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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17화 (117/201)

117화

두 번째 회동

검은해에 대한 조사는 다해 길드 유하늘과 홍희가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백루찬을 지키는 역할이었다.

‘한야가 지켜 주면 그래도 가장 안전하지 않겠어?’

홍희가 은근하게 웃었지만….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거 같았지만 일단 넘어가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먼저 해결해야 할 시나리오에도 백루찬의 위험을 알리고 있으니 의견이 딱 맞았다.

하지만 일은 하나만 있지 않았다. 그러면 얼마냐 좋겠냐마는….

나는 어느 호텔 상층부 회의실 구석에 앉아 방 안을 둘러봤다. 고급스러운 스위트룸의 응접실에 판을 깐 회동은 각본 우반희, 송류진, 그리고 관리팀 요원 두 명, 모르젠트 백루찬, 홍희, 그 밑 게이트 공략팀 관리과 두 명, 어쩌다 온 건지 모르겠지만, 천새벽에, 다해 길드 예카테리나, 유하늘, 팀장 두 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그 중심에는 바탈 루스번이 요란한 무늬의 실크 셔츠를 입고 앉아 있었다.

나는 뚱한 얼굴로 홍희 뒤에 어색하게 서 있는 새벽이를 바라봤다. 유일한 결계사이니 뭐니 하면서 이번 ‘닫히지 않는 게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각성자라며 이 자리에 불러온 게 나는 여간 탐탁지 않았다.

고3 공부도 못 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더군다나 새벽이는 교복까지 입고 있어서 이 흉악한 무리들 사이에서 더 돋보였다.

홍희가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아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이제 곧 사회인이고 각성자야! S급이라고. 알아서 잘 모실 테니까 그만 노려봐.”

홍희가 귓가에 속닥거렸다. 그것을 들은 천새벽이 나를 보며 긴장한 얼굴로 비장하게 시선을 맞췄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꼬워 미치겠지만 참는다….”

“한솔이도 데려왔으면 한 대 쳤겠다? 엉?”

“한 대만 쳤겠니….”

뒤집어엎었겠지. 내 말에 홍희가 입술을 삐죽대며 나를 노려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새벽이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매를 꿈틀거렸는데, 응접실 분위기가 무거워서인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믿어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한숨을 쉬고 녀석의 등을 툭툭 다독였다. 알겠으니 진정하라는 뜻이다.

그 귀하다는 S급이고 특성은 또 결계사인데 붙잡고 능력 못 쓰게 하면 그게 더 못난 짓이다. 아직 어려서 내가 불안해서 그렇지….

어쨌든 우리는 모두 험상궂은 얼굴로 자리에 모였다. 이건 두 번째 길드 회동이었다.

모인 길드가 두 군데밖에 없지만, 대한민국 5대 길드에서도 손에 꼽히는 두 길드였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 그래서 언제 오는데!”

카리나가 버럭 소리 질렀다. 우반희가 담배 말린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각본 요원이 눈치껏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답변을 받고 화색이 되어 말했다.

“이제 곧 도착한답니다…!”

“비행기가 기어서 오나.”

“저가 항공이야 뭐야…. 어디 항공이래?”

그러니까,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 사람들이 모여서 국제기구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의 ‘협회’ 인사 측을 기다리고 있는 것 말이다.

나는 슬쩍 호출기를 확인했다. 기다린 지 한 시간 십 분. 이 정도면 인내심이 바닥날 때도 됐다.

안 그래도 흉흉한 인상들이 더욱 미간을 좁히고 있을 때였다. 스위트룸 문이 벌컥 열리고, 밖에서 지키고 있던 요원이 한 사람을 모시고 들어왔다.

“오셨습니다!”

그의 극적인 목소리와 다르게 들어온 사람은 땀을 뻘뻘 흘려서 셔츠가 흥건하게 젖은 어떤 미국인 남자였다.

머리를 틀어 넘겼으나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땀에 엉망인 몰골을 한 남자는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며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협회 국제 이상 게이트 감지 관리부 아서 페리웰입니다.”

“오우 아서!”

바탈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댔고, 자리에 있던 몇 명은 영어로 인사하는 것을 듣고 아까보다 더욱 험하게 인상을 구겼다. 카리나가 그랬다.

“뭐라는 거야. 우리말 몰라, 우리말?”

“언니 참아. 원래 영어 쓰는 애들이 지네 말은 다 아는 줄 알아.”

유하늘이 옆에서 카리나를 토닥였고, 아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루마니아에서 이상 게이트가 열렸다고 해서 확인하고 날아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미 피로와 다크서클에 찌든 얼굴이라, 유하늘은 그것을 좀 안쓰럽게 본 것 같았다.

“비행기 타고 거기서 왔으면 진짜 힘드셨겠다. 비즈니스 클래스였어요? 협회가 그 정도는 지원해 주죠?”

“아뇨, 직접 날아왔는데요.”

“예?”

“플라이. 킁. 에… 아무튼. 그랬습니다.”

“…….”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해 가지고.”

그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나는 대강 눈치로 알아듣고 동참했다. 어휴, 땀을… 저렇게 흘릴 만했네.

“사안이 사안인지라… 그.”

아서는 해쓱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러고는 방 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번 이상 게이트에 관해서, 제가 간략히 브리핑 먼저 하겠습니다.”

본격 회의가 시작되었다.

***

쾌청한 날이었다. 하늘은 높았고, 구름은 양 떼같이 흘러갔다. 그 밑에서, 진마하는 입에 물었던 사탕을 아그작 씹었다.

“날씨가 좋네~”

이렇게 평화로운 날씨엔 꼭 속이 뒤집혀서 누군가를 잡아 족쳐야 마음이 편했다. 지금처럼.

진마하는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온 남자를 앞에 패대기쳤다. 머리가 깨져 이마에 피를 잔뜩 흘리고 있던 남자가 쿨럭 기침하며 그제야 눈을 떴다. 잔뜩 부은 얼굴이 엉망이었다.

“괴물… 괴물이야…! 으아아악!”

남자가 발작하듯 몸을 떨며 어떻게든 진마하와 멀어지려 애썼지만, 애꿎은 흙바닥만 긁을 뿐 진마하의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다리가 짓눌려서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남자는 성북구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각성자였다. B급 헌터로 살다 이직해서 여태껏 큰 사건 사고 없이 살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별일 없던 날이었다. 오후에 성북로에 있는 빌라 단지에 수상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만 뺀다면, 말이다.

B급 각성자 장기수는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원룸과 빌라가 모여 있는 동네는 길이 구불구불해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함께하는 동료와 함께 걸어서 골목골목을 살피며 더 안으로 이동했는데, 거기서 마주치고 말았다.

파지직 소리를 내며 허공에 입을 벌리듯 열린 게이트를 말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엎드려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몇 사람과,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돌아보는 저 남자를.

남자는 괴물이었다. 그의 한 손은 검게 구멍 난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었고, 무언가를 잡아서 끌어내고 있었다. 남자가 손을 빼내자 그의 손에 잡힌 게 보였다.

몬스터의 머리였다.

‘꼬… 꼼짝 마!’

‘멈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급하게 무기를 꺼내 겨눴지만 남자는 씩 웃기만 했다. 갑자기 게이트라니! 그것도 이렇게 민간인이 많은 곳에서 게이트가 열렸다니. 장기수는 처음엔 이번 일을 무료한 공무원 생활의 이벤트라고 생각했다. 옛날이 생각나기도 했고, 해결한다면 포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남자의 손에서 몬스터가 끌려 나와 머리를 내밀자 생각이 달라졌다.

‘신의 뜻을 방해하지 마라!’

엎어져 있던 검은 옷 입은 사람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장기수와 그의 동료를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신의 뜻이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를 제압했다. 몬스터를 꺼낸 남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오싹함이 등골을 훑어 내렸지만 잠시였다. 장기수는 호기롭게 나섰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도망쳤어야 했다.

“흐억… 헉… 사, 살려…!”

같이 온 동료는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반대편에 저 괴물 같은 남자의 손이 닿자마자 거품을 물며 쓰러졌으니까.

장기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기며 남자를 쳐다봤다.

진마하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광기 어린 눈으로 웃었다. 그 미소는 선해 보였으나, 팔 밑으로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있어서 섬뜩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장기수를 손쉽게 쓰러트렸다. 장기수는 비명을 질렀다. 공격이고 뭐고 먹히지 않았다. 남자는 손 하나 까닥하는 것만으로도 장기수의 발목을 꺾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장기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 파장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게이트 바로 앞에 있었다.

양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굴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장기수의 양팔을 붙잡았다.

진마하는 손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자,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흐으, 으흐흐…!”

“드디어… 내가…! 내가!”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은 식은땀인지 뭔지 모를 것들로 푹 젖어 있었다. 그들은 벌게진 눈으로 게이트를 보며 실성한 듯 웃어 댔다. 장기수는 벌벌 떨었다. 이자들 대체 뭐 하려고 이러는 건가! 왜 이 사달이 날 동안 주변엔 아무런 사람도 오지 않는 건지! 소름이 돋았다. 잡힌 몸을 빼내려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노… 놔!”

진마하는 양손을 옆으로 펼쳤다. 그는 거룩하게 명령했다.

“잘 가. 선택받은 자들이여.”

그의 목소리가 신호가 된 듯, 검은 옷의 두 사람이 장기수를 끌고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장기수는 눈을 부릅뜬 채 저를 보내는 진마하를 쳐다봤지만, 곧이어 그의 모습은 검은 게이트에 잡아먹힌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들은 죽을 것이다. 무지몽매해서, 그리하여 헛된 욕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진마하는 손을 털며 웃었다. 그의 손에서 또 하나의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흐음, 음~”

진마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셔츠에 피 묻은 손을 닦아 냈다.

요즘 작업하고 있는 백루찬이 자꾸 말을 안 들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이제야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진마하는 제 앞의 게이트를 바라보며 샐쭉 웃었다.

게이트의 마력 파장이 불길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건 백루찬을 잡을 미끼였다. 더불어 차해준도… 잡을 수 있으면 잡고. 아니면 말고.

진마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게이트에서 등을 돌렸다.

“시작은 언제나 미약하고,”

진마하의 한쪽 눈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차원의 간섭 시도로 인해 오류가 일어났습니다.]

[구멍이 뚫렸습니다. 이대로라면 세계가 흔들립니다.]

[오류!]

[경고!]

[경고!]

[게이트를 제거하십시오!]

[제거! 제거!]

눈앞을 물들이는 텍스트가 붉은색으로 경고를 계속 날렸다. 그도 아주 오랫동안 봐 왔던 세계의 간섭이다. 차해준처럼 봐 왔던. 진마하는 흥얼흥얼 중얼거렸다.

“끝은 창대하리.”

그는 멸망을 아무도 막을 수 없게, 세계가 선택한 자라도 막을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의 파란 눈에는 다른 세상이 보이고 있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그의 소망과도 같은 세상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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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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