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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82)화 (179/201)

양만철은 술을 콸콸 털어 내더니 손등으로 입을 쓰윽 닦고는 나를 쳐다봤다. 퀭한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져서인지 그의 눈빛은 암울했다. 

“진마하를 죽이려고 찾고 있는 거요? 원한이라도 있소? 하, 그놈이 보통 놈이 아니지. 원한을 쌓고 다닐 테니 이리 찾아오는 것도 이해가 가.”

“…원한…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바라는 게 있다는 말 아니겠소. 그놈을 처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겠고. 놈만 죽여 준다면 나는 위치를 불 용의가 있소이다. 그놈은 사악한 마법사라서 죽이려면 방법이… 아, 딱 하나 있소.”

“그게 뭡니까.”

“영혼석.”

“영혼석이요?”

“그놈의 그걸 찾아서 부숴야 완전히 죽일 수가 있어. 내 앞에서 그놈이 다시 살아 나온 것만 몇 번인지 아시오? 그게 없다면 놈을 죽이는 건 요원한 일이지.”

양만철이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미 다 마셔 버린 뒤라 병에선 몇 방울만 떨어질 뿐이었다.

영혼석이라…. 진마하는 일반 인간이 아니라서 죽이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세계의 기둥이 한 명이라도 죽으면 세상은 멸망한다.

그걸 막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아무튼 영혼석이라…. 시스템이 양만철을 통해 이러한 정보를 준 것은 그것이 진마하가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것을 저지하는 물건이라는 뜻 아닐까.

시스템은 정말 원하는 게 뭐지. 진마하가 죽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세계의 기둥으로서 살길 바라는 거야. 어쩌면 외로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영원히 제 의무를 다하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진마하에게… 너무한 일이다.

수많은 세월을 홀로 버틴다는 건, 특히 그 끔찍한 어둠 속에서 수많은 에러 문구를 보며 살아간다는 건…. 나는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오지도 않는 술병을 입에 대고 한 방울이라도 털어 먹는 양만철을 보다가 나는 백루찬을 툭 건드렸다.

“이만 가자.”

들을 건 다 들었다. 술에 취한 꽐라에게 이 이상의 정보를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사우스 웬드라고 했던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디베리 거리를 찾아온 것처럼 물어물어 가면 되겠지. 다크썬이라. 우선은 그 조직을 찾아야 한다. 왠지 이 게이트 체류 시간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양만철이 등 뒤에 대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우스 웬드는 서북쪽으로 가야 나온다네. 다크썬. 그놈들은 아주 깊숙이 숨어 있지. 하지만 달에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 그동안 의뢰받았던 물건들을 가지고 경매를 열거든. 정말 크게. 큭큭. 나라시라는 놈이 하는 술집을 찾으시오. 이름이… 요루노이리구치였나. 다크썬과 연결된 곳이니까.”

그리고 그는 비척비척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NPC답게 상세하게 정보를 준다. 사라지는 그를 보고 나는 백루찬과 함께 몰디베리 17번가의 집을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다크썬을 찾아 진마하와 접촉하세요!

양만철을 통해 게이트 내부 심상 세계에 진마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사악한 마법사인 진마하를 찾기 위해선 다크썬으로 가서 움직여야 합니다!

영혼석은 그와 연결된 곳에 있습니다.

난이도: ??

보상: 진마하의 영혼석의 위치]

[게이트가 억지로 벌어진 상태입니다. 과부하로 인한 세계의 비틀림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오류인 진마하를 처리하세요!]

떠오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밑으로 진마하를 처리하라고 종용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처리라는 건, 그 영혼석의 파괴를 말하는 건가. 영혼석이란 것이 게이트 내부 세계가 아닌 원래 세계의 진마하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았다.

나는 시스템창을 밀어내고 나를 보고 있는 백루찬을 보며 웃었다.

“그래도 정보를 주긴 하네. 사우스 웬드로 가자.”

“저 말이 사실일까? 이렇게 순순히 부는 게 이상하지 않아?”

“시스템이 설정해서 내놓은 NPC니까. 우리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야. 믿을 만해.”

“난 그 시스템을 못 믿겠어.”

“…음.”

“세계를 다루는 시스템이라면, 알아서 게이트를 좀 닫고 진마하를 우리 앞에 데려다 놓으면 되잖아. 들어오자마자 만나게 하든가.”

“그게… 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래.”

나는 백루찬을 달래며 움직였다. 대강 세계가 굴러가는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 줬지만, 역시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것 같았다. 하긴 자신이 봐 왔던 것들 대부분이 그렇게 얼레벌레 굴러간다는데, 누가 믿겠나. 나라도 못 믿지. 그리고 진마하의 오류를 감당하지 못해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편법을 썼다고 말하면 백루찬은 시스템을 더욱 못마땅해하겠지. 나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녀석을 이끌었다.

일단 어디로 가야 할진 정해졌다. 양만철이 말한 서북쪽 사우스 웬드.

우리는 늦은 밤이 된 세계를 이동하다가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폰을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것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백루찬을 툭툭 쳤다.

“루찬아, 저거다.”

스킬을 써서 이동하기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 마력을 아낄 겸 스킬은 자제하기로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는 오토바이 가진 남자에게 가지고 있던 포션과 맞바꿔 교환하자고 말했다.

“정말 이걸로 되겠어요?”

남자는 의심 어린 눈으로 우릴 쳐다봤다. 여기서도 상급 포션은 꽤 비싼 축이어서 오토바이 한 대 값을 하고도 남았다. 우리는 의심하는 남자에게 진짜 상급 포션인 것을 증명해 보내고는 오토바이를 받았다.

남자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재빠르게 골목으로 사라졌다.

“저거면 오토바이 두 대는 살 텐데.”

“급할 땐 두 배 쳐도 돼.”

“부자네, 아주.”

“너만 할까요.”

백루찬이 투덜대는 걸 받아 주며 오토바이에 키를 꽂았다. 작동도 아주 잘 된다.

나는 백루찬을 쳐다봤다. 자 이제 타서 시동을 걸라는 눈빛을 보낸 거다. 근데 평소라면 눈치 백 단처럼 알아들었을 백루찬이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콧등을 찡그렸다.

“왜 그렇게 봐?”

“형은 날 왜 그렇게 봐?”

“네가 운전해야지. 내가 하리?”

백루찬이 실소했다.

“형, 나는 차 아니면 안 타 봤어. 그리고 천둥의 발걸음이 있는데 웬 오토바이.”

“…운전 못 한다고?”

“응.”

사실 나도 못 한다. 하지만, 나는 형이기 때문에 백루찬을 힐끔 보고 먼저 당당하게 올라탔다. 심상 세계니 면허 따위 필요 없겠지! 물론 현실에서 면허는 있다고!

내가 당당하게 올라타자 백루찬이 내 등 뒤에 타 내 허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의도적으로 귀 옆에서 숨을 후- 내뱉는 것에 진저리 치며 녀석의 이마를 탁 쳤다.

“운전 중에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형 섹시해.”

“하아.”

한숨을 쉬고,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대강… 대강 전동 킥보드도 타 보고 했으니 움직일 수 있겠지. 나는 좀 더 만져 보다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발을 뗐다.

“형, 오토바이가 왜 기어가?”

“…조용히 해.”

삐뚤삐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기어가는 오토바이에 백루찬이 순진무구하게 되물었다. 뒤에서 킥킥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씨…. 나는 좀 더 속력을 내며 밤거리를 달렸다.

❖ ❖ ❖

오토바이 운전은 익숙해지자 속력을 더 낼 수 있었다. 사우스 웬드 거리는 잘 정돈된 유럽의 길거리를 표방했던 이전 도로와는 다르게 어두운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곳곳에 발전기가 돌아가는 큰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들의 층고는 낮았다. 한참을 달리니, 곳이어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사우스 웬드 16km.

그것을 보며 앞으로 쭉 달리자, 멀리서 크게 빌딩이 올라간 도시가 보였다. 저기가 사우스 웬드구나. 백루찬은 내 허리를 꽉 붙잡고 그곳을 보다가 춥다고 중얼거리며 내 등에 더욱 꽉 들러붙었다. 짜식아, S급이 추위를 탄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녀석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열심히 굴려서 사우스 웬드에 도착했다.

도시는 꽤 컸다. 거기서 나라시가 운영한다는 선술집을 찾기 위해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결국 지나가던 사람에게 선술집의 위치를 물어봤다.

도시의 위압적인 풍경과는 다르게 꾀죄죄한 모습의 중년 남자는, 나라시가 운영한다는 요루노이리구치에 대해 물어보자,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저질스러운 무언가를 보는 듯 쳐다봤다.

“거길 찾는단 말이오?”

“예….”

“그런 곳을 왜…. 저쪽 두 번째 블록 사이에 있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 다급하게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뭐야, 악명이 높은 곳인가? 다크썬과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꽤 이름이 알려진 것 같았다. 나와 백루찬은 남자가 알려 준 곳으로 향했다.

어두운 골목 사이에 위치한 요루노이리구치는 작은 일본식 선술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에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이 밖에서도 보였다. 오토바이를 구석에 세워 놓고 우리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여기가 다크썬과 연결되었다니,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술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굳은 얼굴을 한 채 문을 열기 위해 미닫이문에 손을 올렸다. 그때 백루찬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형.”

고개를 돌리자, 백루찬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일렁이는 것은 미미한 불안이었다. 나는 웃었다. 그래, 우리는 지금 게이트 안에 들어와 있고,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진마하를 찾기 위해 와 있다. 지금까지 평화로운 듯했지만 이곳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은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백루찬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알아, 루찬아.”

“꼭 이렇게 찾아야 할까?”

“경매장이라고 했잖아. 입장하려면 전투든 무엇이든 걸어야 할 텐데 쉽게 들어가서 진마하를 만나려면 이 방법이 제일 나아.”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렇다고 안 할 건 아니잖아.”

“…형이 우기니까 하는 말 아냐.”

“진마하에게 들키지 않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방법. 내가 말한 방법 말고 있어?”

“…….”

백루찬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몰디베리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그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첫 번째. 경매에 참가한다. 단, 백루찬이 경매장 외부, 즉 구매자들 사이에서 다크썬에 대한 정보와 진마하를 찾고, 나는 내부로 들어가는 것으로 말이다. 내부라는 것은….

“그렇다고 형이… 굳이 상품이 되는 건 아니라고 봐. 차라리 내가 할게.”

“넌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돼.”

“하, 뭐 본인은 안 띄는 줄 아나.”

“너보단 내가 나아. 그리고 내가 너보다 강한 거 자꾸 까먹더라, 넌.”

백루찬은 거기서 인상을 팍 쓰며 코웃음 쳤다.

그렇다. 내가 상품으로서 경매장을 여는 다크썬 사이로 숨어드는 거였다. 진마하가 경매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이렇게 하면 다크썬 조직원들이 떠드는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뭐, 아니라면 판 뒤엎고.

나는 씩 웃었다.

“안 되면….”

싹 다 엎어 버리자.

다행히도 우린 그 정도 힘은 남아돌았다. 나는 미닫이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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