존 협회장으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눈 밑에 점 찍고 무대 한 번만……]

[제발……]

[그럼 한호성이 눈 밑에 점 찍고 돌아올 그 날을 기약하며]

[오늘 영상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막 영상이 끝난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영찬은 이불을 확 걷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가에 사람이 서 있었다. 방금까지 핸드폰으로 본 얼굴이었다.

“어? 자는 거 아니었어?”

“…….”

한호성을 마주하자,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신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 약해 빠진 몸뚱이는 심장마저 허약한가 보다. 우영찬은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퍽 때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뭐 하는 중이었길래.”

“그냥 핸드폰.”

“아……. 근데 이불은 왜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거야? 안 더워?”

한호성이 우영찬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안 더워.”

“뺨이 발그스름한데.”

“안 그래.”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피식 웃으며, 한호성이 카디건을 벗었다. 그러자 몸에 적당히 맞는 아이보리색 반팔이 드러났다. 우영찬은 그의 허리께를 흘끗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다 좋은데 어두운 데서 핸드폰 하지 마. 눈 나빠져.”

“상관없어.”

“……네 눈이 아니니까?”

우영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긍정으로 이해한 한호성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너무하네.”

“뭐가.”

“이왕이면 아껴 줘, 언젠가 돌려줘야 할 몸이잖아.”

대꾸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귀찮은 잔소리였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자신이 한호성의 팬이 아니긴 한 모양이었다.

아이돌에 대한 팬의 사랑은 가히 맹목적이다. 우영찬이 위튜브를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러했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모든 걸 알고 싶어 하고, 직접 만나길 갈망했다.

하지만 우영찬은 그러지 않았다. 한호성의 무대 영상을 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무대 외의 모습은 굳이 보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관심 있는 건 아이돌 한호성이지 사람 한호성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을 그어 뒀음에도, 호기심이 슬그머니 대가리를 쳐들었다. 결국 우영찬은 입을 열었다.

“야.”

“왜?”

“너, 원래 눈 밑에 점 있었냐?”

“…….”

한호성이 왼손으로 왼뺨을 감쌌다. 마치 점이 있던 자리를 숨기려고 하듯이. 그에 우영찬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고작 점 하나 없앴을 뿐인데, 무슨 대단한 사연이라도 있는 듯한 저 표정은 뭐란 말인가.

“왜 지웠는데?”

“그건 그냥…….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나 점 있던 거.”

“어떻게 모르겠냐. 그냥 예전 영상만 봐도 나오는 것을.”

“내 예전 영상 본 거야?”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튼 점은 왜 지운 건데?”

“음…….”

한호성이 돌연 싱긋 웃었다.

“앞으로 이불 속에서 핸드폰 안 한다고 약속하면 알려 줄게.”

“뭐?”

우영찬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 숙소의 미흡한 부분을 꼽자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점은 바로 문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우영찬은 핸드폰을 할 때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문을 잠글 수 없으니, 그런 방식으로나마 사생활 보호를 하던 거였다.

“싫어.”

“앞으로 더 더워질 텐데 계속 이불 뒤집어쓰려고? 너 그러다 더위 먹어. 왜 죄지은 것처럼 숨으려 해, 그냥 밝은 형광등 아래서 당당하게 핸드폰 하면 좋잖아.”

우영찬은 괜히 뜨끔했다. 죄라면 당연히 짓지 않았지만, 한호성에게 들키면 껄끄러운 짓을 한 건 사실이었으니.

“그럼 방에 들어올 때 노크하든가.”

“노크?”

새삼스럽게 웬 노크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내,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알았어, 노크할게. 그럼 이제 이불 속에서 핸드폰 안 할 거지?”

“……왜 눈가 점 없앴는지 알려 주면.”

“어…… 그건 오늘 연습 열심히 하면 알려 줄게.”

성가신 조건이 점점 늘어난다. 우영찬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됐어. 말하기 싫으면 말든가.”

어차피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바로 나올 정보다. 굳이 한호성 본인에게 묻지 않아도 되었다.

“왜, 요즘 열심히 연습했잖아. 하던 대로만 하면 되지.”

한호성이 짐짓 쾌활하게 제안했다.

하기야 어차피 해야 할 연습이긴 하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데 차라리 작은 보상이라도 붙는 편이 나을 성싶었다.

짧은 계산 끝에 우영찬은 호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알았어. 나중에 얘기하든가.”

“응, 그럼 밥 먹고 연습실 가자.”

‘오늘 저녁 닭곰탕이야.’라고 덧붙여 말하며 한호성이 방을 쏙 빠져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우영찬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째, 자신이 손해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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