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바탈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 터미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이크를 든 연합뉴스 수석 기자가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뒤로 공항 출입구가 보였다. 앞뒤로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은 카메라와 현수막까지 동원해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베일에 싸여 있던 미국 랭킹 1위 바탈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각성자 관리 본부에서는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에 대해……
현장에 있는 김 기자 연결합니다.]
카메라를 든 감독이 사인을 주자, 김 기자는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네, 여기는 지금 김포공항 출입구 앞입니다.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요, 다름 아닌 바탈 루스번의 입국 때문입니다. 그는 현지 시각으로 어제 오전 8시경, 별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에 따라 그가 타는 비행기 및 착륙 시간을 확인한 팬들이… 아! 저기! 지금 바탈이 나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며 사람들이 앞으로 쏠릴 듯 모여들자 김 기자는 재빠르게 출입구를 가리켰고, 카메라가 돌아갔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그 앞에선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짧게 자른 금발 머리에 잔뜩 박혀 있는 피어싱. 그리고 요란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바탈은 제 앞으로 몰려든 기자들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우, 천천히. 괜찮아요. 밀지 마세요. 좋아요.”
말리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모를 말들을 영어로 중얼거리던 그가 입구를 지나와서 멈추자, 가장 먼저 마이크를 들이대고 앞자리를 차지한 기자가 다급하게 물었다.
“거참 밀지 좀 맙시다! 아, 네네! 미스터 바탈! 한국에 방문하시는 건 처음인데요, 어떻게 오게 되신 겁니까? 공식적인 방문입니까?”
기자가 영어로 묻자, 바탈은 기자의 영어 발음에 감탄했다는 듯 과장되게 그를 돌아보곤 씨익 웃었다. 그러곤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나는 그를 보러 왔어요.”
“그…라면 누구를 말입니까?”
“해준.”
“예?”
바탈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내리며 자신을 찍는 카메라에 윙크했다. 파란 눈동자가 마력을 머금은 것처럼 순간 안광이 일었다 사라졌다.
“차해준, 그를 보러 왔어요. 허니. 나 왔어?”
***
헌터X헌터 베스트 게시글
[미국 랭킹 1위가 한국 온 거 실화냐]
미친 진짜 바탈 입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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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찍는 기자들에게 브이까지 해 줌
근데 옷 뭐냐고 셔츠 뭐야 여기가 하와이냐고ㅠㅠ
└합성한 거 같다 말도 안 됨….
└한국에 대체 왜???? 왜????
└여기서 바탈이 왜 나오는데요…….
└쾌남 바이브 오져 버려 미치겠다 존나 웃는 거 봐. 근데 쪼리ㅋㅋㅋㅋ킹받앜ㅋㅋㅋㅋ
[바탈 한야한테 개처발리고 얼굴 안 보이더니 살아 있네]
한국 왜 옴? 또 처발리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세기의 대결 또 이뤄지는 거 아니냐고
└당장 한야 찾아가는 거 아님?
[당근 한야 찾으러 온 줄 알았죠]
기자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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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크 사진
각본에서 발표한 바로는 대 게이트 시대 미국과 한국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교류… 어쩌고 하는데 바탈 한마디로 다 포장 못 하게 되었다.
현재 상황
바탈: 그렇게 됐어ㅎ
각본: ?
차해준: ?
바탈 입에서 긍기사가 왜 나와??
└허니래 시바
└허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미국인 티 작작 내
└어쩔 수 없음 진짜 미국인임
└긍기사가 왜 바탈 허니임?
└바탈이 왜 긍기사를 찾냐 한야 찾아서 다시 붙으려고 온 거면 개쌉인정하는데 긍기사?? 존나 나 지금 바탈 옆에 붙어 있는 기자랑 똑같은 표정 하고 있다
└차해준 이름은 어떻게 안 거래… 이러면 그 의혹이 진짜 같잖아
└무슨 의혹? 긍기사 의혹이 있음?
└베글 읽어 봐라
[근데 긍기사 정말 A급 맞나?]
솔직 의심 안 할 수가 없다. 지금 게이트 몇 개를 혼자 터트렸냐
모르젠트에서 유독 싸고도는 느낌도 있고
스킬 쓰는 영상 보면 고작 A급이 가질 만한 스킬이 아니라고 느꼈다. 이건 헌터들 랭킹이랑 스킬 꿰고 있는 사람들은 알 거임 게임 좀 해 본 사람들도
차해준 스킬 어둠+그림자+폭사 스킬임 거기다가 메인 무기가 검이고
이거 솔직히 한 사람 바로 떠오르지 않음?
└예 다음 무리수
└합리적 의심이다
└솔직히 나도 좀 이해 불가함 한일고 게이트는 특히 더. A급이 혼자 깼다고? 말이 안 된다
└마력파장 조사 연구팀에 아는 사람 있는데, 한일고 게이트 등급 1급으로 측정되었다고 했어 더 넘었을 수도 있다고. 보스 몹 등급이 A급 이상이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말하던데
└네 다음 지인빨 무리수
[긍휼의 기사 차해준 = 한야 동일 인물인 이유]
1)
+사진
+사진
사진 화질이 좀 안 좋긴 한데, 한야랑 긍기사 검 모양 똑같음
디지털 단지 게이트 때 영상 보면 다 조각조각 잘려 있어서 제대로 안 보이긴 하는데 마지막 부분 3:24 보면 검이 보였다가 사라짐
이거 제작자들이 추측하는 한야 검이랑 동일한 모양임
2)
긍휼의 기사 차해준은 한야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 2년 뒤에 나타난 각성자임
처음 발견했을 때 신림 5동 A급 던전 때.
그때 언론 엠바고 걸렸다는 얘기 자자했던 건 다들 알 테고 차해준이 거기서 혼.자. 사람들 구해서 나옴
그 당시 기사 사진들 보면 다 한 사람을 블러 처리해 놈
+복원 사진
+확대 사진
+인상착의
+차해준 신발
솔직히 모자이크 되었지만 머리카락부터 비슷함 이건 사진으로 비교 바람
왜 A급 각성자를 블러 처리했을까? 왜?
S급 각성자 정한솔이 각성해서 걸었다고 쳐도 이상한 게 정작 정한솔은 블러 처리 안 함
3) A급이라고 할 수 없는 사기 스킬, 게이트 처리 능력
4) 악마의 눈동자 게이트 때 검은 어둠이 사방을 뒤덮고 터졌다 – 라는 증언이 개 많았음
그 당시 급박한 상황 때문에 제대로 남은 영상이 없어서 당시 인터뷰 내용으로 대체함
+사진
+사진
5) 그 외 증거들
+비슷한 옷 스타일
+체형도 비슷함
+나이 유추했을 때 지금 한야 나이 = 차해준 나이
+바탈이 차해준 언급
└ 이 정도면 진짜 한야 아니냐….
└정리 개추 존나 상세하게도 적어 놨네
└존나 합리적으로 의심이 든다 이거예요
└긍기사 한야한테 비비기 아주 난리 났죠? 존나 없어 보이죠? 긍기사가 한야 코스프레하고 다닌다는 말이 더 맞는 듯
└신은 인간이 아니다 한야는 신임
└어 따 비 벼
└합리적 갓심이라고 똘추들아 검부터 똑같은데 ㅅㅂ저건 뭐라고 설명할 거임? 아니 일단 검은 그렇다 쳐도 스킬 어떻게 설명할 건데
└어둠+그림자 스킬 가진 사람이 둘뿐이겠냐고
└올려치기 쩐다 진짜 한야?ㅋㅋㅋㅋㅋ긍기사 존나 지 뜻대로 돼서 좋겠다 한야라고 올려쳐 주고
└차해준 대단한 건 알겠는데 이건 아니지
└솔직히 나는 의심 감 의상착의 너무 비슷하고 창백한 얼굴. 이 인터뷰 존나 차해준 설명하는 거 같음
└‘지최경’에서도 의견 반으로 갈리더라 아니다 맞다
└차라리 맞았으면 좋겠어 솔직히 바탈이 긍기사 찾는 이유 한야라서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음 바탈이랑 접점 있는 거 한야뿐인데
└역대급 코스프레라고 본다
└차해준이 뭐가 아쉬워서 코스프레를 하냐고ㅋㅋㅋㅋ존나 어이없어
[솔직히 이제 정체를 밝힐 때도 됐다]
한야 등판해라
바탈 왔다
└이 몸 등장 해줘
└한야한테 삐삐 치러 감
└삐삐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거냐고 무슨 시대 사람임?
└할배요 인터넷 그만하세요
└아들 내외가 게임 같이 안 해 준다고 여서 놀지 마세여
└ㅅㅂ니들은 안 늙나 보자
└차해준= 한야 맞다 이 몸이 유추한 결과 확실하다 한편 나라가 디비진다…
└?
바탈 입국 날, 절대 터지지 않았던 헌터X헌터 사이트가 터졌다.
***
나는 병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했다. 병실 안의 환자 네임표는 비어 있었지만 나는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을 보려니 긴장이 되었다. 나는 괜히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세뇌가… 정말 잘 풀렸을까. 그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의료진을 통해 들은 말로는 이상 행동을 보이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마하 그놈 스킬은 나도 당할 만큼 강력했으니까.
얼굴 보면 뭐라고 말하지. 괜찮냐고? 송류진은 과연 괜찮은 상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차해준에 대한 기억이 오류가 나서 삭제되었다고 했으니, 확인하는 방법은 내가 직접 들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노크했다.
“…….”
그러나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순간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병실 안엔 창문을 통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창가 옆 침대는 계속 비워져 있었던 것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라, 뭐지.
그때였다. 구석에 있는 욕실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곧이어 욕실 문이 열렸다. 머리를 감았는지 수건으로 물기를 털던 송류진이 들어온 나를 보고 멈칫했다.
아, 씻고 있었구나. 탈의한 상의 때문에 맨 상체가 그대로 보여서,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 그….”
대박 뻘쭘해서 미칠 것 같다. 민망해서 목덜미만 쓸어내리다가 힐끔 송류진을 쳐다봤다. 녀석은 멈칫했던 것도 잠시, 이내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서랍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괜찮냐고? 잘 쉬었냐? 혼자 열심히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송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모르젠트 관계자분이신가요?”
달싹이던 입이 그대로 다시 닫혔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송류진을 바라봤다. 송류진은 전과는 다르게 어딘지 좀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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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