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략할 시간도 없이 웨이브가 터졌다. 나와 백루찬, 홍희는 맞춘 것처럼 튀어 올랐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 거뭇한 낫이 박혀 들었다. 바닥과 벽이 부서지면서 파편이 튀었다. 몸을 날려 덤벼들었던 몬스터 네스트로프 한 마리가 기괴하게 고개를 꺾었다.
“앞에!”
홍희가 소리치자, 게이트 주변으로 모여드는 신도들을 노리는 네스트로프에게 번개가 꽂혔다. 황금빛 전류가 콘서트홀 천장을 찍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몬스터가 번개를 맞고 타들어 갔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홍희가 덤벼들어 계속해서 게이트 앞으로 모여드는 신도들을 뒤로 던졌다. 젠장, 하필 이런 식으로 게이트를 열다니!
희생을 막을 수 없다. 그것에 가슴이 옥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야를 빠르게 휘둘렀다. 깡-! 몬스터의 낫과 검이 부딪치고, 밀려난 검을 다시 쳐올렸다.
네스트로프가 반으로 갈라진다. 검은 피가 폭포같이 쏟아져 나왔다. 객석 사이로 죽은 몬스터가 떨어지는데, 신도들은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다시, 마른 천장에 천둥 같은 소리와 전류가 몰아쳤다. 나도 망설임 없이 스킬을 전개했다.
[그림자 밟기(Lv.99)]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몬스터만을 노린 검은 한 마리 한 마리 신중하게 갈라 죽였다. 나왔던 놈들을 모두 없앴지만, 여전히 게이트는 몬스터를 뱉어 냈고, 홍희가 앞에서 사람들을 막으며 고군분투했다. 이대론 안 된다. 게이트를 닫으면 되지만 그러려면 보스 몬스터가 나와야 한다. 나오는 몬스터는 벌써 열세 마리가 넘어가고 있었다. 백루찬이 다인 공격으로 7마리를 죽였고, 내가 나머지를 처리한 상태였다. 게이트는 계속 몬스터를 토해 내고 있었다.
“대피! 대피를 어떻게 해야 돼! 아으아아악!”
홍희가 버럭 소리 지르며 몰려든 신도들을 밀치고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무작위로 낫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나는 몬스터가 홍희를 공격하기 직전 앞으로 나가 한야를 휘둘렀다.
자 생각, 생각해. 몬스터가 계속 튀어나오는 게이트. 보스 몹이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도 없고, 주변엔 세뇌된 일반인들이….
머리 위로 번개가 내리쳤다. 백루찬이다. 그와 동시에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다시 콘서트홀 입구로 몸을 날렸다.
“어디 가!”
“기다려!”
홍희가 소리쳤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복도로 빠져나왔다. 바닥에 죽은 교법사들 외에 나머지 놈들이 보이지 않는다. 교원법사. 그놈은 세뇌를 할 수 있었다. 신도들을 세뇌한 것과 교법사들을 세뇌한 방법이 다른 것 같지만, 놈이 이곳에 신도를 붙잡아 놓은 건 확실하다. 진마하가 일일이 다 불러서 앉혀 놨을 리는 없으니까!
그놈을 이용하면 신도들을 대피라도 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나는 교법사를 찾았다. 주변에 있을 텐데! 그때 계단 밑으로 사라지는 로브 자락을 보았다. 날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남아 있던 교법사들이 거기서 한 사람을 따라 3관을 벗어나고 있었다.
선두에서 보호받고 있는 한 놈의 로브 밑으로 붉은빛이 번쩍인다. 저놈이다. 놈 또한 나를 발견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교법사들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지만 내가 한발 더 빨랐다. 나는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붙잡는 밤(Lv.99) 발동]
교법사들은 그림자에 발이 묶였다.
[속삭이는 밤(Lv.99) 발동]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사방이 무채색으로 물들고, 모든 것이 한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만이 빠르게 움직였다. 가로막으려는 호위들을 검을 휘둘러 베어 낸 후 교원법사 놈의 멱살을 잡아챘다. 느리게 번뜩이던 눈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나는 놈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어둠의 포식(Lv.99)]
“끄읍!”
놈과 함께 다시 뱉어 내진 곳은 콘서트홀 안이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풍기는 안, 교원법사는 내가 손을 놓자 바닥을 굴렀다.
나는 쓰러진 놈을 붙잡아 세웠다. 그리고 뒤집어쓴 후드를 벗기자, 평범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놈은 당황하고 있었다. 한없이 커진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멱살을 잡아당겨 놈이 엉망이 된 콘서트홀을 보도록 만들었다.
“스킬, 사용해.”
“주, 죽일 테면 죽여라!”
“네가 무슨 독립투사도 아니고, 죽긴 왜 죽어. 네녀석인 해 줄 일이 있는데.”
“무슨!”
머리채를 붙잡아 앞을 보게 만들었더니, 간신히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교원법사는 내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조종인지, 세뇌인지, 뭔지, 그거. 교법사들 움직였던 그 스킬. 신도들에게 사용해서 밖으로 빠져나가게 만들라고.”
“그들은 이상향을 위해 선택한 자들이다! 죽음은 숭고하게 신의 뜻을 위해…!”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내려쳤다. 쓰러지려는 놈의 머리채를 붙잡아 다시 바로 서게 만들곤 한야를 그 눈앞에 꽂았다.
“신의 뜻이든 나발이든, 쓰라고.”
살기가 죽죽 흘러나온다. 교원법사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머뭇댔다.
“셋.”
“나… 나는…!”
“다섯.”
“크아악!”
“여섯이 죽었네.”
놈의 목을 조르고 손가락을 꺾었다. 이런 짓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해선 말을 들어 먹질 않을 테니.
교원법사가 다급하게 내 팔을 부여잡았다. 그의 눈에 붉은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한번 말할 때 듣지.”
신의 뜻인지 뭔지 고통이 그보다 앞에 있는 건 확실했다. 이렇게 쉽게 움직이다니. 그러고서 멀쩡한 일반인들을 게이트 앞으로 몰아넣다니.
단번에 목을 꺾어 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놈이 신도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것을 지켜봤다.
“어? …어?”
홍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 앞에서 비틀거리며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신도들을 쳐다봤다. 교원법사의 눈이 한 번 더 번뜩이자, 그중에 몬스터에게 밟힌 사람을 제외한 모든 신도가 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개를 터트리며 더불어 몬스터도 터트리던 백루찬이 가볍게 숨을 내쉬고 나를 쳐다봤다.
“이놈이야. 교법사를 조종했던 놈.”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묵직한 시선에 잠시 그를 쳐다봤다가, 교원법사를 끌고 신도들을 이끌어 밖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장애물이 사라지면, 저따위 몬스터, 백루찬과 홍희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네스트로프들이 게이트를 비집고 나온다. 홀 안에서 금빛이 황홀할 정도로 번쩍였다. 물론 죽음의 불꽃이었지만 말이다.
교법사들이 중앙 현관을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허둥지둥하며 들어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나, 계단을 타고 신도들이 내려오자 더 당황했다. 그 앞의 교원법사의 목을 움켜잡은 나를 보고 더욱 더.
“네… 네놈…!”
“의식을…!”
뭐라 뭐라 떠들어 대지만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신도들을 안전하게 모으는 게 더 중요했다. 멍한 눈을 한 신도들이 3관 앞 공터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여서, 대원대에서 보았던 것처럼,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대열을 지키며 모여든 사람은 수백 명. 아직도 건물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들의 세뇌를 어떻게 풀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켜보던 교법사 한 놈이 나를 노리고 돌진해 왔다. 손에 단검이 들려 있었다. 교원법사의 눈이 한 번 더 번뜩이자 물러나 있던 교법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세뇌를 막지 않았으니 교원법사가 교법사들을 움직인 것이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옆으로 손을 뻗었다. 바닥에 꽂아 넣었던 한야가 어느새 내 손에 잡혔다. 나는 교원법사를 붙들고, 덤비는 교법사들을 하나씩, 성실히 상대하며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몸을 돌리고, 닿을 것 같은 공격은 교원법사의 몸을 앞세워 막았다. 검기가 사방에서 휘날렸다.
“어… 어떻게.”
당황하는 교원법사를 무시하고, 마지막 한 놈까지 쓰러트렸을 때였다. 나는 놈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크아악!”
그리고 도망가는 교원법사를 향해 한야를 내던졌다. 놈은 검에 꿰여 몇 미터를 더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신도들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교원법사가 공격 명령을 내리려 했을 때, 다행히 때맞춰 놈을 처리한 듯했다. 상황을 이해하고, 이제 보스 몹을 마주할 백루찬과 홍희를 돕기 위해 3관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쿠웅-.
전신을 내려찍는 듯한 엄청난 기운이 사방을 짓눌렀다. 나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먼 방향, 명동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그곳에서부터 천천히 바닥에 물을 엎질러 그것이 느리게 사방을 잠식해 가듯이… 마력 파장의 기운이 퍼져 나왔다.
나는 순간 호흡을 잊을 정도로 멈춰 서서 넋 놓고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무척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그러나 숨통을 옥죄는 듯한 거대한 기운이 땅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건….”
안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건 제로급 게이트가 열렸을 때 느꼈던, 강력한 마력 파장의 기운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저 끝의 하늘에서 새파란 원형의 불빛이 떠오른 게 보였다.
“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여태껏 몇 번이고 겪었던 그것이었다. 여태껏, 수없이 싸워 온, 회귀를 반복하면서 닫기 위해 노력하던 그 게이트였다.
살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악마의 눈동자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