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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57)화 (156/201)

한참 동안 씩씩대던 나는 데이터 덩어리처럼 보이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진마하. 그는 마치 오랫동안 나를 지켜본 것처럼 말했고, 자신 때문에 내가 회귀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를 없앨 인물로 시스템이 나를 선택했다고.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차원 시스템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진마하를 없애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시스템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진마하를 죽이는 것이다.

[지금의 진마하는 오류 그 자체나 다름이 없어요. 차원 시스템에 관여하면서, 그 자신에게 설정된 값을 한계치까지 설정해 버렸어요. 우리가 그에게 그런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우리는 사실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왜 세계를 멸망시키려 할까요? 그에게 부여된 건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세계의 존속이었는데요.]

“…진마하에게 세계의 존속은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잠깐의 기억이 사라지면, 모두가 자신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 진마하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학교에서, 그는 같은 학번의 동기처럼 다가왔지만 결국 그를 기억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인간은 사회화의 동물이라고도 한다. 서로에게 서로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진마하는, 시스템에 의해, 필요해서 만들어졌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

외로움.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벌써부터 앞섰다. 타인에 대한 공감성이 유별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런 놈에게까지… 이해하려는 내 자신이 웃기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시스템은 무수히 많은 말줄임표를 붙이며 내 생각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나는 시스템을 쳐다봤다. 웃기지도 않은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스템을.

시스템이 이모티콘을 띄웠다. 모르겠다는 듯 턱을 괴는 이모티콘에서, 어깨를 으쓱하는 이모티콘으로 변했다.

[저희는 진마하를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 또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죠. 그것에 의문을 품은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에겐 그게 문제였을까요? 세계를 구성함에 있어 실체를 가지고 존재했다는 게 문제였을까요? 알 수 없어요. 그것은 ‘신의’ 영역이에요.]

“…네가 말하는 신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야. 솔직히 신이라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지켜보고만 있어?”

[신은 나서지 않아요. 그가 관장하는 차원은 무수히 많죠. 그만큼 맡은 생명도 어마어마하지요. 그래서 그는 관여할 수 없어요. 어느 한 생명체의 편을 들어 주면 공평하지 않으니까.]

“…모두에게 공평하자는 게 신의 뜻이야?”

[글쎄요. 하지만 신은 기적을 일으키죠. 당신이 기적처럼 되살아나 악마의 눈동자라는 거대 오류에서 사람들을 구한 것처럼요.]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인간이라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건가. 답답한 마음에 목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이제야 알려 주는 이유는 뭐야.”

[당신에게 부여한 종전의 기록을 거의 다 읽었기 때문이에요.]

시스템이 그렇게 말하자, 눈앞엔 매번 보았던 거대한 책이 떠올랐다. 페이지가 팔랑거리며 계속해서 넘어갔다.

[이 차원을 유지시키기 위한 메인 캐릭터를 지켜 냈으니까, 우리는 당신이 ‘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 거죠!⸜(。˃ ᵕ ˂ )⸝]

둥근 이모티콘이 반짝이를 뿌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랍니다. 상위 차원이 이 차원을 노리고 간섭을 시작하면 더 이상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돼요. 우리는 숨어야 하고, 차원 보호 시스템을 다시 돌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류를 일으키는 진마하를 없애야 해요.]

시스템은,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아이를 없애라는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었다. 나열되는 글자들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프로그래밍 된 필요의 아이.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를 없애야 한다고 아주 확고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요. 배우지 않아요. 필요의 아이를 통해 그것을 입력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어 버렸으니까요.]

어쩐지 조금 슬프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시스템이 우울하게 잠긴 내 표정을 보고 이모티콘을 띄워 손가락으로 엑스를 만들어 보였다.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이 감정이 있기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뿐이에요. 공감하는 것은 생물의 특권이지 시스템인 우리의 권한은 아니에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아요.]

“…알았어. 다른 존재라는 거 알았다고.”

[하지만, 이래서 당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겠어요. 조금 기뻐요. 우리를 생각해 준다는 것에서. 당신의 마음은 우리에게 ‘정’을 붙인 거죠?]

시스템이 또다시 꽃가루를 뿌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기쁘다는 게 무엇인지는 알 거 같아요. 즐거운 감정은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허락되었어요.]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

[고마워요.]

나는 웃는 이모티콘을 잠시 바라보다, 물었다.

“그러면 끝을 내면, 어떻게 돼?”

[차원 간섭이 줄어드는 세상이 될 거예요! 다만… 시스템상 오류가 한 번씩은 일어나고, 다중 차원에서 이 차원에 대한 공격은 있을 수 있어요. 게이트가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지금처럼 무질서하게 생기지는 않을 거고. 그 위험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차원이 멸망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멸망하지 않는다는 거지?”

[네! 지금은 시스템이 오류가 나서 아무런 방비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하지만 클리어런스가 끝을 보게 된다면, 종전의 기록을 모두 완성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계속 이 차원을 관리하며 차원을 이어 나갈 수 있어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자꾸 어렵게 빙빙 돌려 말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은 멸망을 막는 것이었다. 멸망을 막는 방법은 진마하를 막는 거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진마하를 찾아서, 그를 죽여야 하는 거야?

솔직히 좋은 감정이 있는 놈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불쌍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니.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나는 어렸을 때 송류진이라도 옆에 있어 줬고 그 작은 온기에 힘입어 버텼다. 내 손으로 자격지심과 같은 마음 때문에 쳐 내긴 했지만…. 그것으로 버텼다.

진마하는 그런 존재도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면 세계의 일들이.

아직도… 손에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게이트에 빨려들어 가기 전 잡아챘던 김세영의 의수가. 돌아보던 눈빛이. 그 얼굴이. 무너지던 백루찬의… 얼굴이.

그것은 또 다른 기억으로 내게 새겨졌다.

[마음을 굳게 먹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시스템을 쳐다봤다.

[불필요한 희생은 이제 없어야 해요. 신이 정한 삶의 길은 제각기 다르지만, 진마하가 이끄는 검은해와 같은 죽음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클리어런스를 믿어요.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

“…아까는 데이터 수치라며.”

[ψ(。。)…그것도 맞지만요. 사실 나는 몰라요!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클리어런스는 알잖아요.]

나는 픽 웃고 말았다. 맞다. 시스템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게 얼마나 개죽음이었는지. 진마하가 자신을 알아 달라며 얼마나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동정만 할 생각은 없었다. 해결할 생각이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저지른 죗값은 치러야지.

나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그것을 지킬 거고… 진마하가 일으키는 오류를 막을 거다.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던 이모티콘이 멈춰서 방긋 웃었다.

[클리어런스는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선택했으니까.]

“너희가 선택해서가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부정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모티콘 앞에 가까이 다가가자 이모티콘이 물음표를 띄우며 나를 쳐다봤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내가 결정한 거야. 내 소중한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뒤늦게 생긴, 아니 뒤늦게 깨달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하고 말 것이다.

[거기엔 ‘우리’도 포함되어 있나요?]

떠오르는 글자들에,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그래, 포함되어 있어.”

[ ✧*。٩(ˊᗜˋ*)و✧*。 ] 

꽃가루가 휘휘 날린다. 이모티콘이 정신없이 내 주변을 돌다가, 멈춰 섰다.

[기뻐요! 기뻐요! 당신이라면 모든 게 가능해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도울 거예요!]

“그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줘.”

진마하는 너무 강하다. 놈은 게이트도 마음대로 열 수 있다. 내가 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눈앞에 뜬 종전의 기록 페이지가 또다시 넘어갔다. 시스템이 말했다.

[방법은, 이 안에 있어요. 보여 줄게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조각난 단면을. 보고서, 이루어 주세요. 바꿔 주세요. 당신을 믿어요.]

[클리어런스, ‘차해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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