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 점 보려고.”
“점? 형이 점을 본다고?”
“응.”
이게 뭐라고, 말하기가 왠지 멋쩍었다. 한호성은 귀 뒤의 마스크 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친구한테 추천받은 곳이 있어. 아침에 연락해 봤는데, 마침 오늘 예약 펑크 난 자리가 있으니 그때 오라더라고.”
“오, 시간이 맞아서 다행이네.”
“점이라니 신기하다. 잘 보고 와서 결과 알려 줘.”
문해일과 이주진이 말했다. 그에 답하려던 순간, 한호성의 등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간다.”
“어?”
돌아보니 우영찬이었다.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던 그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처음부터 안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집, 나도 갈 테니 안내해.”
한호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영찬아…… ‘안내해.’가 아니라 ‘안내해 줘.’겠지. 근데 넌 왜 따라오려고?”
“점이라도 보게.”
“흠.”
한호성 자신과 같은 이유였다. 하긴, 그로서도 여러모로 답답할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제 몸에 다른 이가 빙의했노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말이다.
‘무속의 힘이라도 빌리면 저 망상을 깨뜨릴 수 있을까?’
‘빙의’라는 부문에 전문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무속인일 것이다. 몸이 아프면 의사에게, 법적인 문제가 생겼을 땐 변호사에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싶을 땐 미용사에게 가듯이 빙의에 대해 상담하고 싶으면 무속인을 찾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래, 알았어. 어서 준비해.”
전문가가 ‘당신은 빙의된 게 아닙니다. 그저 망상일 뿐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면 우영찬도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수락하자, 우영찬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한호성은 그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
노원이 ‘너희 숙소랑도 가까울 거야.’라더니 정말이었다. 점집은 버스를 타면 20분 남짓, 걸으면 30분 남짓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걸어갈까?”
“그러든가.”
평일 오전인지라 조용한 주택가를 걷는 동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타박타박 걷는 발소리만이 골목을 울렸다.
“저 건물인가 보다.”
길이 어렵지 않은 덕분에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한호성은 30층이 넘는 높다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편견이겠지만, 점집이라면 막연히 독특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나 보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사무실과 다를 바 없었다.
“1703호래.”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1703호를 찾아 문 앞에 서자, 안에서 “열려 있으니 들어오세요.”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초인종도 누르지 않았는데 자신이 온 건 어떻게 알았을까. 한호성은 ‘역시 용하신가 보다.’ 하고 감탄하며 점집에 들어섰다.
‘정말 하얗다.’
점집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하얀 벽지에 반질반질한 흰 대리석 바닥, 몇 안 되는 가구들도 밝은 톤이다. 지나치게 깔끔하다 보니 선뜻 들어서기 망설여졌다. 행여나 자신이 먼지 한 톨이라도 흘릴까 봐서였다.
반면 우영찬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한호성은 그가 무슨 실례라도 저지를까 봐 얼른 따라붙었다.
“이쪽이에요.”
긴 복도 끝, 반쯤 열린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마스크를 벗고 방 안에 들어섰다. 복숭아색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가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와요. 아휴, 연예인이 두 분이나 오셨네. 이쪽에 앉아요.”
그가 흰 책상 앞에 놓인 흰 의자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자에 앉으며,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연예인인 거요.”
“그야 얼굴 보면 알지. 후광이 번쩍번쩍 비치는데.”
“아, 관상 같은 건가요?”
“아니. 잘생겼잖아? 그 얼굴을 했으면 당연히 연예인이죠.”
“아…….”
한호성은 머쓱하게 제 뺨을 만지작거렸다. 생각해 보면 TV에서 저를 보았을 수도 있는데,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한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럼 혹시 들어오라고 말씀하신 것도…….”
“엘리베이터 올라오는 소리랑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라고. 이 건물이 다 좋은데 방음이 잘 안 되거든.”
“……그렇군요.”
우영찬은 쯧, 혀를 찼다. 이렇게 낯선 장소에서 금세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한호성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건 뭐 호구 잡히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최소한 제 밥그릇은 챙겨 먹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촬영장에서만 똑 부러지게 굴면 뭘 하나, 실상 영 맹탕인 것을. 애초에 생김새부터가 순진하니, 고가의 굿 따위를 강권하면 우물쭈물하다 넘어갈 것 같은 인상이라고나 할까.
‘따라오길 잘했군.’
딱히 한호성 때문에 따라온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론 다행인 성싶다. 안 그래도 어려운 처지 같던데 애먼 데에 거금을 쓰면 가엽지 않나. 만약 무당이 과하게 돈을 요구한다면 자신이 막고자 작정하며, 우영찬은 낌새를 살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제가, 음,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서요. 저는 제 일이 좋은데 애초에 진로를 잘못 선택한 건가 싶어요. 때론 가능성 없는 일에 청춘을 갈아 넣는 중인가 싶어 무섭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제가 괜한 짓을 하고 있나 궁금하더라고요.”
무얼 물어볼지 생각해 둔 덕분인지 말이 술술 나왔다. 사실, 혼자만 고민하던 바가 너무나 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와 놀라울 정도였다.
“운이 더럽게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운이 아니라 실력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남들보다는 재수 없긴 하거든요.”
적어도 다른 그룹은 이 정도로 기상천외한 사건이 터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한호성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미래에요. 제가 아이돌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구체적으로 들어 볼까. 성공이라면 어느 정도로?”
“누구한테나 인정받을 정도로요.”
무당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자, 어디 한번 볼까. 언제 태어났지?”
한호성이 생년월일시분을 이야기하자, 무당이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무당과 노트북이라니.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우영찬이 황당해하는데, 그가 갑자기 속사포로 쏟아 냈다.
“인복 좋다, 인복 좋아. 좋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구나. 거기다 홍염살에 도화살이 제대로 꼈으니 전형적인 연예인 팔자로다. 어릴 때부터 연예인 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도 안 했겠지? 진로는 잘 찾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큰돈 벌긴 어려울 수 있겠구나.”
“예? 왜요? 진로를 잘 찾으면 돈도 잘 벌게 되는 거 아닌가요?”
“남 말에 신경을 안 써. 외골수란 말이지. 무슨 일을 하든 사람이 적당히 남과 타협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게 어렵단 거야. 게다가 세간의 평에 신경 쓰지도 않잖아.”
“저 세간의 평에 엄청 신경 쓰는데요…….”
호성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무당은 그에 개의치 않고 랩이라도 하듯 빠르게 말했다.
“식상이 강해서 그래, 식상이.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은 실컷 하며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구설수는 조심해야겠다. 식상이 강한 만큼 구설에 휘말리기 딱 좋으니까.”
“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우영찬은 어이없어하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으며 한호성을 쳐다봤다.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민 자세를 보아하니, 한호성은 무당에게 믿음이 가나 보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무턱대고 신뢰하는 티를 내면 안 되지 않나. 호응이 저리도 좋아서야, 신기 없는 사람이라도 말 몇 마디만 섞으면 한호성에 관해 그럴듯하게 지껄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넌 네 잠재력을 모르고 있어. 그걸 알아야 해, 네 안에 어떤 힘이 숨어 있는지. 막연하게 안 된다 못 한다 하지만 말고.”
“아…….”
“그런데 또 열심히는 한단 말이지? 쯧쯧, 미련하다 미련해. 우직하게 노력은 하는데 그 방향이 잘못되었으니. 애먼 곳에 공든 탑을 쌓는 격이로구나.”
“그, 그럼 어느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그걸 알아내야 한단 말이야. 성실한 건 너무 좋은데 더 영악하게 굴어야 해. 머리를 써 가면서, 으응?”
무당이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존댓말로 시작한 말투는 반말로 완전히 변한 지 오래였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토록 무례한 태도라니, 우영찬이 다 마뜩잖아질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짜증 나는 건 무당이 척 보기에도 사짜란 거였다. 혹시나 해 따라온 점집이지만 역시나 별다른 소득을 기대할 순 없을 듯싶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미련하단 소리를 많이 듣긴 했거든요…….”
“기죽을 거 없어. 미련하다는 건 꿋꿋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심지가 곧으니 너는 쉬이 꺾이진 않을 거다.”
“……예.”
“말했다시피 잠재력만 잘 써먹으면 일이 한결 수월하게 풀릴 것이야. 비록 큰돈 들어올 팔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거야 너 하기 나름이고, 곳간을 못 불리는 사주는 아니거든. 노력의 방향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성과가 따라올 테니까. 알겠지?”
“네!”
한호성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영찬은 이제 기막히지조차 않았다. 장황하게 늘어놓고는 있지만 결국 ‘너만 잘하면 잘된다.’ 아닌가. 그런 말을 누가 못 할 것이며, 그런 말을 누가 믿을까.
‘믿는 놈이 있긴 하군.’
한호성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그깟 당연한 소리가 뭐가 좋은지, 그가 한시름 놓은 게 자신에게까지 느껴졌다.
“아, 그리고 이건 뽀오너스. 배우자 복이 아주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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