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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95)화 (191/201)

몰디베리 17번가에 도착했다. 나는 세즈를 끌고 양만철의 집으로 향했다. 세즈는 투덜대면서도 내게 붙잡힌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여기가 그- 자식의 집이라고?”

“맞아. 진마하의 집…이었던 곳.”

낡은 집 주변을 둘러보며 주변을 살피던 세즈가 나를 떠밀었다.

“이왕 온 거 빨리 찾아.”

“도와줘야 해, 세즈.”

“여기까지 같이 와 줬으면 됐지, 뭘 더…!”

“그… 집을 보면 알 거야.”

양만철이 잔뜩 어질러 놓았던 그 거실의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여기 분명 벌레도 나왔던 거 같은데 거기를 뒤져야 한다니.

고개를 저은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게 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다! 진마하를 막고, 백루찬을 구하고! 하지만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고 나온 양만철을 보자 머리가 지끈대기 시작했다.

“뭐야, 또 무슨 일이오?”

턱에는 제멋대로 기른 수염이 찌들어 있고, 손엔 빈 양주 병을 들고 있었다. 누렇게 때가 낀 내의를 입고 있는 그를 보며 세즈의 얼굴이 한없이 구겨졌다. 나는 뒷걸음치는 세즈를 꽉 붙잡고 양만철에게 웃어 보였다.

“찾을 게 있어서 왔습니다. 잠깐 집 좀 둘러봐도 될까요.”

“집…? 지금 나에게 남은 것까지 뺏어 가려는 건가! 도둑놈을 찾으러 왔다더니 너희도 도둑이었어! 꺼져! 당장! 한 발짝이라도 들어오면 가만 안 둬!”

양만철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도둑놈이라니 누가 도둑놈이었다는 거야. 진마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거면 기가 막혔다. 진마하가 가지고 있던 사진이 떠올랐다. 이런 새끼도 그래도, ‘가족’이라고 품에 품고 있던 진마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양만철이 가만히 서서 노려보는 나를 보며 벌게진 얼굴로 양주 병을 든 손을 휘둘렀다.

양만철이 내 머리를 후려치기 전에 세즈가 그의 팔을 잡아챘다.

“왜 가만히 있어?”

“나서면 진짜 죽여 버릴까 봐.”

“…저번과 다르네. 경매장에선 그냥 쓸어버리더니.”

“이놈이 나름… 추억이 있는 놈이라.”

나와 말고, 진마하와. 괜히 죽여 버리면 진마하가 안타까워할지도 몰랐다. 물론 이런 쓰레기를 걱정할 리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아악! 이 개자식들! 노리는 게 뭐야! 이 집은 내 거야! 내 거라고!”

“이 새낀 안 되겠네.”

작게 중얼거린 세즈가 한숨을 쉬며 버둥대는 양만철을 잡고 그대로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몇 발자국 밀고 들어간 세즈는 양만철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 기절시키고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는 무척이나 찝찝하다는 듯 양만철의 머리를 잡았던 손을 옷자락에 비벼 닦았다.

“뭐 해? 빨리 찾아, 영혼석인지 뭔지.”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챙겨 줄 건 다 챙겨 주고 있다. 나는 그를 보며 슬쩍 웃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세즈가 윽- 소리를 내며 기겁했다. 경멸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이를 악문다.

“도와 달라는 게 여길 뒤지는 거야? 절-대- 싫어!”

“세즈… 안 찾으면 세계가 멸망한다고.”

“내 세계도 아닌데 멸망해서 뭐.”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는 말에 순간 멈칫했다. 내 세계도 아니라니, 세즈도 알게 된 걸까. 이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하, 아니 그러면 좀 슬프잖아. 자신이 여태껏 살아왔던 세상이 만들어진 가짜라니. 나는 세즈의 눈치를 보며 그를 힐끔 쳐다봤다. 지저분한 거실을 둘러보던 세즈가 내 시선을 느끼고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오지랖 부리지 마. 그딴 거 상관없으니까. 나는 지금만 잘 살면 돼.”

“…세즈.”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마. 좀….”

세즈가 머쓱하게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뒷말은 듣지 못했지만, 세즈는 큼큼하며 목을 가다듬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1층 뒤질 테니, 네가 2층을 뒤져 봐.”

“진짜 도와주는 거야?”

“그럼 가짜로 도와주겠어?”

세즈의 말에 피식 웃고는 나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1층보다 그나마 깨끗했지만, 완전히 관리를 하지 않은 건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을 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진마하는 이곳에서 머물렀을까. 무시하고 학대하는 양만철을 견디면서. 그래도 그것도 가족이라고.

씁쓸한 심정이다. 자꾸만 진마하에게 감정 이입이 돼서 괴로웠다. 하, 이러면… 안 되는데.

동정이라는 감정을 진마하 같은 나쁜 놈에게 주는 게 맞을까. 하지만 자꾸 내 안에서 놈에 대해 엇갈린 감정이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불쌍했고,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들 사이에,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진마하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액자에 꽂힌 사진을 보고 충격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진마하는….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더 이상 쓸데없이 파고들어 생각하지 말자. 지금 찾아야 할 것은 영혼석이다.

결의를 다지듯 주먹을 꽉 쥐고, 2층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낡고 오래된 침대. 가구들. 거미줄이 잔득 쳐지고 먼지가 뿌옇게 앉은 서랍장. 하나씩 뒤져 갔지만, 대부분이 그냥 비어 있었다.

방을 모두 둘러보아도 별다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침대 밑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침대 밑도 확인했다. 머리맡의 장식장도 혹시 몰라 건드려 보았으나 나오는 건 없었다.

“…….”

나는 손에 쥔 오래되어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수첩 하나를 바라보았다. 침대 밑에서 건진 건 이거 하나뿐이었다. 설마 이게 영혼석일 리는 없잖아. 한숨을 삼키며 수첩을 조심히 열어 보았다. 수첩은 날짜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가지런한 글씨체로 쓰인 일기장이었다.

나는 우뚝 멈춰 서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첫 장부터, 켜켜이 쌓아 왔던 진마하에 대한 감정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날씨. 어두움.

가족을 처음 만들었다. 나도 느껴 볼 수 있을까.

날씨. 눈이 내린다.

가짜 아버지는 협박한다. 나를 버리겠다고.

아니, 그러지 말아 줘. 당신의 쓸모없다는 듯 쳐다보는 눈길이라도 나는 필요해.

날씨.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

.

.

날씨. 달이 뜬 밤.

사랑하는 거야. 그 사람을. 너무 보고 싶다.

여기서 시간이 꽤 흘렀다. 현실은 변하지 않겠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날씨. 봄.

육체가 불안정하다. 그가 보고 싶다. 각인이란 것은 정말 무서운 거구나.

하지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해.

생각만으로도 충족되니까…….

날씨. 비가 온다.

그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나.

짧게 짧게 쓰인 일기들은 불규칙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진마하는 온통 한 사람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는… 나는 너무 잘 알았다. 명치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빌어먹을… 진마하. 자꾸만 괴롭게 만든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가 그를 괴롭게 한 건지, 그 때문에 내가 괴로운 건지.

아마 둘 다겠지.

간략하게 적힌 일기장을 계속 넘기다가 어느새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날씨. 맑음.

보고 싶어.

다시 만나면, 너에게 줄게.

모든 것을 다.

반복되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모두 보고, 수첩을 도로 제자리에 놓았다.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켜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낡고 오래된 방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옷가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양만철… 정말 그렇게 양심 없게 애를 키웠으려나. 지금 작태를 보면 솔직히 그래 보이긴 하지만.

또 한숨이 나온다. 영혼석의 영 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보석 같은 것일 텐데, 그런 게 이렇게 낡은 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찾았어-?”

1층에서 세즈가 목소리를 높여 물어 왔다. 나는 복도로 나가며 세즈에게 답하려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다가, 우뚝 멈춰 섰다.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기억에 목소리가 도로 먹혀들었다.

‘바보 같은 차해준. 난 이미 너에게 다 줬는데.’

그렇게 말하고, 웃던 진마하. 나는 갑자기 드는 생각에 진마하가 내 목에 채웠던 초커를 잡았다. 초커 앞엔 노란색 보석이 달려 있었다. 일기장의 내용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줄게.

“…너 괜찮아? 찾았어?”

세즈가 내가 대답이 없자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와선 굳어 버린 나를 보고 어깨를 툭툭 쳤다.

“없어서 그래? 그럴 수 있어. 내가 거기 돌아가면 같이 찾아 줄 테니까, 일단 돌아가는 게-”

“…찾았어.”

“뭐?”

나는 목에 걸린 보석을 꽉 움켜잡고는 힘을 주어 당겼다. 작은 고리로 연결된 그것은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툭- 하고 쉽게 끊어졌다. 하, 이렇게 쉽게….

나는 호박 빛으로 빛나는 보석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영혼석이 이거였다. 진마하는 정말로, 내게 다 주었던 거구나.

게이트는 물론이고, 자신까지 파괴할 영혼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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