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명동 반경 5km 밖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전광판이란 전광판은 모두 붉은색으로 알림을 띄웠다. 명동 한복판, 빌딩 크기만큼 커다란 검은 게이트는 아직 진입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크기가 큰 만큼 뜸을 들이는 시간도 길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일대에는 벌써 각성자 관리 본부에서 헌터들을 파견했다.
일대 반경 5킬로는 물론 아마 이쪽 지역구는 모조리 대피 중일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다들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도로엔 버려진 차들로 인해 거리가 꽉 막혔다.
게이트를 둥글게 둘러싼 마력 파장이 요사한 빛을 뿜어내며 사람들의 불안을 잠식했다.
나는 한쪽 귀를 틀어막았다. 명동 안으로 들어서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댔기 때문에 고막이 나갈 것 같았다.
“흩어져서 찾아볼까?”
“지금 복잡한데 흩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
“뭐라고?”
“복잡-한데!”
“아이 씨 안 들려!”
“그러다 또 게이트 만나면 혼자 힘으로 빠르게 해결 못 해!”
흩어지자는 홍희를 말리고 일단 상황을 파악했다. 활기찼던 도심 속 사람들은 없었다. 조용해진 거리엔 어느덧 각성자들만이 보였다.
“재네, 레전더리 길드인데.”
홍희가 게이트와 오백 미터 정도 떨어진 건물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소형 게이트를 처리하고 온 건지 몸에 몬스터 피가 묻어 있었다.
제로급 게이트이니 웬만하면 이 일대를 벗어나는 게 좋지만 거대 게이트가 일어나면 주변 지역에 다발적으로 소형 게이트들이 열린다. 호명대에서 마주했던 통곡의 벽 게이트처럼.
백루찬은 다른 쪽을 가리켰다.
“저긴 루미너스, K헌터 연합, 다해, 다 보이는군.”
“모이는 건 좋은데… 이때껏 저만한 크기의 게이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거 과연 닫을 수는 있을까?”
홍희가 걱정되는 어조로 말하자 백루찬이 그녀의 어깨를 꾹 잡고 말했다.
“홍희 넌 엄마부터 찾고. 찾으면 데리고 여길 먼저 빠져나가.”
“그런 건 아드님이 하셔야 하겠죠.”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해.”
“여사님이 잘도 가시겠다!”
“희야.”
백루찬이 조용히 홍희와 눈을 마주치자 홍희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내가 생각할 때 홍희만큼 백루찬 얼굴에 약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눈 마주치니 다 들어주잖아. 그러면서 매번 남들한테 뭐라 한다니까.
나는 혼자 투덜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둘의 말대로, 게이트 주변은 온갖 길드가 명동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는 제로급(0). 저들 중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차해준’은… 잘하고 있겠지. 나는 조금씩 떨리는 손끝을 응시했다. 발작이라도 할 것처럼 울렁거리는 이유는 악마의 눈동자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닫혔다는 걸 알기 때문일 테다. 이건 트라우마였다. 다시 반복되는 삶과 죽음 앞에 반딧불처럼 뛰어드는 건 많은 용기를 요구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지금의 목표를 떠올렸다.
김세영은 어디 있을까. 결국 세 개의 대학교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진마하는 남은 신도들을 데리고 어디로 숨어든 걸까. 게이트를 본인이 열었다고 했으니 이 주변에 있을 텐데.
확실한 건, 진마하를 포함한 검은해는 이곳에 나타난다는 거다. 가장 크게 난 일반인들의 피해는 검은해가 작정하고 모은 신도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진마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동시킨 걸까? 눈에 띄지도 않게.
그때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리와 좀 떨어진 도로 맞은편에서, 아이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둘은 아이가 느릿하게 걷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은-
나는 눈을 홉떴다. 이상하다. 그것을 느끼자마자 땅을 박차고 그들을 향해 뛰었다.
여성은 멍한 눈으로 게이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팔다리는 일전에 본 신도들과 똑같이 흐느적거렸다. 곁에 있던 아이가 엉엉 울었다.
“엄마아…! 왜 그래에…! 제발 정신 차려!”
그 목소리에 백루찬의 시선도 그쪽으로 꽂혔다. 그러나 그 순간, 쿵- 하고, 지면을 강하게 내리누르는 불길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잠잠하던 마력 파장이 요란하게 몸을 부풀리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게 칠한 듯한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왔다.
둥글게 몸이 말린, 그것은 언뜻 보면 공 벌레 같기도 했으나, 놈이 데구르르 굴렀다가 움직임을 멈추자,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철갑으로 온몸을 뒤덮은 괴물이, 기지개를 켜듯 몸을 펴며 일어섰다.
- ----!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자 공격적인 음파가 사방을 강타했다. 앞에 있던 건물의 외벽이 깨져 나가고 잔해가 사방에 뿌려졌다. 가로등이 뽑힐 것처럼 휘어지고, 앞서 나간, 아이와 여성은 금방이라도 그것에 덮쳐져 짓눌릴 것 같았다.
“안 돼…!”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건물 잔해가 아이와 여성이 있는 방향으로 쇄도했다. 급하게 한야를 빼 들어 그들 앞을 막아섰다.
스릉-
검날이 날카로운 빛을 내며 시멘트 덩어리를 갈랐다.
“으아…!”
아이가 벌게진 눈으로 몸을 움츠렸다. 여성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멍한 눈으로 게이트를 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아!”
아이가 말려도 질질 끌고 가는 여성을 붙잡아 팔목을 확인했다. 역시 실 팔찌를 끼고 있다. 진마하 이 개새끼…!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게이트에 뛰어들게 만든 거냐고!
먼저 팔찌부터 끊어 낸 나는 여자와 아이를 끌어안고 어둠의 포식을 전개했다.
뒤로 순식간에 물러나는 순간, 우리가 있던 자리에 몬스터가 쿠웅- 떨어졌다. 놈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차량들을 짓밟으며 포효했다.
미친 듯이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귀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게이트에선 몬스터들이 하나둘 넘어오기 시작했다. 단단한 비늘을 둘러쓴 몸체, 커다란 체격, 비정상적으로 작은 얼굴에 큰 눈.
[게이트 ‘악마의 눈동자’에서 용인족이 출현하였습니다!]
용인족, 나탈리스가 드래곤이었으니 휘하 몬스터도 다 그런 놈들이었다. 나는 모녀를 도로 구석 골목에 내려 주었다. 여자가 실 풀린 인형처럼 고꾸라지고 아이가 엉엉 울었다.
“친구야, 일단 여기 숨어 있어. 엄마 깨어나시면 도망치는데, 지금은 절대 나오지 마.”
철창으로 된 담벼락을 뜯어내 대충 둥글게 만들어 그들 위를 감쌌다. 위에서 뭐가 떨어져도 공간은 확보할 수 있도록. 되도록 멀리 보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어둠의 포식을 써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홍희와 백루찬은 몬스터와 이미 싸우고 있었다. 반파되는 도로에 흐느적거리는 일반인들이 여럿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괴물이 튀어나온 것은 보이지 않는지 멍한 눈빛으로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모여든 여러 길드들도 저마다 몬스터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갑자기 출현한 일반인들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용인족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강철 같은 비늘에 쇠붙이들이 모조리 튕겨 나간다. 멀리서 조준하여 날린 파이어 볼이 용인족과 부딪치자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마법 저항까지 있는 놈들이었다. 그걸 보자 숨을 들이켜며 도망치려는 각성자들도 속출했다.
“희야!”
백루찬이 소리치자 홍희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건틀렛에 붉은색으로 마력이 맺히고, 홍희는 그것을 튀어나온 용인족 위에 내리꽂았다.
- 콰앙!!
폭발음이 들리며 부딪쳤지만 튕겨 나간 건 홍희였다. 백루찬이 연속으로 낙뢰를 떨어트렸지만 놈들은 그것조차 상쇄해 버렸다.
게이트에서 더욱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놈들은 다양한 생김새와 크기로 등장했다. 커다란 곰 같은 놈은 몸을 굴려 사차선 도로 한 곳을 아예 밀어 버렸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끄아악!”
“살려, 살려 줘!”
“도망쳐!”
사방에서 아우성과 비명이 터졌다. 짙고 매캐한 연기가 오르고, 높게 쌓아 올린 빌딩을 깨부수는 용인족 거인 때문에 한쪽 블록이 완전히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베어지지 않는 놈들의 몸에, 한야는 아주 잘 박혔다. 나는 백루찬에게 소리쳤다.
“김세영 씨가 주변에 있을 거야! 지금 나온 사람들 중에서 찾아! 홍희도! 전방 어그로는 내가 끌고 있을 테니까 빨리 움직여!”
놈들은 백루찬같이 마력으로 외부에 방출해 내는 스킬에 면역이 있다. 그렇다면 몸으로 때우는 게 가장 빠르다!
홍희와 백루찬이 흐느적거리며 용인족에게 짓밟히는 신도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세뇌된 사람들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들은 애초에 모여 있던 게 아니었다. 대피를 하다가 세뇌를 당해 발을 돌린 것이다. 게이트 앞으로!
이형환위 스킬을 연속으로 사용하며 튀어나오는 용인족들의 목을 땄다.
베어 내고, 싸우고, 넘어트리고. 정신없이 싸우며 위험한 사람들을 구했다.
그때였다. 눈앞에 시스템창이 빨갛게 떠올랐다.
[남은 간섭 시간: 09:08:23]
[지나친 심상 세계 간섭으로 인해 간섭 시간이 소모됩니다.]
[남은 간섭 시간: 01:30:34]
빌어먹을…! 갑자기 시간이 확 줄었다.
[간섭률이 올라갈수록 백루찬의 심상 세계가 흔들립니다! 주의하세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신도들을 구하고 백루찬이 게이트를 닫도록 돕고자 했던 일들이 간섭률을 올리는 행위였나 보다. 지금도 용인족을 처치하고, 밟힐 뻔했던 헌터를 구하자 띠링 하고 경고음이 울렸다.
한 시간 반. 그 안에 백루찬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저놈을 어떻게 깨우지?
나는 정신없이 싸우다가 멀어져 버린 백루찬을 찾았다. 용인족을 해치우다 보니 어느새 게이트와 가까워져 있었다. 300미터쯤 되는 앞에 게이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교법사와, 신도 몇이 게이트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짓밟혀 죽는 옆 사람을 뒤로한 채, 그들은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때, 게이트에서 흉측한 세로 동공을 한 드래곤이 얼굴을 쳐들었다.
- -------!!!
용이 사방을 찢어 놓을 것 같은 피어를 날렸다. 나는, 얼어붙은 것처럼, 굳고 말았다.
나탈리스.
그리고 그 앞. 거대한 괴수의 등장과 동시에 교법사와 신도들 사이에 있는 김세영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