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게이트
[…두 번째 방에 진입했습ㄴ…ㅣ…ㄷ…….]
속눈썹이 걸리는 느낌과 함께 눈꺼풀이 무겁게 깜박였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었다 깬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긴.”
난 분명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건 뭐지. 풍경이 이상했다. 주위를 살펴보자 이곳이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대 같은데… 어딘지 미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다. 뭐지. 한국대 맞나. 바람이 살랑이며 부는데 교정에 심어진 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든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뭐야, 환각인가. 여긴 뭐지. 백루찬은 또 어디로 간 거지.
“…야, 시스템. 좀 더 설명해 봐.”
대체 무슨 게이트가 이따위야. 여러 번 불러 댔지만, 눈앞에 시스템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나비 여왕이 있었던 게이트처럼 환각 게이트인가?
“야! 너 왜 정신 빼놓고 있냐.”
그때였다.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갑자기 헤드록을 걸었다. 나는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이 목소리는….
장난스럽게 목을 죄는 팔을 툭툭 치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휘둥그런 눈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헤드록을 건 사람은, 내 친구 놈이었다.
“너 또 밤새웠냐? 이번엔 뭐 했어, 게임? 눈 밑 퀭한 거 봐라.”
왼쪽 불알로 임명했었던, 불알친구.
“강… 강성찬?”
“그래, 나다. 왜 이렇게 놀라?”
차해준에게 빙의하기 전까지 항상 붙어 다녔던 놈이었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너 진짜 강성찬 맞아?”
강성찬이 넋 빠진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 발짝 물러나 아래위로 훑어봤다.
“하, 이 새끼… 군대 갔다 오더니 더 나사 빠진 거 같고. 겉은 멀쩡한데….”
미친, 진짜 강성찬이네. 나는 그제야 기시감이 들었던 교정을 보고 깨달았다. 이곳은 내가 ‘이전 세계’에서 다니던 대학교였다. 전염병으로 인해 1년도 채 밟아 보지 못했던 그 학교!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무 말 못 하고 어버버거리고 있자 강성찬이 내 목에 팔을 감으며 잡아당겼다. 놈은 나를 끌고 성큼성큼 교정을 가로질렀다.
“너무 오랜만에 햇빛 쬐고 그러니까 적응이 안 되던? 그러니까 인마, 세상이 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랬다고 좀 기어 나오기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그래야지. 전염병 그 까짓것 이겨 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진짜 강성찬이네.”
헛소리 오지는 거 보니 진짜 내 친구 놈이 맞다. 내 중얼거림에 강성찬이 너 진짜 어디 아프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하… 우리 애가 오늘따라 맛이 갔네.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더니 이제 친구도 못 알아보고….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보단 아니지. 오타쿠 새끼가….”
“야이씨, 하라 짱을 욕했어? 붙어! 한판 붙어!”
강성찬이 복싱 자세를 취하며 어깨를 툭툭 쳤다. 잽을 날리다가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자 또 대뜸 헤드록을 걸었다.
“야, 야야!”
아까보다 강하게 목을 죄는 팔에 놈을 퍽퍽 때렸다. 강성찬 이놈은 평범한 오타쿠였다. 애니뿐 아니라 장르 소설 만화 등 국내·외 가리지 않고 보는 덕후 자식. 이놈 덕에 나도 소설을 읽기 시작했었지.
최근까지 빠져 있던 건 애니메이션 마법 전사 노노하라였고…. 그거 아직도 좋아하냐.
“으휴, 내가 아니면 누가 네 친구 해 주냐.”
“와하학, 올해 들은 말 중 베스트로 웃겼다. 내가 참고 친구 해 주는 건데?”
나는 낄낄 웃었다. 강성찬도 같이 웃는다. 와 진짜 이게 얼마 만이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거 같은 기분이다. 체감상 십 년 만에 보는 거 같고.
그런데 나 게이트 넘었던 거 아닌가. 강성찬을 보고 좋다고 웃다가, 뺨을 긁적였다. 군대 이후에 학교에 발 디딘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강성찬이 하는 말 들어 보면 한차례 뭔가 지나고 학교에 나온 거같이 느껴졌다.
이상하네, 진짜…. 환각이라기엔 너무 선명한데. 혹시 케이든 때처럼 몽중몽이라거나…. 나는 슬쩍 내 뺨을 꼬집었다. 아주 세게. 선명하게 고통이 느껴진다.
“왜 그래?”
너무 약했나. 나는 강성찬을 불렀다.
“야, 한 대만 쳐 봐.”
“미쳤냐?”
“아, 한 대만 쳐 보라고.”
“이게 진짜 정신 나갔나….”
강성찬이 나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말도 없이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와 씨…. 아프네.
“원하시길래 대령하였사옵니다. 한 대 더 필요하십니까?”
“…뒤져….”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강성찬이 낄낄 웃었다. 아, 진짜 저 새끼…. 내가 심상치 않게 고개를 들자 강성찬이 대뜸 달리기 시작했다.
“안 서냐.”
“서겠냐?”
“저게….”
나는 강성찬을 노려보며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케이든 때 분명 몬스터에게 얻어맞으면서 깼던 거 같은데. 뭔가 깨는 느낌도 안 들고 그냥 아프기만 했다. 이상하네. 이거 꿈이 아닌 건가? 대체 뭐지? 진마하의 환각인가…? 근데 환각이 이렇게… 선명해?
***
콰앙-! 쾅!
빗방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수증기가 되어 흩어졌다. 뿌연 연기 속에서 거대한 폭음만이 사위를 채우고, 10미터는 될 만한 거구의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돌진한다. 그 앞을 누군가 막아서며 또 시뻘건 폭발이 터졌다. 카리나, 불꽃의 여왕이 화염 용을 뿜어내며 사방에 열기를 터트렸다.
“실무 1팀. 가약동 앞 대기 완료. 현장 진입할까요.”
-대기한다.
“관리팀 도착. 천새벽 결계사의 도움으로 일대에 바리케이드 이중으로 쳤습니다.”
-OK. 현장 상황에 따라 바탈 루스번 지원 요청 바란다.
-바탈 루스번. 실무 2팀과 이동 중입니다.
“일단 서울에 있는 모든 길드에게 협조 요청 완료했습니다. 현재 출동 팀은 얼라이브, 다해, 모르젠트, 라온…….”
어둠에 잠겨서 반파되고 있는 도시를 앞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각성자 관리 본부 요원들이 서둘러 각자 맡은 바 임무를 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게이트 관리 시스템이 등급 산정을 내리지 못한 거대 게이트는 어둠 속에서도 선명이 빛났다. 일대를 휩쓰는 마력은 꼭 제로(0)급 게이트를 연상케 했다.
송류진은 내리는 빗방울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송곳처럼 뾰족한 창. 가르덴의 송곳이 그의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송류진.
“앞에 있습니다.”
-지금 끼어들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카리나 측에서 우리를 인지하면, 송류진이 가장 먼저 진입한다. 실무팀은 전투에 걸리지 않게 피해서 가약동 일대 생존자들을 먼저 찾는다. 실무 1팀 먼저 진입.
“진입!”
대기하라는 말에 입술이 절로 악물렸다. 앞에서 카리나가 번쩍이며 싸우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몬스터는 컸고 카리나의 불꽃에도 그렇게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등급 산정이 되지 않는 몬스터.
저 게이트가 제로 급일 확률이 더욱 올라갔다.
송류진은 숨을 훅 내뱉었다. 지금 생각나는 건… 급하게 떠났던 차해준이었다. 그는, 이것을 알고 움직였던 걸까. 그렇다면 그는 어디 있는 건가.
“위치 추적 안 돼?”
“안 잡힙니다…! 벌써 여러 번 추적해 봤지만…!”
추적 스킬을 가진 길드원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보고했다. 홍희는 제 주변에 모여든 길드원들을 거칠게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어둠에 잠긴 도시는 괴물과 싸우는 카리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씨….”
욕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여기서 자신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길드 전체가 흔들린다. 검은해 집단을 발견해서, 놈들을 잡기만 하면 될 줄 알았지. 이렇게 큰 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홍희는 차가운 얼굴로 분주하게 가약동 일대를 둥글게 둘러싸기 시작하는 각성자들을 살펴봤다. 모두가 저것을 막기 위해 투입되고 있었다.
백루찬이 불안하게 느껴졌는데, 아무리 제멋대로 굴어도 혼자 보내지 말 것을. 홍희는 후회했다. 차해준은 어디 간 걸까. 백루찬을 구하긴 한 걸까. 차해준까지 위험에 처한 거면… 희망이 사라진다.
-콰앙!
또다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홍희는 침착하게 그것을 쳐다봤다.
“다해 길드 생존자입니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무장한 각성자들 사이로 창백한 얼굴의 유하늘이 보였다. 홍희는 길드원들을 헤치고 유하늘에게 다가갔다.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은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유하늘은 피 묻은 재킷을 무표정한 얼굴로 벗어 냈다. 홍희가 그녀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어딨어?”
갑자기 잡힌 것에 유하늘이 휘청거렸지만, 홍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하늘은 마른침을 삼키곤 대답했다.
“검은해가 게이트를 열었어. 놈들이 이상한 짓을 하길래 막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떼거리로 덤벼 와서 싸움이 벌어졌어. 그런데, 갑자기,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더니…. 길마랑 차해준 씨가 그쪽으로 갔고…. 내가 가지 말랬는데…. 그 뒤로 몬스터가….”
“우리 길마는?”
횡설수설하던 유하늘은 홍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
홍희는 유하늘의 말에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카리나가 몬스터를 맡았고, 차해준이 게이트를 맡았다. 백루찬은… 모르겠다.
비가 하염없이 쏟아졌다. 세상이 어둠에 잠기는 것 같았고, 가약동은 더욱 어두웠다. 홍희는 유하늘의 어깨를 두드리곤 물러섰다. 게이트에 들어섰다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차해준이니까. 옆에 길마까지 있다면 더욱더 문제없다. 홍희는 일부러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 길드원들을 다독여 저것을 막는 일이었다.
-송류진.
이어링으로 들리는 목소리에 송류진이 제 앞에 세워져 있는 가르덴의 송곳을 붙잡았다.
- -----!!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고 소리 파동이 쓰나미처럼 사방을 덮쳤다. 그때 사방으로 은은한 빛을 뿌리는 투명한 결계가 가약동 일대를 감싸며 높게 솟아올랐다. 천새벽의 스킬이다.
안에서는 카리나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S급이.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각성자가.
-진입.
송류진은 결연한 얼굴로, 몬스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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