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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98)화 (201/201)

폭야가 어둠을 퍼트리며 폭주하는 진마하를 덮쳤다. 나는 그대로 그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스킬을 시전하면서 마력의 중압에 견디지 못한 몸이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고통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폭야로 감싼 진마하가 앞에 있었다. 나는 영혼석을 손에 꽉 쥐고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온몸의 뼈들이 비명 지르는 기분을 느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다짐은 확고해져 갔다.

나는 영혼석을 부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는…!

몸을 덮치는 고통과 압박에도 이를 악물고 스킬을 시전했다. 마력이 온몸을 돌면서 손끝까지 타고 흘렀다. 마지막 스킬이다.

[어둠의 포식(Lv.99)]

모든 것을 삼키는 어둠.

나는 그것으로 진마하가 폭주하며 튕겨 내는 마력들을 모조리 삼키기 시작했다. 꿀렁이며 어둠의 이면으로 넘어오는 것들은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컥…!”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잠식한다. 진마하가 폭주하며 내뿜는 마력은 어마어마하게 나에게 빨려 들어왔다.

세계를 뒤흔드는 큰 힘이, 어둠의 포식에 의해 삼켜지고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스킬을 전개했다.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눈을 부릅뜨며 버텨냈다. 이대로, 이대로 멈춰선 안 된다. 이대로 멈추면 세계는 그대로 멸망으로 간다. 진마하를 구하지 못하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고…!

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한 사람이야!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지키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라고!

이깟 고통, 아무것도 아니었다. 버틸 수 있다.

마력이 온몸을 짓누르는 상황 속에서 이를 앙다물며 진마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지지직거리며 떠올랐다.

[크-ㄹ리어런스 이ㅣ대로 받아들이면 위험합니다! 오류를 잡아먹으면 당신에게 지장이 가요!]

[영혼석을 부수세요! 이곳을 벗어나요!]

벗어나면! 벗어나면 세계는 무사한 거냐고!

[당신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나요?]

[왜, 왜 이렇게까지 해요? 그냥 영혼석을 부숴요! 벗어나요, 클리어런스!]

시스템이 우는 이모티콘을 띄웠지만, 그것은 짙은 마력의 흐름에 노이즈가 끼며 금방 사라졌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내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다.

게이트 밖의 사람들. 홍희, 정희수, 한솔이, 새벽이, 송류진, 우반희, 바탈…. 무수한 얼굴들이 눈앞에 스쳐 간다.

그리고… 백루찬.

흰 코트를 휘날리며 웃던 그놈.

가까스로 게이트를 탈출한 이후 과거의 기억을 벗고 간신히 웃던 그놈. 아니, 빗속에서 우는 것 같던 그놈.

그래, 살리고 싶다.

멸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눈앞의 진마하.

그저 시스템에 의해 태어났을 뿐인데, 홀로 살다 홀로 부서지는 이 불쌍한 새끼.

나는 진마하를 끌어안았다. 놈에게서 터져 나오는 빛들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지만, 나는 녀석을 꽉 끌어안았다.

[경고!]

[경고!]

[스킬 과부하! 스킬 과부하!]

[이러다, 정말, 터져요! 그---만!]

시스템이 외치듯 텍스트를 띄웠다.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이지를 잃고, 흰자위까지 파랗게 물든 진마하는 얼굴까지 조각조각 뜯어지고 있었다. 금이 가기 시작하는 녀석은 이지를 잃은 상태로 발버둥을 쳤다. 나는 그래도, 녀석을 끌어안았다.

[경고!]

[경고!]

[스킬 과부하!]

[삼킬 수 있는 한도를 초과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로----]

조용히 해, 이 자식아.

그렇게 뇌까렸지만, 눈앞에 시뻘건 경고창이 가득 뜨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나는 그래도 이 자식을 놓을 수 없다.

어차피 나에게 맡긴 거잖아. 나에게 세계의 기둥을, 메인 캐릭터를 구하라고 했잖아. 진마하까지 메인 캐릭터라면 이 녀석의 생사도 결국 내 손에 맡긴 거 아냐?

내 의지대로 하겠어. 굳은 다짐과 함께, 어둠의 포식으로 폭주하는 녀석의 힘을 빨아들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나는 진마하를 꽉 끌어안았다. 사라지지 마.

네가 없으면 모두가 죽는다.

모두가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두고 볼 수 없다.

눈을 꾹 감았다.

폭야의 어둠 속에서 나는, 진마하를 껴안고 그렇게 버텼다.

❖ ❖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서서히, 어둠의 포식을 전개한 내 몸이 폭주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진마하가 눈을 떴다.

나는 천천히 녀석을 품에서 놓았다.

새파란 빛을 가득 머금은 눈을 뜬 진마하가, 나에게 힘이 삼켜지면서, 나를 쳐다봤다.

이제 남은 건, 오류인 진마하뿐이었다. 녀석을 보면서, 움직이지 않는 입가를 간신히 움직였다.

“내가 말했지.”

나는 힘겹게 웃었다.

“혼자 두지 않겠다고.”

인외의 존재로 태어나 네가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것들. 결국 옆에서 손을 내미는 것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시스템의 존재는 네게 아무것도 채워 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이렇게 된 거야. 알아.

“네가 한 짓이 잘한 짓이라고는 생각 안 해. 너는 무자비했고….”

- …….

“하지만, 그래도.”

그래. 그래도,

“그것까지 내가 감싸 줄게.”

그러니까. 세계를 위해 살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오류인, 녀석까지, 어둠의 포식으로 삼키는 것. 그 모든 것을 내가 끌어안는 것.

이것으로 내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삼킬 거다.

이것으로, 너 또한, 해방될 수 있다면.

진마하의 푸르게 빛나는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녀석은 이제 윤곽만 남은 몸뚱어리로 나를 껴안았다.

종내는 내 안으로, 어둠의 포식 스킬로 인해 희미해져 가는 몸까지 흩어지며 빨려 들어왔다.

모든 것을 삼키는 것.

오류까지도 삼키는 것.

진마하는 천천히 흩어졌다. 흩어지는 녀석이 나를 불렀다.

해준아.

짧은 고백.

사랑해.

나는 눈을 감았다.

❖ ❖ ❖

검은 어둠이, 폭주하는 진마하를 감싸 안았다. 그것은 둥근 구체를 만들며 사방으로 마력을 뽑아내는 진마하를 가뒀다. 빛무리처럼 새어 오는 마력들이 있었지만, 금세 구체 안에 먹혀 들어갔다.

백루찬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향해 달려갔다. 제 형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자꾸만 위험에 몸을 던지고, 자꾸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게 만드는, 그런 남자로 만들었다.

내가 하겠다고 했잖아. 그깟 영혼석 부수면 그만인데! 왜!

“아으, 아악!”

백루찬은 발작하듯 소리치며 검은 구체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어둠은 백루찬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고 튕겨 냈다. 백루찬은 튕겨 나갔다 다시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곧이어 검은 구체에 조그마한 틈들이 생기면서, 마력과 함께 뜨거운 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 ----!!!

귀를 때리는 폭발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루찬은 또다시 튕겨 나가 대지에 길게 자국을 남기며 미끄러졌다. 고막이 터지면서 이명이 삐삐 울린다.

“허억… 헉….”

온몸이 터질 것 같은 압박이 일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부푼 검은 구체가 터져 나갔다.

백루찬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디디고 있던 땅이 무너지고, 몸이 붕 뜨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있었다. 세상이, 아니 게이트가.

빛무리가 모든 것을 환하게 태워 가며, 부수고 있었다.

백루찬은 허공에서 추락하며 그것을 올려다봤다.

부서지는 세계. 게이트 안의 진마하의 심상 세계가…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 순간, 이명처럼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 목소리인 건지, 모르겠지만 백루찬은 들었다.

[게이트가 닫힙니다.]

그리고, 흰빛으로 사방을 잠식당한 세계는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백루찬은 천둥의 발걸음을 전개했다. 하늘을 날고 허공을 디디는 스킬은 그의 몸을 무사히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백루찬은 보았다. 자신이 게이트 밖으로 튕겨 나왔다는 것을.

디딘 곳은 현실 세계의 높은 빌딩 옥상이었다. 거대하게 열린 마력 파장이 그의 눈앞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본 것처럼, 하얗게 퍼져 가며 흩어지고 있었다.

“…아.”

정말로, 게이트가 끝이 났다. 그럼 차해준은?

백루찬은 잠시 동안 멈춰 있다, 바닥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마력 파장 너머로 떠밀리듯 떨어지는 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차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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