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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00화 (100/201)

100화

눈을 뜨니, 망해 가는 세상이 아닌 조명이 옅게 깔린 천장이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아, 익숙한 곳이다. 모르젠트 길드에 있는 병동의 천장.

“선생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움찔하며 돌아보니 새벽이가 와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눈을 껌벅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새벽이가 다가와 그런 나를 부축해 줬다.

“어… 괜찮아.”

부축해 줄 정도는 아니다. 괜찮다며 붙잡은 팔을 툭툭 다독였다.

[메인 캐릭터 ‘송류진’을 구했습니다.

보상: 차해준의 과거 기억 조각(2)]

[시나리오 초월! 종전의 기록을 확인해 주세요!(NEW)]

눈앞에 시스템창이 깜박이며 자신을 확인하라고 알린다. 나는 대충 손으로 휘저어 그것을 흐트러트리고 식은땀에 푹 젖은 이마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당황스럽다. 그때의 공포에 목 뒤가 서늘한 기분이었다. 이게 차해준이 상대했던 나탈리스인가. 그 용 새끼….

시스템 이 자식은 왜 쓸데없는 기억 조각들을 보상으로 주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상태 이상 해제권이나 팍팍 뿌리지. 괜히 겁먹었잖아, 지금.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새벽이가 우물쭈물하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집에 있어야 할 애가 여긴 어떻게 온 거지.

내 시선을 느낀 천새벽이 머뭇대며 말했다.

“선생님이 이틀 동안 집에도 안 들어오셔서 계속 걱정했어요. 길드에 계시다고 해서… 왔는데 또 병실에….”

침울한 어조로 말하는 것에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고사이 일이 많아 가지고….

아무래도 백루찬이 병동에 처박은 거 같았다. 손등엔 수액도 꽂혀 있었다. 이건 뭐냐. 몸에 뭐가 들어오는 거라면 지긋지긋한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침울한 새벽이를 다독였다.

“별일은 아니었어. 그냥….”

그냥…. 이걸 뭐라고 얘기하지. 계속 쥐어짜며 생각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씀 안 하셔도 돼요. 괜찮아요.”

아니, 네 표정이 전혀 괜찮지 않은데? 그렇다고 또 지어내서 말할 수도 없으니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천새벽은 조금 시무룩해진 눈치였다. …미안하다, 할 말이 없네. 진짜.

나는 멋쩍게 웃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송류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시스템창에 뜬 내용을 보면 괜찮아진 것 같긴 한데….

새벽이는 일어서는 나에게 다가와 부축해 줬다. 슬쩍 눈치 보며 물어볼까 싶었는데, 새벽이가 먼저 눈치채고 말했다.

“그분이라면 지금 다른 병동에 계신 걸로 알아요.”

“아, 누구 말하는지 알아?”

“알아요. 그분. 선생님을….”

새벽이는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다 알고 있던 건가? 백루찬이 말했을 리는 없고. 그나저나 각본의 송류진이 모르젠트에 있다는 거 소문나도 돼? 안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

“선생님 찾아서 길드 들렀다가, 우연히 봤어요.”

“아아.”

“지금 가셔 봤자 보지 못하실 거예요. 알기론 면회 금지로 되어 있던데….”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폭주까지 했으니 당장 깨어나기엔 무리가 있겠지. 찾아가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깨어나면 봐야겠다.

새벽이가 부축해 줬지만 몸에 좀 힘이 없는 것 빼고는 멀쩡했다. 그래도 도와주려 애쓰는 애의 마음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그때.

-쾅!

“아, 깜짝이야!”

갑자기 벌컥 열리는 병실 문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서 홍희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다.

“차해주운--!!”

“야, 야 이제 이름 막 부른다 이거지?”

“기절해 가지고 실려 온 주제에 말이 많다!”

“한두 번이냐!”

“자랑이냐!”

홍희가 매섭게 달려와 등짝을 부술 듯 때렸다. 으아아아, 짜릿한 고통에 몸을 비틀자 옆에서 천새벽이 입술을 앙 물고 웃음을 참는다. 너 재밌냐!

“부, 부길마님, 참으세요.”

“못 참아! 안 참아! 이게 몇 번째야! 말없이 몰래 나가기나 하고! 그런데 반성의 기미도 없어!”

“반성해! 반성한다고!”

“거짓말하지 마! 눈빛이 반항적이잖아!”

“무슨 눈빛 타령이야!”

“이봐, 이봐! 반항적인 거! 잘못했으면! 어!”

또다시 등짝을 난타하듯 갈기려는 홍희 때문에 소파 구석으로 피신하듯 도망쳤다. 다행히 앞길을 새벽이가 막아 주어서 홍희는 씩씩대며 발을 굴렀다. 으으, 왜 나한테만 그래! 물론 내가 자주 입원을… 했구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심통 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노려보자 홍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공짜는 없다! 막 퍼 주니까 제집처럼 병동을 드나드는데, 모르젠트 병동 하루 입원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어!”

“어차피 정산에서 다 깔 거면서….”

“조용히 햇!”

앙칼진 시선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홍희는 이제야 좀 진정이 되었는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때 병실 문밖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한솔이가 보였다.

“이제 다 끝났어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어보는 것에 결국 난 웃음이 터졌다. 나는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어, 모르젠트 분노 왕께서 잠잠해지셨다. 이리 와.”

한솔이가 개구쟁이처럼 웃더니 폴짝 뛰어왔다. 그새 키가 더 큰 거 같은데. 역시 성장기 어린이는 달라.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껴안고 말랑한 볼이 귀여워 볼에 뽀뽀도 쪽쪽 해 주었다. 한솔이가 희희 웃으며 품 안을 파고들었다. 아휴, 이제야 좀 힐링하는 거 같다. 이제야 좀 끝난 거 같고.

“당분간 나갈 생각 하지 마.”

홍희가 팔짱을 끼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왜, 무슨 일 또 있었냐.

“누가 사고 쳤어? 아직도 기자들 난리인가?”

한일고 게이트 일로 나에게 들러붙었던 기자들 수가 꽤 많았으니까… 아직도 난리인가 싶어서 물었더니 홍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뿐만은 아니고… 아무튼, 길드 앞 편의점을 가도 꽁꽁 싸매고 가.”

“왜, 무슨 일인데.”

“아, 있어.”

뾰로통한 얼굴에 픽 웃고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길마님 말씀 잘 들어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죠. 눈치를 보아하니 송류진 폭주 관련해서도 말을 들었고 그것 때문에도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송류진 폭주 관련해서 문제가 큰 걸까. 수감소가 완전히 박살이 났으니 문제가 안 생길 리가 없지만….

눈치를 보며 한솔이와 놀아 주고 새벽이와 시답잖은 얘기를 했다. 이번에 다시 시작한 수업은 어떻냐는 둥, 그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새벽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학교보다 멀지도 않고, 모르젠트에서 잘 챙겨 주셔서 편하게 다니고 있어요.”

진심이 듬뿍 느껴지는 말이었다. 새벽이의 눈빛에 진심 어린 감사가 그득 담겨 있다. 홍희의 어깨가 한층 더 올라간 건 말할 것도 없다. 홍희는 이제 다리까지 꼬았다.

“우리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 내가아 아주 최고로만 모시고 있다구!”

“믿습니다요, 홍희교.”

“음화하핫! 믿으라! 그리하면 주어질 것이라!”

맞장구 쳐 주자 벌떡 일어나 또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양팔을 벌린다. 새벽이는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짝짝 치고 있고, 한솔이도 오오- 거리면서 존경의 눈빛을 발사한다. 이 녀석들… 단단히 붙들렸구나.

차라리 진마하에 대한 것도, 모르젠트 길드 힘을 좀 빌려 볼까. 나도 길드원이고 소속으로 되어 있으니 도움을 줄 것 같긴 한데…. 그놈 능력이 범상치 않다 보니 망설여진다. 혹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 봐도 있고….

송류진도 모르젠트에 숨겼는데, 그 이상으로 요청하는 건 좀 미안하기도 한데.

시스템은 송류진의 오류 난 기억은 나에 관한 거라고 말했었다. 제거라고 했으니 이제 정말 괜찮겠지. 설마 또 진마하의 세뇌가 통하는 건 아니겠지.

오류를 삭제했으니 통하지 않길 바라고, 경계할 수 있도록 진마하에 대해 더 확실히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마하 그놈 꼭 찾아야지. 찾아서….

“선생님?”

새벽이가 내가 꽉 쥔 주먹을 툭툭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아, 링거를 꽂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나도 모르게 힘을 줬다. 나를 보며 웃는 새벽이를 보며 마주 웃었다.

“아무것도 아냐.”

더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냥 웃어 주기만 하고 더 말하지 않았다. 새벽이는 아직 어리다. 졸업도 못 한 고등학생이니까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한솔이처럼 지켜 주고 싶다. 위협에서.

그때 병실 밖에서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홍희가 벌떡 일어나 나가더니 하얀 봉지를 받아 왔다. 받은 것을 테이블에 펼쳐 놓는다. 잘 포장되어 온 죽 세트였다.

“…피자 먹고 싶어.”

“닥쳐랏. 이거나 먹어, 어디 환자가!”

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 위장은 멀쩡한데 왜 죽이냐고. 맹맹한 거 먹기 싫다고! 불만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고 홍희가 쓰읍 하며 나를 돌아봤다.

“그럼 굶든가.”

“잘 먹겠습니다.”

바로 자세를 잡고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주는 대로 먹어야지 환자가 별수 있겠어요… 그쵸….

그러고서 홍희는 또 병실 문 앞에서 음식을 배달 받았다. 이번엔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치킨이었다.

한 조각 뺏어 먹으려 했지만 홍희의 절대적인 명령에 한솔이도 새벽이도 나에게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아, 젠장. 진짜 눈물 나오는데?

“아픈 사람은 죽 먹고 빨리 나아야지. 그때까지 안 돼, 형.”

“맞아요, 선생님.”

“알겠느냐!”

“예, 예….”

다들 나만 구박하는 모양새라 서럽게 울며 죽을 퍼 먹었다. 치킨을 앞에 두고 지금 뭐 하냐고….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고, 홍희의 웃음소리가 간혹 울려 퍼지고, 창밖으론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빛이 병실 안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이상하게 평온해지는 풍경이라 나도 모르게 죽을 퍼 먹으며 피식 웃었다.

치킨을 든 홍희가 짓궂게 웃었다.

“마아니 먹어!”

“그래, 인마. 맛있어 죽겠다.”

피실피실 웃으며 창밖 도시를 바라봤다. 꿈 때문인지, 마치 꿈속이 현실이고 지금이 꿈인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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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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