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6화 (6/123)

#6

“아는 놈이 그러냐?”

“그래도 주변인한텐 사정 설명해 둬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야 도움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지. 안 그래?”

우영찬이 한호성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호성은 그저 이마를 짚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가 동조해 주리라 기대치 않았던 우영찬은 말을 이었다.

“믿고 안 믿고는 그쪽 자유지만 그냥 알아 두시라고요, 피차 편하게.”

“와……. 사람이 바뀌어도 어쩜 이렇게 180도 바뀌냐. 근데 또 말하는 거 듣다 보면 은근히 제정신인 것 같아서 신기하네.”

“저 제정신 맞습니다. 미리 말해 두는데, 병원 안 가도 됩니다.”

“그럼 뭘 어쩌겠다고. 그대로 활동하겠다고?”

“당분간은 김제국인 척하며 살아야죠. 아, 제논이랬나.”

황당한 일을 겪었기로서니 현실 감각이 망가진 건 아니었다. 우영찬은 자신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로선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길이 없다. 무턱대고 본가나 회사로 찾아가 봤자 경호원에게 쫓겨날 테니. 그렇다고 원래 몸으로 돌아가자니 그거야말로 불가능하다.

‘일단 살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자고로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게 의식주라고 했다. ‘김제국’으로서 산다면 최소한 의식주는 구할 수 있을 터다. 우영찬은 제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때까지 그렇게 버틸 작정이었다.

“그래,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뜻은 잘 알겠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결심이지. 다만 그 전에 확인할 게 있는데…….”

“말씀하시죠.”

“너 활동할 수 있긴 하냐?”

마침 한호성도 같은 의문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장 대표는 한호성을 대신해 캐물었다.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며. 그런 녀석이 춤은 어떻게 추고 노래는 어떻게 할 건데?”

“노력해 봐야죠.”

“노력…… 글쎄, 세상일이 노력만으로 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냐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한호성은 잠자코 생각했다. ‘만일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면, 하이파이브는 진작에 음악 방송 1위 찍었을 텐데.’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테스트부터 해 보죠.”

장 대표도 한호성을 따라 일어났다. 우영찬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무슨 테스트?”

***

오디션을 방불케 하는 테스트가 이어졌다. 노래, 춤, 카메라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결과를 확인한 한호성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못할 수가 있나…….”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모두 환상적으로 못한다. 애초에 기대도 없었건만 그 미미한 기대조차 박살 날 정도로 최악이었다.

한호성은 녹음실 방음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가 심란해하는 꼴을 보자니 덩달아 심란해져, 우영찬은 불퉁스레 말했다.

“아니, 전문가 기준으로 평가하니까 그러지.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우린 전문가야! 이걸로 먹고 사는.”

사실 제논은 원래도 실력이 뛰어난 멤버는 아니었다. 목소리가 작고, 몸이 굼뜨다는 단점을 좀처럼 고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최소한 ‘아이돌’로 보일 만한 정도는 되었다.

“너, 지금 일반인 기준으로도 심각해. 도대체 그동안 연습한 건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거야? 머리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은 기억할 줄 알았는데.”

“난 연습 안 했으니까.”

“그래 보이긴 하더라.”

심지어 ‘우영찬’은 한호성이 시범을 보여 주는데도 도무지 따라 하지 못했다. 이전엔 그래도 따라 하는 건 곧잘 했는데 말이다. 마치 하루아침에 노래와 춤에 대한 재능이 휘발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연습하면 점점 나아질 거야. 그렇지?”

“어.”

한호성이 워낙 절박하게 물어, 우영찬은 심드렁하게나마 대꾸했다. 그에 한호성이 방음벽에 처박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단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해 보자. 치카치카송, 냠냠쩝쩝송, 안녕안녕송 정도면 하루 만에 뗄 수 있을 거야.”

“치카…… 뭐?”

“이것도 모르겠어? 별일이네.”

한호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제논이 아니더라도 이 노래를 모를 린 없을 텐데. 이거 올해 1분기에 가장 히트 친 곡이잖아. 길거리만 다녀도 들려왔을 텐데?”

“2주 전까지 군대에 있어서.”

“아, 그래서 모르나? 그럼 일단 들어 봐. 막상 들으면 기억날지도 몰라.”

한호성이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커다란 화면 가득 뮤비 섬네일이 떠 있었다. 우영찬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발랄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짜라란짜잔-. 짜라란짜잔-.

새하얀 의상을 맞춰 입은 남자 넷이 쪼르르 달려왔다. 한호성, 문해일, 설이태, 이주진이다. 그들은 활짝 웃으며 노래했다.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밥을 먹은 후엔 이를 닦아요 (싹싹!)

윗니 아랫니 꼼꼼히 (싹싹싹!)

“……이게 뭔데.”

“치카치카송. 하이파이브의 전성기를 열어 준 고마운 노래지.”

“뭐?”

“동요 3종 중 첫 번째로 부른 곡이라고.”

네 명은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였다. 칫솔질하는 동작을 하더니, 가글하는 시늉도 한다.

가글가그르 가글가르르

가글가그르 가글가르르

이를 닦은 후엔 입을 헹궈요 (뽀글!)

남은 치약 없도록 꼼꼼히 (뽀그르!)

우영찬으로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유치원생처럼 행동하는 성인을 볼 때 느껴질 법한 거부감과 ‘저놈들이 먹고살려고 별짓을 다 했구나.’ 싶은 안쓰러움. 그리고 이제 저 ‘별짓’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착잡함 등이었다.

“어, 잠깐.”

“왜?”

“제논이란 놈은 안 보이는데?”

“이제 나올 거야.”

말하기가 무섭게 제논이 등장했다. 그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검은색 옷차림이었다. 손엔 앙증맞은 삼지창을 든 채다.

“저거 설마 세균이냐?”

“응, 맞아. 넌 세균 역할이었어.”

“…….”

제논이 삼지창으로 다른 멤버들을 콕콕 찌르며 돌아다녔다. 한껏 음울한 표정이었는데, 세균 연기인지 이 뮤비가 찍기 싫어서인지는 모를 일이다.

세균에게 공격당한 멤버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칫솔이 후두둑 떨어졌다. 멤버들은 칫솔을 하나씩 꼬나 쥐고 세균에 맞서 싸웠다. 삼지창과 칫솔이 부딪칠 때마다 챙, 챙 탬버린 소리가 울렸다.

“4대 1은 너무 비겁한 거 아니냐?”

“저 정도는 해야 세균을 때려잡지. 세균보다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치과 진료비야.”

“동심 어디 갔냐.”

마침내 세균이 쓰러졌다. 치아 역할인 듯한 멤버 넷이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이어 2절이 흘러나왔다.

양치하지 않으면 세균이 와요 (아야!)

영구치는 두 번 다시 자라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모두 양치합시다

식사 후엔 잊지 말고 치카치카해! (와아~.)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가글가그르 가글가르르. 훅(Hook)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아무래도 이 노래의 작사가는 어린이들에게 ‘양치질’이라는 행위를 각인시키고자 작정한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가사를 쓸 수 없노라고, 우영찬은 생각했다.

뮤비가 끝난 후 한호성이 물었다.

“어때. 정말 들어 본 적 없어?”

“어.”

“그렇구나……. 그래도 금방 외울 순 있지?”

“…….”

저렇게 쉬운 가사를 못 외우겠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저렇게 유치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짓이었다.

둘 중 무엇이 차악일까. 우영찬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한호성이 새로운 뮤비를 재생했다.

“이번엔 냠냠쩝쩝송이야.”

“하…….”

“집중해. 그래야 빨리 외우지.”

치카치카송과 비슷한 분위기의 뮤비가 시작되었다. 메시지가 다르다뿐이지, 중독적인 멜로디와 성인이 소화하기엔 다소 무리한 컨셉은 마찬가지다.

잇달아 안녕안녕송까지 들은 후, 우영찬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자신이 제논인 척 행동하기로 작정한 게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에 대하여.

***

한호성은 우영찬에게 동요 3종을 열심히 가르쳤다. 학예회를 앞둔 어린이집 선생님도 그보다 열정적이진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생이 선생의 열의를 따라가지 못했다.

“동작 더 크게!”

“표정 관리해야지.”

“팔다리 쭉쭉 뻗고!”

“손끝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해 줘.”

우영찬은 거울에 비친 한호성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면 잘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가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동작도 크게 하는 중이고, 팔다리는 김제국이 원체 짧은 걸 저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표정도 이게 최선이었다.

“내가 그렇게 못 하냐?”

결국 우영찬은 춤추다 말고 물었다. 한호성은 곰곰이 고민하는가 싶더니 반문했다.

“솔직하게 말할까, 위로를 좀 섞어서 말해 줄까?”

“위로를 좀 섞어서.”

“처음엔 석상이 춤추는 것 같았는데, 이젠 그래도 목각 인형이 춤추는 것 같아.”

“위로 고맙다.”

우영찬은 연습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춤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되는지,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린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이 몸뚱이가 문제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신체의 소유자였던 우영찬이 느끼기에, 김제국의 몸은 부실 공사 한 건물 같았다. 근육도 없이 비실비실해서 영 힘이 나질 않는다.

“5분만 쉬고 다시 시작할까?”

“30분.”

“10분은 어때.”

“……15분.”

“그래, 15분만 쉬자.”

은근히 치열한 협상 끝에 한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영찬은 사나운 눈빛을 숨기지도 않고 그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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