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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04화 (104/201)

104화

“우왁.”

고글을 통해 보는 스크린은 더욱 사실 같았다. 3D라더니 진짜 튀어나와 보이네!?

무너진 도시 사이에선 좀비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한 발씩 쏠 때마다 장난감 총에 진짜처럼 반동이 일었다. 와씨, 이거 신기하다.

- 탕! 탕! 탕!

연속으로 좀비 세 마리의 머리를 맞히자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열네 마리.”

-탕!

“난 열다섯이다.”

빠르게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무아지경으로 쏘아 맞혔다. 옆에서 백루찬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 물론 나도 지지 않고 열심히 했다.

좀비들이 무너진 도시 사이를 무섭게 가로지르며 튀어나온다. 4차선을 가득 채운 부서진 차량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좀비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마지막, 육교가 있는 도로 위에서 뛰어내린 좀비를 헤드샷으로 날려 버리자, 화면을 가득 채우며 내 쪽에 You won! 글자가 떴다.

나는 고글을 벗으며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백루찬을 바라봤다.

“어쩌냐, 무참히 져서?”

“한 마리 차이였거든요?”

백루찬이 고글을 벗으며 말했다. 한 마리 차이라도 이긴 건 이긴 거다.

“백루찬 공식적으로 눌러 버렸다.”

박수 치는 한솔이와 새벽이를 향해 브이를 날리며 당당한 얼굴로 승리를 만끽했다. 백루찬은 정희수에게 총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와, 대단해. 역시 긍기사. 아쉽지만 소원은 형이 들어줘야겠다.”

“아.”

맞아, 이긴 사람이 진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했지. 뒤늦게 내기의 내용이 떠올라 웃다가 굳어 버렸다. 이거, 웃을 상황이 아니었네…. 백루찬은 눈꼬리를 휘며 방긋거렸다.

“아, 져 버려서 너무 아쉽네요. 하… 원한 건 아니지만 약속은 지켜야겠죠? 어쩌나, 나 형에게 쓰고 싶은 소원이 너무 많은데.”

“…….”

어쩐지 당한 기분인데. 의기양양했던 것도 잠시, 백루찬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곤 속닥거리는 것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소원. 빌어 봐라. 형이 뭘 못 해 주겠냐….”

“아까부터 계속 위험한 소리를 하고 있어.”

“네 의도가 제일 불순해, 인마.”

옅게 웃으며 타박하자 백루찬은 능글맞게 웃었다. 이거 노렸구만….

“대바악! 만 점 넘었어요!! 못 잡은 좀비가 세 마리 이하여야 가능한 점수인데!”

정희수의 말에 콧대가 올라갔다. 그럼 S++급 헌터에게 이 정도 게임은 껌 아니겠니. 씨익 웃으며 정희수가 아까 했던 말을 돌려줬다.

“그래서 공짜라고?”

“네, 네 고, 공짜죠! 근데 진짜 게임은 재능인가 봐요.”

정희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쉽게도 순위는 3위!”

“어엉?”

만 점이 넘었는데 3위밖에 못했다고? 조금 놀라서 쳐다보자 정희수가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엔 순위표가 적혀 있었는데, 1위는 공대전차 2위 양념짱아치 3위가 몰젠 이렇게 나와 있었다.

“1위는 대체 누구야.”

“있어요. 공대 다니는 친군데.”

“헌터야?”

“아뇨? 완전 마른 여자애예요. 안경 큰 거 끼고 다니는.”

“…….”

정희수는 해맑게 말하며 총들을 정리했다. 그 뒤로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서, 더 대화하기는 어려워 자리를 옮겼다. 계속 호출기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기도 했고.

호출기에선 조하영이 메시지를 쉼 없이 보내고 있는 상태였다.

-어디야?

-왔어?

-학교에타 난리난더라 너 왔다고ㅋㅋㅋㅋㅋ몰젠길마도 왔다며?

-아 어디야아아아!!!

-여기 부스존 끝으로 와!

-빨리와라급함

-급함!!!!!!!!!!

“급하다고?”

“네?”

“아니, 문자가.”

뭐가 급한 거야, 느낌표도 잔뜩 달고. 일단 애들 데리고 조하영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부스 존 마지막 부스라고 했지…. 열심히 사람들을 헤치며 조하영을 찾았다. 키도 조막만 해서 찾기도 어렵네.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데 저 멀리서 조하영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차해준!”

“어. 뭐냐. 뭐가 급하다고 이 난리야?”

“어 존나 급해, 지금. 우리 부스 판매 꼴찌 달게 생겼어. 빨리 와.”

“…엉?”

조하영은 내 뒤를 따라온 백루찬과 아이들을 힐끔 보고는 어딘지 상기된 얼굴로 몸을 휙 돌렸다. 조하영은 내 팔을 붙잡아 당기며 조용히 속닥거렸다.

“쩐다. 진짜 모르젠트…! 내 미래의 상사…!”

“누가 미래의 상사야….”

하여간 아직도 허튼 꿈 꾸고 계시죠…. 혼자 잔뜩 흥분한 조하영의 머리를 꾹 누르며 부스로 향했다.

“오! 왔어?”

부스엔 김소민도 함께 있었다. 김소민은 나를 발견하고 화색이 된 얼굴로 인사했다. 둘러보니 다들 앞치마를 매고 있고,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와, 미친. 파전이다. 김소민이 이제 막 나온 파전을 빠르게 서빙하고 내 앞으로 왔다. 그러고 보니….

“…머리에 그거 뭐야?”

“아, 이거?”

김소민이 브이를 하며 귀여운 척 포즈를 취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

김소민의 귀에 걸린 건 무려 동물귀 머리띠였다. 아주 귀여운. 기가 막혀 김소민이 낀 고양이 귀를 잡아당겼다.

말이 되냐. 체교과 출신들이라 다들 한 근육 하면서, 더군다나 우락부락 몸을 키운 남자 놈들이 핑크 앞치마에 동물 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체교과 애들이 낸 부스는 ‘모여 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이름의 파전 앤 막걸리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이름이랑 파전이랑 뭔 상관관계인데?!

조하영과 김소민은 음흉하게 웃으며 다른 동물 귀 머리띠를 꺼내 들었다. 아, 낌새가 왔다.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뒤로 뺐다. 절대 싫다.

“나 손님이거든? 그리고 장사가 이렇게 잘되는데 대체 뭐가 급한 거야.”

“우리 콘셉트가 먹혀들었는지 초반에 몰려왔는데, 지금 반대쪽에서 경영과가 연 와인 바에 다 뺏겼다고! 사람들이 구수한 이 맛을 몰라!”

“콘셉트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드냐고.”

“경영과에 한국대 다니는 연예인 그 이… 이… 아, 이름 뭐지, 아무튼 연예인 누구 와서 다 그쪽으로 갔어! 자, 여기서 제안하지! 너의 특별 임무!”

“거절한다!”

“국산 피카… 아니, 저기 길드장님도 쓰셨는데 네가 감히 거부해!?”

조하영의 말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백루찬이 다른 체교과 애한테 머리띠를 받아 쓰고 있었다. 한솔이도 새벽이도 썼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모르젠트 길드 마스터가…….

“미친, 찍어야 돼.”

다급히 호출기를 찾았다. 토끼 귀를 낀 백루찬이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미친, 홍희가 보면 백 년 치 놀림감인데 존나 잘 어울려서 뜨악했다. 왜 잘 어울려, 왜! 호출기를 들이대자 백루찬은 빙긋 웃으며 양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냈다. 아, 진짜… 너 얼굴이 다 했다. 일단 저장. 나는 바로 찍어서 홍희에게 전송했다.

“형아, 이거 귀여워!”

“쌤도 쓰세요!”

고양이 귀와 병아리 같은 인형이 달린 머리띠를 쓴 한솔이와 새벽이가 나에게 적극적으로 권해 왔다. 조하영이 억지로 내 허리를 숙여 머리띠를 채웠다. 나는 뭐냐… 강아지?

“할 일은 가만히 앉아서 파전과 막걸리를 주워 먹고 있거라! 사람들 모으는 병풍과 같은 역할이다!”

조하영이 허리에 손을 얻고 명령했다. 김소민은 한솔이를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안녕? 우리 꼬마 손님은 먹고 싶은 거 만들어 줄게! 뭐 먹고 싶어?”

“저… 고기면 다 좋아요!”

“좋아, 육전 가자!”

“와아아!”

상냥해 보이는 인상에 친절한 어투를 한 김소민에겐 한솔이도 머뭇대다가 대답했다. 낯 많이 가렸는데, 최근에 들어 점점 예전의 모습을 많이 찾아가고 있어서 기특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고, 조하영은 부스 앞,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우리를 앉혔다.

여기 앉는다고 손님이 오겠냐…… 라고 생각했는데 앉자마자 부스 안 자리가 가득 찼다. 조하영이 나에게 윙크를 보냈고, 나는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대출혈 서비스~! 모르젠트 길드장님도 오셨으니까 파전 특대 사이즈~! 육전 추가!”

김소민이 신나서 테이블을 세팅해 줬다. 백루찬도 그렇고, 한솔이와 새벽이도 열심히 같이 먹었다. 나는 파전을 한입 먹고 급하게 조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노경서가 파리한 얼굴로 파전을 굽고 있었다. 짜식….

“쌍따봉이다. 받아라.”

“필요 없어…… 살려 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파전을 열심히 조각내 먹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구해 줄 수가 없다….

이제 해는 다 졌고, 하늘은 어둑해졌지만 축제는 계속 이어졌다. 멀리서 공연을 하는지 음악 소리가 시끄러웠고, 인파는 계속 몰렸다. 조명이 잔뜩 반짝이는 학교는 생각보다 운치가 있었다.

***

여름밤의 공기는 마음을 붕 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솔이와 새벽이는 따라온 길드원과 함께 돌려보내고, 나는 백루찬과 막걸리를 깠다. 이미 소주를 한 병 비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각성자가 알코올에 질 리가 없으니 뭐…. 분위기에 취한다 치고 막걸리를 잔에 가득 따라 백루찬 앞에 놔 주고는 내 잔을 채웠다.

어느 정도 팔았는지, 이제 조하영과 김소민, 다른 체교과 애들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먹어! 먹어! 오늘 먹고 죽자!”

조하영이 막걸리 병을 들고 꿀꺽꿀꺽 마셨고, 김소민이 벌게진 얼굴로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는다.

“많~이 드셔!”

요리하던 체교과 남학생이 짭짤하게 벌었는지 흐뭇한 얼굴로 음식을 가득 가져다줬다. 노경서는 흐느적거리며 있다가 술잔에 막걸리를 또 가득 부어 원샷 했다. 쟤네 어쩌려고 저래….

저들을 힐끔 보고 고개를 돌리는데 백루찬은 다리를 꼬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댄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살짝 붉어진 뺨이 희끄무레한 얼굴에 잘 어울렸다. 나는 장난스럽게 타박했다.

“취했냐?”

“그럴 리가.”

“취했다 치자.”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조명 가득한 축제 분위기에 취했다 치자고. 옅게 웃으면서 막걸리를 마셨다.

“저… 사, 사진 한 번만.”

“아, 예, 예.”

멀리서 쭈뼛대며 지켜보던 여성분이 수줍은 얼굴로 사진을 부탁했다. 옆으로 오시라고 손짓했지만 내저으며 나와 백루찬을 가리켰다. 아, 우리 둘만? 그럼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뭐 어때.

나는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들을 향해 싫은 티 팍팍 내는 백루찬을 붙잡고 웃어 줬다. 어깨를 감싸고 친한 척하자 연신 휴대폰으로 찰칵거렸다. 백루찬이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표정으로 받아 주다가, 이제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잘 받아 주네?”

“뭘 받아 줘요.”

“이런 거 질색하면서 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더니.”

“형, 제 얼굴 사진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광고로 가면 수십억 껌이야. 이건 다 그것을 위한 서비스 같은 거지.”

“아이고, 그런 깊은 뜻이.”

“형 월급이 어디서 나왔을 거라 생각해?”

“잘 부탁드립니다.”

그거 아니어도 돈 잘만 벌면서. 나는 장난스럽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루찬이 피식대며 웃었다. 오늘은 좀 편해 보이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편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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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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