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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66)화 (164/201)

격돌 


이번 소형 게이트 출현 지역은 광덕역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다고 했지만 거리가 있어 생각보다 늦었다. 장소엔 이미 각본과 길드 헌터들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사이렌 소리가 귀를 잠식하는 거 같았다. 지하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그리고 간신히 도망쳤지만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어둠의 포식을 해제하자 온몸을 감싸던 검은 연기가 증발하듯 천천히 사라졌다. 응급차와 구급대, 여러 사람들이 섞인 도로 속에서 정희수부터 찾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 서로 목 놓아 부르며 자신의 가족을 찾는 목소리는 물론이고, 터지는 울음소리 등 정신이 나갈 거 같은 기분이다.

계속 둘러보았지만 정희수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희수야. 너 설마 저 안에 있냐.

초조한 마음에 이를 악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진마하 그 새끼 때문에 자꾸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순간 울컥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각본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 가운데 우반희가 현장 지위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특수 부대 복장을 한 요원들이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우반희에게 다가갔다. 그는 갑자기 등 뒤에서 부르는 내 목소리에 움찔해서 뒤를 돌아봤다.

“빨리도 왔네.”

“멀리 있었어.”

“송류진이 함께 있었다고 하던데.”

“내가 먼저 출발했어. 상황은?”

“소형 게이트 개수 파악이 안 돼. 게이트 시스템이 먹통 된 순간 열린 거더라고. 지하철 전체 운행이 중지되었고 보다시피 각본이 민간인 대피시키고 있고, 길드 밀집 구역이라 헌터들이 빨리 달려와서 뚫으려고 하고 있는 상태야.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 안에서 안 올라와.”

우반희는 시계를 확인하며 벌써 10분이 지났다고 말했다.

“몬스터도 보이지 않아. 생존자들이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확인해 볼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우반희는 나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리며 일갈했다.

“넌 모르젠트 길드장 허락부터 받고 와.”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받고 움직였다고.”

나는 그의 걱정을 무시한 채 바로 들어가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우반희가 내 팔을 잡아채 뒤로 당겼다.

“허락 필요 없다니까?”

“내가 허락 못 하겠다.”

“안에 생존자가 얼마나 있는지도 측정 못 하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지금 가야 된다고.”

뒤에서 어이없다는 듯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넌 널 걱정하는 다른 사람들은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지?”

우반희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뭐라 한마디 하려는 순간 백루찬이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옅게 웃었다.

“누굴 걱정해.”

우반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어 보였다. 네 앞에 있는 나는 그 많은 게이트를 처리한 경력자이자 전문가, 사람들이 랭킹 1위라고 부르는 한야다.

자, 보라고 얼마나 믿음직스럽냐. 나는 등 뒤로 쏘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도. 기자단 한 무리는 이미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통제를 해 봐도 기자들이 내는 셔터 음은 연신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석여 귓가를 자극해 왔다.

“생존자 구출할게.”

“너는, 하….”

“살아 나올게. 소형 게이트? 아 찜 쪄 먹지.”

“장난 같냐, 이게.”

“심각한 거 누가 몰라. 내가 제일 잘 느껴져. 우 팀장님, 보내 주시죠. 소중한 인력 잡지 말고.”

어깨를 붙잡은 손을 한번 꽉 쥐었다 놓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반희는 더 이상 잡지 않았고, 앞을 막고 있던 요원들이 몸을 비켜 내가 들어갈 수 있게 길을 터 주었다.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나는 입구에 도착했다.

진입을 대기하고 있던 요원들이 나를 알아보더니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나도 꾸벅 숙이곤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혹시 따로 작전이 있습니까?”

“아니요. 일단 지금 진입 자체가 어렵습니다. 몬스터도 튀어나오질 않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 처음입니다. 지하에서 열린 게이트라니, 이제 이 세계에 안전한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소리가-”

약간 공황 상태에 놓인 듯 바짝 긴장한 얼굴로 당황해서 말하는 요원을 바라보다 그와 눈을 맞췄다.

“아뇨. 아니요. 안전합니다. 괜찮아요. 상황 가서 살펴보면 되죠. 걱정하지 마세요.”

“하, 하지만.”

“게이트가 열린 게 우연은 아닙니다. 너무 나중의 것까지 한 번에 몰아서 걱정하지 마세요. 작전이 없으면 같이 들어가요. 제가 앞장서도 될까요?”

한껏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던 작전팀 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최대한 믿음직스러워 보이도록 웃었다. 두려워하지 말자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엇이, 어떤 끔찍한 상황이 펼쳐져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우린 해야 한다.

나는 가장 앞에 서서 안에 먼지와 연기로 자욱한 안을 살펴보았다. 각성자의 시야로도 어두운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한 발씩 계단을 내려가며 한야를 꺼내 들었다. 희수야, 제발 무사해라. 금방 갈 테니까.

❖ ❖ ❖

어두워진 역사 안으로 들어가 개찰구를 넘어설 때까지 우리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라이트가 앞을 비추고 있지만 연기가 워낙 자욱해서이기도 했다. 발끝에 걸리는 게 있는지 걱정했으나, 그런 것도 없었다.

몬스터도 튀어나오고 있지 않는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작전 팀원이 건네준 라이트로 앞을 훑었다. 좀 더 안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작전 팀원 중 한 명이 양옆으로 퍼져서 주변을 확인하다가,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고 손짓했다. 팀장이 먼저 그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뻗자 나도 그 뒤를 쫓아 움직였다.

몬스터가 왜 하나도 보이지 않지? 게이트가 열렸는데…. 진마하가 무슨 수를 쓴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단을 한 발 내딛는 순간이었다.

순간 눈앞에 시스템창이 잔뜩 떠올랐다.

[게이트 ‘니벤나우 수용소’가 열렸습니다!]

[게이트 ‘로르도의 지하 감옥’이 열렸습니다!]

[게이트 ‘가고일 백작 부인의 무덤’이 열렸습니다!]

[경고! 다중 게이트 출현으로 위험도가 상승합니다. 주의하세요!]

[경고! 몬스터의 등급이 비약적으로 상승된 상태입니다. 주의하세요!

니벤나우 루가루 : B-A

익명의 범죄자 : B-A

가고일 : B-A]

“아악!”

순간이었다. 먼저 내려간 작전 요원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크릉, 하는 괴성과 함께 썩은 내가 코끝을 자극해 오는 것을 느낀 순간, 요원을 끌어안은, 누더기를 입은 회색 피부의 몬스터를 발견했다. 놈은 요원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니벤나우 루가루 인간형 몬스터입니다!]

[경고! 악취에 독 향이 섞여 있습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눈앞을 메우며 뜨는 시스템을 보고 소리쳤다.

“다들 호흡 조심해요!”

그대로 들고 있던 한야를 루가루를 향해 집어 던졌다.

- 쒜에엑!

파공성과 함께 한야가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었다. 몬스터는 검의 반동으로 인해 뒤로 날아갔지만, 제 손에 잡힌 요원을 끌고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실수다. 놈은 머리가 꿰뚫려도 죽지 않았다. 나는 검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린 듯한 밑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 ❖ ❖

모르젠트 길드장 사무실.

백루찬은 한창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제로 게이트가 터지면서 진마하의 세뇌에 당해 제대로 일하지 못했던 후폭풍이 뒤늦게 몰려오고 있는 상태였다.

창밖은 이미 깜깜해져서 어둠이 진득하게 내려앉았지만, 도시의 야경이 되살아나며 화려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백루찬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마를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종종 이렇게 집중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처럼 사방이 적막하고 고요할 때. 그러면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제로 게이트.

악마의 눈동자 너머로 넘어가던 한 사람의 잔상. 손에 어머니의 의수를 들고 황망한 얼굴로 자신을 보던 한 남자.

백루찬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차해준이 자신의 심상 세계에 들어왔을 때의 기억은 그에게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너를 구할 거야.’

단단하게 속삭이던 목소리. 따듯하게 뺨을 부여잡던 손. 흔들림 없던 눈동자. 모든 것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백루찬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만 해도 아랫배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건 이전의 슬픔 따위는 잊으라는 것처럼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백루찬은 그게 신기했다.

이제 다시 일해야지. 빨리 끝내고 형을 끌어안고 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백루찬은 다시 상체를 일으켜 데스크톱 앞에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 삐빅, 삐빅!

호출기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대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잠시 숨을 멈췄다.

울리는 것을 잠깐 동안 바라본 백루찬은 호출기를 집어 들어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소형 게이트가 열렸단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형은, 형은 어딨지?

맞아. 화보 촬영을 한 후 바탈이 기분 전환을 시키겠다며 에버랜드로 끌고 갔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순간 불안한 마음이 안심되었다.

차해준은 게이트와 멀리 있다.

백루찬은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할까 고민했다가 그래도 길드원들을 파견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그것부터 처리하며 움직였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안이라면, 피해자가 많을 게 분명했다. 백루찬은 호출기를 통해 공략팀들 대기를 명령했다.

“팀, A-48도 같이 가서 확인하고. 병동 비상 대기 인원도 함께 움직이도록 해요. 퇴근길이라면 민간인 부상자가 속출할 테니 손이 부족할 겁니다. 인근에서 출동한 길드는 어디 어디입니까?”

그렇게 되물으며 일일이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길드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홍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뛰어 들어왔다.

“희야. 다쳐.”

조용히 말하며 호출기를 내려놓은 백루찬을 보면서, 홍희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백루찬은, 이상하게 사방이 느려지는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한 발 한 발, 느리게 다가온 홍희가 천천히, 느리게 입을 연다. 

그리고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냈다.

“차해준 그곳으로 갔대, 루찬아. 그, 게이트…!”

백루찬은 제 손에 쥔 호출기를 응시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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