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간신히 눈을 떴지만 눈앞이 흐릿했다. 고통을 비웃듯 누군가가 상처를 짓눌렀다. 숨이 목구멍에서 막혔다.
“허억…! 아, 윽…!”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꽉 잡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누구야. 누가 나를…. 그때,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유일한 동지…….’라고 중얼거리는 말까지.
동지. 거기서 깨달았다. 지금 내 옆에 진마하가 있다는 것을. 뿌얬던 시야가 그제야 제대로 초점을 잡아 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나를 지켜보고 있는 놈이 보였다.
상냥한 얼굴로 웃으면서 오드아이 눈을 기이하게 번쩍이는 남자. 나는 놈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이었다. 관통당한 곳이 미치게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
“큽…!”
그제야 진마하가 상처를 매만지던 손을 뗐다. 그는 아주 여유로운 얼굴로 옆에 앉아서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넘겼다. 손을 쳐 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힘없이 축 늘어져서 눈만 간신히 깜박였다.
“많이 아파?”
“…개새….”
죽을 거 같다, 씹새끼야. 너 같으면 안 아프겠냐.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틀어 막힌 듯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진마하는 묘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해준아, 어때? 나와 같이 있는 건.”
“…….”
“같은 선택을 받은 사람과 함께 있는 거잖아. 필요에 의해 세계의 선택을 강요받은 두 사람. 영화 같다. 그치?”
영화는 무슨. 개지랄을 떨고 있어…. 나는 몸을 옹송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놈이 내 얼굴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턱을 꽉 움켜잡은 덕에 강제로 놈을 바라보며, 나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미친놈, 뒤져, 좀….”
“쌀쌀맞아서 너무 슬픈걸.”
힘을 실어 넣은 손이 뺨을 꽉 움켜쥔 채 진마하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반항하며 몸을 움직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을 노려봤다.
“왜 이렇게 싫어해. 내가 왜 싫어? 우리는 유일무이한 사람들이야. 서로만이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너 같은 살인자 새끼를… 누가 좋아해.”
“하하, 고작 데이터 쪼가리도 남지 않을 그런 인간들이 죽는 게 뭐가 문제야?”
별문제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하는 놈을 보다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아당겼다. 파르라니 노려보자 진마하가 웃고 있던 얼굴을 굳혔다.
“뭐가 문제야, 해준아.”
“그딴 식으로… 그딴 식으로 말하니까,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니까. 네가 그 정도 존재로밖에 남지 않는 거야. 모두에게 그런 존재로밖에 되지 않- 윽…!”
진마하가 멱살 잡힌 손을 빼내며 내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콱 막히고 나는 헐떡이며 내 목을 움켜쥔 녀석의 손을 붙잡고 긁었다. 하지만 놈은 가만히 손에 힘을 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커억…!”
진마하는 아예 내 위로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졸랐다. 바르작대며 몸을 비틀었으나 녀석은 서늘한 눈으로 나를 보기만 했다.
“그래? 그래서 그래? 너는 그런 게 좋아서 이딴 식으로 사는 거야? 그렇게 몇 번이고 회귀를 반복하면서, 정신이 깎이고 마모되고 돌아 버릴 것 같은 순간을 매번 겪으면서도! 그렇게 회귀를 반복하다 결국 쓸모없다고 생각될 때 버림받는 게, 그렇게 좋아? 그게 좋아?”
“큭-!”
“아니지. 해준아, 다시 생각해. 다시, 다시 생각해 봐.”
진마하가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춰 왔다. 오드아이의 눈이 요요하게 빛이 났다. 숨이 막혀 발작하는 나를 한참을 바라보던 진마하는 이내 손에서 힘을 뺐다.
“쿨럭- 윽….”
“해준아, 그런 건 내 탓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너도 마찬가지야. 내 편이 되어 줘야지. 그렇게 자꾸 나를 몰아세우면 어떡해. 그러면 더….”
기침하며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진마하가 서둘러 입술을 겹쳐 왔다. 순간 너무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터진 상처를 핥아 내던 녀석은 피 맛을 보고 인상을 살짝 찡그리더니 나를 보고 슬쩍 웃었다.
“가지고 싶잖아.”
“이 개새끼가… 읍-!”
발버둥 치며 놈을 밀어냈지만, 녀석은 강하게 나를 압박하며 입을 맞춰 왔다. 깊게 파고드는 혓바닥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미친 새끼… 뭐 하는 거야, 지금…!
팔을 휘둘렀지만 금세 팔목이 잡혀 내리 눕혀졌다. 진마하는 나를 제 품에 가두고 중얼거렸다.
“너는 날 알아줘야지.”
“하윽, 아…!”
상처를 헤집는 손이 상의를 비집고 올라왔다. 진마하는 가슴팍을 더듬거리다가, 다시 깊게 입을 맞춰 왔다. 숨이 막히고, 몸이 덜덜 떨렸다. 빌어먹을 새끼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머릿속으로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백루찬이 아니어서 그래? 그럼….”
진마하가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순간이었다.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진마하의 얼굴이 어느새 백루찬으로 바뀌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잿빛 눈이 휘어지며 그림 같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
“원하는 대로 해 줄게. 거부하지 마. 나랑 함께하자. 내 사랑하는 동지. 나의 유일한 이해자.”
붙들린 손목에 주먹을 꽉 쥐어 보았지만, 반항은 역부족이었다. 고통에 자꾸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가빠졌다. 나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새끼….”
“응. 좋아. 그 반응도.”
진마하가 코트를 벗으며, 나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짓눌린 상처에 고통이 아릿하게 올라와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통스러웠다. 진마하가 귓불을 깨물며 속삭였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너만이 날 유일하게 기억해.”
원래 그런 건 포기가 쉽지 않거든.
낮게 흘리는 웃음소리에 나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 ❖ ❖
하늘이 우르릉 울었다. 사위가 어둑해져 사람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도심 풍경 위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백루찬은 코트를 휘날리며 도시를 가로질렀다.
손에서는 호출기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연신 울리는 것을 계속 무시하고 나아가다가, 백루찬은 도심 중앙에 건설이 중지되어 버림받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땅을 적시는 비와 함께, 난잡하게 어질러진 폐허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다 떨어진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미처 옮기지 못한 자제들이 그대로 비를 맞으며 삭아 갔다.
그는 그곳을 걸어가며 울려 대는 호출기를 받았다.
-위치 확인했어. 각본에서 협조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같이 갈까?
“…필요 없어.”
-정말 혼자만으로 충분해? 가능하겠어? 그놈….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희야. 나뿐이면 돼. 다만 준비를 좀 해 줘. 바로… 데려가면….”
-아, 알았어. 또 다친 거지? 하여간 매번 제 몸만 안 사려! 왜 그러는지 몰라! 아잇, 옆에서 송류진이 위치 공유해 달라고 난리 부리고 있어! 길드 사무실까지 따라왔다니깐.
큰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마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양 떠드는 홍희의 말에 백루찬은 실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조용히 있으라고 해. 알아서 할 테니까.”
-…어떻게든 말려 볼 테니까, 무사히 돌아와. 주변에 공략팀 파견해 놨으니 혹시 모를 문제가 생기면 바로 진입할 거야. 그건 알고 있어. 이 이상은 나도 양보 못 해.
“응. 고마워.”
-잘… 데려와.
“응.”
백루찬은 호출기를 집어넣었다. 미리 차해준의 호출기에도 위치 추적기를 달아 놔서 다행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도움이 되었으니까.
형도 이것 가지고 자신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먼저 이런 식으로 나서서 홀로 또 아귀 구렁텅이에 빠져 저를 놓고 납치당한 건 차해준의 잘못이니까.
백루찬은 폐아파트가 을씨년스럽게 올라서 있는 곳을 무심한 얼굴로 걸어 들어갔다. 백루찬은 걸으며 다시 생각했다. 아니, 차해준의 잘못이 아니다. 빼앗긴 제 잘못이었다. 주먹이 꽉 쥐어졌다. 전류가 파사삭 튀어 올랐다가 꺼졌다.
애초에 제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만 하면 안 되었다. 더, 더 옭아매고, 혼자서는 몸을 날릴 수 없도록 더욱 꽁꽁 묶어 놔야 했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던 거다. 타의가 끼어들어 버리니까 차해준을 놓치고 말았다. 바로 눈앞에서, 코앞에서 놓쳤다.
백루찬은 거기서 생애 두 번째로 무기력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때 진마하를 공격할 수 있었을까. 차해준을 방패처럼 들고 있는 그놈에게? 그의 뇌전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다. 제 힘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게, 이렇게 무기력한 s급이 다 있을까.
백루찬은 중앙에 놓인 폐아파트 앞에 섰다. 벽면엔 흐릿하게 101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뼈대만 남아 있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백루찬은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한 발 한발 옮기면서, 손으로는 전류를 품었다. 치직- 하며 소매가 전류에 타들어 갔지만 백루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에서 황금빛이 연신 일렁였다. 힘이 자꾸 제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금방이라도 펑 터질 것 같았지만 머릿속엔 한 사람만 떠올랐다.
차해준.
되찾을 것이다. 차해준을.
되찾고 나면 어떻게 할까. 그 사람을 어떻게… 더 단단히, 아무도 손에 닿지 못하게 만들지?
그런 생각과 함께 진마하에 대해 떠올랐다. 보면 단번에… 단번에.
몇 층을 올라왔을까. 창문을 달지 못해 뻥 뚫린 벽면 사이로 비 때문에 흐릿한 풍경을 한번 훑어본 백루찬은 고개를 돌렸다. 층계참 너머로 철골과 기둥이 드러난 공간에 진마하가 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놈이 고개를 돌려 백루찬을 보며 웃었다. 그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거기엔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자신의 피가 아니다, 저건.
백루찬의 눈가가 씰룩였다.
차해준의 피다.
그의 뒤로, 흰 침대 위에 맥없이 늘어진 차해준이 있었다. 하얀 침대를 붉게 물들인 그가 거기 있었다.
백루찬의 몸에서 황금빛 전류가 번쩍이며 쏟아져 나왔다. 그에 맞춰 하늘에서도 천둥이 쿠르릉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