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1화 (1/123)

#1

1. 무언가 잘못됐다

-형. 당장 숙소로 와 봐야겠어.

전화를 받자마자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호성은 가슴이 철렁하는 한편,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어쩐지 요즘 일이 잘 풀린다 싶더라니. 자신의 앞길이 마냥 평탄할 리 없었다.

“무슨 일이야?”

-와서 얘기하자. 전화로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해일아, 무슨 일인지 알아야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설명이 안 돼, 설명이.

혼란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지 몹시 궁금했으나,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게 여러모로 편할 터였다. 한호성은 한숨을 삼키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알았어. 촬영 정리되는 대로 바로 갈게.”

당최 이번엔 무슨 일이 터졌을까. 알고 싶은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

올해 들어선 활기만 감돌던 숙소가 웬일로 우중충한 분위기이다. 발을 들여놓은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한호성은 주의 깊게 상황을 살폈다. 문해일과 설이태, 그리고 제논이 대치 중이다.

“…….”

개중 인사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한호성은 그것이 섭섭하기보다 불길하게 여겨졌다. 전화를 받은 순간 엄습한 막연한 불안함이, 한층 명확한 형태로 성큼 다가온 듯하다.

“넌 또 뭐야. 이 새끼들이랑 한패냐?”

카랑카랑한 음성이 침묵을 깨뜨렸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쳐다본 한호성은 흠칫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제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알던 제논이 아닌 것만 같았다.

마치 악령에라도 씐 것처럼 형형한 눈빛이지 않나. 사나운 표정도, 악에 받친 분위기도 죄다 낯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씨발,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똑바로 해명해. 네놈 패거리, 정체가 뭐야? 나한테 뭔 짓거리를 한 거냐고!”

제논이 버럭 소리쳤다. 데뷔 이래 줄곧 목소리가 작다며 지적받던 그답지 않았다. 얼떨떨해진 한호성은 가까이에 선 설이태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제논이 자살 시도 했어.”

“뭐?”

마침내 들은 사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껏해야 말실수나 태도 논란 따위라고 추측했던 한호성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형!”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린 탓에 몸이 휘우뚱했다. 설이태가 재빨리 부축해 주지 않았더라면 넘어졌을 것이다.

“괜찮아? 어디 누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제 괜찮아. 그보다 제논은? 그, 시도라면……. 뭘 어떻게…….”

자세히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온갖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한호성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 민사, 형사 죄다 때려 맞을 준비나 해, 이 새끼들아!”

“김제국! 제발 진정 좀 해라. 힘들어하는 거 알아서 웬만하면 참아 주려 했는데, 너 지금 선 제대로 넘은 거야. 지금 고소 들어가면 불리할 게 누구일지 상황 파악이 안 되냐?”

“닥치고 경찰이나 불러. 형량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으면.”

문해일이 말 그대로 온몸을 던져 말리는 중이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제논은 당장에라도 숙소를 박차고 경찰서로 달려갈 기세였다.

“난 김제국이 아니라고! 김제국이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른다고!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 처먹어!”

“알았다, 알았어. 제논이라고 부를 테니까 이 손 좀 놓고……, 억!”

“씨발, 제논도 아니라고!”

문해일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찬 제논이 이번엔 주먹을 쳐들었다. 급기야 설이태와 한호성까지 합세해 그를 말렸으나 소용없었다.

제논은 눈에 띄는 것마다 공격해 대는 미친개 같았다. 그래 봤자 체구가 작아서 치와와나 말티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데도 성깔만큼은 핏불테리어 못지않았다.

“……제논은 무사해. 보다시피.”

설이태가 말했다. 한호성은 그 소식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그냥 불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무사한 거 맞아?”

“일단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아. 정밀 검사는 아직 안 받았지만.”

“아니, 몸 말고…….”

“아.”

설이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그 순간, 양팔을 각각 한호성과 설이태에게 붙잡히고 문해일에게 등을 내리눌린 채, 제논이 고함쳤다.

“나 제정신이라고!”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한호성을 포함한 모두에겐 자백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또한 그것은 하이파이브의 고난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마찬가지였다.

***

마침내 난동이 끝났다. 문해일이 넥타이로 제논의 입을 틀어막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제논은 강제로 제압당해 조용해졌을 뿐이지 진정한 게 아니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촬영 소품으로 준비해 둔 쇠사슬에 칭칭 동여매인 채 눈을 번득이는 중이다.

“일단 상황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한호성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로선 이 사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들은 거라곤 ‘김제국이 자살 시도 했어.’뿐인데, 제발 그보다 희망적인 정보가 있으면 했다.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나야.”

설이태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안 그래도 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더라니, 자살 시도 현장을 목격한 충격이 상당한 듯했다.

“제논이 방에서 안 나오더라고. 처음엔 밀린 잠을 몰아 자는 줄 알았는데 오후 6시가 지나도록 안 일어나는 거야.”

“응.”

“그래서 방문을 열었는데…….”

설이태가 마른세수하고는 말을 이었다.

“……바닥에 웬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어.”

“뭐? 마법진?”

밧줄이나 커터칼 따위를 상상하며 충격받을 준비 중이던 한호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마법진. 막, 판타지 컨셉 뮤비들 보면 나오는 기하학적인 문양 있잖아?”

“응.”

“그게 그려져 있는 거야. 심지어 피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며, 문해일이 옆에서 거들었다.

“제논은 마법진 중심에 쓰러져 있었어. 손목에서 피를 흘리면서.”

한호성은 반사적으로 제논의 손목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소매가 손등을 덮은 탓에 상처를 확인할 순 없었다. 단, 옷에 드문드문 묻은 핏자국이 보였다. 아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었다.

“진짜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왔어. 선 채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아냐, 너 그때 비명 질렀어. 엄청 크게.”

“그랬나? 기억도 안 나. 너무 놀라서…….”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설이태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를 대신해 문해일이 이야기했다.

“설이태 비명 듣고 나도 뛰어갔어. 보자마자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고. 119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저놈이 눈을 번쩍 뜨더라고?”

“멀쩡하게 일어나더니 막 성질을 내는 거야. 여긴 어디고 자기는 왜 갑자기 키가 작아졌냐면서.”

“뭔 소리냐고, 너 열여덟 살 때부터 그 키였다고 말하니까 인상을 확 찌푸리더라고? 그러더니 거울 좀 보겠대. 그래서 화장실로 데려갔더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난리 치더라니까. 자기가 왜 다른 사람이 됐냐면서.”

“그 후는 뭐……. 형이 본 대로야.”

목격자들의 진술은 그걸로 끝이었다. 다 듣고 보니, 두 사람도 현장만 목격했을 뿐이지 자세한 영문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제논이 아까 ‘난 김제국이 아니라고!’라며 소리치던데. 혹시 기억 상실증이 아닐까?”

한호성은 의학에 관해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기억 상실증이라면, 각종 영화며 드라마부터 뮤직비디오의 소재로도 쏠쏠히 활용되기에 얕은 지식 정도는 있었다.

“자살 시도의 충격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신마저 잊은 게 아닌가…….”

“안 그래도 나도 그 생각했어. 이태는 자아의식 장애 아니냐고 했지만.”

“숨겨진 인격이 깨어났을 수도 있고.”

설이태가 가설을 추가했다. 온갖 컨셉이 판치는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다운 사고였다. 이 경우엔 컨셉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일단 정신 병원부터 데려가자.”

한호성이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난색을 비쳤다.

“형, 물론 그게 정석이긴 한데……. 다른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놈을 어떻게 정신 병원까지 데려가?”

“문해일 말이 맞아. 쟤가 자기 발로 정신 병원에 가겠어? 가더라도 순순히 상담받지 않을걸.”

“……그러네.”

상담을 받든 약물 치료를 하든,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그에 생각이 미친 한호성은 더욱 심란해졌다. 원래도 기분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이젠 아예 심해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중이다.

“어떡하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문해일일지도, 혹은 설이태일지도 모른다. 하이파이브라는 이름의 한배를 탄 사이니만큼, 함께 위기에 처했으니 누가 망연자실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물론 절망스러운 심정은 한호성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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