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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86)화 (200/201)

경매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백루찬의 신경은 오롯이 남자를 향해 있었다. 손끝 하나로 수행원을 부리고 얄팍한 입술로 미묘한 미소를 짓는 남자에게. 

사내는 그 어떤 값비싼 물건이 나와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건 백루찬도 마찬가지였다. 이 속에서 그가 동요할 상품은 단 하나뿐이다.

그리고 어느새 경매의 마지막 순서가 돼서야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최상의 상품을 보여드립니다. 각성자, 그러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만큼 주인까지도 할퀼지 모르는 강한 남자입니다.”

경매장의 사회자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가 손을 뻗자 단상을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물결무늬를 그리며 양옆으로 접혔다. 그리고 단상 위에 서 있는 건….

“…씹.”

백루찬은 얼굴을 굳혔다. 순간 꽉 쥔 주먹에서 전류가 튀어 올랐지만 모두의 시선이 조명을 받고 있는 단상의 ‘상품’에게 고정되어 있어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사회자가 손을 들어 소개했다.

“최상위 각성자! S급을 상회할지도 모르는 상품! 당신의 위한 각성자로 만드십시오!”

헐벗은 몸에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는 차해준이 단상 위에 있었다. 손목엔 구속구를 채운 상태로. 연결된 쇠사슬이 바닥을 끌며 소리를 냈다. 맨발로 선 차해준의 옆에서 그를 끌고 온 남자가 차해준의 안대를 거칠게 벗겨냈다. 머리카락이 흩어지면서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대기 시작했다.

백루찬은 이를 앙다물었다. 이럴 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모두의 관심이 차해준에게 쏠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게 몹시 짜증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꼭 저렇게 잡혀 있는 짐승 같은 모습을,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보여줘야 했나. 분노로 그의 뺨이 씰룩였다.

차해준은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사방을 훑어봤다. 각성자의 마력이 완전히 제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냥꾼의 눈빛과 위압감을 풍겼다. 그는 위험해 보였고, 그래서 더 소유욕을 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경매가는… 가장 높이 부른 분께 낙찰됩니다!”

사회자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관중들이 하나둘 팻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네 10억! 아, 20억 나왔습니다. 25억!”

판돈은 점점 올라갔다. 고위급 각성자라고 하니 너도나도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백루찬은 입술을 꾹 짓씹었다. 언제, 언제 뒤엎지? 싹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시스템 아닌가. 그때 단상 위에 있던 차해준이 눈을 굴려 누군가를 찾는 듯하더니 이내 백루찬을 발견하곤 얼굴이 환해졌다.

백루찬은 차해준에게 신경이 쏠려서 그와 시선을 맞추다가, 잊고 있었던 존재를 떠올렸다. 진마하!

그때 미성의 목소리가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울렸다.

“300.”

“3… 3백…억?”

사회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고,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백루찬도 순간 당황해 그를 쳐다봤다. 진마하가 팻말을 들고 웃고 있었다. 차해준도 그런 그를 보았다.

그 순간, 백루찬이 벌떡 일어났다. 새파란 전류가 천장을 향해 쏘아졌다.

❖ ❖ ❖

백루찬과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움직이자 옆에서 붙잡고 있던 조직원 놈이 속닥거렸다.

“꼼작도 하지 마라.”

놈은 쇠사슬을 당기며 경고했다. 짜식, 예민하게 굴긴. 나는 피식 웃고는 백루찬을 쳐다봤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 상황이 좀 거지 같긴 한데 내가 자초한 거라 뭐라 할 말이 없다. 백루찬을 보며 씨익 웃었다.

“300.”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나는 황급히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놈과 눈이 마주쳤다.

갈색 머리를 한 채 희미하게 웃고 있는 진마하와.

나는 순간 놈에게 튀어 나가려던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저놈이 지금 나를 기억하는지도 나는 모른다. 확인해야 했다. 시스템은 영혼석을 찾으라 말했고, 진마하와 마주치기 위해 경매장으로 들어왔다. 좋아, 일단 1차 계획은 성공.

그럼 이제….

나는 백루찬을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스치자마자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 전류가 비산하며 사방으로 퍼져갔다.

“저, 저기…!”

옆에서 나를 지키던 조직원이 당황하며 입을 떡 벌렸다. 나는 놈의 가슴팍을 팔꿈치로 후려치며 앞으로 뛰어올랐다. 길게 연결된 쇠사슬이 차라랑 풀렸다. 나는 단상을 뛰어 내리며 그것을 잡아당겼다.

“으아악!”

반대편에서 잡고 있던 조직원이 맥없이 끌려 넘어졌다. 놈들은 나를 놓쳤고, 나는 백루찬을 향해 뛰었다.

사방에 번개가 뿌려졌다. 경매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곳곳에서 비처럼 전류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얌마, 너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일 일 있냐!

속으로 한탄하며 나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금빛 안광을 빛내는 백루찬을 지나쳤다. 손목의 구속구는 어느새 부서진 상태였다.

테이블 사이로 숨어드는 사람들 중 아직 낙뢰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목덜미를 잡아당겨 전류를 피하게 만들어 주곤, 나는 테이블 위로 뛰어올랐다.

“루찬아!”

백루찬이 내 부름에 움직였다. 녀석은 진마하를 손으로 겨냥했다. 곧이어 전류가 파지직 튀며 진마하를 향해 쏘아졌다.

몸을 띄운 내가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야를 움켜쥐었다. 진마하의 수행원들이 그의 앞을 가리며 방비 태세를 갖췄다. 전류가 사방으로 터지며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 사이에서 나는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푸른 검기가 날아가며 수행원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때까지도 진마하는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였다.

나는 놈이 있는 테이블 위로 착지했다. 고개를 들며 진마하에게 검을 겨눴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보고 싶었다. 이 자식아.”

진마하의 얼굴에 짙은 웃음이 맺혔다. 날카롭게 치켜든 칼날이 녀석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

진마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나를 힐끔 보곤 경계하며 다가서는 조직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있는 백루찬을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녀석을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하자, 진마하.”

진마하는 여유롭고 느릿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방에서 금빛 전류가 튀어 오르는데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유난히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 모습에 내 눈썹이 살짝 일그러지는 순간, 진마하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실수한 거야.”

“뭐?”

진마하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녀석의 눈이 순간 퍼렇게 빛났다.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여기 내 세상이거든. 해준아.”

-쿠궁!

순간, 세상이 진동하는 것처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아니, 아니다. 세상이 울리는 게 아니었다.

“큭…!”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순간 테이블이 파각!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나는 바닥에 꾹 눌린 벌레처럼 엎어지고 말았다.

여전히 의자에 고고하게 앉아 있던 진마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장갑을 낀 손이 내 턱을 움켜잡았다. 파랗게 빛나는 한쪽 눈이 무시무시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미친… 미친…!

숨이 턱 막혀왔다. 목구멍을 쥐고 숨을 틀어막는 기분이었다. 온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바들바들 떠는 나를 보며 진마하가 말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란 뜻이야.”

사방으로 뻗치던 전류들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건 이내 아귀 벌리듯 벌어진 둥그런 마력 파장들 속으로 삼켜졌다. 나는 녀석을 보았다. 중력이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세계가 진마하의 의지에 반응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 세계는 녀석의 뜻대로 움직이는 곳이다. 하, 대체…여기서 어떻게…!

“으윽…….”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나는 숨통을 조이는 압력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 ❖ ❖

깜박깜박.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나 앞이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둘러업힌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다음은 검은색 차량에 거칠게 태워졌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시스템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붕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게이트 붕괴까지 앞으로 24:00;00….]

제한 시간이 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끄윽. 몸이 온통 말을 안 듣고 있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숨쉬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호흡하면서 나는 눈을 깜박였다. 낯선 차 안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꿈틀대는데, 그때 옆으로 누군가가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자,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나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힘이 쭉 빠졌다. 왜 이런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손목에 또다시 구속구가 채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모습으로 또 보내. 자기.”

진마하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시야에 초점이 맞춰졌다. 진마하의 얼굴부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보며 웃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나도 보고 싶었어. 해준아.”

“크…읍….”

진마하가 내게 손을 뻗었다. 피하려고, 쳐내려고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젠장, 이 구속구 때문인가? 자꾸 밑으로 꺼지는 느낌 때문에 토할 거 같았다. 진마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은 천천히 뺨을 쓸어내리면서 턱을 움켜잡았다.

진마하의 몸이 내 쪽으로 한껏 기울며 다가왔다. 나는 녀석을 힘껏 노려봤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나를 찾아오다니, 내가 널….”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면서.

그 미묘하게 퍼지는 웃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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