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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11화 (11/123)
  • #11

    “열심히 해야 해. 아무튼 열심히 해야지…….”

    한호성은 신념과도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면, 뭐라도 되긴 될 것이다.

    ‘하지만 또 실패하면?’

    익숙한 걱정이 불쑥 치밀었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 잠잠해진 걱정인데, 컴백을 앞두고 이래저래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다시금 한숨을 내뱉은 그때, 하이파이브의 지난 곡이 울렸다. 전화가 온 것이다.

    [오버더리밋] 노원

    발신인을 확인한 한호성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받네.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쾌활한 목소리가 울렸다. 상대편에게 보일 리 없지만, 호성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야말로 괜찮아? 지금 미국에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LA.

    “거긴 몇 시야? 한국은 지금 9시 30분이거든.”

    -여긴 4시 30분. 딱 17시간 차이 난대.

    그럴 줄은 알았지만 역시, 4시 30분이라는 게 PM이 아닌 AM이었나 보다. 한호성은 걱정스레 물었다.

    “안 자도 괜찮아? 스케줄도 엄청 빡빡할 텐데.”

    -괜찮아, 밤샘쯤은 익숙하니까. 그리고 이때가 아니면 너랑 전화하기 어렵잖아.

    “다음엔 그냥 비는 시간 알려 줘. 서로 시간 맞춰서 통화하는 게 낫겠다.”

    -그것도 괜찮겠네. 아, 호성아.

    “응?”

    -활동하는 거 잘 보고 있어. 보컬 더 늘었더라, 너. 들으면서 소름 돋았어.

    “……고마워.”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아닌데도 쑥스러웠다. 큼, 괜히 헛기침한 한호성이 덧붙였다.

    “나도 너 활동하는 거 잘 보고 있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노원은 한호성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오버 더 리밋’에 대한 소식을 모를 리 없었다.

    오버 더 리밋은 누구나 인정하는 현시대 최고의 아이돌이다. 연예인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알 수밖에 없는 아이돌. ‘Over The Limit’라는 그룹명처럼, 오버 더 리밋은 온갖 한계를 뛰어넘으며 기록을 세워 댔다.

    “대단하더라, 정말.”

    -에이, 뭘. 대단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야.

    단순한 겸양이겠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사람이니만큼 기만처럼 느껴졌다.

    한호성은 술렁술렁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소중한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터다. 노원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응? 왜?”

    -목소리가 조금 우울하게 들려서.

    “어…… 그래?”

    기계음이 조금 섞였을 전화상으로도 미묘한 무언가가 느껴진단 말인가. 육성으로 대화한 문해일과 설이태, 이주진조차 지적하지 않은 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괜찮아. 별일 없어.”

    딱히 선의의 거짓말은 아니지만, 악의의 거짓말도 아니었다. 노원에게 ‘우리 멤버가 자살 시도 후 의식을 되찾더니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거든.’이라고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럼 얼굴 보여 줘.

    “어?”

    -영상 통화하자고. 너 얼굴 괜찮은지 봐야겠어.

    “뭐야, 그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영상 통화 전환 알람이 울렸다. 한호성은 핸드폰 액정 가득 들어찬 잘생긴 얼굴을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괜찮지?”

    -잘 모르겠는데. 밝은 곳으로 가 봐.

    “참……, 뭘 그렇게까지.”

    그러면서도 한호성은 형광등 불빛이 환한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핸드폰 전면 렌즈에 얼굴을 비치자, 노원이 중얼거렸다.

    -흠……. 정말 괜찮은 건가?

    “그렇다니까? 믿어도 돼.”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말하고. 나라도 괜찮으면 들어 줄 테니까.

    “……응.”

    한호성은 새삼스럽게 노원을 살펴보았다.

    호텔에 있는 듯, 그는 흰 침대 위에 엎드린 채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완벽한 얼굴. 왜 오버 더 리밋 중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멤버인지 절로 이해가 가는데, 성격마저 다정하다.

    이런 친구가 제 곁에 있는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비록 고민을 털어놓진 못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우리 멤버 중에 호재 알지?

    “응.”

    -걘 고민이 있을 때면 점집을 찾는다더라고. 무당에게 고민을 토로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나. 어떻게 보면 무당이 상담사 역할 해 주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다.”

    긍정하면서도, 한호성은 ‘탑 아이돌에게도 고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 위치에 있다면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을 성싶었다.

    “나야말로 점이라도 봐야 할 것 같은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노원이 물었다.

    -왜, 관심 있어? 너 원래 점이나 사주 안 믿었잖아.

    “딱히 안 믿은 건 아니야. 그렇다고 믿는 것도 아니지만.”

    점복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한데 요즘은, 사람들이 왜 막막할 때면 점집을 찾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분명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터다.

    -관심 있다면 추천해 줄게. 얼마 전에 호재가 점 보고 온 곳이 있는데 엄청 용했다더라고. 너희 숙소랑도 가까울걸.

    “그래? 어딘데?”

    -잠시만. 정확한 건 호재한테 물어볼게.

    대답하기도 전에 노원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마 객실을 나선 듯 배경이 휙휙 바뀌었다. 잠시 후, 호재와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얼마 전에 다녀온 점집이 어디라 그랬지? 너도 소개받아서 갔다던 곳.’

    ‘아, 거기? 번호 보내 줄까?’

    ‘응. 근데 거기 정말 괜찮았어?’

    ‘대박이었다니까. 하도 추천하길래 긴가민가하면서 갔는데 내가 다녀온 곳 중 제일 신통한 것 같았어. 역시 이 바닥에서 입소문 난 곳은 이유가 있나 봐.’

    본의 아니게 대화를 주워듣는 동안, 한호성은 귀가 팔랑팔랑했다.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는 시장 특성상 연예계엔 점을 즐겨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소문날 정도라면 분명 신묘할 것이다.

    -어, 호성아.

    호재와 대화를 마친 노원이 다시 통화로 돌아왔다. 한호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원아, 괜찮으면 나도 그 점집 알려 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지금 메시지 보낼게.

    “고마워.”

    -그런데 점 보러 가면 뭐 물어보게?

    “음, 그냥 이것저것…….”

    -뭐야. 비밀이야? 나 서운하게.

    짐짓 엄하면서도 어리광 섞인 말투였다. 저런 애교라면 오버 더 리밋의 팬덤인 챌린저한테 보이는 편이 좋을 텐데, 왜 자신에게 그럴까. 한호성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비밀로 하려는 게 아니고.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그래. 앞날이라거나 인간관계 문제라거나…… 그런 것들.”

    -다른 건 몰라도 앞날이라면 뭐, 완전 창창하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한호성은 또다시 가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을 걷어 냈다. 덕담을 들었는데 괜히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터이니.

    -참. 나 조만간 타투 하나 더 하려고.

    “어디에?”

    -허리에.

    노원이 예고도 없이 티셔츠를 훌렁 들췄다. 허리보다도, 탄탄한 복근에 시선이 쏠렸다.

    -잘 보여?

    “어…… 너무 잘 보여서 탈이다.”

    애가 미국에 진출하더니 더 개방적으로 변했나, 노출이 서슴없다.

    노원이 키득키득 웃으며 티셔츠를 내렸다. 그러고는 왜 새로운 타투를 하고 싶어졌는가를 비롯해 근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이 뉴스를 통해 본 거지만, 친구가 아니고서는 들을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핸드폰이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후에야 영상 통화가 끝났다. 잇달아 노원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점집의 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를 저장하며, 한호성은 생각했다.

    정말 속는 셈치고 점이라도 봐야겠다고.

    ***

    햇빛이 길게 늘어지는 오전 11시. 이주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에 나왔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 게임 삼매경인 문해일이 그를 맞이했다.

    “이제 일어났냐?”

    “으응. 이태 형은?”

    “본가 갔다. 부모님 뵙고 온다면서.”

    “나도 엄마 아빠나 뵙고 올 걸 그랬나……. 하암, 근데 밀린 잠 잘 시간도 부족해서.”

    오늘은 하이파이브가 올해 들어 처음 만끽하는 휴일이다.

    내일부터는 컴백 준비에 매진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컴백한 후엔 잘되면 잘된 대로, 안 되면 안 된 대로 일이 많아질 터다. 즉, 오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직전의 마지막 휴일인 셈이다.

    이 황금 같은 휴일을 즐기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문해일은 빈둥빈둥 놀다 노을 질 무렵에 친구들과 만날 계획이었고, 이주진은 늘어지도록 잘 생각이었으며, 설이태는 본가에 다녀오기로 했다.

    “근데 제논은 뭐 해?”

    “알 게 뭐냐?”

    “또 뭔 일 있나…… 해서.”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불안하단 말이지, 하고 이주진이 중얼거렸다. 덩달아 불안해진 문해일은 작은 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문이 벌컥 열렸다.

    “헉.”

    “왜 그래?”

    문을 열고 나온 이는 한호성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두 쌍의 시선에 놀라 흠칫했다.

    “아니, 제논은 뭐 하고 있나 싶어서.”

    “자나 봐. 아까부터 미동도 없이 누워 있네.”

    “사고만 안 치면 됐어. 근데 형은 어디 가?”

    문해일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한호성은 외출복 차림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외출하는 연예인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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