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캐릭터, ‘진마하’와 각인되었습니다.]
[※각인 주의: 대상의 각인 상대에게 가지는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컨트롤 비정상 확률: 50%]
눈 앞에 뜬 시스템창에 나는 바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이 맞았다고 좋아하기엔 진마하는 세계의 오류인 놈이었다. 그에 의해 나는 회귀를 반복했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진짜일 줄이야.
바짝 굳어버린 나를 진마하는 품에 끌어안고 목덜미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때 굳은 듯이 멈춰 있던 진마하가 나를 밀쳤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그를 쳐다봤다. 진마하는 내 눈앞에 뜬 시스템창을 보고 있었다. 맞치, 참. 녀석에게도 시스템이 보인다. 나는 다급하게 진마하를 붙잡았다.
“진마하-”
“이게 뭐야.”
“나랑 얘기를 좀…!”
“지금 이게 뭐라고 지껄인 거야?”
진마하는 항상 애매하게 웃던 얼굴 대신 인상을 찌푸리며 허- 실소를 내뱉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마하는 제 팔을 붙잡은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게, 뭐라는 거야.”
진마하가 당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스템은 필요의 아이로 만들었다던 진마하를 세계의 기둥이라 말했다. 시스템의 의도대로 활동하던 그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시스템을 거부했고 오류가 되었다. 세계에 의해 끝까지, 끝의 끝까지 몰려지고 있었다.
에러로 가득한 그 세상 속에 홀로 누워 있던 진마하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존재하는 것까지… 세계는 이용했다. 메인 캐릭터로서, 세계 기둥이라 불리는 죽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로서.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해. 나는 다시 한번 진마하를 붙잡았다.
“내 말부터 들어봐.”
“메인 캐릭터라고? 내가?”
진마하가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메인 캐릭터였다. 필요의 아이로만 이용당하다 외면 받았다 생각했던 그는, 이 세계에 가장 필요한 세계의 기둥이자 내가 지켜야 할… 메인 캐릭터인 것이다. 진마하는 그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진마하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렇게 내버려 둘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제 와서!”
그런 그를 향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받은 충격을 뭐라고 말해야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급하게 분노로 몸을 떠는 녀석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불신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나를 향했다.
“그러지 마. 이건-”
“하, 설마 해준아, 넌 알고 있었어?”
기가 막힌 얼굴로 쳐다보는 눈빛이 번들거렸다.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젠장, 하필 이럴 때 몸 상태가 그지 같아서…!
“나도 몰라. 내가 뭘 알아.”
“각인? 그래서 너… 나에게 다가온 건가? 이러려고. 이렇게 나를!”
“으윽!”
진마하의 몸에서 번쩍이며 빛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피할 새도 없이 내 몸은 뒤로 날아가 버스정류장 벽에 처박혔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슬비가 내리던 하늘에서 번개가 쳤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고통을 삼켰다. 젠장 어떻게 말리지? 힘겹게 고개를 들여 녀석을 보자 진마하가 나를 공격할 것처럼 손을 뻗었다. 그러나 녀석은 내게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멈칫한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멱살을 움켜쥐고 일으켜 세웠다. 금방이라도 손을 들어 후려칠 것 같아서 눈을 꾹 감았다.
“하…하하.”
그러나 진마하는 이내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각인의 영향이다. 혼란에 잠겨 요동치는 눈동자가 보였다. 진마하는 허탈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뒷걸음질 치는 그를 따라붙었다. 어떻게든 잡으려 했지만 진마하가 내 손을 뿌리쳤다. 녀석은 계속, 계속 뒷걸음질 쳤다. 이내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 녀석의 머리 위로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 투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마하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 나를 보았다. 어느새 공허해진 눈에 나는 움찔 떨며 녀석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진마하가 나를 막았다.
“다가오지 마, 해준아. 나 지금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나랑 얘기하자. 내가 말했잖아. 네가 원하는 거, 내가 해 주겠다고.”
“해준아, 해준아. 나는 또 이렇게 버림을 받았어.”
“그게 왜 그렇게 돼! 네가 이 세계에 필요한-”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건 녀석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말이었다. 진마하가 웃었다.
“그래. 필요. 그놈의 필요 때문에… 마지막까지 나는 기만을 당했구나.”
“…진마하.”
“끝까지 외로워서, 몰리고 몰려 도망쳤는데 결국 나를…. 어떻게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 속에 가둬 놓고서, 그렇게 아무것도 못 한 존재로 다뤄놓고서. 이제 와서… 이제 와서.”
“…….”
“해준아, 너는 알잖아. 내가, 내가 무엇이 필요했는지.”
진마하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빗물이 눈물처럼 뺨에 맺혀 떨어졌다.
“사람이 필요했어. 외롭지 않게… 나를 인정해 주고 아껴줄 사람이, 사랑이. 나는… 해준아.”
“…….”
“그런데 여태껏 나를 그렇게 괴롭게 두다가, 그렇게 세계에 소멸되도록 오류로 죽게 만들려고 하다가, 이제 와서… 뭐?”
“진마하.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치부했다면, 나를 이렇게 두지 말았어야지. 왜 나를! 나를 그 고통 속에 처박아 두고!”
진마하가 오열하며 소리쳤다. 얼굴을 감싼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 진마하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 메인 캐릭터가 진마하라니. 그렇다면 진마하가 여태껏 해 왔던 건, 오류라고 명명하여 내가 그를 죽이라고 종용하듯 시나리오를 통해 그의 행위를 막았던 건 다 뭐였을까.
진마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두운 하늘이 천둥이 치며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다.
진마하는 허탈한 얼굴로 웃다가 나를 보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필요의 아이로서 마지막까지 ‘사용’당하고 마는구나.”
진마하는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거기서 나는 보고 말았다. 푸르스름하게 투명해져 가는 진마하의 손을.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마!”
“세계의 기둥이라면,”
녀석을 붙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내 전신이 투명해진 진마하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순간이동처럼 사라져 더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난 진마하의 손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진마하의 손까지 삼킬 것처럼 지직거리는 그것은 푸른 빛을 토해냈다. 전류를 토해내며 연신 일렁이는 것은 마치… 마력 파장을 닮았다. 진마하는 그것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어마어마한 마력과 함께 순간 세계가, 흔들렸다.
진마하가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죽으면 이 세계는 끝나는 거겠구나.”
진마하가 쏘아 올린 것이 하늘에서 번쩍이며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커다랗고, 둥그런 마력 파장. 게이트다. 나는 주저앉아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진마하는 나를 보며 웃었다.
“마지막까지….”
진마하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녀석을 게이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진마하를 잡기 위해서.
스킬을 전개했다. 바닥을 딛고 빗줄기를 가르며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이형환위를 전개해 진마하를 따라붙고, 그래도 잡지 못해서 그 위로 멀어지는 놈을 쫓아 다시 어둠의 포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겨우 높이 떠오른 게이트 앞에 선 진마하를 잡아챘으나, 그는 되려 나를 붙잡았다. 내 허리를 감싸고 붙잡아 당긴 진마하가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순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굳었다. 진마하가 속삭였다.
“해준아, 각인으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
“…….”
떨리는 손이 내 턱을 붙잡는다. 진마하가 웃었다.
“조절하지 못하는 내 감정이… 내가 너에게 느끼는 게 뭔 줄 알아?”
작게 속삭이면서 마주한 눈은 선명한 오드아이로 반짝였다. 진마하가 말했다.
“사랑.”
애석하게도.
턱 끝을 쥔 손이 잔뜩 떨리며, 진마하는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등 뒤로 어둠을 잠식한 더 짙은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는 앞에서, 진마하는 내게 키스했다. 그리고 나를 땅 아래로 밀었다.
추락하며 녀석을 쳐다봤다. 진마하는 나를 보다가 게이트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검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슬로 모션처럼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며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애석하게도 나는 슬픔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