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저도 모르게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나 보다. 그런 우영찬을 보며 한호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지금도 생생한 표정이야. 눈이 방울토마토처럼 커져서는……. 웃기다. 네가 이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비아냥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도 찜찜한 기분은 여전해, 우영찬은 퉁명스레 내뱉었다.
“못 하겠다.”
“어차피 촬영도 거의 다 끝났는데, 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겠다고. 해도 안 되고 있잖아, 지금.”
한호성이 우영찬을 반히 바라봤다. 전에도 느꼈지만, 그의 눈망울은 지나치게 맑아서 부담스러웠다. 우영찬은 호성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잘 못 하는 것 같아서 속상해?”
정곡이었다.
우영찬은 고집스레 고개를 바로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호성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괜찮아. 촬영하다 그 정도 디렉팅 받는 건 흔한 일이야.”
“……촬영이 지연됐었는데.”
“그것도 흔한 일이고.”
한호성이 딸기 인형 탈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었다.
“잘하고 있어. 혹시 어려운 거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고.”
어려운 점에 대해서라면, 우영찬으로선 할 말이 무수히 많았다. 멍석을 깔아 주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을 터다. 우영찬은 가장 시급한 문제를 토로했다.
“쪽팔려.”
“의상이?”
“그래.”
한호성은 흐음, 하고 목을 울렸다. 우영찬을 딸기 꼭지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후 그가 말했다.
“그런 것치곤 잘 어울리는데.”
“아니라고!”
“뭐 어때. 어차피 네 몸도 아니라며?”
우영찬은 발끈하다 말고 조금 진정했다. 그 말만큼은 옳았다. 제 몸뚱어리가 아니니, 딸기 꼭지 따위가 어울릴 수도 있었다.
“셀카 찍을 때 네가 말했잖아, ‘어차피 내 얼굴도 아니고.’라며.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때?”
“…….”
우영찬은 한호성의 의견을 곱씹었다. 선뜻 따르고 싶은 조언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일 듯싶다.
“이주진 씨 촬영 시작할게요.”
감독의 부름에 따라 이주진이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 섰다. 우영찬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채주스를 양손에 든 이주진이 자세를 취하는 중이다. 한호성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취하는 자세가 다양했다.
우영찬은 어정쩡하게나마 팔짱 낀 채 촬영을 지켜봤다.
***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촬영이 끝났다.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와 하이파이브가 인사를 주고받는 동안, 우영찬은 한숨 돌렸다.
단독 사진 촬영은 그럭저럭 해낸 것 같았다. 다른 이의 자세를 유심히 살핀 후 모방한 덕분이었다.
물론 머릿속으로 ‘이건 내가 아니다,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수십 번 되뇐 덕도 빠뜨릴 수 없었다. 과채주스를 뺨에 댄 채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 깜찍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그건 제논의 몸이 한 짓이니 우영찬의 알 바가 아니었다.
“후…….”
그래도 피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친 탓이다. 얼른 딸기 인형 탈부터 벗고자 대기실로 향하는데, 설이태가 우영찬을 붙잡았다.
“인사 안 해?”
“어.”
“……그런 성격은 어째 기억을 잃어도 똑같냐. 됐다, 가라.”
입이 써서 더 말하지 않겠단 투다. 하나 그런다고 개의할 우영찬이 아니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뭐야?”
불쾌함이 치밀어 팔을 쳐냈으나 상대는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동무한 팔에 은근히 힘을 주는 것이었다.
“여기 밖이야. 말조심 행동 조심. 알지?”
“모르겠다면?”
“이제부터 알려 줘야지, 알아들을 때까지.”
한호성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착해 보이는 얼굴을 한 주제에, 성가시기는 네 명 중 제일이다. 우영찬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사진 찍자.”
“사진이라면 실컷 찍었다.”
“SNS 업로드용은 안 찍었잖아. 이런 옷 입을 기회가 어디 흔해? 기록으로 남겨야지.”
“사관이냐? 아무거나 기록하게?”
자신이라면 이딴 인형 탈을 입은 기록 따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 기록이 다 무언가. 제 머릿속 기억마저 지우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지 말고 어서.”
한호성이 핸드폰을 든 팔을 길게 뻗었다. 반대쪽 팔로는 여전히 우영찬의 목을 끌어안은 채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달려왔다.
“같이 찍자!”
“나도.”
남자 넷이 우영찬을 에워쌌다. 그것도 그냥 남자가 아닌, 솜이 빵빵한 인형 옷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찍을게. 하나, 둘.”
찰칵.
한호성이 셔터를 눌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찌푸린 표정을 펴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주위 남자들과 대조되어, 더욱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다. 마치 싱싱한 과일 사이에 낀 썩은 과일 같았다.
“웃어야지.”
“…….”
우영찬은 입매를 굳게 다문 채 렌즈를 노려보았다. 제논 대신 공적인 일은 하겠다만, 사적인 일까지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한호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찰칵찰칵찰칵.
흡사 레드카펫에서의 카메라맨을 연상케 하는 연속 사진 촬영이었다. 사진이 초당 열 장은 찍혔을 성싶다.
“웃을 때까지 찍겠다 이거냐. 이따위로 협박하려 들다니…….”
“어? 아니, 백 장 정도 찍으면 한 장 정돈 건질 만하지 않을까 해서 그런 건데.”
우영찬에겐 그게 곧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오기가 생겨서라도 웃고 싶지 않았으나, 계속 사진 찍히는 건 더 싫었다. 결국 그는 입매에서 힘을 풀었다.
그것만으로도 봐줄 만한 표정이 되었다. 적어도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수고했어. 이제 의상 벗자.”
그제야 한호성이 핸드폰을 거두었다. 한 프레임 안에 담기고자 꼭 붙어 있던 멤버들이 다시 멀어졌다.
“너…….”
“왜?”
우영찬은 한호성을 살벌하게 노려보았으나, 그는 전혀 겁먹지 않은 기색이었다. 우영찬은 씹어뱉듯 말했다.
“핸드폰 내놔.”
“안 돼. 핸드폰 주면 사진 다 지워 버릴 거잖아.”
“네 건 필요 없어. 내 것, 정확히는 김제국 걸 내놔.”
현대인에게 핸드폰이란 분신이나 다름없다. 핸드폰을 보면 그 주인의 인간관계, 주거 지역, 취미와 취향, 심지어는 금융 정보마저 알 수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은 김제국의 삶에 적응하기도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우영찬이나, 한호성의 핸드폰을 본 순간 그에 생각이 미쳤다.
‘어쩌면 김제국의 핸드폰에 내 몸을 되찾을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꼭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핸드폰은 필요했다. 핸드폰이 있어야 전화할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
한데 한호성은 순순히 협조하지 않았다.
“말 좀 예쁘게 해. 누가 들으면 내가 네 핸드폰 뺏어 간 줄 알겠다. 네 핸드폰을 나한테 찾으면 어떡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나?”
“대충 짚이는 곳은 있지만, 왜?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한호성이 의심의 눈초리로 우영찬을 바라보았다. 쉽사리 핸드폰을 넘겨줄 기색이 아니었다. 우영찬은 약이 머리끝까지 올라 내뱉었다.
“이상한 짓 안 해. 내가 김제국인 줄 알아?”
“오늘 들은 말 중 그 말이 제일 이상해.”
“아, 이상!”
우영찬이 입을 열기가 무섭게 한호성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바람에 ‘이상한 짓 안 한다고!’라는 말이 허무하게 스러졌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밖에서 소리치지 마.”
한호성은 자신을 노려보는 눈을 담담히 마주하며 말했다.
이 반항적인 시선이, 그에 담긴 불만이 무섭지는 않다. 하지만 제논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건 그 무엇보다 두려웠다.
“흔드픈……!”
“알았다고. 아마 숙소에 있을 거야. 어째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지만…… 넌 약한 결벽증이 있어서 핸드폰을 안 쓸 땐 자외선 살균기에 넣어 두곤 했거든.”
김제국 본인이 자신의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 한호성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염려 반, 체념 반으로 답하자 우영찬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한호성은 그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야.”
“또 왜?”
“그 자외선 살균기는 어디에 있는데?”
“……가자. 얌전히 가서 마저 얘기하자, 좀.”
한호성은 딸기 인형 옷을 입은 우영찬을 굴리다시피 끌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촬영을 무사히 마친 것과 별개로, 두 사람 모두 가슴에 바윗돌이 얹힌 듯 답답했다.
2. 실마리
한호성의 추측대로, 제논의 핸드폰은 자외선 살균기 안에 들어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우영찬은 핸드폰을 들고 제 방, 정확히는 제논과 한호성의 방에 들어갔다.
쾅 닫힌 문을 보며 한호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논을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가다간 제논 때문에 태도 논란이 불거지거나, 멤버 불화설이 터질지도 모른다.
제논이 기어이 대형 사고를 칠까 봐, 한호성은 내내 긴장 상태였다. 가슴이 졸아붙다 못해 아주 타 버렸는지 심장이 시큰했다.
‘또 망할 순 없어.’
한호성은 가슴께를 꾹 누르며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같은 그룹에 소속된 멤버가 친 사고로 말미암아 수렁에 빠진 경험이 있었다. 살면서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참담한 일이었다.
차라리 이전의 하이파이브처럼 ‘아쉽게 뜨지 못한 아이돌’로 남는 게 낫지, ‘반짝 성공하고 고꾸라진 아이돌’이 되긴 싫었다.
“…….”
한호성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자신이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이거나 저거나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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