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 성공!]
눈앞에 시스템이 떠올랐다.
[진마하 접촉하여 연결된 장소에서 영혼석을 찾았습니다!
난이도: ??
보상: 진마하의 영혼석]
하, 이거 진마하와 만나면 영혼석의 위치를 알려 주는 퀘스트가 아니었던가. 그땐 뜨지도 않다가 내가 영혼석을 인지하자마자 떠오르다니. 완전히 순 사기 아냐. 진즉에 알았다면… 하.
내가 씁쓸한 얼굴로 시스템을 쳐다보자, 텍스트가 밀리며 우는 이모티콘이 띄워졌다. 시스템은 무척이나 급하다는 듯 빠르게 텍스트를 띄워 올렸다.
[세계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세계선이 무너지기까지 앞으로 1:02:36…!]
젠장. 나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제한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즈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심각해졌어? 뭐야, 뭔데?”
“세즈, 우선 나가자.”
“영혼석은 찾았다며. 설마 그게 그 영혼석이야?”
세즈가 내가 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며 그를 붙잡아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때였다.
“……!”
순간 땅이 지진 난 것처럼 쿠르르 울렸다. 건물이 부서질 것처럼 먼지를 토해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간을 잡고 중심을 잡다가, 세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빠르게 현관으로 향했다. 사방의 물건들이 떨어지고,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건물이 왜 갑자기 무너지는 거지? 그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몰디베리 17번가의 집을 벗어났다. 현관을 나오자마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집이 폭삭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양만철이 아직 안에 있는데…!
나는 숨을 고르며 무너진 집을 바라봤다. 죽어도 싼 놈이긴 한데… 그래도 저렇게 놔두는 게 맞았을까.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세즈가 나를 또 툭툭 쳤다.
“왜 그래?”
“…앞에 봐봐.”
세즈가 넋 빠진 얼굴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에게 향했던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 또한 세즈와 같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수면에 비치는 광경처럼, 하늘에 촘촘하고 빼곡하게 박혀 있는 건물들이 뽑혀 나가듯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땅은, 내가 서 있는 곳을 의미했다.
위에 있던 것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려 건물들을 파괴한다. 사방이 무너지고 있었다. 지진 난 것처럼 계속되는 진동은 저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방이 무너지고, 도로가 뒤집혔다. 공간이 접히는 것처럼 도시의 절반이 사라지고, 바닥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 쿠우웅!
양만철의 집 위로 거대한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그건 시멘트 덩어리였다. 철골이 박혀 있는.
세즈가 나를 붙잡고 뒷걸음질 쳤다. 아연실색한 세즈의 손을 잡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시스템을 불렀다.
“…빨리, 빨리 이동시켜 줘.”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까요?]
“그래 빨리…!”
[잠시, 순간 이동을 한 번 한 터라 잠깐 재부팅 시간이 필요해요!! 클리어런스 ㅠㅠㅠ조금만 버텨 주세요!]
“야, 이…!”
이 자식이 급한데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나는 세즈를 붙잡고 소리쳤다.
“뛰어!”
도로가 뒤집히고 말린다. 우리는 최대한 멀쩡한 도로를 향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세즈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방금 지나친 건물들이 찰흙처럼 뭉개졌다. 뒤에서 쿠웅-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하지만 뒤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괴상하게 일그러지는 도시를 가로질렀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젠장, 이럴 때 스킬이라도…!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심장이 지잉 하고 울리며 갇혀 있던 마력이 손끝까지 퍼지는 게 느껴졌다. 영혼석을 초커에서 떼어 냈더니 마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미미하게 흐르지만, 그거로도 괜찮았다. 나는 앞서가는 세즈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녀석을 잡아당겼다. 세즈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대로 스킬을 전개했다.
[어둠의 포식(Lv.99)]
검게 일어난 기운이 화악 퍼지면서, 어둠이 나와 세즈를 삼켰다. 어둠의 포식을 연달아 사용해서, 무너지는 도시를 벗어났다.
뭉개지고 돌아가고, 마치 다차원의 세계처럼 여러 겹 겹쳐지는 도시의 끝에서 나는 꽉 붙잡고 있던 세즈를 놓았다. 세즈가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친 각성자들.”
“…스킬 처음 겪었구나.”
“존나 토할 것 같아….”
“저기서 도시와 같이 말리면서 토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걸 말이라고….”
세즈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둠의 포식 얌전한 스킬인 줄 알았는데, 나 이외의 사람이 이동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세즈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도시를 벗어나 꽤 떨어진 곳까지 몸을 피했지만, 곧 있으면 저 붕괴가 이곳까지 삼키며 다가올 것이다. 세계선이 무너진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잠깐…! 3분만 기다려요, 클리어런스…!]
시스템이 다급하게 텍스트를 띄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쓰게 웃었다.
몰디베리 도시가 무너졌다. 사우스웬드도 무너지겠지. 붕괴는 가속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아 있던 존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게… 어쩐지 씁쓸했다. 눈앞의 세즈도. 결국 이 세계가 붕괴하면 사라질 사람이었다.
숨을 고르고 있던 세즈가 나를 힐끔 보더니, 혀를 쯧 찼다. 그러곤 내 머리에 손을 올려 세게 꾹 누르며 쓰다듬었다.
“너 또,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지. 얼굴에서 다 보인다.”
“…쓸데없는 생각 아닌데.”
“쓸데없는 생각이지, 뭐야.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필요가 다하면 사라지는 거지, 그걸 그렇게 안 좋게 볼 필요 없어.”
“세즈.”
“별로, 괜찮아.”
어쩐지 이상한 세계에서 NPC로 태어난 존재는 나를 보며 웃었다.
“사라지는 게 두렵지 않아. 그렇게 태어난 건지. 그냥, 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
“별로 슬프지도 않아.”
세즈는 어깨를 으쓱하며 얄궂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야. 세계에 대한 미련 같은 건 없어. 슬픔도 느껴지지 않아. 느껴지는 건… 음, 좀 후련함?”
“…그게 뭐야.”
“몰라, 나도. 근데 이제 끝이구나 하니까, 좀 후련해. 그러니까.”
세즈가 내 뺨에 손을 올렸다. 온기가 느껴지는 손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클리어런스! 준비 완료되었어요! 순간 이동 진행합니다! 같이 갈 인원의 손을 꼭 잡아 주세요!]
나는 세즈에게 손을 뻗었다. 세즈는 내 손을 밀어내더니, 환하게 웃었다.
“영혼석도 찾았겠다, 나는 내 세계에 남아 있을 거야.”
“세즈…!”
순간 이동은 지체 없이 발동되었다. 몸의 끝부분부터 흩날리기 시작했다. 세즈를 붙잡으려 했지만 세즈는 되레 뒤로 한 발 더 물러났다.
“그러니까….”
“야! 이렇게…!”
“울지 마.”
세즈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 차해준.”
❖ ❖ ❖
눈을 떴다. 이동한 곳은 진마하의 고저택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그새 정이 들어서일까. 그냥 시스템이 만들어 낸 NPC라고, 백루찬을 닮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을 돌려 보아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씁쓸했다.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무엇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NPC일 뿐이에요, 복사한 존재들. 슬퍼하지 마세요, 클리어런스….ㅠㅠ]
“넌 그냥… 닥쳐.”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비틀대며 몸을 일으키니, 반파된 주택 너머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백루찬의 머리 위로 거대한 금빛 창이 떠올라 있었다. 저건 제우스의 창…!
진마하는 일전에도 제우스의 창에 무너졌다. 그만큼 강력한 스킬이었다. 그때 시스템이 경고했다.
[진마하는 불완전하게 어그러진 상태예요! 지금 공격하면 세계선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클리어런스, 메인 캐릭터를 구하실 건가요?]
“…하.”
[진마하는 세계의 오류. 게이트를 바로 잡으려면 영혼석을 파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메인 캐릭터. 클리어런스,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젠장, 대체 나보러 어쩌라고!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진마하를 구해야 한다. 손에는 영혼석이 들려 있었다. 이것을 부수면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 게이트가 터지는 건 더욱더 곤란했다. 현실에 영향을 끼치니까. 하지만.
하지만, 진마하는 메인 캐릭터다.
순식간에 엄청난 딜레마가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몸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지?
시스템이 종용했다.
[클리어런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모든 것이 진행됩니다. 서두르세요. 지체하면 늦어요!]
“알아…! 나도 안다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백루찬이 진마하에게 제우스의 창을 날리려는 것을 보며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다시 스킬을 전개했다. 어둠이 내 몸을 삼키고 이동했다.
[어둠의 포식(Lv.99)]
“…해준…!”
바로 진마하의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