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왜?”
“아까 대화해 보니까, 말 몇 마디로 망상이 깨질 것 같지 않아.”
“그럼 장단에 맞춰 주자고? 그러다 망상이 더 심해지면?”
“그러지 않도록 해 봐야지. 완전히 맞춰 주자는 건 아니고, 오류를 슬쩍슬쩍 지적하는 정도로만 하자. 내가 해 보니까 그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더라고.”
한호성은 세 번의 통화 시도가 모두 실패한 순간의 제논을 떠올렸다. 그는 마치 가족에게 버림받은 어린아이처럼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제논으로서는 속상했겠지만, 본디 현실을 인정하는 건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 아니던가.
“하긴. 계속 꼬치꼬치 따져 가며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또 헛소리하면 그냥 못 들은 척하자.”
설이태가 말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 주겠다.’라는 투였다.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문해일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 쾅 닫힌 문을 바라보며 이주진이 중얼거렸다.
“나도 들어가야 하는데…….”
“설마 잠갔겠어?”
“그게 아니라, 저 분위기를 뚫고 어떻게 들어가냐고.”
오늘 잠은 다 잤다며 이주진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진짜 잠자리를 걱정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닌 한호성이었다.
“난 거실에서 자야겠다.”
“왜? 설마 제논 그 새끼가 형 쫓아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마법진 그려진 방에서 자기 찜찜해서……. 비릿한 냄새도 나고.”
하이파이브 숙소엔 방이 세 개였다. 큰 방은 이주진과 문해일과 설이태가 쓰고, 작은 방은 제논과 한호성이 썼다. 나머지 방은 옷 방 겸 창고로 사용 중이니 잘만한 곳이라곤 거실밖에 없었다.
“아…… 어떡하냐. 형이 고생이네.”
“우리 방에서 같이 잘래?”
“아냐, 괜찮아.”
말이 좋아 큰 방이지, 남자 셋이 지내기엔 비좁은 방이다. 거기에 자신까지 들어갔다간 밤새 네 사람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에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이불 가져올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주진이 다람쥐처럼 쪼르륵 달려갔다. 잠시 후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봤나 봐.”
“그러게.”
한호성과 설이태가 씁쓸히 말을 주고받았다. 그사이, 용케 이불을 가져온 이주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저, 저게 다 뭐야?”
“말했잖아?”
“저 정도일지는 몰랐지. 와……. 흉가 체험인 줄 알았네.”
“발은 안 다쳤어? 깨진 거울 조각 굴러다니던데.”
“헐, 불 안 켜서 그건 못 봤어. 나 무슨 지뢰 찾기 하고 온 거네?”
한호성에게 이불을 넘긴 이주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많이 놀랐겠다, 너도.”
“……제논 성질 받아 내는 형만 하겠어.”
내려다보는 눈빛이 애잔했다. 자세 때문일까, 연상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괜히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한호성은 멋쩍게 중얼거렸다.
“아냐, 내가 뭘. ……이만 잠이나 자자. 너희도 피곤할 텐데.”
“응.”
“푹 쉬어.”
이주진과 설이태가 주춤주춤 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한호성이 신경 쓰이는지, 거실을 흘깃 뒤돌아본다.
한호성은 보란 듯이 두 다리 쭉 뻗고 소파에 누웠다. 잠시 후 탁,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휴.”
호성은 그제야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얹힌 듯 답답한 속은 풀리지 않았다.
***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긴 했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분을 삭이며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우영찬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 깼어?”
소파에 누워 있던 한호성이 상체를 일으켰다.
자신을 아이돌이라고 소개한 게 거짓은 아닌지, 기상 직후임에도 상당히 잘난 얼굴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한호성은 우영찬이 살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잘생겼다. 얼굴이 도덕성의 증표라면, 한호성은 납치 따위의 중범죄는커녕 경범죄조차 저지르지 않을 사람이리라.
뿐인가. 한호성은 미추를 떠나 인상 자체가 선량했다. 눈망울도 어찌나 맑은지 괜히 기분 나쁠 정도였다. 눈빛에서 ‘이제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여실히 읽혀서 더 그러했다.
“나 우영찬 맞다고.”
“아…….”
한호성의 탄식에 우영찬은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이 상황이 황당한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자신이야말로 절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한호성의 생각과 달리 그는 정말 우영찬이었다. 어제 남자들에게 한 설명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다니. 어찌 된 영문인진 몰라도 아주 개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하나만은 생각났다. 김제국이 누군지.”
“드디어 기억이 돌아온 거야?”
“고등학교 동창 중에 김제국이란 애가 있었어.”
한호성은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말을 이었다.
“같은 반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공통 친구도 없었고. 근데 나름 유명해서 이름은 들어 봤다.”
2학년 때 데뷔한 제논이었다. 비록 하이파이브가 유명한 그룹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학교 내에서 화젯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어느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재빈고.”
“아, 재빈고.”
한호성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제논의 모교가 재빈고이긴 한데.’ 따위의 생각 중일 터였다.
“못 믿겠으면 검색해 보든가. 내가 재빈고 졸업했다는 정보가 인터넷 어디에 있긴 할 테니까.”
한호성이 슬금슬금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의심하든 말든 개의치 않으며 우영찬은 회상에 잠겼다.
자신은 정말, 김제국과 일말의 접점조차 없었다.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말 한마디 섞지 않은 건 물론 실수로 부딪힌 적조차 전무하다.
애초에 김제국을 목격할 일 자체가 드물었다. 김제국은 연예계 활동을 소화하느라 결석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한테 악감정을 품진 않았을 텐데.’
김제국이 저지른 짓은 아닌가. 그저 기이한 자연 현상일 뿐일까?
답도 안 나오는 문제로 계속 고민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리던 그때. 한호성이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 우영찬도 재빈고 출신이네?”
“그렇다니까.”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구나.”
“…….”
우영찬은 한호성을 노려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의심병에라도 걸렸는지 제 말을 좀처럼 들어 처먹질 않는다. 하지만 처지 바꿔 생각해 보면, 자신이더라도 그럴 것 같았다. 이게 어디 맨정신으로 믿을 만한 일이냔 말이다.
‘차라리 빙의했다는 사실을 숨길걸.’
김제국인 척 행동하며 천천히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어제는 상황 파악이 안 돼 그러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만 했다.
평생 남 눈치 안 보고 살아온 우영찬으로선 몹시 짜증스러운 상황이었다. 욕설을 내뱉자, 한호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자꾸 욕하지 마. 그거 습관 되면 큰일 난다.”
“큰일은 무슨. 내가 무슨 유치원생이야? 요즘은 초등학생도 욕해!”
“아이돌은 안 해.”
그리 일축한 한호성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잠 깼으면 나갈 준비 하자.”
“어딜?”
“회사. 대표님께 네 상태 알려 드려야지. 일단 너랑 나만 갈 거야.”
“…….”
썩 끌리는 제안은 아니었다. 대표라고 한들 제게 도움이 안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김제국’으로서 살아야만 할 것 같으니, 주위를 정리해 둘 필요는 있었다.
“씻고 옷 갈아입어. 아, 갈아입을 옷이 어디 있는진 알아?”
“아니.”
“그래…….”
한숨을 푹 내쉰 한호성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갈아입을 옷에 속옷까지 가지고 와 내밀었다.
“혹시 씻는 법은…….”
“내가 바보냐?”
“안다면 됐어.”
한호성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꾸했다. 우영찬은 그를 노려보다, 옷을 빼앗듯 낚아챘다.
***
누군가에게 ‘자고 일어나니 남의 몸에 빙의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재벌 4세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 난감한 일이다.
살면서 한 번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우영찬은 두 번째로 하고 있었다. 심지어 맨정신으로.
“그러니까 얘가…… 하아.”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장시현은 미간을 문지르다 말고 한호성을 바라보았다. ‘농담이에요.’ 따위의 말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며. 하지만 한호성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들으신 대로예요.”
“……아니. 차라리 악마에 빙의당했다거나, 뭐 그런 거라면 컨셉으로 써먹을 수라도 있지. 우리 개털이었던 거 전 국민이 다 아는데 인제 와서 금수저라고 우기면 어떡해? 그것도 뭐, 강문? 참나.”
장 대표가 소소리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건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다. 당시엔 나름대로 큰 꿈을 품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현실은 각오 이상으로 각박했다.
야심 차게 데뷔한 첫 번째 그룹은 소리 소문 없이 망한 데다, 하이파이브는 잠수함처럼 뜰 만하면 가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처음부터 얄팍했던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의 재정은 더더욱 빈약해졌다. 장 대표 본인의 지갑 사정도 점차 어려워진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엔 물이 들어오다 못해 넘치는 중이니. 한데 정작 노를 저을 사람이 저 상태여서야 될 것도 안 되게 생겼다. 장 대표는 문득 부동산 담보 대출 잔액을 떠올리고는 울상지었다.
“왜 하필이면 강문이야. 강문에서 광고가 들어와도 모자랄 판에, 강문한테 소송당하게 생겼잖아!”
“진정하시죠. 일개 무명 아이돌 따위가 헛소리 지껄인다고 소장 날릴 정도로 한가하진 않으니까.”
장 대표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 개소리야?’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영찬은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저도 이제 어디 가서 이런 소리 안 할 겁니다. 미친놈처럼 보이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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