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왜 저렇게 열심이지. 혹시 애들이랑 놀아 주면 보육비도 주냐?”
“아니…… 그럴 리가. 그냥 호성 형이 애들을 좋아하는 거야. 별개로 형이 열심인 건 사실이지만.”
“그러냐.”
어째서인지 한호성의 잔소리가 불쑥 떠올랐다. ‘좀 더 프로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라던. 그에 새삼 치를 떨던 우영찬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주진. ‘내 기회와 네 기회의 가치가 다르다.’라는 건 무슨 뜻이지?”
“글쎄? 그냥 말 그대로인 거 아니야?”
“그렇다기엔 뉘앙스가 묘해서.”
“어디서 들은 말인데?”
“한호성한테.”
“아…….”
짚이는 게 있는지, 이주진이 탄성을 내뱉었다.
“호성 형이라면 그렇게 말할 만도 하네.”
“뭐가?”
“그게, 형은 스물여섯 살이잖아. 우린 스물세 살이고.”
그 말대로이다. 한데 그래서 어쨌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멀뚱거리자, 이주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기억을 잃었다더니 이런 것도 까먹었어?”
“…….”
“막말로 우리야 삐끗해도 기회가 있지만, 호성 형은 아닐 수 있단 말이야.”
“고작 스물여섯 살인데?”
“사회에서는 스물여섯 살이 어린 나이지만 이 판에선 아니잖아. 생각해 봐. 똑같이 수능 치는 처지더라도, 우리가 재수생이라면 호성 형은 오수생쯤 되니까. 더 절박할 수밖에 없지.”
우리도 어린 나이는 아니라며 이주진이 덧붙였다. 우영찬은 연예계의 생리에 대해 잘 몰랐으나 그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요컨대 업계의 특수성 문제였다.
“스물여섯 살의 기회와 스물세 살의 기회는 가치가 다르다는 건가?”
“그렇지. 아무래도 호성 형은 그룹이 망한 경험도 있고.”
“그룹이 망해? 하이파이브가?”
“아니! 왜 재수 없는 소릴 하고 그래. 우리가 좀 빌빌거리긴 했지만 완전히 망한 적은 없거든? 망한 건 플레임스타지!”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연예계에 관심 없는 우영찬으로선 아는 아이돌이 딱 두 부류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악명을 떨쳤거나.
전자는 아니니 후자인가 보다. 우영찬은 기억을 더듬은 끝에 답을 떠올렸다.
“어, 혹시 성형돌?”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성형돌이 아니라 불법 성형 대리 수술돌이라고 정확하게 말해 줄래?”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연예면과 사회면을 동시에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한창 떠오르던 아이돌 그룹 ‘플레임스타’의 멤버 중 한 명이 기막힌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보통 아이돌이 성형 수술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다면 본인이 수술한 쪽이지만, 이 경우엔 반대였다.
“참나,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 본인이 불법 성형을 받았다고 해도 기가 막힐 텐데 남한테 해 주긴 왜 해 줘?”
문제의 아이돌이 의사를 대신해 성형 수술을 집도한 것이다. 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 그 성형외과의 간판 의사급이었다고 하니, 그것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소속사는 정말 몰랐던 건가? 한호성은?”
“소속사도 모른 걸 호성 형이 어떻게 알아. 뭔가 수상하다는 눈치는 챘었나 봐.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놈이 쉬는 날마다 대리 성형 수술 집도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한 거지.”
“……그럴 만도 하군.”
“게다가 소속사는 한창 법정 공방 중이었어서 소속 아티스트 관리할 틈도 없었나 보더라고. 알지? 블루길 엔터테인먼트 사기 사건.”
“어, 기억난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대표가 작정하고 재건축 사기를 쳤다던가. 피해 금액이 상당한 데다, 자연히 피해자 수도 많아 국민적 공분이 엄청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었지?”
“법대로 해결됐지, 뭐. 대리 성형 수술 집도한 그놈은 의료법 위반으로, 소속사 대표는 사기죄로 사이좋게 깜빵 들어갔어. 형량도 꽤 나왔던데. 아직 복역 중일지도 모르겠다.”
“…….”
“그 둘이야 자업자득이지만 플레임스타가 문제였지. 한창 자리 잡는 중이었는데 그 사건 때문에 완전히 추락했거든. 대중 반응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몰라. 루머도 엄청 돌았고. 사기에 가담을 했다느니, 다 함께 야매로 성형했다느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데, 그땐 그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많았다니까? 거의 전국적 광기였어.”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관심 있는 사건은 아니어서 굳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그런 우영찬의 눈에 띌 정도로 플레임스타에 관한 욕이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대표는 사기 치고 아이돌은 대리수술하고 쌍으로 잘하는 짓이다ㅅㅂ 저 소속사는 연습생 선발할 때 전과 보고 뽑음?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여섯 명 중 한 놈만 이상하다? 그런 희망회로 돌리는 팬들 이제 없지?
-멤버 구멍 없이 다 잘생겼다고 생각한 그룹인데 어쩐지.. 이유가 있었네ㅋㅋㅋㅋㅋ
-앞으론 쟤네 얼굴 볼 때마다 어디 고친 건지부터 보게 될 것 같음ㅋㅋㅋ 숨은그림 찾기 하듯이
-나 근데 진짜 궁금한데 이바닥 뜨기 전에 이것만 말해주고 가면 안될까?ㅋㅋㅋㅋ 성형수술 스킬 어케 쌓음? 아니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멤버들 얼굴 고쳐가며 쌓은 귀한 스킬이시랍니다
˪뭘 물어 딱봐도 견적 나오잖아ㅋㅋㅋㅋㅋ
당시 아무 인터넷 사이트에나 접속해도 보이는 반응이었다. 커뮤니티 성향이 어떻든, 회원의 연령대와 성비가 어찌 구성되어 있든 간에 모두가 플레임스타를 맹비난했다.
“호성 형도 참 안타깝지. 플레임스타 내에서 인기도 많았는데……. 그대로 잘 활동했더라면 지금쯤 업계 탑이었을걸.”
“……안 됐군.”
남 일에 무관심한 우영찬마저 탄식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막힌 사연이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는 어린이 합창단과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은 마냥 해사할 뿐, 그림자 한 점 드리워지지 않았다.
‘돈을 떠나서 하이파이브로 활동하는 모든 순간이 내겐 소중해. CF 촬영이든, 무대든, 예능이든. 우릴 찾아 주는 사람, 날 좋아해 주는 팬이 있다는 게 행복하니까.’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나.
우영찬은 한호성의 말을 떠올리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날 좋아해 주는 팬이 있다는 게 행복하니까.’라니. 자신이었더라면 저를 죽어라 욕한 대중에게 환멸 났을 법도 한데,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은 걸 보면 어지간히도 이 일이 좋나 보다.
‘순진하게 생긴 주제에 보기보다 근성이 있나?’
혹은 미련을 잘 끊어 내지 못하는 성격이던가.
한호성에 대한 인상을 재정립하던 그때, 이주진이 중얼거렸다.
“같은 그룹이었던 노원은 그렇게나 잘 나가는데…….”
“노원은 또 누구야?”
이주진이 답하기도 전에 스태프가 외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우영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의 이야기는 차차 알아봐도 될 듯싶었다.
***
어찌어찌 CF 촬영을 마친 후, 지면 광고 촬영이 이어졌다.
단체 사진을 찍더니 이번엔 단독 사진을 찍는단다. ‘제논’의 촬영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어째서인지 알 것도 같았다. 단체 사진을 촬영할 때도 표정이 어색하다고 여러 번 지적 당한 까닭이리라.
열등생이라서 보충 수업에 남은 격이다. 패배감이라는 걸 느껴 본 적 없는 우영찬으로선,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어렵사리 분을 삭이며 다른 이들의 촬영을 지켜보았다.
‘저렇게 하라는 건가.’
크로마키 스크린을 배경으로, 한호성이 싱긋 웃고 있다. 대포처럼 커다란 카메라와 스태프 무리를 앞에 두고 저렇게 웃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자세였다. 한호성은 5초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꿨다. 소품이라고는 달랑 과채주스 하나 들고 있는 주제에, 취하는 자세는 수십 가지가 넘었다. 우영찬은 서 있는 자세의 종류가 저렇게나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저 짓을 어떻게 하냐고.’
할 재주도 없고, 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무심코 팔짱 끼던 우영찬은 팔을 내렸다. 솜이 두둑한 딸기 인형 옷을 입은 탓에 팔짱이 껴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의상이라도 좀 평범하면 모를까. 팔짱조차 못 끼는 이딴 딸기 꼴로 무슨 자세를 취하느냐고!’
감독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속으로나마 소리칠 때였다.
“네, 좋아요! 수고하셨습니다.”
한호성의 촬영이 끝났다. 그와 교대하듯 설이태가 크로마키 스크린 앞에 섰다.
“지금 느낌 좋아요. 완전 양배추! 양배추 그 자체! 비타민 C 비타민 U 팡팡 터진다! 네, 왼쪽 어깨 살짝만 내려 주세요.”
도서관 사서처럼 조용하던 설이태도 카메라 앞에 서면 갑자기 활발해진다. 감독의 말마따나 양배추라도 된 듯 이파리를 팔랑거리는 설이태를 보며, 우영찬은 착잡해졌다. 자신은 정말이지, 도저히, 도무지 저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뭐 해?”
한호성이 불쑥 나타나 물었다.
“그냥.”
“그냥, 뭐?”
“그냥 서 있다고.”
“아, 그래.”
한호성은 입을 다물었다. 신선 코너에 진열된 사과와 딸기처럼 가만히 서 있길 얼마간. 한호성이 다시 물었다.
“촬영은 할 만해?”
“…….”
“왜 말이 없어. 잘하던데.”
“잘했다고? 내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듣기 좋은 말로 사기를 끌어 올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나치면 비아냥밖에 안 되는 법이다.
“그래, 열심히 하던데? 얼굴 근육 쓰는 것도 많이 늘었더라.”
한호성이 손을 뻗었다. 순간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줄 알고 몸을 굳혔으나, 그는 머리띠를 바로잡아 줄 뿐이었다.
“딸기 꼭지가 비틀어졌길래.”
“……얼굴 근육 쓰는 게 많이 늘었다고?”
자신도 자신이지만, 제논이란 놈은 대체 얼마나 뻣뻣했던 걸까. 이쯤 되면 제논이 어떻게 아이돌이 되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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