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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67)화 (165/201)

콰지직-! 

전선이 연결되어 있던 모든 기계들이 터져 나가고, 모르젠트 건물의 등이 연신 깜박거리며 켜졌다 흐려지길 반복했다.

백루찬은 가만히 호출기를 내려다보았다. 홍희는 이를 악물고 백루찬에게 다가갔다. 이마를 가리는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백루찬의 눈에서 황금빛 안광이 어렸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괜찮아, 루찬아! 그 형 괜찮아. 안 죽어! 너보다 강하다고!”

백루찬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딘지 멍하면서도 나사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홍희가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뿌리치지도 않은 채 길드장실을 벗어나려 움직였다. 홍희가 끌려가면서도 백루찬을 힘껏 붙잡아 당겼다.

“너 이대로 갈 거야? 길드 다 버리고 갈 거야? 아니잖아! 차해준이 움직였으니 일단 너도-”

“또 잃으면 어떡해.”

백루찬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홍희를 돌아봤다.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는 백루찬의 얼굴을 보고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저 미친놈의 표정을 보자니 그만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터져 나왔다. 홍희가 젖은 눈가를 쓰윽 닦아 내자, 백루찬이 홍희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훔쳐 냈다.

“희야, 나 내 소중한 사람 또 잃으면.”

이제 정말 살 이유가 없어.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삶을 벌써부터 포기라도 한 것처럼. 백루찬은 두려움에 잠식되어서 제 속의 깊은 심연으로 떨어진 사람처럼 자신을 보았다.

홍희는 백루찬의 가슴팍을 퍽퍽 때렸다.

“이기적인 새끼! 못된 새끼! 그러는 거 아니야! 둘 다 너무 못됐어! 차해준 백루찬 이 개자식들아!”

너무 못됐다. 자꾸 남은 사람들에게 본인들을 잃을 희생을 감수하라고 말한다. 그런 위험에 몸을 내던져도 괜찮다고 말하라 강요한다.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미쳐 버릴 것 같은데. 홍희는 분에 못 이겨 엉엉 울었다.

❖ ❖ ❖

나는 계단 밑으로 끌려간 요원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때 반대쪽에서 비슷한 속도로 덮쳐 오는 몬스터가 있었다.

“윽, 큽!”

훅 덮쳐 온 몬스터와 온몸이 부딪혔다. 바닥을 쓸며 쓰러진 내 위로 덤빈 놈의 숨소리가 들렸다. 거칠고, 썩은 악취가 풍겼다. 살기에 번뜩이는 탁한 노란 눈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익명의 범죄자 인간형 몬스터입니다. 등급이 상승합니다.

익명의 범죄자 B485: A-S ]

나는 내 몸을 압박하며 뜯어 물으려는 놈을 팔을 붙잡아 꺾었다. 낡은 옷가지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썩어서 진물이 뚝뚝 떨어졌다.

“으윽…!”

힘겨루기 하며 버티다가, 다른 손을 옆으로 뻗었다. 손안에 한야가 잡힌다. 그것으로 놈의 목을 베어 냈다. 핏물이 좌륵 터져 나왔다.

- ---!

입을 쩍 벌렸던 몬스터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간다. 나는 근육이 경직된 놈의 몸을 밀치고 일어났다. 숨을 몰아쉬며 핏방울이 튄 얼굴을 닦아 내고 나니 옷까지 몬스터의 피로 흠뻑 젖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인간 형상을 한 놈이라 피도 붉은색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갑자기 S급이 되다니, 젠장. 빌어먹을 진마하… 아주 시스템 권한을 막 쓰는구나.

다른 생각 할 틈은 없었다. 나는 바로 주변을 살폈다. 어둠이 익숙해지자 앞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절반쯤 날아간 몬스터 한 마리가 기둥에서 무언가를 파먹고 있었다. 그 밑으로 늘어진 다리가 보였다. 아까 그 요원의 다리다. 젠장… 젠장! 나는 그 몬스터를 단번에 갈라 죽였다.

“상원아!”

작전팀이 내려왔다가 죽은 요원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나는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잠복하고 있던 루가루 떼가 튀어나왔다.

- 크아악!

“아악!”

“붙어! 붙어! 떨어지지 마!”

작전팀을 향해 몬스터가 공격해 오자, 그들은 서로 몸을 붙이며 방어하려 들었고 나는 바로 스킬을 전개했다.

[그림자 밟기(Lv.99)]

사방을 점유하며 빗살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작전팀을 향해 덤비려는 루가루의 목을 쳐 내고 한야를 횡으로 휘둘렀다. 얼어붙은 칼날을 전개하자 검날이 새하얗게 반짝거렸다. 덤벼드는 놈들을 처리하자, 놈들도 나를 인식한 건지 틈을 엿보며 물러났다.

작전팀 팀장이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놈들은 인간형인 만큼 지능 수준도 생각보다 월등했다. 계속 죽어 나가니 내 주변에서 떨어진다. 

“추가 병력 지원 요청했습니다. 헌터들 내려올 겁니다! 잠시만 버티면 돼요.”

“생존자부터 찾아야죠.”

“지금 움직이면 놈들의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기척이 잡히는 놈들만 스물이 넘어요. 등급 차이가 나지 않아서, 저희 팀만으로는 요원합니다.”

“그럼 제가 움직이죠.”

그러자 팀장이 나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저희 임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각본은 생존자들이 남아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요원 한 명을 잃었습니다. 총 아홉 명. 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차해준 님.”

그는 이어링을 건들며 말했다. 나는 한야를 들고 경계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도 몬스터들이 이렇게 있는데, 생존자들이 있을까. 정희수는…. 정희수는 여기 있는 거 맞을까. 혹시…. 어두운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지만 나는 고개를 저을 틈도 없었다. 노란 눈을 빛내는 범죄자가 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까악!

그 위로 거대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순간 바람이 몰아치더니 좁고 낮은 지하 천장을 쓸어버리듯 날아온 그것이 요원 하나를 발톱으로 움켜쥐고 계단 위로 날아올랐다.

“으아악! 살려…!”

[상급 가고일입니다! 미달레인(시체독)이 어린 발톱을 주의하세요!]

가고일! 나는 바로 이형환위를 전개해 놈을 따라잡아 날아가려는 놈의 날개를 움켜잡았다. 천장이 높지 않아 다행이다. 그 생각을 하며 한야로 놈의 한쪽 날개를 베어 냈다. 날리는 깃털과 함께 찢어질 듯한 몬스터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흔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가고일의 발톱에 잡혀 있던 요원을 잡아당겨 떼어 냈다.

가고일은 더 올라가지 못하고 계단 밑으로 추락했다.

“허억… 헉….”

가고일에게 잡혔던 요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입고 있는 특수 작전복이 다 찢어져 있었다. 옷 사이로 피가 흐르고 검게 죽어 가는 피부가 보였다. 가고일의 발톱에 있는 독에 당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데리고 올라가야 돼요.”

이대로 두면 죽는다. 급하게 다가온 요원 하나가 다친 요원을 부축했다. 루가루들이 눈을 빛내며 점점 포위망을 좁히듯 다가오고 있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저놈들도 호흡에 독이 섞여 있다. 비틀거리는 요원들이 보였다. 다친 요원을 부축하는 요원에게 올라가 벗어나라고 눈짓했다.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상자를 데리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요원들이 계단 주위를 경계하며 위로 올라가는 요원의 걸음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루가루 한 명이 덤벼들었다. 가까이 있던 요원 하나가 움찔하며 군용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러나 고작 나이프로는 몬스터를 상대하기는 어렵다. 나는 요원을 내 뒤로 돌리면서 한야를 쳐올렸다. 루가루 하나가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진다.

나는 계단 바로 밑까지 다가온 요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신호하면 모두 위로 달리세요.”

“예?”

“하나.”

손목을 돌려 한야를 털어 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생각했다. 나는 강하다. 나는 누구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나는.

“둘.”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셋.”

그 순간 남아 있던 요원들이 빠르게 몸을 돌려 위로 뛰어 올라갔다.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기 시작한다. 나는 스킬을 전개했다.

[붙잡는 암흑(Lv.99)]

뛰어 오르던 몬스터들이 그대로 바닥에 들러붙었다. 몇 계단 위에 있던 나는 그대로 밑으로 뛰어내렸다.

[속삭이는 밤(Lv.99)]

세상이 온통 느리게 변한다. 회색으로 물든 시야로 슬로모션처럼 넘어지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멀리 빛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빛?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나는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도륙하기 시작했다.

❖ ❖ ❖

“괴성이 들리는데….”

“각본이 온 거 아닐까요?”

“구하러 온 건가!”

지하철 가장 앞 칸에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대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엔 불안함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착하게 버티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앞으로 향해 간다. 지하철 두 칸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게이트가 터질 때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고 출발한 지하철은 출발하자마자 멈춰 서야 했다. 그 덕분에 앞쪽은 무사했으나 뒤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그들은 가장 앞에서 틀어막고 있는 방패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의 맨 앞, 두 번째 칸의 문 앞엔 빛으로 환하게 물든 반투명한 방패가 몬스터를 막아 내며 빛을 뿌리고 있었다.

번쩍- 하면서 빛을 뿌린 방패가 투명하게 녹아든다. 

- 크르륵!

몬스터 한 마리가 방패가 없어지자 뛰어들었다. 그러자 불쑥 튀어나온 손이 몬스터의 목덜미를 붙잡고 바닥에 메쳤다.

- 콰앙!

던진 것뿐인데, 철제로 된 지하철 바닥이 움푹 패어 들었다. 몬스터를 해치운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을 노려봤다.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 있는 정희수였다.

정희수는 바닥에 내리꽂은 몬스터을 멀리 집어 던졌다.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이 재빠르게 쓰러진 몬스터를 감쌌다.

우걱우걱- 콰득.

씹어 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뒤에 있던 어린 남자애가 떨리는 손으로 정희수의 옷깃을 붙잡았다.

“혀엉…….”

정희수는 뒤돌아보며 웃었다.

“어 괜찮아. 형이 해치웠어.”

아이를 달래 주며 정희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안쪽에서 숨죽인 흐느낌과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사람들의 모습, 간절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희수는 다시 기합을 넣고, 방패를 펼쳤다.

[구호의 방패(Lv.24)]

정희수는 각성했다. 게이트가 터져 나오며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한 순간, 죽기 딱 직전에 말이다.

“…인생 진짜 알 수 없다.”

정희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은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정희수는 흔들리는 눈으로 괴성과 폭음이 터지는 안쪽을 바라봤다.

누구든, 제발, 빨리.

계속해서 몬스터를 홀로 상대하며 사람들을 지키려니 마력 소모가 막심했다. 더군다나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솔이도… 처음엔 이랬겠지. 동생을 잃을 뻔한 날, 한솔이가 떠올랐다. 아이를 지켜 주던 한 남자도.

정희수는 속으로 차해준을 불렀다. 자신의 롤 모델. 제 삶의 구원자. 동생을 살려 준 은인. 그래서,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혼자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 형도 절대 혼자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형….”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정희수는 간절히 구원자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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