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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13화 (13/123)

#13

“예? 제가요?”

“그래. 성난 말처럼 한 성깔 하는데, 그 고삐를 네가 단단히 붙잡게 될 거다. 대단한 재력가인 데다 명예로도 한가락 하는 양반이니 잘살아 보셔.”

한호성에게서 별다른 대꾸가 없자, 무당이 은근하게 물었다.

“왜. 맘에 안 들어? 배우자 복 좋다는 말 듣고 안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네.”

“아,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고요. 제가 연애도 결혼도 생각 없어서요. 배우자 복이 좋아 봤자 써먹지 못할 것 같아서……. 배우자 복을 다른 데에 갖다 붙일 순 없을까요? 이를테면 인복이라거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어차피 인복은 타고났다니까?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을 텐데. 개중에 이상한 사람도 한둘씩 껴 있겠지만.”

“그게 문제예요…….”

“그래도 배우자 복 대단한 게 어디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어느 날 갑자기 불꽃같은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하하.”

호성이 대강 웃어넘겼다. 아무리 한호성이라도 무당의 말을 전부 믿진 않는 모양이었다.

‘순도 100%짜리 바보는 아니라 다행이군.’

우영찬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무당이 홱 고개 돌리며 말했다.

“한데 너는 왜 남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니?”

순간, 차가운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굴러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영찬은 한참 침묵한 끝에야 겨우 목소리를 짜내었다.

“……뭐?”

“그거, 네 껍데기 아니잖아.”

무당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초승달처럼 휜 눈웃음에서 순수한 궁금증이 느껴졌다. 딱히 나쁜 의도는 아닌 듯싶으나, 우영찬은 기분이 확 불쾌해졌다.

잠시 후에야 우영찬은 그 감정이 다름 아닌 공포임을 깨달았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 하는 거지. 뭐가 보이나?”

자신이 사짜 무당 따위에게 공포를 느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일부러 사납게 내뱉자, 무당이 우영찬을 빤히 응시했다. 검은 바둑돌 같은 눈동자가 반들거렸다.

“육신과 넋의 기운이 다르잖아. 하지만 상당히 비슷하긴 해. 그러니 그 몸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거겠지.”

“……내가 차지하려던 게 아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되어 있었을 뿐이야.”

“거참 안타깝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했는데, 그걸 못 알아내게 되었네?”

우영찬은 무당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무슨 흥미로운 수수께끼 취급하다니. 짜증이 치솟았으나, 지금은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었다.

“나야말로 알고 싶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혹시 짚이는 게 있나?”

“글쎄,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한호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제국의 몸에 빙의된 지 일주일째.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한호성이 간섭하니 성가셨다. 우영찬은 그를 돌아보며 내뱉었다.

“지금까지 수백 번은 말했다. 나 김제국 아니라고. 우영찬이라고!”

“……너 정말 김제국한테 빙의된 거였어?”

“그렇다니까!”

화들짝 놀란 표정을 보니 더 열이 뻗쳤다. 자신이 말이라도 안 했으면 모를까, 목 놓아 외쳐도 듣지 않은 건 저쪽이 아닌가. 우영찬은 제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속 터져 죽겠네. 아니지, 혹시 이 몸이 죽으면 영혼이 원래대로 돌아가나?”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고 그래. 그럼 제논의 영혼은 어디로 돌아가라고?”

우영찬이 씨근덕거리는 사이, 한호성이 무당에게 물었다.

“우영찬이요, 어떻게 되돌릴 방법 없을까요?”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면 우영찬의 생각이 바뀌리라 생각한 한호성이었다. 그러나 막상 생각이 바뀐 건 그였다.

안 그래도 김제국이 이상하다고 느끼던 바다. 극히 소심한 성격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그렇고, 결벽증도 사라졌으며, 사소한 습관도 완전히 뒤바뀌지 않았던가.

우영찬이 김제국의 몸에 빙의했다는 대전제 자체가 워낙 비현실적이라 믿지 않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김제국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상황도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거기에 무당의 조언까지 더해지니 한호성도 우영찬의 주장을 믿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글쎄요. 말했다시피 나도 이런 건 처음 봐서.”

“짚이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으신가요? 뭐라도 좋으니 제발 말씀해 주세요.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죠.”

“흠…….”

“아! 혹시 우영찬을 퇴마할 순 없을까요?”

“씨발, 내가 악령이냐?”

우영찬은 사납게 쏘아붙였다. 한호성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것도 어딘지 찜찜한데, 저를 아예 보내 버리려 하고 있다.

“그럼 성불시키는 거라도…….”

“나 저세상 가라고?”

“…….”

“왜 말이 없어, 한호성. 너 방금 김제국만 되돌릴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아, 아니야!”

정곡을 제대로 찔렸는지 한호성이 손까지 내저으며 변명했다. 우영찬은 위협하듯 내뱉었다.

“나 함부로 성불시키려고만 해 봐. 너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거다.”

“말하는 거 보니까 악령 맞는 것 같은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얘 선량한 영혼 맞나요?”

무당이 오묘한 눈빛으로 우영찬을 훑어보았다.

“딱 하나만은 알겠네. 이건 우리나라 주술이 아니야.”

“그럼?”

“일본이나 중국 쪽 주술도 아닌 것 같고. 서양 주술로 보이는데,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까지는 모르겠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양으로 가야 한단 뜻인가?”

우영찬의 물음에 무당이 답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고. 정 도움을 구할 거면 서양 쪽 주술가를 찾으란 말이야.”

“저, 혹시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긴 어려우실까요?”

이번엔 한호성이 물었다. 그에 무당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한약에 관해 물어보려면 한의원에 가고, 양약에 관해 물어보려면 양병원에 가야지. 나한테 물어 봤자 뭘 안담?”

“오늘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는걸요. 감사합니다. 막막했는데 덕분에 실마리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한호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무당이 씩 웃었다.

“아휴, 인사성 한번 밝네. 그쪽은 정말 잘 될 테니까 아무런 걱정도 말아요. 이건 뭘 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살아 보니까 그렇더라고. 인사성 밝은 애들은 다 잘 풀리게 되어 있어.”

“하하, 감사합니다.”

“자, 이야기할 건 다 한 것 같은데 이만 정리할까?”

“네, 좋아요.”

한호성은 우영찬의 몫까지 복채를 결제했다.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 값어치 이상의 상담이었기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점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그들은 건물을 나서 밝은 햇살을 받고서야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몰라, 나도.”

***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기엔 머리가 복잡했다. 한호성은 우영찬을 데리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우영찬은 돈이 없어서, 이번에도 한호성이 그의 몫까지 주문해 계산했다.

“하…….”

“휴…….”

자리에 앉고서도 나오는 거라곤 그저 한숨뿐이었다. 유리잔만 만지작거리던 끝에 한호성이 물었다.

“너, 정말 우영찬 맞는구나.”

“그래. 이제라도 믿어 줘서 다행이긴 한데, 너 진짜 사기 조심해라.”

“사기는 갑자기 왜?”

“내가 죽어라 외칠 땐 못 믿더니 무당 말은 믿냐? 게다가 무슨 대단한 천기누설을 들었다고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려? 처음 보는 사람 말 믿는 거 아니야. 설령 믿더라도 티 내진 말아야지.”

“야, 아니 그건…….”

돌이켜 생각하니 머쓱했다. 한호성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좋은 말씀을 해 주시잖아.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럼 고개를 끄덕거리지, 가로저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예의고 나발이고 호구 같았다니까. 표정 관리할 자신 없으면 차라리 점을 보지 마라. 이번엔 다행히 제대로 된 무당이었지만, 사기꾼한테 잘못 걸리면 탈탈 털릴 게 뻔하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한호성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우영찬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다소 어수룩하게 군 것도 사실인지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보다 지금은 빙의 건이 급했다. 한호성은 우영찬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넌 이제 어떡할 거야?”

“내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서양 쪽 주술가부터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수로?”

“인터넷을 뒤져 보든가…… 몰라, 시발.”

우영찬이 잘 말하다 말고 제 머리칼을 헝클었다. 어지간히도 심란해 보여, 한호성도 이번만큼은 욕하지 말라고 타박하지 못했다.

“널 더 우울하게 만들고 싶진 않은데…….”

“여기서 더 우울해질 일도 없다. 됐으니까 그냥 말해.”

“실력 있는 주술가를 찾더라도, 너…… 지불할 돈은 있어?”

우영찬은 급브레이크라도 걸린 듯 흠칫했다. 그는 황망히 중얼거렸다.

“내가 돈이…… 없어?”

살면서 단 한 번도 돈 걱정이란 걸 해 본 적 없는 우영찬이었다. 비록 지금은 처한 환경이 상당히 달라졌지만, 그러더라도 아이돌이 아닌가.

“너네 동요로 떴다며. 그럼 돈 많이 번 거 아니야?”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그동안 워낙 빚잔치해 가며 활동해서 그거 메워야 했거든. 물론 정산도 많이 받았지만.”

“…….”

“근데 그거랑 별개로 너, 제논 계좌 비밀번호 모르잖아.”

우영찬은 잇새로 욕을 내뱉었다. 인제 보니 진짜 바보는 한호성이 아닌 자신이었다. 왜 그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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