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76)화 (173/201)

나는 정신없이 모르젠트 빌딩을 빠져나왔다. 

“앗, 한야, 아니 차해준 님! 어디 가십니까?”

경비를 서고 있던 길드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막아서려 했지만, 그들에게 괜찮다고 손짓해 보이자 길드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멈춰 섰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잠깐 보려고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둘러댔다. 루찬이가 알면 화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진마하를 놓치면 또 찾기 힘들 테니까. 로비 밖으로 나와 놈을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손에 꽉 쥔 호출기를 들어 보였다.

“호출기 챙겨 가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요. 별일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해준 님!”

그렇게 말하고 빠르게 뛰쳐나왔다. 비는 어느새 부슬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그 거리로 뛰어들었다.

“…차해준?”

“와, 몰젠 차해준이야.”

“심하게 다쳤다며, 이제 괜찮나?”

두리번거리며 진마하를 찾는 사이 수군대며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환자복이라 눈에 더 띌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민망함에 더 빨리 뛰어서 인도를 가로질렀다. 진마하, 이 자식. 금세 어디로 사라진 거냐.

“허억… 헉… 아으….”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얼마 가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곤 헉헉댔다. 젠장, 좀 어지러운데.

부슬비는 계속 내리며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인근의 큰 사거리까지 나와서 주변을 살펴봤지만, 내가 봤던 검은 우산을 든 진마하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

괜히 허탈해져서 한숨을 내쉬던 찰나,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뀌는 풍경/버스 정류장/비가 오는 어두운 실외/

누군가 걸어온다. 진마하는 다가오는 남자를 보다 정류장 벤치에 앉는다.

진마하: 이제 좀 궁금해?]

버스 정류장!

시간은 시나리오에 나왔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하철 사건도 일어났겠다, 그러면 이다음은 버스 정류장인데…!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모르젠트 빌딩은 번화가 쪽이라 정류장이 세 블록마다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다시 주먹을 꽉 쥐고 달렸다.

스킬을 사용할까 했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마력이 빠져나가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 뻔해서 꾹 참았다. 사방을 확인하며 진마하가 향했던 방향으로 쭉 달렸다. 그리고 세 길로 나눠진 길 앞에서 번화가 사이로 구석진 골목을 발견했다.

나는 뛰던 것을 멈추고, 골목의 반대편을 바라봤다. 푸르스름한 벽면의 광고가 먼저 보이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옆에 검은 우산이 접힌 채 놓여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골목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갔다.

여태껏 달려오며 확인했던 버스 정류장과는 반대편 노선이었다. 그곳은 아무도 없이 오직 앉아 있는 사람 딱 한 명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정류장 의자에, 검은 코트를 입고 앉아 있는 진마하가 있었다.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그는 물끄러미 앞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한참을 있었을까, 진마하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

“이리 와서 앉아, 해준아.”

침묵으로 응수했다가 진마하가 나를 빤히 바라보자 경계하면서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여차하면 한야를 바로 뽑을 수 있도록 손에 힘을 잔뜩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경계가 무색하게 진마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를 보다 몇 걸음 떨어져서 의자에 앉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조용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보였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일단 내가 왜 이 녀석을 보자마자 따라왔는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막무가내 행동을 한 거냐, 차해준아. 가서 백루찬이 알면 된통 혼이 날 텐데.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이 녀석을 쫓아온 건지.

그냥, 그대로 혼자 두기가… 싫었다.

광활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홀로 삭으며 죽어 가던 녀석의 모습을 봐서일까. 괜히 놈에게 동질감을 느껴서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 동지라고 불러 댔던 놈이 왜 그렇게 나에게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그 심정을… 나도 이해해서.

아무도 나를 제대로 모르는 세상에서 나를 발견해 주고 처음으로 알아봐 준 자가 있다면, 나였어도 그에게 집착했을 거다.

나였어도, 회귀하던 차해준을 알아봐 준 사람에게 흔들렸을 거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거다. 진마하를 찾아서. 나는 스스로 그렇게 납득했다.

진마하는 생각에 잠긴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에 대해서.”

“나?”

진마하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말이 편해진 것 같네. 동지. 이제야 나를… 이해했어?”

진마하가 웃었다. 그저 습관적으로 입꼬리만 올려 웃는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또 힘이 빠졌어.

나는 뭐라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죽일 듯이 싸워 대 놓고 이런 말 하는 거 우습지만, 어쩐지 놈과 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하, 이런 비틀린 새끼랑 가까워지는 건 좀 그런데… 그런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게 좀 짜증이 나서 인상을 한껏 찌푸렸더니 진마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야.”

“뭘.”

“왜… 희생에 아무렇지 않아. 고생은 너만 하는데.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는데.”

“…….”

“네가 회귀한 과거를 그들은 기억하지 못해. 속 편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 왜….”

“속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뭐… 있긴 하겠지만, 다 저마다 고민과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 인간이 그래.”

“……너는 네가 아니라 그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거야?”

“걱정이라니. 그저 눈앞에 닥치니까… 하는 거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나 누구라도 허투루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게이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느끼며 좌절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 이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나는 그런 생각에 힘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나설 뿐.

내 말에 진마하는 실소했다.

“그럴 리가 있나. 해준아, 너 착각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착하지는 않아.”

“네가 나쁜 면만 본 건 아니고?”

“시간이 반복되는 것까지 기억하는 내가 설마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그래서 그렇게 죽인 거야?”

나는 녀석을 돌아봤다. 진마하가 가만히 내 눈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거야? 네가 생각하기에 나쁜 사람들이라.”

“…….”

진마하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는 나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간판만이 빛을 내고 있는 어두운 거리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러고선 입을 열었다.

“…나는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야.”

“알아.”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지. 내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렇게 태어났기에 의심 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어. 게이트를 틀어막고, 사람들을 지키고. 세계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온몸을 바쳤어. 그런데도 그들은 고마워하지 않아. 아무 일 없는 것이 아닌데, 무수한 위협 속에서 간신히 지켜지며 그 삶을 영위하는 건데, 그들은 몰라. 너는… 그게 화가 나지 않아?”

“…왜 화가 나?”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서 구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너는 아무렇지 않아? 이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토로하며 절망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들은 원망해. 너도 당했잖아. 게이트에서 구해 내도 잘못을 회피하며 도로 탓하던 인간들을. 자신들을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하지만 옆에서 도와준 건 나였는데.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줬는데 그들은…!”

진마하가 격하게 목소리를 높이다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굳은 채로 녀석을 쳐다봤다.

“세계가 멸망하는 이유는 그거야. 다들 너무 안온함에 절어 있는 거지. 남의 고통 따위는 외면한 채…!”

“아무도 너를 몰라서 그런 거잖아.”

“…!”

진마하가 흠칫하며 벌떡 일어났다. 나를 노려보는 시선에 살기가 어렸다. 고작 그것만으로 내가 이렇게 했겠냐는 듯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 그렇게까지 지켜 줬는데 아무도 몰라서. 너를… 홀로 외롭게 만들어서.”

“…차해준.”

“혹시 부러웠냐. 내가?”

- 파지직!

그렇게 내뱉자, 순간 사방의 간판과 버스 정류장을 밝히던 불이 치직거리며 꺼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나를 노려보는 진마하를 보며 옅게 웃었다.

“내 옆엔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진마하의 말대로, 아무도 모르는 희생을 반복하며 고통에 절여져도 결국엔 이렇게 내 곁에서 그 고통을 알아봐 주고 구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나는 백루찬을 떠올렸다. 제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찾아 감당하기 힘든 적에게 달려들었던 백루찬.

그 애뿐만은 아니다.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내걸고 게이트 사태를 해결하려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최근엔 정희수가 그랬다. 포기하지 않고, 제가 죽을 뻔했음에도 제 살을 깎아 가며 생존자들을 지켜 낸 정희수가.

그런 사람들이… 그런 사람에게서 지킴을 받는 사람들이 너는 부러웠었나.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진마하를 마주 봤다.

“그러면, 내가 해 줄게. 그거.”

“…….”

그리고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해 줄게.”

홀로 외롭지 않도록. 혼자서 하는 희생이 지겨워서 고통스럽고 모두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분노를 뿜어낼 만큼 괴롭다면, 그거 내가 해 줄게.

“너를 기억하는 사람, 너를… 구하는 사람.”

내가 할 테니까, 여기까지 하자. 진마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