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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90)화 (186/201)

폭발음이 들리고 건물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당황해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진마하가 다시 턱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내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온 그는 미묘하게 웃으며 속닥거렸다. 

“성안에 갇힌 왕자님을 찾으러 왔을까?”

뭔 미친 소리야! 폭발음이 들렸는데! 질린 얼굴로 녀석을 쳐다봤지만 진마하는 아무렇지 않게 내 뺨에 제 볼을 비볐다. 이 자식 진짜 돌아버린 건가…!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놈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옥죄듯 꽉 끌어안은 녀석 탓에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우르릉!

다시 밖의 하늘이 울린 건지, 정말 건물이 무너지려는 건지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지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도 진마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진득하게 웃었다.

“이러니까, 멸망하는 세계에서 우리 둘만 사랑하는 것 같아.”

“미친 소리 그만 안 하냐…!”

강하게 어깨를 밀어내자 그제야 진마하는 아쉽다는 얼굴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녀석을 지나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창밖엔 불꽃이 어두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마치 폭죽처럼 터지는 불꽃들은 일대에 떨어졌고 폭발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무슨 포탄 떨구는 것 같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뭐지? 무슨 습격인 거지? 게이트 내부이니 진마하의 적이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 하늘에서 우르릉 하며 천둥이 몰아쳤다. 번개가 번쩍이고 먹구름이 쌓인게 어둠속에서도 달빛에 의해 보였다. 아 이건, 백루찬이다!

창틀을 쥐고 앞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내밀자 뒤에서 진마하가 나를 붙잡아 당겼다. 괜히 실랑이하기 싫어서, 잠시 순순히 물러나는 척 녀석을 밀치고 방을 뛰어나갔다.

백루찬이 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다. 맨발로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 순간 허리를 감싸며 잡아당기는 팔에 나는 훅 뒤로 딸려가 복도의 벽면에 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진마하가 벽면으로 밀친 것이다.

진마하는 순간 고통에 인상을 찡그린 나를 음울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 이렇게 기뻐해?”

“윽, 놔…!”

“나랑 있을 땐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잖아.”

“진마하…!”

하씨,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완력이 통하지 않는다. 이 목걸이 진즉에 떼어 버렸어야 했는데! 물론 시도는 해 봤지만 도무지 끊어낼 수가 없어 놔둔 것이었다. 진마하는 잠긴 눈으로 속삭였다.

“해준아, 이러면 더 놓아주고 싶지 않아.”

“미친…놈아.”

“미쳤다는 건 진작 알았잖아.”

다시 또 큰 폭음이 울려댔다. 지진 난 듯 건물이 흔들리는데 진마하는 나를 껴안고 아무렇지 않게 숨을 몰아쉬었다. 진짜 이 자식…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숨을 고르다가, 녀석에게 말했다.

“…놓아줘.”

“…내가 왜?”

“내가 가서 말려 볼게. 백루찬이 온 거야, 나랑 같이…!”

“말려? 거짓말하지 마.”

“윽…!”

손목을 꽉 움켜쥔 진마하가 나를 끌고 다시 아까 있던 방으로 향했다. 질질 끌려가면서 나는 소리쳤다.

“그냥 죽자는 거냐고!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여기까지 하자는 얘기 아냐.”

“난 더 갈 수 있는데 왜 네가 멈춰. 해준아.”

“미친놈아… 이제 그만…!”

“게이트를 연 순간부터, 아니, 너를 만난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었어.”

이 세계의 끝을 보는 거. 진마하가 웃었다. 그리곤 다시 거칠게 나를 끌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팔을 빼내려 악다구니를 썼지만 좀처럼 힘에 부쳤다. 젠장, 왜 이렇게 몸에 아무런 힘이 안 들어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마하, 그만해.”

“무엇을 그만해.”

“이런다고… 바뀌는 건 없는 거 알잖아. 너도. 이 세계는-”

“알아. 해준아.”

웬 방 앞에서 멈춰선 그는 나를 붙잡고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순간 진마하가 내 목덜미를 감싸며 끌어안았다. 귓가에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다 거짓이란 거.”

“…야.”

“하지만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어. 내 눈앞에 너도.”

“진마하.”

“욕심이 생겨. 자꾸만 나는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백루찬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도, 네 뜻대로… 되지 않아.”

“나도 멈추지 않아.”

“…너 정말.”

“하하, 해준아.”

“…….”

“이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서 여기까지 왔어. 내 목표가 뭔지 알잖아.”

진마하의 목표. 나는 이를 아득 깨물었다. 세계의 멸망이 녀석의 목표다.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심상 세계에서 진마하가 보여준 모습들은… 그 반대를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에서라도 기억되는 존재로 살아남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는 그런 걸 내게 보여주고서, 이렇게 말하면 내가 네 말을 믿겠냐고.

시스템은 오류인 진마하를 죽이라고, 그 영혼석을 찾아 끝을 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의 기둥이라며 살려야 한다고 내게 종용하고 있었다.

거기서 갈팡질팡했다. 진마하가 불쌍해서. 이 녀석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게이트를 닫고, 이 녀석을 살리기로. 그러니 백루찬과 싸워선 안 된다. 둘 중 하나는 분명 죽어버릴 싸움이 될 것이다. 거기에 내가 끼어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대로는 안 된다.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세계는 멸망이었다.

“내가 선택할 테니까, 제발 하지 마.”

애원하듯 나는 녀석에게 매달렸다. 진마하의 안색이 조금 놀란 듯이 변했다. 나는 나를 끌어안은 녀석의 허리께를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자기 파괴하듯 그렇게 널 스스로 죽이려고 하지 마.”

잠시 침묵하던 진마하가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곤 고개를 숙인 내 턱을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는 정말… 달콤한 말만 내뱉는구나.”

“…진마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진마하가 잔뜩 얼굴을 찡그렸다. 우는 듯, 웃는 듯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진마하는 고통스럽다는 듯 숨을 깊게 내뱉더니, 내 뺨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내가 널 더 사랑하게 되잖아.”

“…….”

“해준아. 그런데, 그래서… 안 돼.”

진마하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코끝이 살짝 부딪쳤다 떨어졌다가 이내 입술을 겹쳐왔다. 미적지근하고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입을 꾹 다물었지만, 아랫입술을 문 진마하가 안으로 파고들어 입 안을 헤집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폭음 속에서 진마하는 나에게 키스했다. 마치 음미하듯 느릿하게 헤집고 입술을 뗀 진마하가 낮게 속삭였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너를 포기할 수 없고, 거짓까지도 품고 싶으니까. 차라리 현실보단 이 세계가 영원했으면, 네가 내 품에 있었으면 하니까.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걸 알아서.”

“…….”

“해준아, 그래서 안 돼. 너가 이럴수록 난 멈출 수가 없어.”

진마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미소에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등 뒤로 느껴지는 마력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 안에는 둥근 마력 파장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저건… 게이트?

게이트 안에 또 게이트가 열릴 수가 있는 건가? 그때 진마하가 나를 방 안에 열린 게이트로 던지듯 밀어 넣었다. 순간 몸이 붕 떴다.

“진마하…!”

“용사를 맞이하는 건 마왕의 일이잖아. 그러니까 해준아, 조금만 기다려.”

진마하는 미미하게 웃음 지었다. 나는 그대로 열린 마력 파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속에 떨어진 몸은 어딘지 모르는 바닥을 뒹굴었다. 황급히 눈을 뜨며 위험에 대비하듯 자세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똑같은 방이었다. 진마하와 있었던.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밖을 확인했다. 폭음이 들리기 전의… 진마하와 있던 고저택과 멀쩡한 정원의 모습이 보였다. 전과 다른 건 아까는 밤이었지만, 지금의 하늘은 쨍하니 해가 내리쬐는 한낮이라는 거였다.

“…이 미친 새끼.”

입술을 꾹 깨물었다. 평온하게 햇빛이 부서지는 정원은 폭발로 엉망이 되었던 그곳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같은 공간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나는 창틀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 ❖ ❖

백루찬은 눈을 떴다. 금빛 안광이 번뜩이며 사방에 낙뢰가 떨어졌다. 푸른 들판은 타올랐고, 아늑하게 보이던 정원은 부서져 내렸다. 고저택 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감흥 없는 눈으로 그것을 보던 백루찬은 제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세즈가 어떤 무리를 이끌고 와 있었다. 그는 백루찬과 똑같은 얼굴로 삐딱하게 인상을 구겼다.

“정말 여기에 그 자식이 있다는 건가?”

“여기 있어. 다크썬의 보스가.”

“…그 남자를 찾으러 온 건데, 이렇게 엉망으로 불질러 버려도 되는 건가? 걱정이 안 돼?”

백루찬은 피식 웃었다. 지금 자신보다 차해준을 걱정하는 건 세즈일 것이다. 물론 백루찬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진마하가 그를 그냥 위험하게 두지 않을 거란 것과 차해준의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잡듯 뒤집지 않는다면, 진마하는 차해준을 데리고 또 멀리 숨어버릴지도 몰랐다.

“이런 행운이 또 올 리 없으니 확실히 해야지.”

저가 중얼거리자 세즈가 눈썹을 으쓱였다. 자신과 꼭 닮은 채로 차해준에게 도움을 받아 도와주겠다고 한 남자. 이런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 리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백루찬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세즈의 등 뒤로 NPC들이 저마다 무기를 쥐고 대기 타고 있었다. 그들은 세즈의 패거리였다. 진마하가 이 거짓된 게이트 안에 제 조직을 일궈 놓았듯, 백루찬을 본떠 만든 세즈 또한 이 세계에 제 조직을 꾸려 놓았다. 그런데도 그놈들 손에 잡혀 있었던 게 이해가 안 되지만. 백루찬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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