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벼드는 조직원 놈들 중엔 각성자가 있었다. 몸을 날리자 눈앞에서 실드가 생성되며 반투명한 막이 생겼다. 그것을 깨부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밟고 튀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며 몸을 띄웠다.
“마력 구속구를 어떻게 푼 거지!”
“설마 세즈 저놈이…!”
놈들은 내가 풀려난 게 세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즈가 그동안 워낙 문제를 많이 일으켰었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스킬을 전개했다. 몸 상태는 거지 같았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마력이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림자 밟기(Lv.99)]
휘몰아쳤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사방을 점유하며 실드 너머로 튀어나온 놈들부터 처리했다. 놈들은 내 뒤쪽에 모여 있는 ‘상품’이었던 사람들을 잡으려 험악하게 뛰어 들어왔지만, 내 검에 하나씩 몸이 베이며 쓰러졌다. …죄책감 안 가져도 되겠지. 여긴 게이트이니까.
“크아악!”
“아악!”
우수수 쓰러지는 놈들을 보자 실드를 친 각성자가 당황했다. 그 뒤에 있던 놈들이 주춤 물러나는 게 보였다. 나는 순식간에 다섯을 베고 그대로 실드에 어깨를 부딪쳤다.
- 쾅!
큰 소리가 나며 실드가 와장창 깨져 나갔다. 각성자인 조직원이 뒤로 튕겨 나가며 모여든 조직원들이 우수수 무너졌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검을 흔들어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뒤를 돌아보자, 세즈가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고 웃었다.
“이렇게면 괜찮지?”
“…너 누구야.”
“널 구하러 온 사람이라니까.”
사실 정보를 빼내려고 잠입한 스파이지만… 뭐 그게 그거 아니겠니. 우왕좌왕하면서 일어나는 조직원 놈들에게 가볍게 한야를 휘둘렀다. 검기가 쉐에엑- 소리를 내며 그들 머리 위를 지나가 문가에 꽂혔다.
- 콰카강!
폭발음과 함께 입구가 반파되며 먼지를 일으켰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놈들에게 검을 겨누곤 고개를 옆으로 까닥했다. 비키란 뜻이었다.
“이… 이 새끼가…!”
“죽고 싶으면 그대로 있든가.”
그대로 한 발 다가가자 놈들이 뒷걸음질 쳤다. 각성자는 실드 생성이 능력이었던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둥근 구체를 다시 만들어 냈다. 다만 그건… 본인만 감싸는 작은 원이었다. 아, 치사한 새끼. 동료 따윈 죽어도 상관없다 이거냐.
나는 내 뒤에 모여든 사람들을 데리고, 조직원들과 대치하며 무너진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힐끔 돌아보니 세즈는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녀석을 불렀다.
“세즈.”
“…….”
“이리 와. 괜찮으니까.”
아직도 의심 어린 눈으로 보던 세즈가 그제야 걸음을 옮겨 내 뒤에 붙었다. 그래, 저 얼굴을 두고 갈 수는 없지.
나는 그들과 함께 갇혀 있던 곳을 나섰다. 입구 밖으로 가자 긴 복도가 나타났다. 모퉁이로 계속해서 조직원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뒷걸음질 쳤다. 머리 굴리고 있는 게 보이는데, 싹 다 그냥 해치우고 가는 게 나을까. 일단은 내 뒤에 선 사람들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엔 사태 파악이 된 놈들이었는지 조직원들이 길을 터 줬다.
등 뒤로 세즈가 다가와 말했다.
“너, 나가는 길은 알아?”
“엘리베이터로 들어왔는데. 거기로 가면 되지 않을까?”
“거긴 안 돼. 다크썬 놈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경매장 입구랑 가까워. 반대로 가야 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내 질문에 세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의 몸에 난 흉터와 상처들을 보고 알아챘다. 몸으로 뛰어서 알아낸 거구나. 순식간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즈가 안내하는 곳은 모퉁이에서 세 갈래로 난 길목 중 오른쪽에 있는 통로였다. 모퉁이를 돌 때 어쩔 수 없이 빈틈이 생긴다. 내가 맨 뒤에 있어도 말이다. 나는 세즈에게 속삭였다.
“지금부터 일곱 걸음이야. 그때부터 모두 데리고 뛰어.”
“…잡히면 그냥 끝나지 않을 거야. 이번엔 진짜 죽을지도 몰라. 저들에게 난 상품이었으니 살아남았지만 지금 너는….”
“괜찮아.”
그땐 싹 쓸어버리면 되거든. 나는 빙긋 웃으며 세즈를 안심시켰다.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세즈는… 정말 백루찬의 얼굴로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 마음 더 약해지게 만드네. 믿으라는 듯 그의 팔뚝을 툭툭 치고.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일곱 발. 모퉁이에 다다르자 조직원들이 눈을 번뜩이는 게 느껴졌다. 놈들도 지금을 노린 거다. 나는 소리치며 앞으로 튕겨 나가듯 나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놈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뛰어!”
“으아악!”
“살려 줘!”
갇혀 있던 사람들을 세즈가 떠밀며 그들이 일제히 모퉁이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나는 길목을 가로막고 조직원들을 상대했다. 다가오는 놈마다 한 놈씩 베어냈다. 검을 운신하기엔 공간이 좁아서 휘두르기가 어려워서, 나에게 달려드는 놈을 걷어차고, 그 위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곤 다른 놈의 멱살을 움켜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놈들을 막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앞서서 골목을 뛰어나가던 사람들 중 한 명이 퉁- 튕겨 나가 쓰러졌다. 그는 꿀럭꿀럭 피를 토해냈다.
“크억!”
그 앞을 막고 선 건, 2미터 장신의 남자였다. 그는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방금 전 사람을 때린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선글라스 남자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사람들 앞을 막아섰다.
“이런, 이런, 상품이 훼손되면 안 되는데.”
장난스럽게 중얼거린 남자가 주춤대며 멈춰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훅 손을 뻗어 잡은 건 개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아악!”
하 씨, 젠장. 나는 덤비는 놈들을 발로 차고 등을 돌려 달렸다. 복도 끝에서 잡힌 여자와 함께 세즈가 그를 향해 덤벼드는 게 보였다. 남자가 휘두르는 손아귀에서 여자를 빼내 뒤로 당기면서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나 그건 너무 쉽게 잡혔다. 나는 선글라스 낀 남자의 폼에 파고들어 검을 찔러 넣었으나 놈은 세즈를 붙잡고 훌쩍 뒤로 뛰어 내 공격을 피했다. 세즈의 목을 움켜쥔 남자가 빙긋 웃었다.
“매번 도망치더니 또 잡혔구나. 내가 저번에 말했지? 한 번만 더 이런 일을 벌이면 그땐 가차 없이 네놈의 목을 부러트리겠다고.”
선글라스 낀 남자가 히죽히죽 웃으며 떠든다. 세즈가 컥컥대며 버둥거리면서, 힘겹게 내게 눈짓했다. 빨리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키라는 거다.
하, 결국 인질로 잡혀서 진짜…. 일단 한야를 내리고 이마를 쓸었다. 어떻게 할까…. 남자는 멈춰 선 나를 보고 비죽 웃었다.
“각성자라고 기고만장하더니, 이런 일까지 벌이다니. 볼기짝이 터지도록 맞아 봐야 정신 차리겠어.”
“지랄하지 말고.”
나는 한 발을 뒤로 뺐다. 세즈는 숨 막히는 고통에 버둥대며 제목을 조이고 있는 남자의 손등을 긁어 댔다. 그냥 쉽게 다 뒤집어엎고…. 근데 그러면 루찬이에게 할 말이 없어지는데. 고민을 반복하며 인상을 찡그리는데 남자가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네가 강한 건 알겠다. 조건을 하나 내걸까?”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남자는 히죽 웃으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각성자에, 너 정도 되는 몸이면 인기가 많아. 이번 경매에 잡음이 생겨 우리도 네게 유감이 많지만… 네 녀석의 상품 가치를 인정해 말하는 거야.”
“똑바로 말해.”
“네가 강한 것도 알겠다. 우리는 너만 가지면 이놈들 모두를 상회하는 금액을 만질 수 있을 거란 말이야. 네 녀석 하나 희생해서 모두를 풀어 주는 건 어때.”
“…….”
나는 인상을 찡그렸고, 세즈는 붉게 피가 몰린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지 말라는 얼굴이다. 나는 남자와 세즈, 그리고 내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수를 확인했다. 총 여섯 명이다. 두 명이 죽었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
나는 씩 웃었다. 그리고 한야를 놈에게 겨눴다.
“일단 그 손부터 놓지?”
남자가 세즈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았다. 세즈가 컥컥대며 바닥에 엎어졌다. 주춤대던 사람들이 세즈를 부축해 일으켰다. 선글라스 남자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세즈를 불렀다.
“세즈, 길을 안다고 했으니 너라도 이 사람들 데리고 무사히 나가.”
“…큭, 너… 대체…!”
“빨리 가세요, 다들. 세즈 부축 좀 제대로 하고.”
백루찬이랑 똑같이 생겨 가지고,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을 뿐이다. 어차피 내 목적은 이 안에 있었다. 세즈를 부축한 사람들이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선글라스 남자를 지나쳐 갔다.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끝까지 보면서 남자와 대치했다. 남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배짱도 마음에 들어.”
변태같이 입맛을 다시는 놈을 보며, 나는 한야를 손에서 놨다. 검이 달카닥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차피 부르면 언제든 다시 잡을 수 있는 것이 한야다. 일부러 포기한 듯 보이도록 검을 놓고, 나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남자가 말했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다면, 넌 여기서 평생 나갈 수 없다. 내 밑에서 울기나 하는 게 네 일이 될 거야.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게 어둠이거든.”
나는 코웃음 쳤다. 어둠은 내 속성이다. 나랑 가장 친숙한 것.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든가.”
게이트 따위에 내가 잡혀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