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차원 균열 발생!]
[오류로 인한 게이트 발생!]
[균열로 인해 여러 ‘상위 차원’이 ‘현 차원’을 인식합니다!]
[차원에 구멍이 뚫립니다! 긴급 복구가 필요합니다!]
[경고!]
[경고!]
[게이트 ‘허구의 왕 가르디오스의 두 번째 방’이 열렸습니다!
난이도: ???]
시스템이 눈앞을 어지럽혔으나, 그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멀리서 봐도 거대한 게이트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게이트를 바라봤다. 저건 마치… 제로(0)급 게이트 같지 않나. 세상을 뒤엎을 듯 꿈틀대는 마력 파장과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게 만드는 엄청난 위압감.
“큭-!”
같이 있던 길드원 하나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해쓱해진 카리나가 침음을 내뱉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런 게이트를 맞이했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렸을 터다.
그래, 그때.
‘악마의 눈동자’ 때 말이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한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름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공포감과 한낱 인간 따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머리를 잠식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주변을 살폈다. 유하늘이 기절할 것처럼 휘청거리자 카리나가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
“…막아, 막아야 돼.”
느껴지는 마력이 심상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 폭탄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카리나의 말에 나는 동조하듯 그녀를 바라봤다. 시선이 닿자마자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다. 푸르륵- 일어난 불꽃이 나와 카리나를 감싸 올랐다.
“둘만으론 안 돼!”
유하늘이 비명을 질렀지만 우리가 이동하는 게 더 빨랐다. 불꽃은 순식간에 우리를 집어삼켰다. 뜨거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으나, 공간감이 순식간에 훅 떨어져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카리나와 함께 아까의 도로가 아닌 게이트가 생긴 폐건물 앞에 이동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위에 떠 있던 게이트에서 거대한 팔이 아주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회색빛 팔이 느릿하게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더니, 구멍 난 곳을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게이트를 둘러싼 마력 파장을 움켜쥐었다.
이윽고 거대한 머리통이 게이트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가죽같이 질겨 보이는 회색 피부, 하얗게 막이 씌워진 듯한 눈동자. 몬스터는 머리카락이 없는 인간을 닮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기괴했다.
“와… 씨, 인생 난이도 왜 이 지랄이냐. 개빡치네….”
카리나가 잔뜩 짜증을 담아 이죽거렸다. 그와 함께 높다란 건물 위에서 비명 소리가 난잡하게 울려 퍼졌다.
피를 쥐어짜는 것 같은 고통에 찬 비명 소리였다. 나는 멍청하게 굳어서 눈을 깜박였다. 저건 혹시….
“검은해 놈들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을 카리나가 대신 말했다. 거대한 몬스터의 상체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것만으로도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만큼 놈은 거대했다. 심장이 비이상적으로 빠르게 뛰어 댔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붙잡은 카리나가 무너지려 하는 건물을 피해 옆으로 이동했다.
“정신 차려. 새끼야.”
그녀의 말에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눈동자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건 차해준의 트라우마 같은 거였다. 이 새끼는 참 트라우마도 많지. 하나같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라 욕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떨려오는 손끝을 의식하고는 픽 웃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것도 내가 닫았어. 직접. 정신 차려, 차해준.
공포에 짓눌릴 때가 아니다. 몸을 반쯤 빼낸 몬스터가 괴성을 질렀다.
- ------!!
알 수 없는 소리의 파동이 거센 바람과 함께 일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아 X발….”
몬스터가, 총알같이 튀어나와 게이트 반대편에 쿵- 하고 떨어졌다. 도시의 일부분이 운석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둥글게 무너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놈이 웅크리고 있었다.
카리나가 낫을 들어 올리고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저거 내가 맡을 테니까, 네가 게이트 좀 닫아.”
“길드장님.”
“나 너 누군지 알거든?”
“…제가 누군데요.”
“너 그놈이잖아. 나탈리스 잡은 놈.”
“…….”
“더 자세히 말해 줘? 그걸 내가 말해? 내가 남 치켜세워 주는 거 존나 싫어해. 알아?”
카리나가 나를 휙 돌아봤다.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옅게 웃었다.
“모르는 척하셨구나.”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어서. 근데 지금 상황 보면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좆 된 건 마찬가지인 거 같고…. 가서 닫아. 저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
게이트 난이도가 확인되지 않는다. 기운만으로는 제로(0)급 같다. 거기에서 튀어나온 놈도 손쉽게 없앨 만한 등급은 아니겠지. 느껴지는 마력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딱 한 놈이 튀어나왔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물리쳐야만 했다. 일반적인 각성자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나서지 않으면, 저 괴물이 어디까지 튀어 나갈지 예상할 수 없다. 지금 있는 이곳이 버림받은 도시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림받은 게 다행이라니… 하.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죽지 마세요.”
“누구. 나?”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머리카락 끝부터 타닥거리며 불꽃들이 타고 올랐다. 어두운 곳에서 화려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카리나가 히죽 웃었다.
“너나 잘해.”
나도 웃었다. 그리고 카리나와 나는, 서로 정반대로 몸을 날렸다.
***
어둠의 포식 스킬을 전개해 폐건물을 뛰어 올랐다. 부서진 건물 외벽에 통으로 드러난 층층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놈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이상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두려움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저것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들도 나를 보지 않았다. 다른 것에 온통 신경을 빼앗긴 것처럼 바닥을 기기만 했다.
-터엉!
드러난 건물 뼈대 중 한곳을 붙잡았다가, 그것을 튕기며 몸을 위로 띄웠다.
[차원 균열을 일으키는 거대 게이트를 닫아야 합니다.]
알아. 안다고. 저 게이트가 장난 아니라는 거 알겠다고.
[긴급 퀘스트!
게이트 ‘허구의 왕 가르디오스의 두 번째 방’이 열렸습니다!
클리어런스로서 보스를 잡고 오류를 바로잡으세요!
난이도: ???
보상: ???]
[긴급 퀘스트!
위험에 빠진 메인 캐릭터를 구하라!
-언노운이 일으킨 오류로 메인 캐릭터 ‘백루찬’이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는 세계의 기둥 중 하나.
그가 죽으면 세계는 멸망합니다!
난이도: ??
보상: 메인 캐릭터 ‘백루찬’ 생존, ???]
[제한 시간 안에 구출하지 못할 시, 메인 캐릭터 백루찬 사망
메인 캐릭터 백루찬의 ‘사망’ 시, 메인 퀘스트 진행 불가]
연속으로 뜬 퀘스트를 확인하며 나는 옥상에 올라섰다. 옥상 위는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방금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의 괴성과 움직임을 직격타로 맞았으니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 중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터진 살점들. 짓눌린 것들은 형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질퍽하게 퍼져 있는 핏물이 웅덩이를 만들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 같은 고어한 풍경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지나간 자리는 폐허보다 못했다. 그리고 옥상 난간 끝에,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놈도 거기 있었다. 피곤한 얼굴로,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품을 한다.
진마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빨리 왔네? 좀 늦을 줄 알았더니.”
그저 묵묵히 한야를 들어 올렸다. 놈의 뒤에 있던 교법사 두어 명이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를 살피며 나를 견제한다.
시나리오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그들 사이로 나는 늘어진 흰 손을 보았다. 한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백루찬이다.
“검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알지?”
놈은 백루찬을 가지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보다 진마하가 백루찬과 더 가까웠기에, 나는 한야에 맺혔던 검기를 꺼트렸다. 진마하의 말이 끝나자 교법사 둘이 단검을 꺼내 들어 쓰러진 백루찬에게 겨눴다. 진마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놈을 노려봤다. 전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도 잡아챘지만, 놈의 몸은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곧장 내 뒤에 나타났다. 그것을 다른 사람은 인식하지 못했고….
진마하를 가르고, 백루찬에게 어둠의 포식을 써서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스킬을 멀리서도 발동시킬 수 있을까?
교법사라는 놈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쳐 내면 된다. 아주 작은 틈만 있으면 가능하다.
문제는 이놈인데…. 진마하를 흘겨보자 진마하가 푸하하 웃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잖아. 하여간 표정 하나 숨기지도 못하고 한심하다니깐.”
가까이 다가온 진마하가 내 앞에 서서 나를 훑어봤다. 한쪽만 푸른 눈이 불길한 안광을 터트렸다.
[저주 ‘자기 암시’를 튕겨 냈습니다.]
[저주 ‘숨어 있는 인도자’를 튕겨 냈습니다.]
[‘세뇌’를 튕겨 냈습니다.]
[‘억누르는 공포’를 튕겨 냈습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시스템이 우후죽순으로 떠올랐다. 놈은 습관처럼 스킬을 써댔다. 마치 이것도 튕기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송류진이 세뇌당해서 약을 먹였을 때처럼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땐 포르페늄을 과다복용해서 약해진 몸이라 가능했던 거고, 지금은 멀쩡하다.
진마하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다 눈살을 구겼다.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르겠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었지? ‘그거’ 믿지 말라니깐.”
“…헛소리하지 마.”
나는 교법사와 백루찬이 있는 곳을 힐끔 쳐다봤다. 그들 뒤에 있는 거대한 게이트가 마력 파장을 꿈틀거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 너무해라. 같은 동족끼리 이렇게 나오면 나 서운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동족은 누가 동족이야?
“왜. 너나 나나 같은 선택을 받은 인간인걸.”
진마하는 내 앞으로 한 발 더 바짝 다가왔다. 마주친 눈이 시퍼런 불꽃을 품은 거 같았다. 진마하는 요사스러운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도 그거다?”
“…….”
“아니, 그거였다?”
오류 제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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