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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52)화 (151/201)

- 마력 파장 이상 발생! 저, 저거… 닫히는 건가?

- 게이트가 닫힙니다!

- 우와악! 닫힌다!

이어링이 시끄럽게 울리는 통에 송류진은 가르덴의 송곳을 붙잡고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착지했다. 고개를 돌리자 파랗게 일렁거리며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빛나던 게이트가 옅은 빛무리를 뿌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송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차해준이… 정말 성공한 건가.

- ----!!

그러나 곧 들리는 괴성에 고개를 돌렸다. 잠깐 한눈을 팔았지만, 그의 앞엔 아직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살아 있었다. 방금 송류진과 합세한 바탈 루스번의 일격에 쓰러졌던 놈은 거대하게 파인 크레이터에서 몸을 일으켰다. 웅크렸던 놈이 일어나자 몸 곳곳의 피부가 갈라지며 새로운 몸체가 또다시 드러났다.

“X발 몇 번째야, 진짜!”

반대편에 있던 카리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거인은 지금 계속해서 뱀이 탈피를 하듯 피부를 벗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피부색을 보면 이것도 점차 끝날 거라는 조짐이 보였다. 탁한 회색빛에서 점점 더 연해지고 있었다. 강철같이 보이던 몸체는 어느새 동물의 살결같이 거칠고 울퉁불퉁하게 변해 있었다.

거인이 게이트가 닫히는 것에 위협을 느꼈는지, 아까보다 더 거칠게 발광하며 사방에 음파를 쏘아 댔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이 있는 곳부터 반경 1킬로 안에 쳐진 천새벽의 결계에 막혀 튕겨 나갔다. 결계는 점점 거인과 가까이 좁혀 들며 놈을 조이고 있었다.

“Hey, hey, hey, you’re gonna die!”

그때 부서진 도로를 달리며 나타난 바탈이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거인의 머리 위로 둥근 원반형 모양의 구체가 떠올랐다. 그것이 크기를 키워 가자 거인이 피하려 움직였지만 바탈이 한발 빨리 스킬을 시전했다. 구체는 선명하게 무기질적인 회색으로 일렁거리다가 파앗- 하며 구형이 사라지고 그대로 거인을 덮쳤다.

- ----!

거인이 무어라 소리치며 그것에 짓눌려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바탈의 능력은 일정 공간의 중력을 다룰 수 있는 거였다. 그의 덕분에 여러 번 거인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지만, 아쉽게도 거인은 탈피를 번복하며 되살아났다.

고개를 처박고 몸을 비틀던 거인이 바탈의 스킬에 괴로워하다가 그것을 깨고 벌떡 일어났다. 놈이 거대한 몸을 움직여 바탈에게 쏘아졌다.

“shit!!”

바탈이 짜증스럽게 소리치며 거인을 피해 옆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 바탈을 송류진이 목덜미를 낚아채 튀어올랐다. 그 밑으로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콰앙!

이미 가루가 되어 버린 건물과 도로가 다시 한번 깊이 파이며 먼지가 날렸다. 송류진이 낚아챈 바탈을 좀 더 떨어진 곳에 내려놓자 그가 소리쳤다.

“나도 알아서 피해!”

“예, 예.”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죽지 않는 거인 놈에게 단단히 짜증이 났는지 계속 신경질을 부리는 바탈을 송류진은 가볍게 무시했다. 저 남자는 지금같이 중요하고 다급한 순간에서도 가벼움이 한도를 넘어섰다. 송류진은 다시 가르덴의 송곳을 들어 올리며 몸을 날리기 위해 준비했다. 살짝 무릎을 굽혀 튀어오르기 전이었다. 갑자기 주변을 감싸고 있던 천새벽의 결계가 파앗-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해제되었다.

송류진은 흠칫 놀라 천새벽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잠깐 당혹스러워할 때, 거인의 반경으로 좀 더 밀착된 결계가 다시 펼쳐졌다. 마치 거인을 네모난 틀 안에 가둔 것 같았다.

뭐지? 송류진은 작전이 바뀌었나 싶어 이어링을 꾹 눌렀다. 그러나 이어링 속에서는 이상한 탄성만이 들려왔다.

- 와.

- 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송류진은 눈을 크게 홉뜨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거인을 감싼 좁은 결계 위로 누군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기다란 검을 든 남자였다. 송류진은 헛숨을 삼켰다.

그가 거인 위로 내리꽂히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었다. 새하얀 칼날이 거인의 위로 빗살처럼 떨어진다. 하지만, 검이 가르는 것은 공간인 것처럼, 궤적을 쫓아 더욱더 어두운 암흑이 터져 나왔다.

남자는 일격에 거인을 가르고 바닥에 착지했다. 천새벽의 결계가 남자가 뿌린 암흑을 가두었고 그 암흑은 금세 거인을 잡아먹듯 감쌌다.

그리고 곧이어, 터졌다.

- ------!!!

엄청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결계를 뚫고 나오는 괴성은… 고통에 찬 비명 소리였다.

그 뒤로 어두운 하늘에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서 황금빛 거대한 창이 거인의 위로 내리꽂혔다.

제우스의 창. 저것이 무엇인지 송류진은 알고 있었다. 백루찬의 스킬이다.

스킬의 영향으로 대지가 부르르 떨며 울렸다. 그것을 느끼면서 송류진은 가르덴의 송곳을 바닥에 꽂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준 씨….”

저 멀리서 한야를 들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였다. 게이트가 닫혔을 때 무사하길 바랐건만, 그는 정말로 무사했다. 더불어 백루찬도.

“이 자식들아! 누가 이제야 처오래!”

카리나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후다닥 달려와 차해준의 등짝을 갈기고, 어느새 옆에 도착한 백루찬의 뺨을 꼬집어 당겼다. 급박하고 처참한 전투가 이어지던 방금의 상황과 다르게 이상하게 평온한 모습을 보고, 송류진은 그제야 상황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가약동에 열린 제로(0)급 게이트는 최소한의 피해만 남긴 채 닫혔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송류진은 잠시 숨을 고르곤 차해준을 향해 뛰어갔다. 서서히 벅찬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같이 가! 아아악! 허니! 나 열심히 했어!”

그리고 그 뒤를 바탈이 쫓아갔다.

❖ ❖ ❖

가약동 일대는 거인의 난동으로 인해 완전히 부셔졌다. 사방이 잔해로 뒤덮여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이전에 게이트가 터져 무너졌던 곳이라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피해는 검은해 신도들과 교법사, 그리고 소수의 다해 길드원들이 다친 것이 전부였다.

제로급 게이트가 터졌음에도 이 정도로 끝난 건 정말 천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남빛으로 물든 새벽의 시간. 여러 대의 조명이 가약동을 비추며 어두운 하늘을 밝혔다. 그리고 곧 그곳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정말 몇 달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 동료들을 마주했다.

“뒤진 줄 알았다, 새끼야! 누가 그렇게 시간 끌래! 못 버티겠다 싶으면 냉큼 튀어나와야지, 어!”

카리나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터질 것 같은 고막을 한 손으로 막고 변명했다.

“시간 끈 것도 아니고, 아니 근데 제가 튀어나오면 더 큰일이잖아요! 잘한 거잖아!”

“뭘 잘했다고 소리쳐!”

“잘하긴 했- 아닙니다.”

잘한 거 아니야?! 억울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무섭게 노려보는 카리나의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시선에 시원함과 걱정이 녹아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졌다. 우리 이렇게 친한 사이였나요? 농담하고 싶었지만 서슬 퍼렇게 쳐다보니 입도 못 뗐다.

옆에서 볼때기를 잡힌 채 아야야거리는 백루찬을 보니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멀뚱하니 서서 뺨이 잡혀 눈을 껌벅거리고 있으니 웃겼다.

“넌 인마, 어디 처박혔나 했더니 게이트에 있었던 거였어? 아오 그래, 걱정한 내가 빙딱이지. 이 새끼들 다 S급인데 누가 누굴 걱정해! 근데 연락을 하고, 들어갔어야, 엉? 걱정을, 안 했겠지. 그래, 안 그래?”

뺨을 비틀며 중얼거리는 말에 백루찬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반항했다.

“일일이 보고하는 사이였어요, 우리가? 그리고 외간남자 몸 함부로 만지고 그러는 거… 아야.”

“닥쳐라.”

카리나가 으르렁거리고, 같이 싸우고 있던 송류진과 바탈도 다가왔다. 검댕을 잔뜩 묻히고 먼지를 뒤집어쓴 꼴이… 고생이 많았겠구나 싶었다.

“해준 씨. 괜찮은 거 맞아요?”

빠르게 다가와 내 몸을 살피며 어깨를 짚자 나도 송류진이 어디 다친 건 아닌지 살펴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너, 아니, 류진 씨는 괜찮습니까?”

“손은 떼고 말하세요.”

물어보는데 백루찬이 내 팔뚝을 매만지던 송류진의 손을 거칠게 쳐 냈다. 송류진이 당황하며 잠깐 멈칫했다. 백루찬의 표정은 뾰로통했는데, 물론 내 눈이 삐어서 지금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손을 쳐 내고 내 옆에 선 백루찬이 내 어깨를 툭툭 털었다. 뭐야, 귀엽게 뭐 하냐, 너.

내가 피식 웃자, 당황해서 눈만 끔벅거리던 송류진이 그제야 백루찬에게도 물었다.

“백루찬 씨도 괜찮은 거 맞습니까?”

“확인하려고 하는 거예요? 괜찮네요.”

“예….”

“허니이!!”

그리고 그때 빠르게 뛰어온 바탈이 후웅- 몸을 날려 나에게 덮쳐들었다.

“으억!”

“왜 이제 왔어!”

백루찬이 놈의 목덜미를 잡아 세우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같이 뒤로 넘어져 구를 뻔했다. 바탈은 찡찡거리면서 나를 계속 끌어안으려 애를 썼고, 백루찬이 짜증 어린 얼굴로 녀석을 떼어 내려 애를 썼다. 그 광경이… 다들 오버하면서도 신나 보이고 또 무사해 보여서 안도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치겠다. 왜 이렇게 반갑냐.

“다들 진짜 고생하셨네요.”

파하하 웃으면서, 바탈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멀리서 달려오는 소년을 발견했다. 새벽이다. 새벽이도 와 있었구나. 하긴 S급 결계사를 그냥 두기엔 사안이 너무 컸고, 새벽이의 능력은 활용성이 높았다.

“새벽아!”

내가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자, 울먹이는 얼굴로 멀찍이 멈춰 서서 머뭇거리던 새벽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품에 폭 안겼다. 목덜미에 고개를 박고 옷자락을 꽉 붙잡은 새벽이를 나도 꽉 껴안아 주었다.

“고생했어. 처음 겪었지? 이런 일. 잘해 줬어. 진짜 고맙다.”

“선생님… 진짜… 진짜… 저는….”

“응, 응. 그래.”

“절대… 혼자 보내지 않을 거예요.”

새벽이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애타는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열심히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저 진짜… 강해져서 쌤 혼자 안 둘 거예요…. 혼자 게이트 들어가고, 그런 거 이제 하지 마세요…. 네? 갈 거면 어디든 저랑 같이 가요… 흑….”

“알았어. 알았어. 절대 혼자 안 갈게. 괜찮아.”

“흐윽….”

결국 울음이 터진 새벽이가 엉엉 울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그만큼 걱정했던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니 다 된 거 아니겠니. 어휴, 아직 애다, 애야. 열심히 보듬어 주는데, 조명이 잔뜩 켜져 있는 가약동을 둘러싼 바리케이드 쪽에서, 이쪽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는 인영이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 멍청이들아!!”

홍희였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달려온 홍희는 폴짝 뛰어서 나와 백루찬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물론 몸집이 훨씬 작아 그냥 매달리는 꼴이 되었지만. 홍희가 어린애처럼 웅얼거리면서 펑펑 울었다.

“다 죽은 줄 알았어! 시체도 못 찾고! 길드 망하고! 남은 돈 내가 다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는데 게이트는 미쳤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무서웠는데! 어! 흐어어엉!”

아니… 거기까지 생각했던 거냐. 너 너무 간 거 아냐…. 투덜대면서 우는 홍희를 끌어안았다. 백루찬도, 나와 눈을 맞추다가 피식 웃고는 같이 홍희를 안아 줬다.

“희야, 안 죽었으니까 됐어. 그만 울어.”

“그게 말이야, 방구야!”

얼마나 걱정했을까. 그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웃었다.

마음 쓰이던 홍희까지 다시 만나자 이 모든 게 제대로 실감이 났다. 정말 돌아왔다. 꿈과 꿈 사이에서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원래 있어야 할 현실로 말이다.

밝혀야 할 일들이 많았고 원인이었던 진마하도 찾지 못했으나, 가약동 제로 게이트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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