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쿠르릉.
지진이 온 것처럼 건물이 울렸다.
“으학… 헉….”
눈앞에 있는 놈들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백루찬은 인상을 찌푸렸다. 검게 핏줄이 올라온 진강혁과 백상철의 얼굴은 기괴했다. 마치 인간이 아닌 몬스터처럼 보였다.
[낙뢰]
다시 백루찬의 번개가 백상철에게 내리꽂혔다. 이미 한쪽 목덜미부터 검게 지져졌으나 절반은 멀쩡한 상태였다. 백루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버티네?”
우반희는 놈들이 A급 범죄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버티는 것을 보면 S급을 웃도는 모양새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백루찬은 실험을 하는 기분으로 몸을 움직였다. 백상철이 비틀대다가 덤벼들어 오는 백루찬의 공격을 막아 냈다.
텅- 터엉!
마치 샌드백을 치는 타격감이었다. 놈은 뒷걸음질 치면서도 전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까 돌덩이같이 딱딱하던 것이 무르게 변하며 근육들이 제멋대로 요동친다. 백상철의 동공은 완전 돌아가서 흰자만 보이고 있었다.
“하… 루찬이는 비위가 약해요.”
미쳐서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토할 것 같았다. 백루찬은 혼자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우반희가 마력탄으로 진강혁을 공격하고 있었다. 마력으로 된 총알이 진강혁의 이마에 박혔으나 놈은 고개만 밀려 뒤로 젖혔을 뿐 금세 다시 우반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음 결정이 손안에서 시퍼렇게 빛을 내며 뿌려졌다. 하나하나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이렇게 강한 놈들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총신을 빙그르르 돌리며 우반희는 중얼거렸다. 아주 이상한 상황이었다. 진강혁은 온몸이 마력탄으로 난도질당했는데 멀쩡히 움직였다. 찢긴 옷가지 사이로 검게 줄이 가 있는 몸통이 보였다. 어째서 이렇게 변한 걸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게 폭주한 송류진의 마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엔… 말이 안 되죠?”
백루찬이 코트 자락으로 얼음 결정들을 쳐 내며 말했다. 우반희는 불편한 얼굴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폭주한 각성자의 영향을 받아 다른 각성자가 돌아 버린다? 거기다 폭주한 마력에 휘말려 등급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다.
“…역시, 차해준을 더 파 봐야겠어.”
“우리 형 건들지 말라니까. 팀장님은 왜 말을 안 듣지?”
백루찬이 우반희를 째려보곤 다가온 백상철을 발로 퍽 차 버렸다.
차해준은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말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익숙하다는 듯 넝쿨 사이로 사라진 것도 그렇다. 우반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이 비밀이 많아서 문제야.”
나는 그렇게 놈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차해준 그놈이 자신을 자극한다.
더 파헤쳐 달라는 듯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우반희는 안색을 굳히며 다시 총구를 진강혁에게 겨눴다. 질척거리는 이놈들을 빨리 떨궈 내고, 송류진과 차해준을 찾아 확인해 봐야겠다.
대체 송류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해준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집착하는 남자는 매력 없어.”
“너나 잘해.”
백루찬의 중얼거림에 우반희는 짜증 내며 대꾸했다. 가장 집착하고 있는 놈한테 듣는 잔소리는 기분이 나빴다.
***
송류진의 안색이 변했다.
“으윽!”
넝쿨들이 팔뚝을 칭칭 감아 왔다. 나는 한야를 빼 들고 천장에 연결된 부분을 베어 냈다. 몸을 뒤로 날리자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파파팍- 넝쿨들이 꽂혀 들었다.
“하… 미친.”
아까 내 몸을 감싸고 이곳까지 왔을 때와는 달리 정말로 살의가 담겨 있는 공격이었다. 송류진이 손을 뻗었다. 놈의 손짓에 따라 칼날같이 날카로운 줄기가 주렁주렁 뻗어 나왔다. 몸을 옆으로 띄워 돌면서 지면을 박차 송류진에게 다가갔다. 넝쿨을 조종하는 놈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내치려 했다.
그때, 송류진의 내 손목을 붙잡고는 몸을 돌려 반동을 이용해 나를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쾅!
“으윽!”
몸이 붕 뜨며 바닥에 처박혔다. 바닥재가 부서지며 산화했다가, 툭툭 떨어졌다. 찌르르 허리를 울리는 통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송류진은 여전히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표정은 전혀 감흥이 없어 보였다.
“해준아, 너 이 정도 아니잖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렇게 해선 나를 못 죽여. 전력을 다해야지. 잊어버린 거 아니지? 나도 S급이야.”
웃는 얼굴에 이를 악물었다. 죽이긴 누가 죽여…! 송류진 이 자식아, 나는 널 살리려 하고 있다고! 송류진이 내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인마… 친구끼리는 원래, 어?”
떨어트렸던 한야를 다시 붙잡아 들었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
[그림자 밟기(Lv.99)]
살짝 띄워진 몸이 순식간에 송류진을 향해 쏘아졌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라 움직임에 제약이 있었지만, 나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진짜 봐주지 않는다, 이 자식아!
검기가 번뜩이며 놈을 여러 번 갈랐다. 그때마다 넝쿨 뭉치가 솟아오르고 송류진은 마력을 통해 팔을 강화해 공격을 막아 냈다. 팔뚝에 실선이 가며 피가 뚝뚝 흘렀다. 젠장, 나는 결국 다 공격을 하지 못하고 멈춰서 뒤로 물러났다.
난도질당한 팔을 힐긋 본 송류진이 웃었다.
“왜 멈춰, 해준아. 내가 아플까 봐?”
묻는 말에 고저가 없다. 나긋나긋하게 떨어지는 목소리는 상황의 심각성 따윈 날려 보낸 것 같았다. 송류진의 마력이 꿈틀대며 일어나자 넝쿨들이 심상치 않게 우거지며 천장을 매웠다. 발밑에도 두꺼운 줄기들이 가득 찼다.
“하….”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송류진은 정신이 나간 상태다. 그래서인지 가르덴의 송곳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한야를 집어 던지고 맨몸으로 송류진에게 덤벼들었다.
시야를 막기 위함인지 넝쿨이 쏘아졌다. 줄기를 잡아채 뜯어내며 놈에게 다가갔다. 코앞에 서자 어깨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순간 가로막는 무언가에 손이 튕겨져 나갔다. 어느새 단단히 뭉친 줄기 방패가 내 손을 막아 내고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송류진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족족 막혀 들어갔다. 어느새 다리를 감은 줄기가 내 움직임을 막았다. 나는 바로 스킬을 전개했다.
[얼음 가시 숲(Lv.99)]
발밑이 쩌저정-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나는 다리를 감은 얼어붙은 넝쿨들을 깨트리곤 송류진에게 다가갔다. 몸을 붙이며 몸싸움이 이어졌다. 송류진은 능숙하게 내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냥 베어 버리는 것보다 확실히 제압하는 게 어려웠다. 놈의 옷자락을 붙잡아 당기며 팔을 뒤로 꺾었지만 송류진은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그대로 다른 팔꿈치로 내 명치를 찍었다.
“윽-!”
강타한 충격에 움찔한 순간 목을 감아 오는 넝쿨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를 끌어다 송류진에게 떨어트렸다. 몸이 질질 끌리며 벽에 처박히자, 넝쿨들이 온몸을 감싸 왔다. 송류진이 천천히 다가왔다. 목을 조이는 넝쿨을 붙잡다가, 놈이 다가오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뻗은 손도 넝쿨에 잡혀 벽에 처박혔다. 숨 막히는 고통에 눈을 가늘게 뜨고 송류진을 살폈다.
“…한야를 쓰면 편할 텐데. 공격 스킬도 쓰지 않고. 이렇게 무르면 어떡해, 해준아. 적들은 너를 봐주지 않잖아.”
“크… 윽….”
불거진 얼굴로 인상을 쓰자, 송류진이 한 발 더 다가오더니, 넝쿨에 붙잡힌 내 손에 자신의 손바닥을 댔다. 손가락을 겹쳐 꽉 잡은 뒤 고개를 가까이 숙였다.
“해준아….”
작게 숨을 들썩이며 꺼내는 목소리가 애달팠지만 나는 숨이 막혔다. 가까이서 본 송류진의 한쪽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잡힌 팔에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아, 으윽…!”
절로 이가 악물렸다. 힘을 줘 버티는 어깨부터 한쪽 팔이 덜덜 떨렸다. 손뼈가 아작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 씨발… 송류진, 송류진아. 너 진짜 이러면 나중에 후회한다, 이 자식아….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데, 송류진이 내 뺨을 붙잡고 코끝을 붙였다. 마치 입이라도 맞출 것 같은 기세였는데…. 씨발 네가 진짜 송류진이 아니라 진마하면 내가 못 참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어둠의 포식(Lv.99)]
어둠 속으로 삼켜 내는 어둠의 포식 스킬을 시전했다. 넝쿨에 잡혀 있던 몸이 뿌리째 뽑히는 것처럼 어둠 속으로 훅 빨려들어 갔다. 송류진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리고 나는, 놈의 뒤에 다시 나타났다.
찢긴 넝쿨 조각들이 팔다리에서 떨어지고 나는 그대로 송류진을 덮쳤다.
[제한 시간: 1:15]
눈앞에 시스템창이 붉은색으로 깜박였다.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송류진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방어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놈의 위에 올라탔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멱살을 붙잡으며 주머니 속에서 알약을 꺼내 입에 물었다. 윽, 뒤틀린 손이 아프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놈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숙였다.
아까 백루찬이 했던 대로, 놈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서.
그러나 그때.
“하, 해준아.”
송류진이 환하게 웃었다. 휘어지는 눈매 사이로, 푸른 눈이 번뜩였다. 그것을 보며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뭐라도 될까?”
송류진이 속삭이듯 말했다. 절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뭐가 되긴 뭐가 되는데, 우리가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은 너에게 뭐였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혀 밑에 알약을 숨기고, 되물었다. 송류진의 표정이 미묘하게 풀어졌다. 씩씩대면서, 나는 놈의 멱살을 한차례 세게 움켜잡고 눈을 맞췄다.
“너와 내가,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
“그럴 리가 없잖아. 멍청한 새끼야…….”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하겠냐. 네가 물론 메인 캐릭터고, 너는 세계의 기둥이고, 네가 없으면 세계가 무너지지만 일단 송류진 너는….
“나를 처음 봐준 친구잖아.”
가장 소중한. 항상 옆에 있었던. 순간 무언가가 울컥하며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었을 때, 아버지에게 맞기만 하고 도망쳤을 때도, 학교에서 홀로 있었을 때도… 가장 먼저 손 내민 건 송류진이었다.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었다.
각인 때문이라 생각했었어도 나는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제한 시간 0:23]
나는 웃었다. 물기가 맺힌 눈가에서 투명한 물이 송류진의 얼굴로 뚝뚝 떨어졌다.
…이건, 네가 불쌍해서야. 멍청한 생각을 혼자 하고 있으니까….
송류진은 가만히 굳어 나를 보고 있었다. 파랗게 잠겼던 눈이 갈색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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