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혼자 굳어 버린 나를 송류진은 순수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어설프게나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 네. 제가… 음, 병실을 잘못 찾아왔네요.”
목덜미를 매만지며 그대로 몸을 돌리려 한 그때, 송류진이 말했다.
“저도 이제 나갈 거라서 괜찮습니다. 누구 찾으러 오신 거예요?”
“…네. 친구 찾으러 왔습니다.”
“아아, 친구가 모르젠트 소속인가 봐요. 헌터신가요? 병동이라니, 많이 다치셨어요?”
송류진은 상냥하게 되물었다. 눈썹을 늘어트리고 쳐다보는 시선은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혹은 모르는 병실에 갑자기 들어온 내가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꺼내는 말 같았다. 그런 모습이 송류진다웠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게.
그리고 무엇보다 송류진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매번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하며 가라앉아 있었던 모습이 아니라, 본래의 송류진처럼 밝은 기운을 뿜어낸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그런 녀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마주치는 시선에 눈을 피했다.
“아… 네. 좀 사고가 있어서…. 그런데 그, 어디 아프셨던 건가요?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아, 저요? 저도 뭐, 사고가 있었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그런 일이 있어서 저도 기절했다고 하네요. 몸은 쌩쌩해요.”
정말 괜찮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머리를 마저 털어 냈다. 그 모습이 진짜로 건강해 보여서 나는 작게 웃고 말았다. 사고라면 자신이 폭주했던 것을 말하는 걸 테지. 폭주했던 상황도 기억 못 하는 것일까? 기절‘했다고’ 하는 거면…. 나에 대해선 완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류로 인해 제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클리어런스의 이해를 바랍니다.]
눈앞에 시스템창이 깜박이며 떴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송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명한 각본의 황태자를 여기서 만나다니 운이 좋네요. 악수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제가 누군지 알고 계셨구나.”
“그럼요. 모를 리가… 없죠.”
“아하하, 감사해요. 알아봐 주신다니 영광인데요.”
송류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그 손을 꽉 붙잡았다가 놓았다. 조금 마음이 복잡했지만… 결과야 어떻든 괜찮아졌다면 다 됐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아? 네, 네. 고맙습니다.”
송류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아마 각본 활동에 대해 고생했다고 알아들었을 거다. 그의 모든 활동이 뉴스 기사 감이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있었지만 나는 그동안 녀석이 진마하에게 세뇌당해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 의지가 아닌 남에게 휘둘려서 지냈던 그 모든 시간들. 어쩌면 나… 때문일 수도 있는 그 시간들이 나는 너무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시 돌아온 송류진이 대견했다. 나는 괜찮았다. 기억하지 못해도.
마지막으로 작게 웃어 주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송류진은 무어라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눈짓으로만 인사한 뒤 병실을 나섰다.
병실 문을 닫고, 잠깐 고개를 숙여 발끝을 바라보다가 복도를 걸었다. 송류진은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마음 한쪽이 조금 허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금세 지워 냈다. 다 괜찮아졌다. 그렇다면… 다 된 거다.
***
송류진은 머리를 탈탈 털며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기절하고 실려 온 터라 그런지 생활용품은 몇 없었다. 챙길 것도 옷가지와 일회용품 몇 개뿐이었다. 그때, 탁자에 올려놨던 호출기가 번쩍이며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는 수건을 내려놓고 액정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우반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
“네, 형.”
손은 멈추지 않고 짐을 정리하면서, 한 손으로는 호출기를 귀에 가까이 댔다.
-다 챙겼어? 모자 챙겨 쓰고, 마스크도 끼고 나와. 되도록 사람들 모인 곳 피해서 잘 나와 봐라. 보는 사람 많을수록 좀 그래.
우반희는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무래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일 처리하느라 바쁜 상황에 짬 내서 전화한 거겠지. 우반희는 항상 자신을 챙겨 줬으니까. 송류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
“네, 형. 잘 나가 볼게요.”
-그래.
“형, 근데.”
-어.
“혹시 내가… 뭔가 잊은 게 있었나?”
-……무슨 소리야. 짐은 네가 챙기고 있으니 잊은 거 없는지 잘 살펴보면 되잖아.
“그런 거 말고… 좀, 뭔가, 기분이 묘해서 그래.”
-잊긴 뭘 잊어. 허튼소리 할 거면 끊어라. 바쁘다.
“…그렇죠? 고마워요, 형. 대신 수습해 주시고. 저도 가서 도울게요.”
-됐고요. 가서 쉬기나 하세요. 모레부터 정상 출근 하시고.
“아싸, 공짜 휴가. 나 진짜 괜찮긴 한데.”
-무급이거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 암튼, 잘 챙겨서 집으로 가라. 도착하면 연락하고. 끊는다.
“네, 형. 들어가세요.”
송류진은 웃는 얼굴로 전화가 끊어진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웃던 입꼬리가 점점 내려가며 어딘지 망연한 자신의 얼굴이 액정에 비쳤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무언가 허하면서, 명치께를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자꾸 웃음이 울음처럼 튀어나왔다. 가만히 손을 들어 제 심장 부근을 더듬었다.
왜 자꾸,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기분이 들지.
송류진은 한참 동안 멀거니 서서, 침묵에 잠겼다.
***
축제가 끝나고 나서 종강을 맞이한 캠퍼스는 한가했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과사에도 들러 교수님들도 뵙고, 그동안 못 본 시험을 대체할 과제들을 잔뜩 받아 왔다.
대부분은 실습 때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그냥 넘어가 주셨는데 전공 교수님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으셨다. 리포트를 한 뭉텅이 써서 드려야 해서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 졸업이 어디냐. 진짜 다행이다. 차해준이 헌터로 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불법 각성자로 끌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 속으로 홍희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필요한 책들을 빌리고 길드로 갈 생각이었다. 교정을 따라 걷는데,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따라왔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헤치고 갈 수 있었다. 이제 이런 관심도 적응이 되나 보다. 아무렇지 않은 거 보면.
“날씨 조오타.”
송류진은 잘 퇴원했으려나…. 신경 안 써도 각본에서 처리 잘해 줬을 텐데 괜히 생각이 그쪽으로 흐른다.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쳐다봤던 송류진.
조금 씁쓸해져서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은가 보다.
차해준의 과거 기억 조각을 읽으면서 송류진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차해준의 유일한 친구…. 차해준은 유일했던 친구마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뒤 나탈리스를 만나는 장면도 떠올랐다.
…차해준은 정말 회귀를 한 걸까. 그게 초전 박살 게이트의 원래 내용이었던 걸까.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엔 회귀 같은 건 없었다.
시스템은 대체 내게 과거의 기억 조각을 왜 보여 주는 걸까…. 무언가 알려 주려고? 의구심은 자꾸 커져 갔지만, 시스템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마치 그것에 관해선 함구하겠다는 듯이.
뭐… 과거가 어쨌든 내가 메인 캐릭터들을 모두 구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일단 남은 캐릭터들을 다 찾고, 세계 평화를 이뤄 내 보자고.
수명도….
[각성자 차해준의 현재 남은 수명: 252일]
…이 정도면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벌써 두 명을 찾았으니까. 백 일 만에 두 명 찾은 거 아냐!? 하하하하 남은 세 명? 이백오십 일? 껌이지…. 아, 눈에 습기가 차는 거 같은데.
눈가를 문지르면서 도서관으로 가 책을 빌리고는 모르젠트 길드로 향했다.
대학생 티를 팍팍 내면서 모르젠트 정문으로 출근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로비를 가로질렀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로비에 있던 대부분의 헌터가 나를 보고 있었다.
“…….”
…뭐야, 이 시선? 온갖 궁금증이 가득 담긴 시선들은 어쩐지 전과 좀 달랐다. 나는 위화감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기분인데… 다들 말 그대로 나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할 말 있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와 씨, 너무 부담스러운데. 빨리 올라가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옷을 너무 후리하게 입어서 그런 건가? 책을 가득 들어서? 아니 다들 대학생 처음 보나….
엘리베이터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위층에서 누가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고 서며 손을 내밀었다. 흠칫 놀라 쳐다봤는데, 어째 남자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패… 팬입니다!”
“…예?”
“이, 이렇게 뵙게 되어 너무 영광이고… 제가 형님 보고 헌터가 되었는데 정말 제가 이 순간만 손꼽아 기다렸고…….”
…아니 뭐라는 거야. 그보다 형님이라뇨.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시는데요.
“아… 네.”
얼떨결에 손을 잡혀 악수를 하게 되었다. 남자는 상당히 감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긍기사 팬인가? 한일고 게이트 이후로 이렇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좀 많긴 했는데….
“저,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도 팬이에요!”
“사, 사진 가능할까요? 혹시 사인은?”
힐끔힐끔 눈치 보던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몰려들었다. 나는 당황해서 눈만 껌벅이다가, 결국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악수해 주고, 사진까지 찍어 줬다. 너무 휘리릭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백루찬 사무실 층을 누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야.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왜 같이 안 타냐. 너무 눈빛들이 반짝여서 당황스러웠다. 원래 그렇게 안 보지 않으셨나요? 모르젠트에 대단한 A급 헌터들이 즐비했으니까 긍기사도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길드장 사무실에 도착하니 백루찬은 없고 홍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홍희는 맹렬한 눈빛으로 패드를 휙휙 넘기고 있었는데 간간이 입술을 깨물며 씩씩거리는 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뭔 일 있나?
“뭐 해?”
내가 책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묻자, 홍희가 휙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부릅뜬 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빼며 질색했다. 뭔데 그런 눈이야?
“혹시 헌헌 봤어?”
“헌헌은 왜.”
“아냐, 보지 마.”
“…뭔데?”
호출기를 꺼내자 홍희가 퍼뜩 일어나 내 손에 있는 것을 뺏어 뒤로 감췄다. 아니 갑자기 뭔 일이지? 감추려는 태도에 좀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뭔데 이렇게 감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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