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메인 캐릭터
조하영은 헤드폰을 귀에 꽂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정을 걸었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어서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세상은 어수선했지만 종강한 캠퍼스는 고요했다. 학생들이 많이 빠져도 아직 남아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도 조하영처럼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교정을 지나고 있었다.
“아씨, 편한데 불편하네.”
조하영은 낮게 투덜거렸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 밤새도록 뉴스를 지켜보았더니 졸리기까지 했다. 하품을 쩍 하던 조하영은 찝찝한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가약동 게이트 특집으로 연달아 방송되었던 뉴스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한국이 이래서 문제인 게, 사건 사고가 크게 생기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취재하고 관련된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시민들에게 공유한다. 원치 않는 피해자 사진이나, 굳이 자세히는 원치 않았던 어떤 사이비 조직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우선 제대로 추모부터 정리하면 안 되는 건가.
기자들은 장례식장까지 따라다녔고, 대부분 채널에선 특집이라며 제 친구에 대한 내용을 대서특필하여 메인으로 보도했다.
덕분에 그놈을 찬양하는 놈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과 제 친구 놈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과거사부터 지금까지 줄줄이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보게 되었다.
특히 명동 게이트 ‘악마의 눈동자’ 때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조하영은 차해준과 처음 만나서 조별 과제를 할 때 악마의 눈동자 앞으로 끌고 갔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사실은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자식이, 좀 티라도 내지 그랬냐. 조하영은 괜히 툴툴거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하늘이 너무 파랬고 바람이 불어왔다. 더웠지만 날이 좋았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켜 낸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조금이라도 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하영은 교내 정원을 지나며 과사로 향했다. 방학이 되었지만 학교에 나온 까닭은 방학 동안 전공 교수님의 논문 발표를 돕기 위해서였다.
“괜히 돕는다고 했나…. 귀찮다.”
솔직히 그냥 집에서 자고 싶었다. 이제 졸업하고 취직하면 쉬는 날도 없을 텐데. 마지막 휴가라고 생각하면 더 아까웠다. 그래도 취직 때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조하영은 좋게 마음을 먹자고 생각하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다.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예 멈춰 서서 감탄하는 학생도 있었다.
‘뭐야.’
조하영은 인상을 쓰며 주변을 살피다 머리를 긁적였다. 끼고 있던 헤드셋을 내리자 학생들 목소리가 들렸다.
“와, 차…다.”
“한야 아냐. 학교 다니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물은 처음 봐.”
“오늘 오길 잘했다. 대박 겁나 신기해.”
“와씨… 너무 잘생겼는데.”
술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조하영은 코웃음을 치곤 뒤를 돌아봤다. 제 친구가 자신만큼 느긋하게 걸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어, 아니 잠깐 온 거라니까. 금방 가.”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데도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건지 태연하게 걷는 녀석은 옷도 참 평소답게 프리하게도 입었다. 자신 같으면 사람들이 의식돼서 꾸미기라도 할 텐데, 저 녀석은 변함이 없었다.
오버 핏 사이즈 남방을 대충 걸치고 어깨 한쪽엔 검은 가방이 걸려 있다. 청바지에 가볍게 입었음에도 무섭게 잘 어울리고, 몸매가 잘빠져서인지 모델같이 보였다. 이 학교에 워낙 각성자들도 많고 미남 미녀도 많다지만, 저런 느낌을 내며 저렇게 눈에 띄는 인간은 저놈 하나뿐일 거다. 조하영은 제 친구를 감상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교수님이 잘 있냐고, 얘기 좀 하자고 하셔서. 다음 학기 문제도 있고. 아, 진짜 금방 간다니까. 너도 자리 비웠으면서 꼭 나한테만 그런다? 아, 왜. 한솔이가 나 찾아?”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부드럽고, 까만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얼굴에 채도 높은 입술은 창백한 안색을 풍겼지만 음기가 어려 있어서 더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시선을 잡아끈다 이거다. 그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약간의 그늘짐도 말이다.
조하영은 학교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쏠린 줄 모르고 걷는 차해준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냅다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억-.”
긴장도 안 하고 있었던 건지 다가오는 줄 뻔히 알아챘을 텐테도 일반인에게 얻어맞아 준다. 그것도 한야이면서. 조하영은 심술궂은 얼굴로 차해준을 쳐다봤다. 차해준이 휙 고개를 돌리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 넌 줄 알았다 조하영. 인사 좀 폭력적으로 하지 말라고!”
제 친구는 또 세상을 구하고도 변한 게 없다.
그때도 그랬다. 자신과 김수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한걸음에 달려와서 몬스터를 막고 게이트를 막아 냈다. 그 전에도….
신기한 새끼.
조하영은 씩 웃었다.
“이게 시험 끝나고 종강할 때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제 나타나? 죽고 싶냐? 누가 잠수 타래!”
“잠수는 무슨. 일이 많았다. 누구랑 달리 개바쁜 사람이에요, 내가.”
“누구랑 달리이? 나도 개바쁘거든? 나도 누구랑 달리 바쁘게 살았거든?”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시겠지. 한일고로 부임할 예정이라며.”
“어떻게 알았어? 연락도 안 받았으면서.”
“그건 사정이… 아무튼 조하영. 축하해. 드디어 정식으로 교사가 되는구나. 네가 맡을 아이들의 앞날이… 아악-! 왜 꼬집어!”
“하하하, 말을 이쁘게 안 하는 친구는 매가 약이라서.”
“아이씨, 밤톨만 한 게…. 아무튼 잘됐어. 애들 잘 부탁해.”
차해준은 쑥스럽게 말을 하고는 조하영의 어깨를 툭 쳤다. 조하영은 킥킥 웃었다.
“흐흐, 부끄러워하긴. 그런데 싸부, 나 각성은 언제 시켜 줄 거야?”
“…이제 그만 포기할래?”
제 친구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좋았다. 이런 녀석이라서. 조하영은 차해준에게 요목조목 시비를 걸면서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얌전히 받아 주는 녀석은 착해 빠져 가지고 좀 걱정되긴 했다. 험난한 헌터 일을 이 녀석이 계속해 갈 수 있을까…. 뭐 쓸데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만 매달려, 무거워!”
“깃털 같은 이 몸에 무게가 어디 있느냐!”
학교에 낭랑한 웃음소리와 투덜대는 차해준의 목소리가 퍼졌다. 학교 오길 잘했다. 얼굴 보기 힘든 제 친구가 멀쩡한 것도 눈으로 확인하고 말이다. 조하영은 기분 좋게 웃었다.
❖ ❖ ❖
게이트가 무사히 닫히고 난 이후 나는 꽤나 바쁘게 일상을 보내야 했다. 인터뷰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건 예사고, 방송국 섭외 요청과 각성자 관리 본부의 소환에도 응해야 했고, 그 밖에 등등….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물론 그동안 밀린 길드 일과 가약동 뒤처리 때문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백루찬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바쁘긴 바빴다.
게이트를 해결하고 돌아온 후, 백루찬과 조용히 마주해서 얘기나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백루찬은 홍희와 함께 일하느라 정신없었다. 공식 인터뷰나 청와대 들러서 대통령과 비밀 대담을 하는 등. 별의별 일을 다 했다. 그리고… 다해 길드 수습도 도와주고. 물론 그 일은 나도 발 벗고 나서서 돕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있긴 했다.
그리고 또 미뤄 둘 수 없는 건 바탈이 한국까지 날아온 그 이유. 닫히지 않는 게이트에 관한 일이었다. 다행히 가약동 게이트 안에서 보낸 시간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서 시간은 아직 꽤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아, 뭔 일이 쌓이기만 하는 것 같냐.”
나는 한숨을 삼키며 모르젠트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탔다. 가약동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었을 즈음 나는 집에서 짐을 챙겨 아예 백루찬의 펜트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새벽이도 그렇고 한솔이도 길드 옆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기도 했고, 백루찬도 이곳에 있으니까. 나 혼자 이들과 떨어져 있는 게 불안해서 내 스스로 온 거였다.
‘같이 살자. 방 한 칸만 빌려줘라.’
그렇게 대뜸 던졌을 때 백루찬이 묘한 얼굴로 실실 웃어서 조금 기분이 이상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걱정이 좀 되어야 말이지.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불안한 건 나뿐인지 백루찬은 별말 없었지만… 뭐.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에 대한 내 마음이 남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솔직히 더 붙어 있고 싶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녀석을 내가 옆에서 계속 잡아 주고 싶달까…. 으, 이런 생각 하는 것도 참 낯간지럽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백루찬 옆에 붙어 있기로 했다. 약속했으니까 지켜야지. 함께하자고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녀석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물론 지금 백루찬은 너무 바빠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조용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왜 이제 와요.”
“어….”
백루찬이 소파에 예의 늘어진 자세로 인사를 해 왔다. 이상하게 살짝 긴장이 된 탓에 녀석을 빤히 보다가 마른침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거실로 들어갔다. 은은하게 웃고 있는 백루찬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