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지점
게이트는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닫혔다. 그날, 하늘 위에서 흩어지는 마력 파장으로 인한 빛무리가 허공에 날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늘에서 별 가루가 떨어졌다고.
제로급 게이트가 빠른 시일 내 연달아서 열린 것치고 그 피해는 미미했다.
이번 게이트는 들어갔던 두 S급 각성자들로 인해 그저 대피 소동만 있었을 뿐, 아무런 위험 요소 없이 닫혔다.
그리고 제로급 게이트가 닫히면서 새로운 변화 또한 생겨났다.
전 세계 곳곳 그리고 신당 5동에 열려 있던, 닫히지 않는 게이트가 닫혔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오류를 해결하니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차원을 파괴하려는 상위 차원의 간섭은 끊어졌고, 혹시 모를 침입까지도 시스템이 막아 낼 수 있게 되었다.
게이트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는 없었으나, 세계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사는 세상으로.
그동안 제로급 게이트를 피해 없이 닫히도록 활약한 각성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사들이 뿌려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했다.
[헌터X헌터 베스트 게시글]
[제로급 게이트 S급 둘이서 막은 거 실화냐]
아무리 봐도 안 믿겨… 나 그쪽 지역에 자취하던 직장인인데, 내일 멀쩡히 출근하란다. 아무런 문제없다고 ㅅㅂ 이게 말이냐…
└존나 우리나라는 안전 불감증 세계 최고 수준임; 지키는 각성자들이 존나 강해서 이래 그 사람들이 쉽게 막았겠냐고 후유증 없겠냐고
└쉴 거면 각성자가 쉬어야지 직장인이 뭘 쉬겠다고 난리야 멀쩡하면 출근 당연한 거 아님? 나 존나 안 울고 있음 진짜임
└눈물 닦고 말해
└차해준 백루찬 둘이서 제로급 게이트 박살… 진짜 안 믿긴다 코딱지만 한 땅에 무슨 인재가 화수분처럼 솟아;;;
└바탈도 있었다 미국이 있으니까 그나마 해결된 거지
└이 뭔 개소리노
└바탈은 밑에서 각본이랑 대기만 했고요. 알고 말해라 갑분 미국타령은 뭐임? 게이트 해결 두 사람이 한 거 맞아;
└근데 왜 뉴스 속보에 백루찬만 나옴? 차해준 어디 갔어
└게이트 터지고 차해준 찾는 사람 존많 어딘가에 있겠지 다쳐서 못 나타나는 거 아냐?
└차해준이 백루찬보다 강한데 다친다는 게 ㅋㅋㅋㅋ 말이 되나
└국피 무시 자제
└이게 왜 국피 무시임? 존나 웃기네 걍 팩트 아닌가 랭1위 한야한테 국피 발리는 거 영상도 있다 꼭 증거를 보여 줘야만 믿더라 봐라 백루찬 깝치다가 차해준에게 한 대 맞음 hpp://gfedd……
└이거 저번 제로급 영상 아니냐 부득불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 오지게 했는데도 들어가서 헬기 두 대 부순 CGN 방송사 캠 촬영 아님?
└두 사람이 보이긴 하는데….
└보이긴 하는데…… 222
└내 눈엔 걍 끌어안아 주는 거 같은디 게이트 무사히 나와서 서로 다독이는 거 아님?
└뭔 소리야 두 사람은 사.랑.을.하.고.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죽어
└우리 성스러운 S급들로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시바 여기서도 좆목질을 봐야겠냐
└다들 지랄 좀 그만해 시발것드라
[이번 제로급 제대로 닫힌 거 맞어?]
게이트 닫히는데 난 누가 드론 떼거지로 날린 줄 근데 존나 멀리서도 보이더라….
이게 그 마력 파장이 녹으면서 생긴 거라매?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일이냐
5분 넘게 반짝거렸다며 별 가루 떨어지고 그거 주운 사람 있냐
그리고 어떤 간 큰 대포가 옥상에서 찍은 건지 백루찬 직찍 사진 올림; 별 가루 밑에서 두 손에 얼굴 묻고 있는 거
+
사진
존나 잘 나오긴 했다 시바… 근데 왜 나 개 슬프지 먼가 사진이 슬퍼
└그때 다들 대피해서 없을 듯 있으면 각본 관계자 인증임
└와 도촬러 미친X이네 제로급 터졌는데 저걸 찍었다고
└요즘 줌 100배도 돼서 쌉가능임 이래서 머글들은
└사진 감사
└백루찬 게이트에서 뭔 일이 있었길래 저러고 있는 거임? 궁금하다 각성자들 세계….
└일반인인 걸 감사해라 궁금해하지 말고
└백루찬 분위기 지린다 백금발에 별 가루 묻는 거 같애 근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너무 힘들었나 국피가 그럴 애가 아닌데
└추측 자제하자 아직 공식 기사도 안 남
└왜 차해준이 없냐… 나 존나 불안해
└시바 나도 개무서워 지금
[관계자 피셜 뜸 이번 제로급 게이트]
진짜 갑자기 열린 거잖아 전조도 없이
근데 그때 차해준이 제일 먼저 발견했대
기사는 오전 중으로 뜰 듯
게이트에서 두 사람 튕겨 나왔는데 모르젠트 길드장만 있는 거 사실이래
몰젠 길드장은 지금 아무 말도 안 하고 입 꾹 닫고 있고
홍희가 부길마로 대신 인터뷰 중이라는데
차해준 뭔 일 생긴 거 아냐?
진짜 그러면 어떡하냐 좀 심란하다….
└무슨 일 생겼을 리가
└그냥 얼굴 안 비치는 거 아냐? 두 사람 다 게이트 나왔다매
└근데 백루찬이 왜 우는 얼굴이야
└누가 운다고?
└????
└누가 울어???
└이 먼 내일 출근 거짓말이라는 얘기임?
└님 출근은 사실이고요 백루찬이
└ㅅㅂ희망 깨지 말아 줄래
└지최경 지금 난리 났다던데. 거기 한야 팬카페잖아
└왜 난리 나?
└한야 없어졌다고 게이트에서 크게 다치거나&죽었다고 지금 찌라시 퍼져서 뒤집어짐
└궁금해서 접속해 봤는데 찐으로 지금 접속 안 됨 접속자 폭발 다 나같이 궁금해서 몰려들었나봐
[엠바고 풀렸어 기사 뜨기 시작한다 근데]
hpp://gfcxccxcasf…….
애들아 어떡해 시발 진짠가 봐
└이게 뭔 일이야
└미친…. 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로? 진짜로 한야가?
[몰젠 공식 기사 전문]
中
이날 모르젠트 길드장(백루찬 씨)은 게이트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들의 동행한 한야(차해준 씨)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대답을 하지 않았다.
.
.
.
모르젠트 길드장은 간략히 인터뷰 후 바로 자리를 떠났고, 그 뒤 모르젠트 부길드장(홍희 씨)가 단상에 올라와 인터뷰를 마저 진행했다.
부길드장은 공식적으로 게이트 처리 후 귀환자를 ‘백루찬’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돌았냐 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
└미친 거 아냐 말도 안 돼
└시발……존나 울고 싶네
└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 죽은 거 확정 아니니까 빌지 마
└아니라고 하면 사실이 아닌 게 되냐 인정할 건 인정해 가는 길이라도 빌어 줘야지
└못 믿겠어 말도 안 돼 거짓말 같다 뭐라고? 한야가?
└‘부길드장은 동행한 한야(차해준 씨)를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죽은 거 아님 다들 닥쳐 시발 살아 있으니까
└제로급에서 실종이면 죽은 거랑 뭐가 달라ㅋㅋㅋ 미친 새끼들 존나 많네 정신 나간 놈들
└모르젠트가 수색한대
└닫힌 게이트를 어떻게 수색하냐?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난리 났다 대한민국…… S급 최강자를 잃었네.
└나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너무 주목도가 높아져서 전처럼 다시 숨은 거라고 생각할래 그게 맞다
└안 믿겨 이게 맞는 거 같아 그냥 자신이 너무 노출돼서 그래서 숨은 거야 그런 거 맞는 거 같음
└제로급 게이트도 닫혔고 별 가루 이벤트도 끝났다 다들 현실 살자 제발
└X까 시발….
[그러게 왜 혼자 들어가서 ㅉㅉ +댓글:34545]
[그럴 줄 알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3443]
[지금 세상이 나 놓고 구라 치는 거 같아 +댓글:562]
[제로급 게이트 각본 고위 간부 증언 +댓글:2453]
[지최경 현재 상황 +댓글: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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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급 게이트에 대한 피해는 없었으나, 그 여파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름이 다 가고, 장마철이 오고, 겨울이 오고.
그리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소수의 희생자의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추모 대상은 주로 각성자들이었고, 그들은 검은해가 준동했던 가약동 게이트의 희생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자들의 피해 대책 보상금으로 또 한 번 떠들썩해지고, 각성자 관리 본부의 업무 실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한차례 또 몸살을 앓았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나의 의문만은 그대로 놔둔 채 그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사라진 차해준. 실종되었다는 한야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인터넷 한쪽에선 애도의 물결이 아직도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지최경도 마찬가지였고, 모르젠트 또한 따로 장례식을 열거나 그의 이름을 기사에 내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남아 있길 바라는 것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뿌연 창밖으로 어스름에 휩싸인 도시가 보였다. 정리 정돈된 사무실은 적막했고, 그 적막 속에서 가는 하얀 머리카락이 소파 위에서 흔들렸다.
백루찬은 감았던 눈을 떴다. 어둑한 세상은 현실이었다. 온통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그는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초췌해진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은 붉게 충혈된 상태였다. 그날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소파 앞 테이블엔 홍희가 가져다 놓은 음식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비닐도 풀리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백루찬은 감흥 없는 눈으로 그것들을 쓰윽 훑어보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 앞으로 향했다.
세상은 어느새 겨울이 끝나고 봄비가 내렸다.
백루찬은 가만히 서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봤다. 죽은 눈은 빛이 없었다.
그가 곁에 없는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백루찬은 조용히 숨 쉬는 것조차 잊은 것처럼 그렇게 한참을 멀리 그곳을 바라봤다.
모르젠트 빌딩에서도 보이는, 제로급 게이트가 열렸던 자리.
그 사람이 사라졌던 그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