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이 꿈틀하며, 녀석이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나는 순간 가까워진 녀석에게 당황했다가, 옅게 나는 피 냄새에 기겁했다.
“뭐야, 너 다쳤어?”
다급하게 녀석의 몸을 살펴보자, 백루찬은 내 팔을 붙잡아 당겨 자신을 보게 했다. 마주친 시선에 머쓱하게 눈을 깜박였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머뭇대며 입을 달싹이다가 시선을 피했다. 녀석의 손등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싸웠어?”
“검은해 새끼들이랑 마주쳤어.”
“아.”
이 주변에도 역시 있었던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했으나 백루찬이 더 세게 움켜쥐었다. 한 손으론 허리를 붙잡고, 다른 손으론 내 팔목을 잡고 있으니 자세가 오묘하다. 새벽이라 보는 사람 없다지만 좀… 민망한데.
“안 다쳤으면 됐다.”
간신히 그 말을 내뱉었다.
“할 말이 그거뿐이야?”
“뭐가?”
나는 모르쇠로 녀석을 쳐다봤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어. 백루찬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
“검은해 집단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그거 말고.”
“그 위치가.”
“야.”
끄응. 노려보는 눈에, 나는 또 시선을 피했다. 뭘 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이 녀석, 멋대로 입 맞추고 도망간 걸 말하는 거 같은데.
“아니… 그, 찾던 사람 찾았고, 검은해 위치 확인하러 간 거였어. 위치도 확인했고….”
“그거 말하는 거 아닌데.”
“그러니까….”
“눈은 왜 피해?”
백루찬이 손을 놓고 내 턱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젠장, 개부끄러워 미치겠다. 도둑 키스…도 아니고 겨우 입맞춤 하나 했는데 이렇게 노려보기 있냐. 그렇지만 역시 그것… 때문인 거겠지?
“야, 한번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뭔 소리야.”
“아니… 아 씨….”
“…하아.”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쉰 백루찬이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떨떠름하게 손을 놓았다. 나는 놈에게 잡혔던 턱을 쓸어내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다지… 화가 난 것 같진 않은데…. 말을 못 걸겠다.
“되도 않는 눈치를 보고 있어. 말해.”
“뭐, 누가 눈치를 봐.”
“너 말이야, 너. 그래서 어디냐고. 네가 찾은 위치.”
그냥 넘어가는 건가. 나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아직도 허리가 꽉 잡혀 있어서, 놈과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리를 감싼 팔뚝을 떼어 내려 했지만, 백루찬은 가당치도 않다는 얼굴로 코웃음 치며 나를 더 가까이 잡아당겼다.
“대원대, 호명대, 상지대. 셋 중에 있어.”
“다 여기 근처네.”
“맞아. 다 찾아보기엔 시간이 부족하니까 지원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홍희는?”
“홍희는 그쪽에서 빠져나왔어. 김 여사를 못 찾았거든.”
김세영을 못 찾았다니, 집회 장소가 엇갈린 건가. 일단 홍희라도 빠져나왔다니 다행이었다.
“근데 일단 이것 좀 놓고 말하지?”
“뭘?”
“손 좀 놓고.”
“네가 또 도망가면 곤란해서.”
“도망 안 간다…. 그리고 도망간 거 아니고 찾을 사람이-”
“멋대로 입 맞추고 또 토끼면 난 다시 멍청하게 당하기만 할 거 아냐.”
“…야.”
백루찬이 나를 꽉 붙든 채 내려다봤다.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도통 모를 얼굴로 말이다. 진짜 할 말 없게 만든다. 나는 입술만 달싹이다가, 녀석을 흘겨보곤 말했다.
“알겠고. 일단 홍희에게 연락하고 가자.”
“가면서 연락하지.”
“그래, 뭐… 으악!”
그때 갑자기 백루찬이 발을 구르며 바닥을 박차고 몸을 띄웠다. 순식간에 붕 뜨며 지상과 멀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뭐, 뭐 하는 거야!”
“스킬.”
짧게 대답한 백루찬이 픽 웃었다.
“S급도 고소 공포증 있냐?”
“네가 갑자기 스킬 써서 놀란 거 아냐!”
“손 놓을까.”
“야, 야야.”
잊고 있었다. 번개를 쓰는 녀석이라 하늘을 나는 스킬도 있다는 것을. 천둥의 발걸음이었던가. 스킬 이름대로, 높이 뛰어오른 몸은 허공을 걷는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빌딩 높이보다 높게 올라왔다. 가까이 있던 빌딩 옥상에 발을 한번 딛고, 다시 뛰어오른다.
“루찬아, 꽉 좀 잡아.”
이를 악물고 녀석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백루찬이 웃었다. 재밌냐? 어? 그리고 나도 이동 스킬 있거든?
“따, 따로 가면-”
“뭘 믿고.”
“으헉-!”
놈은 급하게 하강하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떨어졌다가 다시 뛰어올랐다. 졸지에 놀이 기구 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주 스릴 넘쳐서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자식…. 덕분에 난 발을 열심히 구르며, 녀석을 놓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 ❖ ❖
백루찬이 스킬 쓰고, 간간이 내 어둠의 포식 스킬도 써 가면서 우리는 대원대학교에 도착했다. 홍희는 호명대부터 살피기로 했다. 상지대는 지원 인력이 간다고 연락을 받았다.
나는 백루찬에게 휴대폰을 받아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서울은 사람들이 출근을 시작했을 때다. 보통 새벽 4시부터 대중교통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그러나 대원대 앞은 고요했다.
대학교라면 밤에도 불이 켜진 곳이 있을 텐데, 여기는 온통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도 금세 꺼질 것처럼 깜박인다.
우리는 일단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학교 중심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살피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인가?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건… 기도 소리였다.
“잠깐.”
나는 급히 숨을 들이켜며 백루찬의 어깨를 뒤로 당겨 별관 건물 옆으로 숨었다. 건물 사이에, 검은 로브를 쓴 남자가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백루찬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여기가 검은해 집회 장소가 맞았다.
다가오는 놈은 주변을 경계하는 경비 인원 같았다.
- 뚜벅뚜벅.
검은해 집단의 교법사로 보이는 놈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스킬을 시전했다. 지금 당장 급한 건 김세영의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소란을 피우면 곤란했다. 조용히 어둠의 포식을 사용해 놈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걷는 교법사의 입을 틀어막고 잡아당겼다.
“흐읍…!”
소리치려는 놈을 단번에 기절시키고, 나는 교법사가 둘러쓴 로브를 벗겨 냈다.
그때, 교법사가 튀어나온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상진 형제님, 이만 들어갑시다. 조용합니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이 골목으로 들어왔다. 똑같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그때는 이미 나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진 뒤였다. 기절한 교법사와 함께. 그리고 다시 등장한 교법사의 뒤편으로 가 조용히 목을 꺾었다.
두 사람을 기절시키고, 늘어진 몸을 구석진 곳에 숨겼다. 벗겨 낸 로브 중 하나는 백루찬에게 건넸다.
“클래스가 암살자인가?”
“뭐… 비슷하긴 해.”
전혀 다르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고 로브를 뒤집어썼다. 백루찬과 나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어쩐지… 좀 약한데.”
“강한 놈들은 안에 있겠지.”
백루찬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다가, 건물 중앙 현관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교법사를 만났다. 상대방이 먼저 아무런 말 없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똑같이 따라 하며 인사하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기도 소리는 점점 커졌다. 흐느낌과 마이크를 붙잡고 떠드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아아악!”
비명 소리.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 뒤론 비명 소리를 덮을 듯 커진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2층의 커다란 홀 앞, 그 앞을 일렬로 서서 지키고 있는 여러 명의 교법사들과 마주했다.
그중 한 명이 말을 걸어 왔다.
“밖은 어떠합니까.”
백루찬이 대답했다.
“고요합니다.”
“순리대로 되어 가고 있군요.”
“들어가 기다리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루찬은 말없이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그때 손잡이에 붉은 마력 불꽃이 튀며 백루찬의 손을 저지했다.
교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봤다.
“침입자다!”
“적이다!”
젠장. 들켜 버렸다. 나는 로브를 잡아 뜯듯 던지며 한야를 꺼내 잡았다. 단검을 빼 든 교법사 한 명이 등을 찔러 왔다. 그대로 한야를 횡으로 휘두르며 몸을 틀었다. 검의 운신 폭이 길어 단번에 가까이 있던 두 명의 교법사를 베어 냈다.
“적이다!”
교법사 한 명이 목 터져라 외치며 무언가를 손에서 터트렸다. 그러자 약하게 형광등이 켜져 있던 건물 전체가 붉게 물들며 경고등이 켜졌다. 그와 함께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적들이 우리를 향해 덮쳐 오자 백루찬이 쓰고 있던 후드를 내리며 손을 뻗었다. 뻗어 나온 전류가 제 앞에 있던 교법사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그러나 경고음을 듣고 홀의 문이 열리는 순간, 건물 내에 있던 교법사들이 몰려와 인원은 더욱 불어났다.
나는 한 놈의 목을 낚아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일단 들어가서 김세영 씨부터 찾아!”
백루찬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이내 복도에 번개가 몰아쳤다. 다수의 교법사들이 쓰러졌지만 튕겨 내고 버티는 놈들도 있었다. 역시 이놈들 대부분이 각성자였다.
공격을 퍼붓던 백루찬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열린 홀의 문으로 들어갔다.
“대적자를 처단해!”
교법사 중 리더로 보이는 놈이 나를 가리켰다. 놈의 눈이 붉게 번졌다. 붉은 안광. 무언가 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교법사 놈들이 제 몸을 등한시한 채 나에게 덤벼들었다.
아, 이 미친 새끼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백루찬을 쫓으려는 놈들을 막아서기 위해 문 앞에 자리 잡고, 들어가려는 한 놈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얼음 가시 숲(Lv.99)]
“으아아악!”
“잡아…! 크헉!”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바닥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 칼날들이 솟아올랐다. 나는 한야를 뒤로 뺐다가, 몸을 살짝 띄웠다.
[그림자 밟기(Lv.99)]
떠오른 몸이, 잠시의 체공 시간을 가졌다가 사방을 점유하고 휘저었다.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모여든 놈들을 파고들어 갈랐다.
핏물이 터지고, 비명이 마구잡이로 울렸다.
“후….”
30초쯤 지났을까, 나는 숨을 고르며 피 묻은 한야를 털어 냈다. 내 주변엔 난도질당한 교법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직도 수가 많은지, 계단 밑과 위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놈들이 빼곡했다. 그러나 내가 도살하듯 놈들을 쓸어버린 탓에,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눌러쓴 로브 후드 밑 사이로, 리더로 보이는 교법사의 눈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