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안 그래도 해일이가 그러더라. 제논을 가르칠 정도면, 세상 누구든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그 새끼가?”
“‘새끼’라니.”
한호성이 짐짓 경고 조로 말했지만, 우영찬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내가 잘 못 추는 게 내 탓이냐? 자기가 잘 못 가르친 탓이지.”
“……우와.”
“뭐가?”
“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너무 대단해서…… 아니, 욕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성격이 유리하다고 생각해.”
댄스 트레이너가 있긴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받는 레슨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때문에 메인 댄서인 문해일이 우영찬의 춤을 봐주는 형편이었다.
“내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니까. 문해일한텐 강사의 자질이 없다고!”
“춤을 잘 추는 거랑 남한테 가르쳐 주는 건 다른 문제니 어쩔 수 없지. 너무 그러진 마, 해일이도 누굴 가르치는 건 처음인걸.”
“문해일은 그냥 날 꼬투리 잡고 싶어 할 뿐이야.”
어제만 하더라도 ‘풍선 인형을 세워 둬도 너보단 잘 추겠다.’라며 빈정거리지 않았던가.
우영찬은 문해일에게 춤을 배울 때마다, 의붓언니에게 구박받는 신데렐라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최소한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은 춤을 빌미로 구박하진 않았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문해일이 훨씬 나쁜 놈이었다.
“으음…….”
한호성은 두 사람 모두 이해되었다. 문해일로선 제논이 심히 답답할 테고, 우영찬으로선 문해일이 유감스러울 터다.
애초에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잘 맞지 않던 두 사람이었다. 제논도 문해일과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지만 우영찬은 더 심했다. 비유하자면 물과 불, 아니, 불과 불일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기에 더더욱 사이가 나쁜 듯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단순히 널 꼬투리 잡으려는 건 아닐 거야. 그것만큼은 내가 장담할게. 원한다면 보증도 설 수 있어.”
“…….”
“해일이가 진짜 널 싫어했다면 춤을 가르치지도 않았을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열심히 가르쳐 주고 있잖아. 방식이 약간 거칠 뿐이지…….”
우영찬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문해일에게 지적당하며 꽤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쯤에서 분위기 환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한호성은 은근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참. 나 친구한테 연락했어.”
“친구 누구.”
“왜, 전에 무당 소개해 줬다는 친구 있잖아.”
그 말에 우영찬이 눈을 번쩍 떴다.
“뭐 좀 알아냈냐?”
“아니, 기대했을 텐데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미안. 그래도 과정은 공유해야 할 것 같아서.”
“됐어. 어차피 큰 기대도 없었으니까.”
자신이 듣기에도 퉁명스러운 말투였는지, 우영찬이 덧붙였다.
“너한테 기대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쉽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알아. 아무튼 친구 통해서 호재라고, 그 점집 알려준 애하고 얘기해 봤거든. 근데 호재는 서양 쪽 주술엔 관심 없다더라고.”
“…….”
“유명한 타로 마스터를 소개해 주긴 했는데 우리한테 도움 될 것 같진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속는 셈 치고 한번 볼래? 온라인으로도 상담할 수 있다던데.”
“됐다.”
카드 따위로 어떻게 될 문제는 아닌 듯싶었다. 우영찬은 제 머리칼을 거칠게 흐트러뜨렸다. 한호성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좀…… 알아봤어? 아니면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가 느껴진다든가.”
“그딴 거 없어. 오히려 이 몸에 점점 익숙해지는 중이라 기분 더러워.”
처음엔 주위 상황도 문제였지만, 김제국의 몸으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김제국은 우영찬보다 키가 20cm가량 작았다. 뿐인가. 손발 크기며 팔다리 길이마저 다른 그였다.
그런 몸으로 생활하는 데엔 주의가 필요했다. 마치 어른용 도구를 쓰다가 아이용 도구를 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때문에 알게 모르게 신경이 닳았는데, 막상 익숙해진 지금이 도리어 짜증스러웠다.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 같진 않다.”
“그래……. 참 미스터리하네. 대체 원인이 뭘까.”
한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해결 방법은 둘째치고 원인이라도 알고 싶은데, 짚이는 구석조차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도 알아보고는 있다. 해외 사이트 위주로 검색 중인데 쓸 만한 정보가 없어서 문제지.”
“그렇구나. 어쩐지 요즘 밤늦게까지 핸드폰 하는 것 같던데, 그거 검색하느라 그랬나 봐?”
“…….”
우영찬이 침묵했다. 한호성은 이를 무언의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밤늦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이유는 바로, 위튜브의 기막힌 알고리즘 때문이었다.
***
‘아무도 없군.’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주진은 연기 레슨을 받으러 외출했고, 문해일과 한호성은 무슨 예능에 일회성 게스트로 출연하러 갔으니. 스케줄이 없는 멤버는 설이태뿐인데, 그는 자신의 방에 조용히 있었다. 무얼 하는 중인지 모르겠다만 자신만 방해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탁. 가만히 방문을 닫은 우영찬은 침대에 누웠다.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누군가 방에 들이닥치더라도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이를테면 방어막을 두른 셈이다. 방어막치고는 좀 허접하지만 효과는 괜찮을 터다.
우영찬은 한호성에게서 빌린 이어폰을 귀에 깊숙이 꽂았다.
‘됐다.’
만반의 준비 후, 그는 김제국의 핸드폰을 꺼냈다. 위튜브에 접속하자 추천 동영상 목록이 주르륵 떠올랐다.
하이파이브 역주행은 예정된 일이었다?!
『광고없음』 하이파이브 노래모음♬Best Songs of HIGH-5♬Playlist
심리테스트보다 정확한 황도 12궁
전세계를 사로잡은 동요 가수의 믿을 수 없는 목소리
당신만 몰랐던 운명의 비밀, 신비로운 포춘텔러
[하이파이브] 메보 mr제거ㄷㄷ
망돌이 가창력을 숨김
위튜브의 알고리즘은 꺼림칙할 정도로 정확해서, 사용자가 관심 있는 정보를 쏙쏙 물어다 주곤 했다. 그 알고리즘에 따르면 우영찬의 현재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하이파이브, 오컬트, 그리고 한호성.
“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게 사실이었다.
요즈음 우영찬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하이파이브의, 특히 한호성의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만에 하나라도 쓸 만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 오컬트 관련 영상도 체크하곤 했지만, 한호성의 영상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게 다 뮤비 때문이다.’
하이파이브의 역대 뮤비를 찾아본 게 문제였다. 자료 조사 차원에서 검색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우영찬을 하이파이브에 갓 입덕한 팬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집요하리만치 영상을 추천해 줄 리 없었다.
추천 영상이 뜨는 족족 자신이 클릭했기에 또다시 관련 영상이 추천된 거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우영찬은 스크롤을 내렸다.
☆★전설의 규리시 유채꽃 축제-한호성 직캠★☆
영상 하나가 눈에 밟혔다. 도대체 규리시 유채꽃 축제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전설’ 타이틀이 붙었나 싶었다.
이건 누구라도 클릭할 법한 제목이다. 결코 자신이 유난한 게 아니라 생각하며, 우영찬은 영상을 재생했다.
시작부터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야외무대인 만큼 잡음도 심했다. 우영찬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줄였다. 어차피 음악을 듣고자 한 건 아니기에, 잘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비즈가 번쩍거리는 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후, 한호성이 앵글에 잡혔다.
‘그나마 나쁘지 않네.’
그는 비즈가 박힌 셔츠에 까만 바지 차림이었다. 어깨에서부터 그라데이션으로 떨어지는 비즈가 과하다 싶긴 하지만, 다른 이에 비하면 무난한 편이었다.
우영찬은 영상에 잠깐씩 잡히는 다른 멤버들과 한호성을 비교해 보았다. 한데 면면이 낯설었다.
“어.”
그제야 우영찬은 깨달았다. 이건 하이파이브의 무대가 아니다.
‘플레임스타군.’
어쩐지 처음 듣는 음악이다 싶었다. 영상에 붙은 설명을 확인하니, 무려 7년 전에 촬영된 것이었다. 그제야 우영찬은 왜 다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 당시에는 저 의상이 세련된 스타일이었을 터다.
‘총체적 난국인데.’
의상도, 음악도, 잘게 떨리는 화면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영찬은 핸드폰 속 작은 무대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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