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작은 공간 안에 손님은 없고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다리가 높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에 코를 막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드러낸 팔뚝엔 문신이 가득하고 뺨엔 칼로 긁힌 듯한 흉터가 보였다. 짧은 머리를 한 남자는 말랐지만 그래서인지 더 험상궂게 보였다.
백루찬이 열린 문 사이로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뒤를 따랐다. 저자가 나라시라는 자인가.
그는 들어온 우리를 보고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다가 이내 사납게 웃었다.
“폐업했소만?”
“식사나 하자고 온 게 아니라.”
“아아.”
백루찬의 무뚝뚝한 대답에 나라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툭툭 털어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루찬이 입을 열었다.
“물건을 사고 싶은데.”
“이렇게 대놓고 들어오는 손님은 별로 없는데.”
“쓸데없는 말이나 떠들 건가?”
“원한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래, 경매장에 가고 싶은 거요?”
“물건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라시는 킬킬 웃었다.
“경매장에 입장할 방법은 팔 ‘상품’을 내놓고 들어가는 것뿐이오. 나는 그것의 가치를 확인하고 당신이 입장이 가능할지 보겠소. 무엇을 내놓을 것이오?”
백루찬과 내 시선이 스쳤다. 녀석의 눈썹이 순간 일그러졌지만, 그는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 루찬아. 잘하고 있다! 짜증 나도 짜증 내지 마!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백루찬이 입을 떼길 기다렸다.
“이… 남자를 걸지.”
“오.”
나라시가 킬킬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놈은 눈 밑이 시꺼멓게 죽은 얼굴로 순간 거칠게 내 턱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이리저리 돌리며 훑어봤다. 순간 욱할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남자는 원래 잘 안 받는데. 근데… 이 정도 되는 얼굴이면 상등품이라 칠 수 있겠는걸.”
백루찬이 놈의 손을 탁 쳐 냈다. 나라시는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하는 듯한 얼굴로 백루찬을 쳐다봤다 실실 웃었다.
“꽤 아끼는 놈이었나 보오? 손 타는 것도 싫어하면 어떻게 물건으로 내놔. 정말 팔 거요?”
백루찬이 뺨을 실룩이며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흔들리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나중을 위해 참아라. 참자, 루찬아.
내 속마음이 통했는지, 백루찬은 여전히 짜증이 묻어나는 어투였지만 수긍하듯 말했다.
“그래.”
나라시가 눈을 빛냈다. 백루찬의 행동에서 심상치 않은 관계였음을 느낀 거다. 그는 음흉하게 웃었다.
“옆에 끼고 살았던 놈인가 보지? 왜, 너무 오래 써서 질렸나? 얼굴은 질리지가 않을 것 같은데….”
백루찬의 눈에서 금빛 안광이 순간 번쩍였다. 나는 움찔했지만, 말리기도 전에 백루찬이 나라시의 목을 콱 움켜잡았다.
“수작 부리지 마.”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위압감이 잔뜩 어려 있었다. S급의 살기를 받고 나라시는 안색을 굳히더니, 이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각성자셨군. 혹시 이 남자도 각성자요? 그렇다면 값을 더 치를 수 있어.”
“안내해라.”
“아, 알겠소.”
나라시는 백루찬의 기세에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녀석이 움켜쥐었던 손을 놓았다. 쿨럭이며 잔기침을 한 나라시가 우리 둘을 힐끔 쳐다보곤 입구 반대편으로 가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지잉 하는 기계음이 들리며 문이 열리고, 거기엔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 이런 구조였군.
다만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두 개였다. 나라시가 백루찬을 향해 한쪽으로 손짓했다.
“이쪽으로 가면 되오.”
나라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샅샅이 훑어보는 시선이 진득해서 기분이 좀 더러웠다. 이 자식… 눈깔 때려 주고 싶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숨긴 채, 백루찬이 움직이자 나도 따라 움직였다.
딱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고 할 때, 나라시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입장은 쉬운 편이지. 나오는 게 어려워. 그래도 들어가겠소?”
백루찬은 나라시를 힐끔 보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나라시는 모호한 얼굴로 눈썹을 들썩였다.
나는 그의 옆을 지나 백루찬을 따라 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나라시가 갑자기 내 볼기를 꽉 붙잡았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쳐 내며 놈을 노려보자, 나라시가 실실 웃었다.
“어이, 그렇게 노려보지 마. 네 밤 상대가 내가 될지 어떻게 알아. 그때 내 밑에서 엉엉 울며 사죄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하라고. 그리고 너는 저쪽이야.”
나라시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백루찬 옆 엘리베이터로 나를 밀었다. 백루찬이 무척이나 열 받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딱 보아도 지금 이 녀석을 죽이면 안 되겠냐는 눈빛인데, 나는 나라시 모르게 고개를 젓고는 타라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나라시가 문 옆 버튼을 다시 누르자 문이 닫혔다.
나오면 저 새끼부터 개 패 준다…. 난 문이 닫히자마자 인상을 팍 쓰며 괜한 문만 노려봤다. 저질스러운 새끼….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꽤 밑으로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몸을 긴장시켰다. 절대 무슨 일이 있든지 일단 참고…. 정 안 되면 나중에 다 때려 부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열린 문 너머로 남자가 몇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남자 중 한 명이 씩 웃었다.
“상등품이네?”
“읏!”
놈은 팔을 쭉 뻗어 내 팔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맥없이 끌려가자 순식간에 안대가 씌워지고, 입가엔 개구기가 채워졌다. 뭐야, 이건!
당황한 채 버둥거리자 이번엔 양손을 모아 구속구를 채웠다. 순식간에 몸에서 돌던 마력이 콱 막힌 기분이 들었다. 아, 젠장, 마력 구속구다.
내 몸을 구속한 남자가 귀 옆에서 웃었다.
“귀여운 친구야. 몸도 마음에 들어. 넌 얼마에 팔려 왔니?”
“이봐, 여기 온 새끼들 대부분이 놀다 놀다 버려진 놈들이라고. 넌 그런 놈들에게 그딴 짓을 하고 싶냐?”
다른 놈이 웃으며 떠들며 받아친다. 다들 웃음이 터졌다.
쓰윽 등줄기를 쓰다듬는 손에 발작하듯 몸을 비틀자 뒤로 꺾인 팔을 놈들이 더욱 꽉 붙잡았다. 아으, 이 변태 같은 새끼들….
“어이, 각성자 같은데 반항해 봤자 소용없어. 네 주인이 너를 이곳에 판 이상 넌 ‘우리 소유 물건’이거든. 얌전히 굴어.”
귓불을 깨물며 하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젓자 놈들이 또 킬킬대며 웃었다. 농간하듯 굴던 놈들은 곧이어 나를 붙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삼키고 그들에게 끌려갔다.
마력 제어구가 손목에 달렸지만, 이까짓 것 금방이라도 부술 수 있다. 일전에 우반희를 통해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반희가 썼던 제어구가 더 상등급이었던 것 같다. 지금 손목에 찬 건 힘만 줘도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오감을 확장시켜 사방을 경계했다. 시각이 차단되니 청각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일단… 얌전히 따라가 보자고.
그래야 얌전히 진마하를 만나든 뒤집어엎어서 진마하를 만나든, 둘 중에 하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복도 같은 곳을 한참을 걷자, 놈들은 어떤 방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바닥에 넘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그 사람은 내 턱을 움켜쥐더니 안대를 벗겨 냈다. 순간 흐릿한 불빛과 함께 나를 잡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을 물건마냥 살펴보았다.
“호오, 각성자에 이 정도 얼굴이면 취향 비슷한 새끼들이 환장하겠어. 메인으로 나가도 되겠는걸.”
“이번 메인은 세즈였잖아. 바꾸게?”
“바꿔도 될 것 같긴 해. 몸값 후하게 받을 수 있겠군. 네놈 주인이 왜 널 팔았을까?”
남자는 피식 웃곤 내 허리를 주물러 댔다. 손길이 거침없고 난잡해서 절로 더러운 기분이 올라왔다. 나는 몸을 틀었다. 그러나 남자는 내 반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젠 내 상의를 찢기 시작했다.
“…으으읍!”
아니 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개구기를 차서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소름 돋고 당황스러워 녀석을 쳐다보자, 놈이 말했다.
“이런, 우리 규칙은 상의는 벗어야 돼. 네놈도 값을 잘 매기고 싶으면 잘 따르라고.”
그러고선 칼로 쫙쫙 찢기 시작한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끔벅거렸다. 식은땀이 등 뒤로 흐르는 것 같았다. 젠장…. 백루찬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남자가 내 상의를 찢어 버린 뒤, 나를 어두운 철창 같은 곳으로 집어넣었다. 손이 묶인 채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내가 있는 곳엔 철창이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채워져 있는 곳은 몇 곳 없었다. 띄엄띄엄 채워 넣은 곳엔 나와 비슷하게 구속구를 찬 몇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 남자가 검게 죽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름: 세즈
칭호: 비어 있음
클래스: 비어 있음]
백루찬같이 백금발이었지만, 이 남자의 머리 색은 좀 더 진했다. 하얀 얼굴… 어라, 뭔가… 뭔가.
왜 백루찬이랑 닮았지?
나는 더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철창 너머로 고개를 돌렸던 세즈가 나를 다시 쳐다봤다. 잿빛 눈동자.
백루찬을 좀 더 작게 만들었다면 저 남자와 쌍둥이 같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시스템 이 자식들, 우반희만 NPC로 복사한 게 아니라 백루찬도 복사한 거야?!
[(;´・`)>…그… 새로 만드는 것보단… 원래 있던 것을 복사하는 것이… 더 쉽고…ε=ε=(⊃≧□≦)⊃]
야 이 미친놈아! 나는 소리를 꽥 지를 수 없는 것에 한탄했다. 빌어먹을 시스템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