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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93)화 (189/201)

게이트 안을 이곳저곳 돌아봤지만, 나갈 입구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지친 얼굴로 벤치에 걸터앉았다. 백루찬은 급한 상황에서도 느긋함을 보였지만, 내가 제한 시간이 있다고 말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와, 진짜 양아치네. 제한 시간까지 둬? 시스템 뭐야, 형 말할 수 있으면 전해. 이 양아치 새끼야. 똑바로 일 안 하냐고.”

그렇게 말해 봤자 사람 빡치게 이모티콘이나 띄우며 징징댈 것을 알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한 시간: 3:45:21…]

벌써 두 시간이 훅 날아갔다. 세즈는 어떻게 잘 버티고 있을까. 진마하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괜찮은 거 같은데… 혹시 또 모른다. 상황을 정리하면서 백루찬이 나를 찾아온 걸 그냥 두고 있는 걸지도.

그렇게 고민하며 한숨을 내쉬는데, 그때였다.

빰빠라빰빰빰, 빰빠바~ 하는 괴상한 나팔 소리와 함께 불쑥 눈앞에 시스템이 떠올랐다.

[클리어런스! 오래 기다렸어요, 제가 왔어요! 클리어런스와 메인 캐릭터를 구하기 위해!]

“이게 이제야 나오고 난리야! 부를 땐 대답도 없던 자식이!”

내가 팔을 휘저으며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잡을 것처럼 움직이자, 백루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나는 씩씩대며 시스템이 드디어 응답했다는 것을 알렸다. 그렇게 불렀는데 왜 여태껏 대답이 없었냐, 엉?

험악하게 텍스트를 노려보자, 시스템이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진마하가 게이트 안의 세계를 복사해 서브 게이트를 만든 것을 바로 알았지만, 보안이 잔뜩 있어서 뚫고 들어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답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요…! ㅠㅠ진짠데 믿어 줘요, 클리어런스!]

“긴말 말고… 나갈 방법을 말해. 어떻게 하면 여길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네네, 진마하가 생성했지만, 역시 불안정해지는 탓에 빈틈이 있었어요! 제가 그곳을 뚫고 차원 관리 프로그램을 재정비했어요! 칭찬해 주세요!]

칭찬이고 나발이고 일단 나갈 방법을 대라니까. 내가 이마를 잡으며 한숨을 내쉬자 시스템이 둥글고 노란 이모티콘을 띄우고 빙글빙글 돌렸다.

[재정비해서, 나갈 수 있어요!]

시스템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긴급 퀘스트!

게이트 안의 서브 게이트를 탈출하라!

오류가 만들어 낸 차원의 구멍으로 복사된 세계에 넘어왔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시스템이 특별히 생성해 낸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합니다!

난이도: A

보상: 서브 게이트 탈출 입구 생성]

퀘스트 창이 뜨는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백루찬이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이 서브 게이트는 진마하가 입구를 입력해 놓지 않았어요! 오직 자신이 들어와 다시 원래 게이트 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서브 게이트를 열어….]

“복잡한 설명은 됐고, 그래서.”

[ㅠㅠㅠ열심히 했는데에…. 아무튼 그래서 제가 보스 몹을 소환해서 잡을 시 입구가 열리도록 시스템을 조정했답니다! 그러니 보스 몹을 잡고, 다시 원래의 게이트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쿠어어어!

시스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성이 귀를 강타했다. 우리는 쿵쿵 걸음을 옮기는 소리를 들으며 싸울 준비를 했다. 보스 몹이니 거대한 놈을 데리고 온 것 같은데, A급이니 시간이 많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며 한야를 빼어 들었다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백루찬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센스 죽인다.”

“…….”

눈앞에, 지평선까지 펼쳐진 들판을 배경으로 거대한 곰돌이 인형이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핑크 곰돌이에 목에는 리본을 맸다. 숨 막히는 둥근 몸체에 나는 질린 얼굴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 쿠어어.

“하하. 형, 저놈 잡아서 형한테 선물로 줄까?”

“필요 없어, 이놈아…….”

❖ ❖ ❖

- 우르릉.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하나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진마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임에도 달빛에 의해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보였다. 백루찬의 능력이었다. 이렇게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고, 천둥을 부르는 S급 능력자. 그의 능력은 게이트 안에서도 유효했다.

진마하는 피식 웃었다. 결국 찾아올 걸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자신이 만든 세계인 만큼 여러 차례 비틀어 놓아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아쉽네.”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진마하는 해준을 생각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손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차해준. 끌어안고 자신이 해 주겠다던 차해준.

창백한 그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 쿠콰아앙!

- 크아아!

사방에 괴성과 폭발음이 난무했다. 고저택은 어느새 절반이 허물어져 뼈대를 흉측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계단참 위에서 진마하는 밖을 응시했다.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헌터들이 보였다. 화기가 튀고, 포를 쏘는 소리가 콰앙- 쾅, 울렸다. 귀가 아프다. 진마하는 설핏 인상을 찡그리며 백루찬을 찾았다.

그리고 보였다. 낯익은, 색이 바랜 듯한 백금발이. 뒤에서 흰 코트를 입은 무심한 표정의 남자가. 진마하는 희게 웃으며 몸을 허공에 띄웠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듯 한 걸음 한 걸음 전쟁터처럼 변한 정원 위를 걸었다. 멀리서 백루찬이 입가를 씰룩이는 게 보였다. 그는 흰 코트를 펄럭이며, 주변의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있는 헌터들에게 무어라 명령을 내렸다. 이내 헌터들이 두 갈래로 모여들었다. 진마하는 그 모습이 벌레 같다고 생각했다. 그저 꾹 누르면 짓밟혀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 벌레.

저것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니었다. 이 게이트를 만들었을 때, 간섭의 영향권이 떨어져 시스템이 침범해 왔다.

그리고 만들어진 게 저 NPC들이었다. 진짜가 아닌 가짜.

그래서 괜히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더럽히기 싫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피 묻은 손을 내밀 수야 없으니까.

허공에서 걸어 내려오는 진마하를 보며 백루찬의 흉내를 내던 세즈는 질린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진마하는 손짓 한번으로 시끄럽게 구는 몬스터들을 치워 버렸다. 순식간에 사방을 어지럽히던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하늘에 뚫린 구멍들이 닫혔다. 진마하가 나지막이 웃었다.

“열심히도 찾아왔어. 누가 그리 보고 싶었던 거야?”

알면서도 묻는 거다. 진마하는 백루찬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이 감정은 차해준과 각인하고부터 생긴 감정이었다. 거슬림, 짜증, 미움.

아, 나는 지금 백루찬을 질투하고 있어.

진마하는 속으로 인정했다. 지금 자신은 질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매달려도 자신을 불쌍하게만 보는 차해준이, 자신과 다르게 보는 남자라서.

백루찬을 위해 차해준은 목숨을 걸었고 결국 구해 냈다. 그 트라우마까지 깨부쉈다.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건 사랑이란 걸. 자신이 차해준에게 느끼는 것처럼… 차해준은.

진마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심장이 욱신대듯 아팠기 때문에, 차라리 생각을 멈추는 게 좋은 방법이었다.

진마하를 올려다보던 백루찬이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이죽거렸다.

“알 바냐, 빌어먹을 새끼야.”

말투가 사나웠다. 진마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백루찬과 달랐다. 그 묘하게 신경질적이면서도 웃는 얼굴로 쏘아붙이는 녀석과는 다르다. 진마하는 미간을 좁혔다.

쯧, 혀를 찬 눈앞의 사내가 슬슬 뒷걸음질 치는 게 보였다. 그 뒤로 헌터들이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온 무리들이 다급하게 도망쳤다. 백루찬은 이를 악물며 노려봤다. 진마하는 피식 웃었다.

“너, 진짜 백루찬이 아니었구나.”

“X발, 뭔 개소리야. 나 같은 얼굴이 또- 큽!”

진마하가 허공을 움켜잡자, 세즈가 컥컥대며 목을 움켜잡았다. 진마하는 가벼운 손짓으로 세즈를 들어 올렸다. 가까이 끌어 올리자, 그제야 진마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하하, 하…!”

“끄윽…큭!”

“백루찬…!”

확실히 아니다. 백루찬이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설마, 어디에? 설마, 차해준에게 간 것인가. 진마하는 몸을 돌려 저택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순간 눈앞에 짓쳐 든 다리 때문에 진마하는 잡고 있던 세즈를 놓치고 말았다. 이윽고 그는 한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진마하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흙 묻은 옷을 털어 냈다. 고개를 드니 제가 있던 자리에 백금발을 흩날리는 남자가 보였다. 진짜 백루찬이었다. 살벌한 눈빛을 뿜어내는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웃었다.

“다시 보니 반갑다.”

백루찬은 구해 낸 세즈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세즈가 짜증스럽게 코트를 벗어 던지자 그가 코트를 받아 들며 진마하를 쳐다봤다.

“우리 초면이 아니지? 그런데… 얼굴이 기억이 안 나네.”

“…….”

“인상이 형편없어서 그런가.”

백루찬의 등 뒤로, 하늘이 쿠르릉 울리며 번개가 번쩍 내리쳤다. 진마하는 가볍게 옷깃을 재정리하며 웃었다.

“기억 안 나면…. 나게 해 줘야지.”

잊히는 진마하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진마하는 발을 굴렀다. 몸이 순식간에 떠오르며, 두 사람은 공중에서 부딪쳤다. 낙뢰가 사방을 찢을 듯이 떨어져 내렸다. 진마하를 닮은 분신들이 떠오르며 백루찬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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