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진마하
합동 장례식장은 한일 재단에서 따로 준비했다. 큰 홀을 비워 만들어 낸 장례식장은 새하얬고, 조화와 비통한 침묵이 넘쳐흘렀다.
한일고등학교의 새로운 교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원래 교감이었던 자였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 때 학생들을 대비시키다가 다쳤다고 들었다. 그는 절뚝대면서도 침착한 얼굴로 장례식을 진행했다.
한일고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참석했고, 나도 조하영과 함께 맨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너 괜찮냐?”
다가온 조하영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내 안색이 그렇게 나빴나. 나는 옅게 웃었다.
“괜찮아.”
“괜찮기는. 너 얼굴이 말도 안 되게 상했다. 봐줄 만한 게 얼굴밖에 없는 놈이….”
툴툴거리며 말하지만 걱정이 가득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러는 본인은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으면서…. 킁-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닦는 조하영을 보며 나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냐.”
“그렇지.”
약 기운이 한참 남아 있는 상태라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지만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숨을 들이켰다. 구해 주지도 못했는데, 배웅까지 못 하면 안 되지. 마지막은 잘 보내 주어야 한다.
장례식장에는 모르젠트의 길드장 백루찬과 홍희는 물론이고, 각본에서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천새벽은 한일고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아이들이 훌쩍이는 소리, 간헐적으로 들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이 쓰라렸다. 부디 자신의 생존을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곳만 흑백의 무성영화 같았다. 느껴지는 모든 사람들의 감정에 깊게 잠기는 것 같았다. 이런 일들이… 정말 단순히 책 속의, 텍스트로 나열되는 이야기일 뿐일까?
초전 박살 게이트. 이 세계로 와서 한 번도 붕 뜬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슬픔도, 살아 있다는 느낌도, 한 명 한 명 모두가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내가 또 무슨 생각을.
나는 눈을 깜박였다. 지금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을 지우고 앞을 바라봤다. 지금에 집중하기에도 부족했다. 게이트가 터지는 세계의 멸망을 막으려면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천새벽, 메인 캐릭터 중의 한 명을 살렸지 않나. 천새벽을 살리는 일에도 위험이 너무 많았다. 희생자들도.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서도 이러한 희생자들이 또 나올지도 모른다. 메인 캐릭터의 죽음뿐 아니라, 그것 또한 막고 싶었다. 아니, 막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다짐을 삼켰다.
“형, 몸은 어때요.”
헌화를 하고 온 백루찬이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흐음.”
백루찬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안 좋다는 거네.”
“말 그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는 거냐?”
“말 이면에 숨겨진 것을 눈치채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요.”
백루찬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 뻔뻔한 얼굴을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을 입은 인파들이 또 잔뜩 들어왔다. 이번 사건을 다들 ‘악마의 눈동자’ 게이트 다음으로 큰 희생을 치러 낸 사건으로 여겨서인지, 언론 매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를 때리고 있었다.
“기자들은?”
“각본 선에서 막았어요.”
“다행이네.”
이런 장례식장에 기자들이 안 올 리가 없었다. 특히 나에게 붙어서 뭐라도 한마디 얻으려는 기자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모르젠트 길드원들과 각본이 중재해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로 찍어 대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몸이 좋지 않은데, 상대하려면 많이 피곤했을 거다.
“형, 이만 가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었지만, 내 몸 상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 빌어먹을 포르페늄…. 그것을 생각하자 또 송류진이 떠올라 버렸다. 내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놈에게 화라도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진 않았다. 그냥 좀 안타까웠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송류진에게서 보였던 진마하의 모습. 분명 둘이 무슨 연관이 있을 텐데…. 대체 어디서 만났던 걸까. 아니 만나기는 한 걸까? 하긴 나도 진마하를 처음 본 게 학교에서였으니, 송류진도 학교에서 만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학생들은 아무도 진마하를 기억하지 못했다. 놈은 자연스럽게 학생으로 녹아들었다가, 다시 멋대로 사라졌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번에 송류진에게서 진마하의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계속 놓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만 가자는 백루찬의 손짓에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형?”
나는 백루찬을 따라 장례식장을 벗어나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대거 들어온 검은 정장 무리 중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파리하게 굳은 내 얼굴에 백루찬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 언뜻 보이는 옆얼굴이 익숙했다. 저놈이 대체 여길 왜…!
갑자기 내가 끼어들어 헤집고 들어가자 앞에 있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재빨리, 이제 막 헌화를 하려고 꽃을 집어 드는 놈의 팔을 휙 잡아당겼다.
“너…!”
“뭐, 뭐예요?”
그러나 붙잡은 남자는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똑같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얼굴이다. 나는 당황해 눈을 크게 뜨고 그 사람을 살피다가, 화들짝 놀라 잡아챈 팔을 놓았다.
“아…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자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뒤로 빠져나왔다. 아까… 분명 그 얼굴이었는데.
갈색 머리에 흰 얼굴. 분명 진마하였다. 나는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할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수상했던 진마하.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놈을 찾는 일이다. 놈을 찾아서 상태창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다시 백루찬에게 가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이제 막 장례식장 입구를 벗어나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진마하…!
내가 놈을 발견했을 때 놈이 나를 돌아봤다. 마치 내가 자신을 발견할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아니, 발견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진마하는 싱긋 웃더니, 이내 장례식장 밖으로 사라졌다.
“어디 가요.”
“잠깐, 잠깐 기다려.”
백루찬이 다급하게 장례식장을 벗어나려는 내 팔을 붙잡았다. 내 시선은 진마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백루찬의 팔을 떼어 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놈을 잡아야 한다!
길게 늘어진 추모 행렬 사이로 멀어지는 진마하가 보였다. 나는 사람들 틈을 헤치며 놈의 뒤를 쫓았다. 빌어먹을, 몸 상태가 조금만 더 괜찮았더라도 바로 스킬을 쓰는 건데! 지금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기자들까지 몰려 있어 스킬을 쓴다면 바로 주목을 받아 버린다. 그러면 진마하를 놓칠 테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너 인마, 잡히기만 해 봐…!
놈의 발걸음은 상황과 맞지 않게 가벼웠다. 진마하는 갈색 머리카락을 살랑이며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러곤 도보 모퉁이를 돌아 건물 사이 골목으로 사라졌다. 신호등이 깜박인다. 나는 빠르게 달려 놈의 뒤를 쫓았다.
“헉… 허억.”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빌어먹게도 약 기운이 가시지 않은 몸뚱어리는 잠깐 뛴 뜀박질에도 숨이 막혀 왔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진마하를 쫓아 골목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가 나타났다.
뛰던 것을 멈추고 무릎을 짚었다. 미친… 하, 존나 힘들었다. 간신히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고 상체를 세웠다. 진마하 이놈 어디 갔지.
바로 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주택가 길목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그때였다.
“나 찾는 거야?”
옮기려던 걸음이 뚝 멈췄다.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놈에게 손을 뻗었다. 옷깃을 움켜쥐려는 내 손을 몸을 뒤로 빼며 피한 진마하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놈의 무릎을 걷어차기 위해 다리를 뻗었다.
“이크-.”
진마하가 한번 더 뒤로 성큼 물러났다. 그 틈을 타 놈에게 가까이 붙었다. 팔을 붙잡아 당기며 팔뚝 사이에 손을 껴 비틀려 했다. 그러나 진마하는 빙그르르 몸을 돌려 내 공격을 피하고는 그대로 다른 팔을 휘둘렀다. 상체를 살짝 숙여 피했지만 잡았던 팔을 놓쳤다.
다시 뒤로 훌쩍 멀어지는 놈을 쫓아 붙으면서 손을 뻗었다. 손안에 한야가 쥐어졌다. 그대로 아래서 위로 검날을 쳐올렸다.
“아야야….”
“허억… 허억….”
그러나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그대로 진마하를 갈라 버릴 것 같았던 검신은 정장 끝자락을 잘라 냈을 뿐 놈에게 닿지 않았다. 진마하는 뒤로 훌쩍 뛰어올랐다. 나는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무언가에 잡힌 것처럼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 뒤로 소름이 타고 흘렀다.
진마하는 주택가 길목 옆에 주차된 자동차 위에 착지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장난스럽게 선 그는 잘린 옷자락을 보며 입 모양으로만 감탄사를 흘렸다.
“처음 제대로 마주치는 건데, 환영 인사가 이렇게 과격하다니 나 좀 감동이야.”
멀쩡해 보이는 진마하와 다르게 나는 숨을 헐떡이며 한야를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바로 시스템을 불렀다. 초월자의 눈!
[초월자의 눈 스킬 발동]
초월자의 눈은 상태 이상에 걸리기 때문에 잘 쓰지 않았던 스킬이었다. 시스템이 떠오르며 눈앞에 진마하의 상태창이 떴다.
[이름: 진마하
칭호:
클래스: ]
여전히 모든 것이 비어 있었다. 놈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붉은색 경고가 떠올랐다.
[경고!]
[경고!]
[UNKNOWN]
[UNKNOWN]
[심각한 오류 발생!]
[시스템에 오류가 잡혔습니다. 세계의 이상 상황 발견. ]
[읽을 수 없습니다.]
[오류----------------]
순간 눈앞에 가득 떠오른 시스템창들이, 지지직거리며 팟- 하고 사라졌다. 나는 바짝 굳어 버렸다.
진마하가 그런 나를 보며 발끝을 까딱이다가 자동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볼 수가 없지?”
“…….”
나는 흠칫했다. 진마하는 내 안색을 훑어보며 방긋 웃었다.
“세계 놈들이 보여 주는 것들 다 믿지 마.”
세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보여 주는 것들이라니 마치 내가 시스템창을 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순간, 벼락같이 떠오른 생각에, 나는 숨을 멈췄다. 놈은 알고 있다.
“너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
진마하가 천천히 다가왔다. 코앞까지 다가온 진마하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눈웃음을 쳤다. 나는… 이상하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진마하가 말했다.
“시스템이라고 부르나?”
굳어 버린 나를 보며 진마하의 입꼬리가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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