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3/20)

12장(1)

청하가 창천검에서 황급히 뛰어내렸을 때, 청하의 귀환을 기다리며 태선각 앞에 모여 있던 각원들 사이에서는 거의 울음 섞인 안도의 환성이 튀어나왔다. 청하는 제 뒤에서 줄줄이 어검에서 내려서는 일행들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근처에 서 있던 제자를 향해 황급히 물었다.

“소각주는?”

제자는 눈물을 훌쩍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가, 각주님께서 부재중이실 동안 소각주께서는 태선각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치료를…….”

청하는 제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휙 몸을 돌리고는 태선각을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맨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청하의 마음을 철렁하게 했던 생각들이 빠르게 발걸음을 내딛는 청하의 발목에 불길한 덩굴처럼 끊임없이 감겨들었다.

청루각이 흑마부대의 습격을 받는다거나 청연이 부상을 당하는 것이 원작에서도 있었던 일이던가? 최소한 청하가 읽었던 부분에서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것이 뒤틀려 버린 원작의 흐름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그렇지 않으면 청하가 알지 못하는 원작 뒷부분의 전개에서 등장하는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청연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부상의 정도가 경미하다면 청루각에서 그 일로 청조까지 띄웠을 리가 없었다. 아니, 청조를 띄우더라도 부상에 대한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청하의 가슴이 불길한 예감으로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거의 문을 부숴 버릴 듯한 기세로, 청하는 태선각의 안쪽으로 이어지는 몇 개나 되는 문을 박차다시피 열고 들어갔다. 내실로 통하는 문을 지키고 있던 제자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청하는 우아하게 장식된 마지막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태선각에 마련된 몇 개의 내실 중 하나인 그곳은, 평소에는 언제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은은하고 우아한 향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실은 온통 씁쓸한 약초 냄새로 가득했다. 청하의 시선이 정신없이 내실 한쪽에 마련된 침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의 청연이 누워 있었다. 청연의 가슴 위를 덮고 있는 흰 천은 미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청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의 구르듯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간 청하는, 청연이 누워 있는 침상께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청하의 떨리는 손이 더듬더듬 청연의 창백한 뺨을 쓰다듬었다.

“사, 사형…….”

청하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청하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던 청연의 뺨은 겨울 나뭇결처럼 서늘했다. 덜컥 겁이 난 청하가 저도 모르게 내공을 움직여 손바닥에 영력을 집중시켰다. 청하의 손바닥이 푸른빛으로 빛나며, 청연의 뺨으로 청하의 영기가 흘러들어 갔다. 손바닥에 닿아 오는 피부가 아까보다 조금 따뜻해졌다.

“사형…… 사형, 괜찮으십니까?”

청하가 애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약간 생기가 돌아온 청연의 입술이 살짝 달싹거렸다. 청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사형!”

길게 늘어진 청연의 눈꼬리가 살짝 떨리며, 청연이 어렴풋이 눈을 떴다. 청하와 청연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청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런 청연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청연이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힘없이 미소 지었다.

“청하야.”

“사형…… 어떻게…… 이런, 이런…… 몸은, 어떻게 좀…….”

청하가 정신없이 두서없는 말을 더듬거리며 늘어놓았다. 청연이 창백한 낯빛으로도 애써 청하를 안심시키려는 듯 눈을 휘며 웃었다.

“나는 괜찮단다.”

“괜찮지 않으시잖아요!”

청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청연이 귀가 아픈 듯 살짝 눈썹을 찡그리자, 청하는 지레 놀라 입술을 깨물었다. 죄송해요. 청하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청연이 애써 괜찮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을 뱉어 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이냐? 내가…… 제자들에게 청조를 띄우라고 하긴 했지만…….”

“지금 사형께서 상태가 이리 위중하신데, 당연히 달려와야지요. 대체 어떻게…… 어떻게 되신 겁니까.”

청하가 간신히 목을 가다듬으며 청연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들춰 보았다. 가벼운 침의만을 걸친 옷자락 사이로, 청연의 몸을 넓게 휘감고 있는 붕대가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붕대는 청연의 오른 어깨와 왼쪽 허리에 비스듬히 걸쳐 몇 바퀴나 그의 가슴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옷자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랫배에도 큰 붕대가 둘둘 감겨 있는 것이, 그쪽에도 가볍지 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했다. 청하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대체…….”

“별것 아니다. 그렇게 심하지 않단다.”

청연이 애써 청하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청하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런 청연의 모습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믿을 정도로 청하는 순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하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 문간에서 차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그런 말씀은 지금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군요.”

뒤를 돌아보니 제갈서윤이 팔짱을 낀 채 문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청루각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안으로 달려 들어간 청하가 신경이 쓰여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청연의 미간이 설풋 찌푸려졌지만, 청하는 황급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서윤, 이리 와서 상처 좀 봐 줘.”

서윤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으로 따라온 것이었다. 제갈서윤은 별다른 대답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정중히 입을 열었다.

“상처를 좀 확인하겠습니다, 소각주.”

청하는 청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즉시 손을 뻗어 청연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 일으켰다. 서윤과 함께 청연을 부드럽게 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앉힌 청하는, 느슨한 침의 자락을 젖히고 청연의 가슴과 배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어 내렸다. 청연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굳이 청하의 손길을 저지하려 하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붕대 아래 감춰져 있던 상처가 창가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 아래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상흔에 청하는 저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촘촘하게 잘 짜여진 근육 사이로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깊은 상처가 여기저기 난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중 복부 중앙에 길게 새겨진 상처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무척 깊어 보였다. 청하가 도착하기 전에도 이것저것 치료하려는 시도는 했겠지만, 워낙 상처가 깊다 보니 그리 차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청하처럼 의학에 전혀 조예가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상처를 살펴보고 있던 제갈서윤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패였다.

청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흑마부대가…… 대체…….”

청연은 오히려 그런 청하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틀 전 한밤중에 갑자기 흑마부대가 청루각을 습격했단다. 다른 원로들과 내가 곧장 나서서 다행히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 다치게 된 거지. 다른 사람들의 부상은 그리 심하지 않단다.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도 없고.”

어디서 많이 보았던 패턴이었다. 흑마부대가 한밤중에 무려 청루각 습격에 성공했는데도 사상자가 이리 적다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살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청루각에서도 뭔가를 가져가려고 했나?’

문득 청하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대림현에서도 그들의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당에 있던 붉은 돌을 가져가는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청루각에서도 그 비슷한 것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것은 차차 알아보면 될 일이고, 지금 당장은 눈앞에 있는 이 상처가 더 큰 문제였다. 청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청연의 상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의 옆에서 허리를 숙이고 청연의 상처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던 서윤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어느 정도 처치는 되어 있군요. 약초를 쓰셨습니까? 천랑초를 쓴 것 같은데.”

청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기조식을 하고, 외상에 효과가 좋은 천랑초도 썼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서윤을 올려다보는 청하를 향해, 제갈서윤이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약초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서…….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게 처치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군요.”

제갈서윤의 말을 들으며 청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청연 정도의 고수가 흑마부대에게 이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을 줄은 몰랐으나,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청루각은 어쨌든 강호 최고의 제일 문파였으며, 도원맹이나 남궁 세가 정도를 제외한다면 온 무림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최강의 무력 집단이었다. 기껏해야 몇 명의 떠돌이 강호인들을 제외하면 온통 일반인들뿐인 대림현 같은 곳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이다. 이런 곳을 급습할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흑마부대를 조종하는 자들도 무언가 그만한 준비를 하고 들이닥쳤을 것이다.

청하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무력감과 죄책감이 청하의 온몸을 아프게 내리눌렀다.

무림대회의 때 잘난 척을 하며 흑마부대의 흔적을 찾아보겠다, 자진해서 대림현으로 가겠다고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청하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대림현에서 마주친 흑마부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돌을 가져가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오히려 흑마부대의 공격을 받아 한 번 죽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화룡성에서의 일도,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 흑마부대에 관한 어떤 실마리를 찾아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헛발질을 하고 있던 사이에, 본래 그가 지키고 있었어야 했던 청루각은 흑마부대의 습격을 받아 몇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다치고 애꿎은 청연이 이런 큰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만일…… 내가 대림현으로 가는 대신 청연과 함께 청루각으로 돌아왔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적어도 청연이 이 정도로 심하게 부상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덕분에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수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청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청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제 앞에 있는 청연을 바라보았다. 생사가 오갈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그 자신이면서도, 청연은 오히려 아까부터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굳어 있는 청하가 걱정된다는 듯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에 떨어진 청하에게, 청연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자 기댈 수 있는 형 같은 존재였다. 검보다는 책이 더 어울릴 것처럼 학자같이 지적인 인상이었으나, 청연에게는 언제나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롭고 예민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창백한 얼굴로 걱정스럽게 청하를 바라보고 있는 청연은, 청하가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약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청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에 와서 자신이 청연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마침내 결심을 굳힌 청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윤, 소각주의 상처를 봐주어서 고맙네. 잠시 자리를 좀 비켜 주겠나?”

청연과 제갈서윤의 시선이 동시에 청하를 향했다. 제갈서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너 설마…….”

서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으나, 청하는 고개를 돌려 서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탁할게.”

서윤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약간 가라앉은 시선이 물끄러미 청하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빛이 서윤의 가라앉은 눈동자 속을 스쳐 지나갔다. 빤히 청하를 바라보고 있던 제갈서윤의 시선이 힐끗 청연 쪽을 향했다. 순간적으로 약간 싸늘한 표정이 서윤의 얼굴에 떠올랐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제갈서윤은 결국 입을 꾹 다문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내실을 완전히 나서기 전, 서윤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드르륵,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나며 멀어져 가는 서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청하가 천천히 청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하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사형의 회복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청연은 설마 청하가 먼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청연은 약간 망설이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네가 아니라도 다른 제자들이나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도 되고…….”

“아니요, 제가 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래도 명색이 청루각주이니, 다른 그 누구보다도 제 영기를 받으시는 게 가장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리고…….”

청하가 말끝을 살짝 흐리며 청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청하의 입술이 의지를 담아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까지 사형께서 제게 가장 많이…… 도움을 주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제가 사형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청연의 눈동자가 약간 커졌다. 청하가 이런 식의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청하가 기억을 잃기 전 그와 가장 많은 관계를 가졌던 사람이 청연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시절에도 청하가 자발적으로 그를 위해 이런 짓을 하겠다고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청하는 청연이 다시금 자신을 말릴까 걱정되기라도 한 듯, 제 말이 끝나자마자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마음속에 다른 핑곗거리가 떠오르기 전에 얼른 이것을 행동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연의 상태를 보아하니, 단순한 입맞춤이나 운기조식만으로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청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는 청연의 아래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살짝 떨리는 손가락을 슬며시 청연의 허리띠에 가져가자, 청연이 약간 당황한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허리띠를 붙잡은 채 숨을 고르던 청하는, 마침내 단호한 손길로 청연의 허리띠를 풀어 내렸다. 긴 허리띠가 스르륵 풀어지고, 느슨하게 벌어진 옷깃 사이로 속옷에 감싸인 청연의 아랫도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바라보며, 청하는 목울대 너머로 간신히 마른침을 삼켰다.

청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제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청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황한 몸이 움찔거렸으나, 청하를 말려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모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청하를 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청연은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래쪽에 자리를 잡는 청하를 바라보았다.

‘이런…….’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래쪽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는 청하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지자 어쩔 수 없이 속옷 아래의 것이 점점 부피를 키워 갔다.

청연은 난처한 심정으로 생각했다. 이건…… 정말 곤란한데.

어딘가 금욕적인 구석이 있는 학자 같은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청연의 짙은 눈동자가 청하의 하얀 얼굴과 움찔거리는 붉고 작은 입술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청연은 갑자기 목이 바싹 말라오는 듯한 기분에 천천히 마른침을 삼켰다.

청하는 속옷 아래로 반쯤 일어서 있는 청연의 것을 긴장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일단 하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으나, 막상 아래에 손을 대려니 무척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니야, 할 수 있어. 청하는 속으로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손을 내밀어 옷 위로 솟아 있는 그것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청하의 손이 몇 번 서투르게 천 위를 오가자마자 속옷 아래 있는 것은 훨씬 더 크기를 키웠다.

‘아니…… 이렇게 커져도 되는 건가?’

약간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청하는, 결국 옷 위로 어설프게 문지르던 손을 멈춘 채 흐트러진 속옷 자락을 아래로 끌어 내렸다.

“…….”

청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슬쩍 청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약간 뺨이 상기된 청연은 조금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뚫어질 듯한 눈으로 청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청하는 다정한 열기가 어려 있는 그 얼굴과 눈앞에 있는 문제의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나마 먼저 주세민과 남궁휘의 것을 본 적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대체…… 다들 어떻게 된 거야…….’

이것조차 남자들끼리 붙어먹게 하기 위한 설정인 것인지……. 청하는 심란해진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반쯤 일어선 청연의 물건을 붙잡았다.

제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만져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물론 지난번에 온천에서 실수로 남궁휘의 것을 움켜쥔 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남의 것을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 남자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몇 개월 동안 너무 여러 가지 일들을 겪다 보니 자신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해야 할지……. 청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앞에 있는 청연의 것에 시선을 고정했다.

청하는 조심스럽게 청연의 것을 붙잡은 채 천천히 위아래로 그의 것을 쓸어내리듯 문지르기 시작했다. 서투른 손길로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끝부분이 조금씩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 청하는 갑자기 어디선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겠다. 청하는 속으로 약간 안심하며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잡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래……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어쨌든, 이런 문파의 수장인 내가 언제까지나 못 하겠다고 몸을 빼고 있을 수는 없잖아.

각주에게는 어쨌든 각주로서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소각주가 그를 대신해 문파를 지키다가 이렇게 큰 부상을 당했으니, 최소한 청하에게는 최선을 다해 그를 치료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청하는 다시금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카락이 숙여진 등을 따라 어깨 아래로 사르륵 흘러내렸다. 열기를 품은 청연의 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괜찮겠니?”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청하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눈동자만을 슬쩍 들어 올려 저를 내려다보는 청연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청하는 자꾸만 말라 오는 입술을 혀를 내밀어 한 번 핥은 뒤 천천히 입을 벌려 끝에서부터 그의 것을 머금었다.

“으음…… 읏…….”

청연의 눈이 조금 커지며 단단한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청하가 쉽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입에 들어차는 물건의 크기가 꽤 만만치 않았다. 청하는 약간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우선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혀로 기둥을 감쌌다.

조금 작은 듯한 입으로 둥근 귀두를 빠듯하게 머금고, 입술을 오므려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따뜻한 점막 안쪽에 딱딱하게 일어선 물건이 비벼지기 시작하자, 청하가 짚고 있던 허벅지에 더욱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며 입 안에 있던 물건도 조금 더 크기를 키웠다.

‘뭐, 뭐야…… 여기서 더 커진다고?’

청하는 살짝 놀랐으나 이제 와서 몸을 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그래…… 금방 끝내면 돼, 금방 끝내면. 청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깊게 물건을 머금었다. 혹시라도 잘못해서 이라도 세울까 노심초사하며 급하게 물건을 머금던 청하는, 그만 딱딱하게 곧추선 물건에 저 안쪽 민감한 점막을 쿡 찔리고 말았다.

“크흠, 하, 으읍…….”

청하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저도 모르게 거친 숨을 내뱉으며 쿨럭거리던 청하는, 슬쩍 시선을 들어 청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지, 서툴기만 한 행동 때문에 청연이 불쾌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청연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청하의 몸이 움찔거리며 굳어졌다.

청연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청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연상의 여유를 잃지 않던 단정한 얼굴이 마치 십 대 소년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청연의 붉은 입술 사이로 하아, 하고 달아오른 숨결이 흘러나왔다. 청연이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살짝 일으키며 청하의 머리 위에 다정하게 손을 올려놓았다. 청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청연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계속하렴.”

청하는 그의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기가 뚝뚝 흘러내리는 듯한 청연의 눈동자가 청하의 움직임에 따라 살짝 가늘어지며, 입술 사이로 억누르는 듯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왠지 모르게 청하의 가슴을 간질거리게 했다. 청하는 턱이 뻐근해질 정도로 입을 벌리며 열심히 청연의 것을 핥고 빨아들였다.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타액이 청연의 것을 타고 흐르며 번들거렸다.

청연의 아랫배와 허벅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열중하여 정신없이 혀와 고개를 움직이던 청하는, 급하게 제 머리카락을 붙잡는 손길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청연의 단단한 손가락이 청하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악력이었다. 청하는 제가 전달해 준 영기 덕분에 청연의 몸이 조금 전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생각이 좀 더 이어지기도 전에, 청연이 청하의 머리를 아래로 강하게 내리누르며 자신의 허리를 쳐올렸다. 순식간에 목구멍 저 안쪽 깊은 곳까지 청연의 것이 확, 파고들었다.

“커흑, 흐, 아흡, 으웁…….”

청하가 저도 모르게 숨 막히는 듯한 신음을 뱉어 내었다. 그렇게 깊게 들어올 거라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청연의 뜨거운 물건이 단숨에 짓쳐들어왔다. 청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눈꼬리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사, 사혀…….”

“하…… 청하야.”

청하가 어떻게든 더듬거리며 말을 뱉어 내려 하는데, 청연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사랑스럽다는 듯 청하를 내려다보며 눈꼬리를 휘어 미소 지었다. 청연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청하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까는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던 얼굴에 비로소 혈색이 돌아 뺨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청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던 몸에서 힘을 빼었다. 과연, 자신의 행동이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청연이 청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강하게 허리를 짓쳐 올렸다. 청하는 다시금 목구멍 안쪽으로 확 들이닥치는 청연의 물건에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멈췄으나, 최대한 입을 벌리며 청연의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청연이 흥분으로 달아오른 신음을 내뱉으며 청하의 머리를 붙잡은 채 강하게 하반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하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어떻게든 제 입 안을 헤집으며 파고드는 것을 받아 내었다.

부드러운 혓바닥 안쪽으로 미끌거리는 귀두 끝이 문질러졌다. 그대로 안쪽으로 미끄러진 뜨겁고 단단한 살덩어리가 청하의 좁은 목구멍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입천장을 간질이기도 하고 볼 안쪽을 찌르기도 하며 몇 번이나 청하의 입 안을 들락거리던 것이, 점점 속도를 붙여 가며 청하의 목구멍 안으로 깊숙이 침입했다. 청하는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억누르며 몸을 떨었다. 청연의 뜨겁고 단단한 물건이 제 안을 파고들 때마다 왠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이나 앞뒤로 오가며 목구멍 안쪽을 들락거리던 청연의 것이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었다. 청연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으며 근육에 힘이 꽉 들어찼다. 정신이 하나도 없던 청하는, 그만 제때 얼굴을 빼내지 못하고 제 입 안에 쏟아지는 청연의 정을 그대로 받아 내고 말았다. 뒤늦게 청연의 것을 뱉어 내자,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백탁액이 반쯤은 청하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청하는 눈을 깜빡이며 속눈썹에 엉겨 붙은 점액질의 액체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어찌할 사이도 없이 목구멍 사이로 밭은 기침이 터져 나왔다.

“콜록, 크, 크흠, 하아…… 쿨럭, 큭…….”

청연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청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침을 내뱉는 청하를 달래는 것 같기도 했고,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 같기도 한 손짓이었다. 청연의 손가락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청하의 눈가를 부드럽게 훑어 주었다.

“괜찮니?”

다정하게 물어 오는 목소리에는 아까보다 확연히 생기가 넘쳤다. 청하는 붉게 달아오른 눈을 간신히 들어 올려 청연을 올려다보았다.

“사, 사형은…… 크흠, 괜, 괜찮으십니까?”

청연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약간 쑥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수줍은 듯도 한 미소였다. 청연은 제 흔적을 입가와 얼굴에 잔뜩 묻힌 채 저를 올려다보는 청하의 얼굴을 홀린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 아까보다는 훨씬 낫구나.”

청연이 소맷자락으로 청하의 입가를 닦아 주며 속삭였다. 청하는 그제서야 황급히 제 얼굴에 묻은 것들을 옷자락에 닦아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청하가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제…… 조금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느 정도 영기가 보충되었으니 회복도 빨라지시겠죠.”

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트러진 옷자락을 가다듬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던 청하의 머릿속으로 드디어 천천히 현실감이 찾아들었다. 방금…… 제가 그러니까…… 청연의 것을…….

청하는 저도 모르게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린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했다. 청하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청연의 회복을 위해 한 것이었으므로 후회는 없었다. 방금 전으로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청하는 그를 위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다만…… 다만…….

‘미친 듯이 쪽팔릴 뿐이지…….’

청하는 도저히 청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슬쩍 시선을 피한 채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 그럼…… 저,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시고…… 그, 회복에 전념하세요.”

그리고 청하는 청연이 무어라 입을 열 새도 없이 휙, 뒤돌아서서는 넘어질 듯한 발걸음으로 황급히 내실을 떠났다. 구르는 듯 멀어지는 발소리만이 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하…… 큰일 났군.”

홀로 남은 내실에서, 청연은 이제 생기가 도는 것을 넘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뺨을 한 손으로 감싸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방금 전, 잔뜩 흐트러진 청하의 모습이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청연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언제나 서늘한 얼음 같던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제 것을 입에 물고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표정. 항상 차갑게 내리깔던 긴 눈꼬리에 일렁이는 눈물과 열기를 가득 머금고 저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하반신에 다시금 억누를 수 없는 열기가 솟아올랐다. 분명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한 행동이었다. 그저 자신의 상태가 위급하여 치료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청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술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억누르지 못한 욕심이 자꾸만 청연의 가슴을 조금씩 물들여 갔다.

청하는 타오를 듯 붉게 물든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정신없이 태선각 안에 있는 제 침전으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누구와 마주치기라도 할세라, 청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재빨리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으아아아…….”

청하는 저도 모르게 앓는 듯한 신음을 내뱉으며 정갈하게 단장된 청루각주의 침상에 풀썩 쓰러졌다. 하아아…… 잘한 거겠지? 그래, 잘했어. 잘한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청연이 어느 정도 몸 상태를 회복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청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꼭 필요한 일이었어. 나는 각주로서 필요한 일을 한 거야. 원작 백청하도 수련하는 데 감정을 개입시키는 걸 싫어했다고 했잖아? 나도 괜히 요란스럽게 굴 것 없지.

청하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침상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중얼중얼 말을 뱉어 내었다. 달아오른 뺨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심란하던 마음도 약간 진정되는 것 같았다. 커다란 침상 위에 대자로 누워 간신히 심호흡을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불쑥 귓가에 나지막한 저음이 파고들었다.

“뭐 하나?”

“으악!”

청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화다닥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간편하고 활동성 있는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잘생긴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문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살짝 가늘게 뜬 눈동자가 약간 한심한 빛을 띤 채 청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청하는 남자의 낯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간신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간 떨어질 뻔했네. 여긴 무슨 일이야?”

세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기대고 있던 문간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청하의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세민은, 우아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청루각주의 침전을 짐짓 흥미롭다는 얼굴로 휘둘러보았다.

“나름 청루각에 손님으로 왔는데, 주인이라는 자가 손님을 내팽개치고 혼자 사라져 버렸으니 혼자 알아서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세민이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청하는 황당함에 세민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백진이나 다른 제자가 분명 머물 곳을 안내해 줬을 텐데?”

그러나 세민은 청하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말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으나, 무언가 뚜렷한 목적이 있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세민은 청하가 앉아 있는 침상 바로 앞에서 뚝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주세민은 청하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청하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듯 들여다보는 세민의 눈동자가 집요했다. 세민의 짙은 눈동자가 살짝 부어오른 청하의 붉은 입술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괜히 약간 마음이 불편해진 청하가 슬쩍 시선을 피했을 때, 세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연, 청루각주께선 돌아오자마자 꽤나 바빴던 모양이로군?”

세민이 청하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청하는 뜨끔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세민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다.”

세민은 간단히 대답하며 청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세민의 잘생긴 미간이 문득 찌푸려졌다. 세민이 불쑥 청하를 향해 손을 내밀자, 청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며 세민의 손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허공에 멈춰 서 있던 손은, 곧 천천히 청하의 입술을 향해 뻗어 갔다.

세민의 커다란 손이 청하의 턱을 움켜쥐고, 엄지손가락이 청하의 아랫입술을 스쳐 지나갔다. 약간 부어오른 입술이 세민의 서늘한 손가락 아래에서 살짝 뭉그러졌다. 세민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세민이 아까보다 한층 더 낮아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네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짓이라니. 청연과 무슨 짓을 한 건지 눈치챈 건가? 청하는 순간적으로 시치미를 떼어 볼까 싶었지만, 이미 모른 척하기엔 늦었다. 청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세민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네가 직접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훔쳐보기라도 했나?”

“각주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내 말에 대답해.”

“너나 내 말에 대답해라.”

청하와 세민은 동시에 서로를 노려보았다. 청하는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턱을 움켜쥐고 있는 세민의 손을 탁 쳐 내었다.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세민의 눈동자에서 어두운 빛이 번쩍였다. 짙은 색의 눈동자 속에서 붉은빛이 위험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청하는 괜히 찔리는 마음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내 말이 맞잖아?! 자기랑 무슨 상관이야?

세민은 어두운 눈동자로 청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침상을 향해 몸을 숙였다.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청하는 침상 위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가 되었고, 세민은 손으로 침상을 짚으며 청하의 위로 엎드리듯 몸을 기울였다. 청하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자들이 네게 그런 짓을 강요하는 건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청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린 채 세민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이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청하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세민의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간 붉은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세민이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그런 건가?”

“아…… 아니야.”

청하가 가까스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청하가 당혹스러운 눈동자를 깜빡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내가 스스로 한 거야. 내가 청루각주인 걸 잊었어?”

세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뚫어질 듯 청하를 응시했다. 청하는 대체 세민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당황한 마음으로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문득, 세민의 손이 천천히 청하의 뺨으로 향했다. 청하가 눈을 깜빡인 순간,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이 청하의 뺨을 스치듯 매만졌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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