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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02화 (102/201)

102화

백루찬이 소문낸 건가? 한일고 게이트가 A급이 혼자 깼다고 하기엔 좀 난이도가 높긴 했지. 말도 안 되고.

그때, 나는 김한울과 이유성 뒤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숨어 있는 강영원을 발견했다. 쟤는 또 왜 저러고 있어?

숨어 있던 강영원은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다시 휙 고개를 수그렸다. 나는 짜게 식은 얼굴로 놈을 쳐다봤다.

인마… 숨겨지지도 않는 덩치로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리고 수줍? 수줍 뭐야!? 그 표정 뭐야?

“영원아, 뭐 해. 너 기다렸잖아.”

“와씨, 너 뭐 하냐.”

이유성과 배서윤이 강영원의 행동을 보고 기겁해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쟤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구만.

이유성의 보챔에 망설이던 강영원이 고개를 빼고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더듬대며 인사하는데 어딘지 이상했다. 원래 이런 놈 아니었는데.

“…너 어디 아프니?”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강영원이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빛냈다.

“제 걱정을 해 주신 건가요!”

감격에 젖은 얼굴로 두 손을 꼭 모아 잡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당황해서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김한울 뒤에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더니 냉큼 다가온 강영원은 내 팔을 바짝 껴안고 들러붙었다. 나는 더욱 짜게 식어 버렸다. 너 나 싫어하지 않았냐?

“소름 돋아….”

“이게 바로 처세술인가… 바로 태도 변환하는 것 봐.”

김한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팀원들도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강영원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나한테 딱 달라붙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 새끼 같은데. 꼬리까지 흔들리는 환영이 보인다. 내가 몸을 뒤로 빼면서 피했더니 더 달라붙어 속닥거렸다.

“형, 형. 저 입단속 잘 하고 있었어요.”

“뭐, 뭘?”

당황스럽게 되묻자 강영원은 쳐다보는 팀원들을 힐끔 째려보더니 바짝 붙어 귓가에 속삭였다.

“형이… 그 사람인 거.”

“…….”

다들 아주 수상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데. 네 목소리도 이 정도 거리면 A급 각성자들 귀에 다 들렸을 거 같은데.

강영원은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 내 어깨에 턱을 올렸다. 한야인 걸 숨겼으니 잘 봐 달라는 그런 애교냐?

근데 나 이미 포기했다고…. 시크릿 아이덴티티고 나발이고. 아니 너 근데 왜 자꾸 들러붙어.

“어, 그래… 좀 떨어져.”

강영원의 이마를 밀어내며 고개를 뒤로 뺐는데 강영원은 내 손길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되레 제 얼굴을 비볐다. 야, 야. 너 인마. 진짜.

“그 위험한 게이트도 혼자 처리하시고…. 그렇다고 본인을 드러내지도 않아. 형은, 형은 진짜… 하, 너무 대단해요. 역시 남달라. 어쩜 이러지?”

이제 좀 징그러워지려고 한다. 강영원은 아주 으스러트릴 것처럼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시선이 아주 부담스러워 미치겠다. 뭐야, 이 동경의 눈빛이라니. 코앞에서 마주 보면 기겁할 만하다.

강영원은 그러면서 호출기를 꺼내 들어 내 앞에 들이밀면서, 내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사진 찍어요. 형, 남겨 놔야 해. 지금의 형을…!”

준비하기도 전에 찰칵찰칵 셔터음이 연속으로 터졌다. 어색하게 굳어서 대충 입꼬리만 올려 줬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팔은 좀 놓고….

다른 팀원들이 눈치 보다가 한 명씩 껴들었다. 결국 우린 단체 사진을 찍게 되었다. 다들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대체 뭐가 좋은 건데…. 사내놈들끼리 붙어서 사진 찍는 게 그렇게 좋냐?

그때, 길드장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팀원들이 깜짝 놀라 흩어졌다. 길드장실에서 나온 백루찬이 불쾌한 얼굴로 문을 잡고 있었다.

“아주 연예인 다 되셨네.”

“뭐래. 광고까지 찍는 놈이.”

코웃음을 치며 하는 말에 나도 빈정대며 대꾸하자 백루찬의 눈썹이 한껏 꿈틀거렸다. 아, 이런. 홍희가 신경 좀 쓰라고 한 소리 했는데 저 얼굴 보니 나도 모르게….

백루찬은 싱긋 웃었다. 웃는 얼굴인데 어째 살벌함이 잔뜩 느껴졌다.

“공략 1팀 진짜 한가한가 봐요. 그러니까 여기서 모여서 노닥거리고 있는 거겠지?”

“아, 아닙니다!”

“아이고, 벌써 출동 연락이…!”

“요즘 얼마나 바쁜데요! 하하하. 가자, 가자. 강영원 끌고 와. 저희 출동 다녀오겠습니다, 길드장님! 하하!”

“아니, 나는…!”

김한울이 강영원의 목덜미를 붙잡고 배서윤과 이유성도 어색하게 웃으며 움직였다. 그들은 강영원의 입을 틀어막고 재빠르게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다급하게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여전히 삐뚜름하게 서 있는 백루찬을 바라봤다. 백루찬은 나를 빤히 보더니, 휙 몸을 돌려 길드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 진짜 삐졌네.

나는 놈을 따라 길드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소파에 드러눕듯이 앉은 백루찬이 이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왜요.”

말투부터 삐져 있네. 나는 곤란한 얼굴로 목덜미를 긁적였다.

“집에 가려고. 고맙다는 인사 하려고 왔지.”

솔직하게 말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 백루찬은 불퉁하게 받아쳤다.

“이렇게 관심도 다 주시고. 뭐가 고마워서 그러실까.”

“…나 도와준 것도 그렇고. 그리고… 송류진 여기 있다면서. 각본 눈에 띌까 봐 여기로 데려온 거야?”

“아… 결국 그거야?”

백루찬이 이제야 나를 쳐다봤다. 올려다보는 시선이 영 곱지 않았다. 불만 가득한 눈빛에 울컥할 뻔했지만 꾹 참았다. 야이, 나도 할 말 많거든? 멋대로 키… 키스하질 않나. 어? 할 말 많은데…. 하, 부질없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고마운 건 사실이니까.

송류진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었어서 옆에 붙어 있는 백루찬에게 소홀했던 것 맞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루찬은 혼자 너무 완벽하니까… 더 신경 끄고 있던 것도 있었지. 매번 도와줬는데도 말이다.

백루찬은 내 표정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각본 상부에는 수감소에서 일 대 다수로 범죄자들 상대하다가 다쳤다고 해 둔 상태예요. 모르젠트에서 뒤처리 도와주기로 했고. 우반희가 남아서 다른 일들은 처리하고 있고.”

“아….”

“본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니 송류진에게 피해가 가거나 하진 않을 거고…. 그런데, 이게 제일 궁금했어요?”

“알아서 잘했겠지. 궁금까진 아니고.”

나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가, 백루찬을 힐끔 보고 그 옆으로 가 털썩 앉았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고맙다.”

“형이 왜 고마워?”

“그야 내 친구니까.”

“그런 친구 손에 죽을 뻔해 놓고도 그런 말이 나오네요. 진짜 눈물겨운 우정이다.”

“…비꼬지 마라. 진심이야.”

내 말에 백루찬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얼굴에 백루찬의 시선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백루찬은 여전히 미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나를 빤히 보는 집요한 눈길에 나도 피하지 않고 녀석을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뭘.”

“꼭….”

백루찬은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상체를 숙였다. 가만히 놈을 지켜보자, 백루찬이 고개를 갸웃하며 실소했다.

“꼭 뭐든 다 해 줄 사람처럼.”

백루찬은 점점 더 다가왔다. 딱히 밀어낼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 백루찬이 훅 다가오며 내 목덜미를 감싸 당겼다. 코끝이 부딪치고, 금방이라도 입술이 겹쳐질 것 같았다.

빤히 쳐다보는 회색 눈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입술이 금방이라도 들러붙을 것 같은 거리였다.

“원하면 다 해 줄게.”

“그거 진짜 위험한 말인데….”

백루찬은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가, 내리깐 눈을 들어 또 나를 바라봤다. 호흡하는 게 다 느껴질 정도였다. 목덜미를 감싼 손도 뜨겁다.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된 게 좀 난감하긴 했지만 피하고 싶진 않았다. 백루찬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그런 말 했어요?”

“…야.”

“예를 들자면 죽고 못 사는 그 친구한테.”

“…아니.”

…했다. 솔직히 다 받아 주려고 했다.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백루찬이 내 얼굴을 붙잡고 자신을 보게 했다.

“하여간 거짓말을 못해요, 형은.”

그렇게 티 나냐. 겸연쩍어 눈을 피하려 애썼다. 목덜미를 감싼 손이 더듬거리며 내려와 어깨를 둥글게 쓸었다. 야… 너 너무….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난 줄도 모르고.”

“…안다니까.”

“계속 애새끼들이나 주워 오고….”

“애새끼? 너 말이 심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 야.”

“형은 진짜.”

백루찬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떨어졌다. 뭐야. 키스라도 할 줄 알았더니.

그러고는 내 뺨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됐어. 나중에 받을 거야.”

“야, 무섭거든?”

“뭐가 무서워? 내가 뭐로 받을 줄 알고.”

“…….”

모르니까 더 무섭다는 거 아냐, 이놈아! 나긋하게 웃는 놈을 보며 소파에 있는 쿠션을 놈에게 집어 던졌다. 백루찬은 그것을 냉큼 잡고 탈탈 털며 도로 내려놨다. 묘하게 흘러가던 분위기는 금세 깨져 버렸다. 백루찬은 다시 속 편하게 소파에 기대서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어쩐지 좀 삐진 게 풀린 것 같긴 한데 완전히 풀린 건 또 아닌 거 같다. 에휴, 한숨 쉬고는 놈을 보다가, 주머니 속에서 호출기가 계속 울려 대서 꺼내 들었다. 조하영에게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야

-언제 올 거야

-이제 와서 기분도 풀고 그래

-다들 너 기다린다?

-빠아아아알리 오라고오오오

조하영이 재촉하며 보낸 메시지를 보다 백루찬을 힐끔 쳐다봤다. 축제… 너무 재밌겠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 조금 쉬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줄어드는 수명 생각에, 시나리오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또 복잡해졌다. 나는 침음을 삼키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 몸을 일으켰다.

“루찬아.”

“네.”

“형이랑 축제 갈래?”

백루찬이 무슨 소리냐는 듯 뒤를 돌아본다. 갑작스러운 말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기분도 풀어 줄 겸, 하루쯤은…. 몰라. 나도 모르겠다.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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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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