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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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 영상을 세 번 연달아 본 후, 한호성은 “좀 외워졌어?”라고 물었다. 그에 우영찬은 “외워졌겠냐?”라고 반문했다.
결국 한호성은 우영찬의 안무 실력 점검에 나섰다. 결과는 당연히 처참했다. 한호성은 F 학점짜리 답안지를 본 교수 같은 표정을 지었다. 춤에 대한 열정 따윈 없지만, 그런 반응을 보자니 우영찬으로서도 괜히 오기가 치밀었다.
“연습하면 될 거 아냐, 하면.”
“그래, 의욕 있는 자세는 아주 좋아. 안무는 우리 다섯 명이 모일 때 다시 가르쳐 줄게. 동선도 맞춰야 하니까.”
“알았다.”
“참, 연습하는 김에 지난 곡들도 익혀 두면 좋을 것 같아. 시간이 없으니 완벽히는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그래.”
대답하면서도, 우영찬은 한호성의 ‘어느 정도’와 자신의 그것은 기준이 썩 다르리라 확신했다.
“뮤비랑 무대 영상 많이 찾아봐. 일단 뭐든 많이 듣고 봐야 배울 수 있으니까.”
“알았다니까.”
한호성은 건성으로 대꾸하는 우영찬을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호성의 의심과 달리, 우영찬은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하이파이브의 역대 뮤비를 찾아봤다.
***
‘내가 대체 이딴 걸 왜…….’
우영찬은 자조적으로 생각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제논으로서 위화감 없이 지내려면 최소한의 상식은 익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호성의 당부 때문이 아니더라도 제논의 행적을 알아 두려던 바였다.
‘이번 미니 앨범이 7집이라는 건 1집도 있다는 뜻이겠지.’
순서대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제논의 핸드폰으로 위튜브에 접속해 ‘하이파이브 1집’을 검색하자, 바로 영상이 나왔다.
“……개구리 왕자 마법?”
썩 느낌이 좋은 제목은 아니었다. 게다가 다섯 남자의 실루엣인 섬네일이, 어딘지 난해해 보였다.
우영찬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영상을 재생했다.
개굴- 개굴-
뜬금없는 개구리 울음소리 위로 피리 연주가 얹혔다. 작곡자 딴에는 신비로움을 의도한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우영찬을 포함한 대중에겐 엉뚱하게밖에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허.”
한호성이 등장한 순간, 우영찬은 헛숨을 내뱉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색 이파리로 몸을 둘둘 감싼 한호성이 퍽 괴상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건 뭐 쌈밥도 아니고.”
뿐인가. 노래도 영 별로였다.
너의 입맞춤에
나는 나로 존재해
Magical Love
마법에서 풀려난 순간
사랑이란 이름의 또 다른 마법에 걸려 버린 거야
“……윽.”
우영찬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지나치게 단 디저트를 먹으면 머리가 지끈거리듯,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나치게 로맨틱한 데다 감성이 촌스럽다.
초록색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숲을 배회했다. 숲엔 안개가 자욱했는데, 우영찬이 생각하기엔 어떠한 의도가 있어 그리 연출했다기보다 허술한 CG를 감추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어지간히도 저예산이었나 본데.’
배경도, 의상도, 소품도 하나같이 허접해 보였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유치원 학예회도 저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그리 생각한 건 우영찬뿐이 아닌지, 댓글 창이 왁자지껄했다.
-와...... 왜 못떴나 싶었는데 이래서 못떴던거구나
-아 이거 예전에 음방에서 봤던 기억난다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도 이상하네
-차라리 공주나 마법사 롤도 넣어주지 다섯 명 다 개구리 왕자니까 더 웃겨;;
˪이거다 주진이 딱 디지니 공주상인데,,,
-개구리 개구려
-ㅋㅋㅋㅋㅋㅋㅋㅋ스바 개구리 왕자 컨셉이라고 개구리 뜀뛰는 안무 넣는 그룹이 어딨어요ㅋㅋ큐ㅠㅠㅠ 이건 진짜 안무팀이 잘못한듯
˪작곡가부터 잘못한 듯
˪뮤비감독도
˪아니 소속사가 대역죄인이지ㅋㅋㅋㅋ
상위에 포진한 댓글은 대체로 3개월여 전의 것이었다. 시기로 미루어 보건대, 다들 동요 3종이 히트 친 후 하이파이브의 다른 뮤비를 보러 왔다가 기겁한 듯싶었다.
스크롤을 휙 내리자 4년 전, 즉 뮤비가 공개됐을 당시에 작성된 댓글도 있었다.
-아...... 나 진짜 억장이 무너진다 우리 호성이 꽃길만 걸어야 하는데 왜 가시밭길을 걷고 있어..... 기껏 악덕 소속사 벗어났는데 이번엔 감 없는 소속사니ㅠ...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다시 데뷔해줘서 고마워 언제나 응원할게 내가수 내밤비 내호성 파이팅♡♥♡♥
-내가 플레임스타 때부터 한호성을 응원한 이유는 저 친구가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반했기 때문...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기 좋아 그런데 꼭 저런 뮤비에서까지 열심히 해야 했을까?... 호성아... 진짜 이 사태를 어떡하니......
-초록색 옷 입은 애 잘생겼네
˪다섯 명 중 누구 말씀이신지
“……흠.”
사람의 보는 눈이나 듣는 귀는 다 비슷비슷한지, 초창기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애초에 반응 자체가 얼마 없었다. 곡을 발매했을 당시엔 하이파이브의 몇 안 되는 팬만 보았다가 4년이 지난 후에야 화제가 된 성싶었다. 그 화제가 좋은 의미라기보다 나쁜 쪽에 가깝긴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그런 반응이나마 없는 것보다 나을 터다.
“용케 2집이 나왔군.”
우영찬은 두 번째 뮤비를 재생하며 중얼거렸다.
한 번 실험적인-혹은 괴상한- 컨셉으로 망한 까닭인지, 이번엔 무난한 분위기였다. 아카시아가 만개한 교정을 배경으로 교복 차림의 멤버들이 등장했다.
“음.”
남색 넥타이를 반듯하게 맨 한호성이 교정을 거닐었다. 우영찬은 저도 모르게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호성은 군 복무 후 하이파이브로 재데뷔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저 때도 성인이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교복이 잘 어울렸다. 학생, 그것도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풋풋해 보인다. 세 살 연하인 문해일보다 한호성이 훨씬 싱그러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특별히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영찬은 무표정한 얼굴로 세 번째 뮤비를 재생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연달아 여섯 번째 뮤비까지 시청한 후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감이 오질 않는다.
차라리 첫 번째 뮤비처럼 아예 괴상하면 모를까, 두 번째 뮤비부터는 그저 그럴 뿐이었다. 도무지 이렇다 할 감상이 들지 않았다. 낯선 음식을 먹으면 이게 맛있는지 맛없는지조차 긴가민가하듯, 지금의 심정이 딱 그러했다.
“사람들 반응은 괜찮은데.”
두 번째 뮤비부터는 댓글 창의 분위기가 훈훈했다. 곡이 발매됐을 때부터 좋아하는데 이제라도 떠서 다행이라느니, 왜 이런 명곡을 너희들만 들었냐느니, 무슨 소리냐 진작 홍보 돌렸는데 안 들은 건 네가 아니냐느니 하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처음 들은 곡이 너무 이상해서 그런가.”
그때 나쁜 인상을 받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뭐든지 첫인상이 중요한 법인데, 돌이켜 보면 하이파이브와의 첫 만남부터가 썩 좋진 않았잖은가.
‘어쩌면 나한테 듣는 귀가 없어서일지도.’
예술 감상에도 훈련이 필요해서, 훌륭한 작품을 접할수록 안목이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일례로 미술이나 클래식의 경우, 배경지식이 있으면 작품을 이해하기 쉬워지지 않던가. 대중음악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우영찬은 이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그냥 이놈들이 못한 거 아닌가?”
자신의 문제일 리 없다. 생각해 보면, 진짜 좋은 곡이라면 발매 당시 인기를 끌었어야 옳지 않나. 이제야 ‘숨겨진 명곡’이라며 찬사받는 것도 결국은 동요 3종으로 얻은 인기의 연장선이 아니냔 말이다.
‘비교해 봐야겠어.’
제 귀가 문제인지, 하이파이브가 문제인지는 타 그룹의 곡을 들으면 알 일이다.
우영찬은 위튜브에 오버 더 리밋을 검색했다. 아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 몇 없기도 하거니와, ‘이왕 참고할 거면 업계 최고를 참고해야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
가장 최근의 뮤비를 클릭한 우영찬은 감탄을 내뱉었다.
일단 조회 수부터가 하이파이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댓글 창 분위기도 훨씬 뜨거웠다. 하이파이브의 댓글 창이 도란도란 담소 나누는 사랑방 분위기라면, 이쪽은 스타디움을 꽉 채운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영어, 일본어, 태국어, 스페인어…… 이건 터키어인가?”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달린 댓글만 봐도, 오버 더 리밋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영찬은 약간의 기대를 품은 채 재생 버튼을 눌렀다.
강렬한 비트가 울려 퍼졌다.
도입부부터 힘이 잔뜩 들어간 멜로디는 점점 화려해졌다. ‘비트에서 돈맛이 느껴지네’라는 댓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이내 멜로디가 절정에 이르렀다.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에 맞춰 멤버들이 군무를 선보였다.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 같군.’
뮤비가 전체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케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좋은지까지는 역시나 설명하기 어렵지만, 왜 인기가 많은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그럼 역시 내 귀가 아니라 얘들 문제 아닌가.”
우영찬은 그리 중얼거리며 하이파이브의 뮤비를 재생했다.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에서, 다시 보니 어딘지 심심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다섯 멤버가 번갈아 등장하는 동안 우영찬은 무의식적으로 한호성을 주목했다. 그는 앨범의 성과가 썩 좋지 못하리란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바보 같고, 속없어 보이고, 조금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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