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폭발음과 뇌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귀청이 떨어져라 울려 댔다. 나는 어두운 밤하늘에 번쩍이며 싸우는 진마하와 백루찬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살벌하게 싸우네.”
원래 같았으면 저기 껴서 두 사람을 말리고 진마하를 제압하는 게 나인 게 맞는데, 지금은 끼어들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마력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몸이 마치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무거웠다.
나는 번쩍이며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뒷걸음질 치다 등을 돌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명백하다.
진마하의 정신이 백루찬에게 쏠려 있을 때, 놈의 영혼석을 찾아야 했다. 분명 서브 게이트로 밀려 넣어지기 전에, 방을 다 뒤져 보았지만 영혼석 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놓친 부분도 있을 거야,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움직였다.
마지막이다. 진마하의 자기 파괴적 싸움을 말릴 수 있는, 현실의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나는 1층부터 다시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번쩍- 하면서 번개가 터지고, 사납게 부딪치고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둘 중 누가 다쳤는지 확인할 수 없다. 나는 최대한 그들을 의식하려 하지 않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반파된 1층을 물론이고, 2층에 머물렀던 방도 싹 다 뒤졌다. 혹시 벽면에 숨겨진 입구가 있다거나, 금고가 있다거나 한 건 아닌가 싶어서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는 곳이 있으면 더듬대며 벽을 밀어도 보고 주먹으로 내려쳐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없었다, 어디에도. 젠장, 어떡하지.
그러나 그때였다.
“…야!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버럭 외치는 고함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세즈가 3층에 올라가는 나를 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로비를 뛰어 들어온 세즈는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올라 내 팔을 잡았다.
“여긴 이제 부서질 거라고! 저놈들이 싸우는 거 안 보여?”
“세즈…? 어떻게-.”
“젠장, 도망치려고 했는데 네놈이 이곳에서 있는 걸 봐 버렸잖아. 언제 빠지려나 했지, 근데 이렇게 멍청하게 처박혀 있을 줄은!”
“세, 세즈…!”
세즈가 나를 잡아당기며 계단을 내려갔다. 평소 같으면 쉽사리 뿌리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한껏 당황해서 소리쳤다.
“찾아야 할 게 있어! 중요한 거야.”
“그게 목숨보다 중요해?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냐!”
“아니, 세즈, 잠깐만…!”
거칠게 끄는 힘에 꼼짝없이 끌려서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루찬을 꼭 닮은 세즈의 모습은 먼지투성이였다. 다친 것인지 옷도 찢어져 있고, 상의에 핏물이 배어 나오는 곳도 있었다. 마음이 쓰렸다. 하, 아무리 NPC라지만 아픔도 생생히 느끼는데 다치면 어떡하냐!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은 영혼석이 먼저였다. 나는 세즈에게 설명하려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때 세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찾는 게 뭔지 알아. 빌어먹을 영혼석 맞지? 그 전설같이 내려오는 그거 말야.”
“영혼석을 알아?”
“사우스웬드에 떠도는 풍문이야. 다크썬의 마법사는 영혼석을 없애서 죽여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 내가 그걸 얼마나 비웃었는데 실제로 찾고 있는 얼간이가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얼간이라니, 진짜로 그걸 찾아야 진마하를 막을 수 있어.”
“저놈 이름이 진마하인가 보지? 하, 그게 사실이라도, 설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집에 대놓고 숨겨 놨겠어? 영혼석을?”
세즈가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아, 백루찬의 얼굴로 저렇게 경멸스럽게 보니까 타격이 크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럼 너라면 어디에 숨겼을 거 같은데? 그게 없으면 저 전투를 말릴 수 없어.”
내가 진마하와 백루찬이 싸우고 있는 곳을 가리키자, 세즈는 움푹 파인 땅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 내 팔을 잡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세즈가 중얼거렸다.
“젠자앙, 그게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마법사의 영혼석 따위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어디 외국 소설처럼 태어난 집에 처박아 둔 것도 아닐 거 아냐. 그런 뻔한 술수를-.”
“…세즈.”
그의 한탄 어린 중얼거림에, 순간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내가 우뚝 걸음을 멈추자, 세즈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봤다. 나와 시선을 맞춘 그의 얼굴이 어쩐지 더 핼쑥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무슨 힌트를 줬다고 하지 마라.”
“몰디베리 17번가.”
“뭐?”
“지금 당장 가 봐야 돼! 거기! 진마하가 자랐던 곳…!”
“몰디베리는 여기서 거리가 꽤 먼 곳인데.”
세즈가 얼떨결에 내 말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사우스웬드에서 몰디베리까진 거리가 좀 있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서 뒤져 봐야 한다. 어째서인지 양만철이 떠올랐다. 그의 집에 영혼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조용히 있던 시스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동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시스템이 요상한 이모티콘을 띄우며 웃음을 터트렸다.
[서브 게이트가 터지면서 게이트 간섭 권한이 커졌어요! 밖으로 빼내 줄 순 없지만, 게이트 내부에서 이동은 가능해요! 순간 이동~~ 쌉가능!]
미친… 이럴 때 도움이 되네. 나는 크게 웃으며 세즈를 붙잡았다.
“세즈, 같이 가자.”
“뭐?”
“몰디베리 17번가.”
“내가 왜…!”
시스템이 활짝 웃는 둥근 이모티콘을 띄웠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세즈의 몸은 마치 디지털 세계에서 이동하는 것처럼, 무수한 0과 1을 뿌리며 녹아들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어느새 폭음이 난무하던 진마하의 저택이 아닌, 조용한 몰디베리 17번가 거리에 서 있었다.
❖ ❖ ❖
구름 낀 하늘에 달이 크게 떠 있는데도, 금빛 번개가 쩌저적 내리치며 허공을 갈랐다. 진마하는 제 분신에게 떨어지는 낙뢰를 보다 다시 손을 들어 분신을 생성해 냈다.
“윽….”
힘을 써서인지, 그만 다리가 휘청였다. 진마하는 간신히 자세를 잡고 고개를 들었다.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세계는 그에게 주어진 권한을 하나둘씩 차단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몸 상태는 더욱더 나빠지고 있었다. 이 장갑을 벗으면… 제 몸은 더 이상 형체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순간 드는 두려움에 진마하는 활짝 웃었다. 무척이나 어색한 감정이었으며, 그의 웃음 또한 무척이나 어색했다.
- 쿠르르 쿠웅! 쿵!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전류가 몰아치며 사방에 낙뢰가 꽂히기 시작했다. 백루찬은 지금 힘을 전혀 아끼고 있지 않았다. 진마하는 실드를 펼쳤고, 코앞에 들이닥치는 금빛 안광을 한 검은 인영이 뻗어 내는 손을 막아섰다. 백루찬이 몸을 움직여 덤벼든 것이다.
실드로 손바닥에서 내뿜어지는 전류를 막아 냈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돌려 차는 다리에 옆구리가 걸리고 말았다. 진마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뒤집힌 흙바닥을 깊이 파헤치며 밀려난 진마하는 쿨럭- 기침했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허공에 떠 있던 백루찬이 조소했다.
“멸망시킨다고 난리 치는 놈치곤 너무 약하지 않나. 너 같은 게 신이라고 불린다니.”
그 말에 진마하는 피식 웃었다. 신, 신이라. 이 세계에서 가공할 힘을 보이는 자신을 그렇게 칭하던 추종자들이 있었다. 다크썬을 만들 때 기틀이 되었던 자들. 하지만 지금은, 정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도 힘들 만큼 쇠락해 있었다. 스스로도 느껴졌다. 서브 게이트를 만들 때부터 점점 더 제 몸이 소멸되고 있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을.
진마하는 생각했다. 서브 게이트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나. 하지만, 하지만… 차해준을 빼앗기기 싫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조금만 더 함께하고, 둘이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에 무리를 했다. 물론, 백루찬이 어떻게 수를 썼는지 그새 서브 게이트를 닫고 차해준을 빼 왔지만. 진마하는 허탈하게 실소했다.
백루찬이 손에 전류를 굴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욕심은 그만 부릴 때도 되었어. 어른 아니야? 어린애처럼 떼를 쓴다고 네 게 아닌 것이 네 것이 되진 않아.”
“가질 수는 있지. 결국 내가 뺏었잖아. 백루찬, 넌 내게 두 번이나 빼앗겼어. 세 번째가 없을 거 같아? 그러다가, 영원히….”
- 콰캉!
백루찬의 눈이 번뜩이며, 진마하가 쓰러진 곳으로 전류가 튀어 올랐다. 진마하는 큭큭 웃으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그러게 내 제안을 수락하지 그랬어. 사이좋게 회귀 한 번에 한 번씩. 얼마나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마하는 자신의 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저 또한 그것을 참을 수 없을 테니깐.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은…. 심장을 저리게 했다. 그 사람이 나를 보지 않는 것은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어떻게든 너와 부딪쳤겠지. 내가 원하는 것도, 백루찬, 네가 원하는 것도 하나뿐이니…. 사실 세계가 어떻게 되든 너는 상관없잖아? 그 안에서 살아갈 차해준이 중요한 거지. 그 옆에 네가 있는 것도 말이야.”
백루찬은 경직된 얼굴로 진마하를 쳐다보다가, 무미건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잘 아네. 사실 네가 뭘 멸망시키든 별 관심은 없어.”
“…….”
“그냥, 지금 내 눈앞에 그 사람이 있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너는, 내 삶을 아나?”
“네 삶 따위를? 네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고통받았으며, 어떤 저주를 받고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내가 알아야 할까?”
“…….”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차해준은 아닐 거야.”
“그 형은 널 이해해 주겠지. 그러니까….”
백루찬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머리 위로 전류가 맺히며 금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창이 생성되고 있었다. 제우스의 창. 진마하는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백루찬이 눈을 부릅뜨고 진마하를 내려다보았다. 너 같은 건, 안 된다는 눈으로.
“널 죽일 거야.”
번개처럼, 거대한 창이 내리꽂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