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루찬의 팔을 붙잡고 뛰어올랐다. 단상 앞으로 몰려든 신도들이 아우성치며 서로 걸려 넘어지고, 그 위로 엎어졌다. 진짜 좀비 떼를 보는 것 같았다. 이지가 없고 마음대로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점에선 더 최악인 상황이었다. 저들은 그저 세뇌당한 일반인이니까!
진마하 이 개새끼. 뒤처리해 달라는 게 신도들을 말하는 거였냐고! 대체 무슨 스킬이길래 이렇게 대량으로 세뇌를 걸 수 있는 거지.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몸을 등한시한 채 덤벼드는 사람들을 다리로 바닥을 쓸어 내며 넘어트렸다. 우수수 쓰러지는 사람들 틈에서 백루찬과 등을 맞댔다. 녀석의 손에서 금빛 전류가 일렁였다. 나는 황급히 백루찬의 손목을 붙잡았다.
“일반인들은 감전되면 죽어!”
“하-.”
백루찬이 떫은 얼굴로 전류를 털어 냈다. 멍한 얼굴을 한 신도들이 막무가내로 팔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냅다 몸을 던져 붙잡으려는 신도를 잡아 팔을 꺾고 그대로 뒤로 밀었다. 하도 겹겹이 들러붙은 탓인지 일반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으윽…!”
간신히 떨쳐 낸 나는 뒤에서 달라붙는 사람들을 피해 뒷걸음질 치던 백루찬을 잡고 바로 스킬을 전개했다.
[어둠의 포식(Lv.99)]
우리는 서로 잔뜩 질린 안색으로 눈을 마주쳤다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몸이 녹아들었다.
이번에 떨어진 곳은 홀 입구 쪽이었다. 중앙으로 몰려들었던 신도들이 일제히 입구 방향으로 고개를 꺾었다.
“미친…!”
나와 백루찬은 손발을 미리 맞춘 것처럼 홀 밖으로 나가 문을 잡고 빠르게 닫았다. 발밑에 내가 쓰러트린 교법사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양쪽 문을 닫고 잠금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당황한 탓인지 손이 떨려 빠르게 되질 않았다. 젠장…! 긴장해 가지고!
“뭐 해! 차해준!”
백루찬이 소리쳤다. 알아 나도! 이를 악물었다. 그때 문 쪽으로 쾅-! 하며 무게가 느껴지는 두꺼운 무언가가 부딪쳐 왔다. 백루찬과 나는 들썩이는 문을 몸으로 막았다. 아마도 안에서 신도들이 뛰쳐나오기 위해 몸을 부딪치고 있는 듯했다.
“끄읍!”
여러 명이서 무게를 더하며 밀어 대니 몸으로 막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헛손질하다가, 겨우 문구멍을 맞추고 잠금장치를 돌렸다.
철컥!
홀 문에 쾅- 쾅 소리가 나며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더 말하지 않고 일단 건물 밖으로 벗어났다.
중간중간 살아 있는 교법사들을 마주쳤는데, 그들은 되레 우리를 보고 두려워하며 피하고 있었다. 이후 세뇌가 풀려 정신을 차렸음에도 공격하려고 하는 교법사들을 간단히 처리하며 밖으로 나갔다.
돌아본 건물은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오밤중 소란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신도들은 아직 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 세뇌를 풀 방법을 찾을 때까진 차라리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교법사들도 신도들이 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상황에 대해 듣지 못한 건지 허둥지둥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세뇌를 당했음에도 교법사들과 신도들은 차이가 있었다.
교법사들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피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신도들과 달리 말이다. 저들은 세뇌 방식이 다른 건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건물 밖으로 나와 잠시 숨을 고를 때, 백루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영도 김세영이지만 홍희의 안위도 걱정이었다. 우리야 이동 스킬이 있어서 피했지만 홍희는 이동 스킬이 없었으니까. 만약 똑같은 상황이라면, 말도 못 하게 위험하다.
나와 백루찬은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뜻은 통했다. 나는 백루찬의 팔을 잡고 뛰어올랐다. 검은 어둠이 나와 백루찬을 감싸고,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듯 이동했다. 어둠의 포식은 삼켜 내고, 일정 거리 안에 뱉어 내는 스킬이었다. 단거리 순간 이동과 비슷했지만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간간이 스킬을 쓰며, 홍희가 있는 호명대로 향했다. 거리에는 대학교에 난 소동과 달리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막 사람들의 출근 시간이 다되어 간다.
“호명대도 이러면 위험해.”
“…알고 있어.”
백루찬은 초조해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김세영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호명대에도 없고, 상지대에도 없다면…. 검은해는 또 어디에 신도들을 숨겼던 건가. 나도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이 답답했다.
백루찬은 귀에 낀 이어링을 통해 홍희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홍희는 답이 없었다. 그것에 더 초조해졌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선 어둠의 포식을 써서 공간을 접어 가며 이동했다.
대학교에 도착했을 땐 완전히 해가 떠 있었고, 시간은 어느새 8시 30분을 향해 갔다. 대학 부지 내엔 곳곳을 청소하는 청소원들과 강의 시간을 지키려 일찍 온 학생들이 보였다.
여기서도 대원대와 신도들이 같은 상태라면 위험하다. 홍희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며 수상한 곳을 찾기로 했다.
수백 명의 사람을 모아 놓을 만한 건물이 있을 텐데.
백루찬과 흩어져 나눠진 별관과 건물들을 확인했다. 아오, 진짜 학교 드럽게도 넓네. 나는 거칠어지는 숨을 삼키며 뛰었다.
본관 2건물을 지나 서쪽 방향에 있는 별관, 강의동까지 확인했지만 한 번씩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학생들만 몇 보일 뿐, 수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몸을 돌려 백루찬과 만나기로 한 학교 중앙 건물로 향하려 할 때, 뒤에서 나타난 백루찬이 내 팔을 붙잡았다.
“연락됐어.”
“홍희랑?”
그렇게 뛰어다녔음에도, 나랑 달리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한 백루찬이 이어링을 꾹 누르며 나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붙어 걸으니 홍희가 말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이럴 땐 참… 각성자 신체가 좋다니까.
“어디야?”
- 3관 2층으로 와. 콘서트홀에… 하 씨.
“왜. 찾았어?”
- 여사님은 아직 못 찾았고.
그 말에 백루찬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어. 그런데.”
- 미친 건가… 하, 이상해. 그리고… 교법사 놈 피해서 간신히 숨어들었는데, 놈들도 침입자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경계하고 있어. 개중에 한 명이 이상하게 강해. 싸우면 내가 딸릴 거 같아.
“금방 갈 테니까 가서 만나.”
강한 놈이라면 아마도 대원대에서 만난 교원법사, 그놈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홍희가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니… 홍희도 A급으로 알고 있었는데. 조금 긴장한 채, 백루찬과 3관으로 향했다. 건물은 교내 부지에서 정문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주변에선 다행히 일반 학생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3관 건물도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대원대에서도 그랬었다. 우리는 조용히 중앙 현관을 통해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쿵- 하면서 지반이 흔들렸다. 그리고, 몸을 압박할 정도로 짙게 풍기는 마력 파장이 느껴졌다. 이건, 아주 가까운 데서 게이트가 열린 거다!
그와 동시에 백루찬의 이어링에서 홍희의 비명이 들려 왔다.
- X바 저 미친놈들!!! 게이트 열었어! 게이트를 X발 이게 말이 돼?!
나와 백루찬은 더 주저하지 않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급하게 도착한 곳에서 교법사들이 몸을 내빼려 했던 듯 입구에 모여 있었다. 로브를 눌러쓴 놈들이 우릴 발견했다. 나는 한야를 빼 들고,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 쉬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반달 모양 검기가 날아갔다. 그것은 모여 있던 교법사들을 단번에 베어 내고, 콘서트홀의 두 개로 나누어진 문까지 모두 박살 내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와 백루찬은 바로 콘서트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상으로 내려갈수록 기울어진 홀에는 좌석마다 신도들이 가득했고, 검게 구멍 뚫린 듯한 게이트가 단상 위 허공에서 입을 쩌억 벌렸다.
[게이트 ‘통곡의 벽’이 열렸습니다!
심상 세계의 수상한 게이트와 마주했습니다.
억지로 연결된 게이트로 인해 오류가 발생합니다! ]
[주의하세요! 심상 세계에서 입은 피해는 현실 세계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게이트 오류로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몬스터 ‘네크로모프’ 변이 개체 출현]
“…신이시여….”
“아… 아….”
썩은 시체 냄새가 사방을 점령한다. 신도들은 열렬히 환호하고 감격하며 두 손을 모았다. 멍하던 그들의 눈빛이 어느 틈에 환희로 물들어 있었다.
검은 게이트에서 한쪽 팔이 낫으로 변형된 징그러운 몬스터가 좁은 틈을 비집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홀로 들어서자, 홍희가 홀 2층 객석에서 뚝 떨어졌다. 붉은 건틀렛을 찬 그녀는 방금 전투를 치른 듯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다. 반가워할 틈은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단상을 향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열린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와중 나는 그 옆에 쓰러진, 대원대에서 보았던 것처럼 피를 토하고 있는 각성자를 발견했다. 괴로운 듯 몸을 비틀던 그는 튀어나온 몬스터를 보고 피하려 했지만, 몬스터의 공격에 맥없이 죽임을 당했다.
소름이 돋는다. 한야를 꽉 쥐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검은해의 수상한 움직임. 그리고 명동 인근에서 차례차례 열려 일대를 도륙한 게이트. 오류.
전조였다. 악마의 눈동자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